2월 말 폐막한 MWC 2019를 통해 국내 통신 3사는 보다 진보된 AR·VR 기술을 선보였습니다. 이번 트렌드 리포트에서는 기술이 무르익어감에 따라 진일보한 국내외 AR·VR 기술의 방송·영상 콘텐츠 적용 사례를 다양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비교를 위해 2018년 4월호 트렌드 리포트를 다시 읽어보시는 것도 추천해드립니다.
| VR·AR, 스포츠 경기의 몰입경험을 향상시키다
해외 방송사는 기술주도형 미디어 환경 변화에 맞춰 시청자의 몰입경험(Immersive Experience)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몰입경험은 가트너가 2019년의 전략기술로 선정한 개념으로, 물리적인 현실세계와 가상세계를 연결하고, 이것에서 나아가 이용자의 경험과 서비스를 향상시킬 수 있는 기술입니다.
해외 방송사에서는 AR과 VR 기술을 스포츠 중계에 많이 접목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최신 기술을 접목해 시청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는 점도 의미 있지만, 사실 TV 앞을 떠나 더 이상 스포츠도 모바일 기기를 통해 시청하는 젊은 층을 붙잡기 위한 전략 중 하나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해외 방송사는 이런 서비스를 자체 개발하기보다는 관련 스타트업과 협업해 유·무료 모델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따로 또 같이, VR 스포츠 중계
BBC는 2018년 러시아 월드컵 기간 33개 경기를 VR 앱으로 중계했습니다. VR로 구현된 가상공간에서 실제 경기를 시청한다는 컨셉으로, 경기 시청과 함께 관련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TV 화면(2D)과 동일한 화면을 굳이 VR 기기를 쓰면서까지 시청할 이유는 많지 않아 보입니다.
반면 Fox Sports는 이보다 진일보한 서비스를 선보였습니다. Livelike라는 스타트업에서 제작한 ‘Fox Sports VR’은 가상공간에 시청자 1명뿐만 아니라 아바타를 통해 ‘친구들과 함께 응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했습니다. 물리적인 현실에서는 혼자 VR 기기를 쓰고 있지만, Fox Sports VR의 아바타를 통해 친구들과 스포츠 경기에 대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구현한 셈입니다. 가트너가 언급한 ‘물리적인 현실세계와 가상세계의 연결’을 의미하는 ‘몰입경험’을 어느 정도 구현해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Fox Sports VR은 일방향적인 중계 화면과 달리, 카메라 앵글을 바꿔가며 시청자가 원하는 구도로 볼 수 있게 만든 점도 장점입니다. 경기를 시청하며 다양한 정보가 제공되는 점은 기본입니다. 더 많은 기능은 영상을 통해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만화처럼 보이는 AR 스포츠 중계
미국 프로농구팀인 LA 클리퍼스(LA Clippers)는 AI 스타트업인 세컨드 스펙트럼(Second Spectrum)과 제휴해 ‘코트 비전(CourtVision)’앱을 출시했습니다. 농구 경기에서 볼 수 있는 객체(선수 개별 얼굴, 농구공, 골대 등)를 이미지 인식을 통해 구분하고, 선수나 공의 움직임 등을 식별해 마치 만화 같은 애니메이션 특수효과를 AR로 구현해 낸 것이 특징입니다. 또한 앱에서 제공하는 3개 모드를 통해 선수 이름은 물론 실시간 통계(패스, 리바운드, 슛 성공률), 이동 경로를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해당 앱은 폭스 스포츠(Fox Sports) 앱 내에서 LA 클리퍼스 경기 중계권을 구매한 사용자를 대상으로만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영상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잘 만든 만큼 유료 모델로 판매하겠다는 전략입니다.
국내에서도 스포츠 중계에 AR 기술을 접목시킨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LG U+가 작년 9월 한 달간 시범 서비스했던 ‘AR 입체중계 서비스’입니다. 이 서비스는 프로야구 생중계를 시청할 때 사진처럼 투구·타루·수비·궤적 등의 데이터 그래픽을 AR로 함께 제공한 것으로, 스마트폰은 물론 U+ TV 앱을 통하면 TV로도 시청할 수 있었습니다. 해외 사례처럼 AI를 활용한 객체 인식과 화려한 애니메이션 효과는 없지만, AR 기술을 통해 시청자에게 더 많은 데이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발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MWC 2019 5G를 업은 VR·AR … 스포츠와 게임 그 어딘가
국내에서는 평창올림픽 당시 VR·AR 붐이 일었습니다. 최신 기술을 접목했다는 서비스가 많았으나 각종 경기장을 단순히 360도 카메라로 이미 촬영해 둔 영상을 VR 기기를 통해 시청하거나, 의자나 기구를 이용해 4D 체험과 같은 간접체험 형식에 그쳤습니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한 번 체험하고 마는, 일회성 이벤트에 가까웠습니다. 앞서 살펴본 해외 방송사에서 완전한 가상공간을 구현하고(VR), 경기 중에 움직이는 객체를 인지해 실시간으로 효과를 덧씌운다는 것(AR)과는 엄청난 차이입니다. MWC 2019에서는 5G 상용화를 앞두고 국내 이동통신사의 VR·AR 기술 관련 서비스가 새롭게 선보였습니다. 공통점은 과거처럼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우리가 자주 이용할만한 콘텐츠에 적용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잠시 VR 게임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지금도 플레이스테이션 등 콘솔 게임기와 VR 기기가 있으면 VR 게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특유의 어지럼증, 반응속도가 느린(저지연성) 한계가 있어 활발히 상용화되진 않고 있습니다. 국내 이통사는 5G 상용화에 따라 이런 문제가 극복될 것이라고 보고 VR 게임 개발에 적극적입니다.
먼저 SKT입니다. SKT는 넥슨의 인기 게임인 ‘카트라이더’, ‘크레이지 아케이드’, ‘버블파이터’의 IP(지적재산권)를 확보하고 5G 스마트폰용 VR 게임을 상반기 출시할 예정입니다. SKT가 스마트폰용 VR 게임을 선보인다면, KT는 실제 경기장을 옮긴 것 같은 VR 게임을 선보였습니다. KT의 ‘베이스볼 킹즈 VR’는 무선 VR 기기를 착용하고 가상공간의 야구장에서 실제와 같은 야구 경기를 할 수 있는 게임입니다. 하지만 VR 스포츠 중계의 한계와 마찬가지로, 나 홀로 기기를 쓰고 게임을 하면 재미가 없습니다. KT는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자 여러 사람이 무선망에 동시 접속해 야구 게임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했습니다. KT의 ‘VR 스포츠’ 시리즈는 야구 외에도 탁구, 배드민턴 경기를 제공해, 가상현실 속 경기장에서 실제 운동 경기를 하는 것과 같은 실감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LG U+는 VR 게임보다는 이미 서비스 중인 스포츠 중계의 고도화를 선택했습니다. 5G를 통해 야구 및 골프경기의 중계방송을 고화질로, 실시간으로 끊김 없이 제공하면서도 보다 향상된 AR 기반의 중계 기능을 탑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 TV 앞을 떠난 스포츠 팬을 사로 잡을 수 있을까?
국내외 할 것 없이 방송사들이 겪고 있는 문제 중 하나는 TV 광고 수입의 감소입니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예전만큼 TV 시청자가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미국은 TV 스포츠 중계방송 시청자의 중위 연령이 고령화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TV 앞이 아닌 방송사에서 제공하는 앱을 통해 스포츠 경기를 시청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어떨까요? Fox Sports가 젊은 층 유입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VR 기기든 모바일이든 매체에 상관없이 시청자들이 방송사에서 제공하는 스포츠 중계를 시청하도록 만든 점에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까지 국내 방송사의 도입 사례는 없지만, 앞으로 스포츠 중계 시 관련 기술을 적용해보는 것은 시도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는 경기 중계 시 특수효과를 광고에만 적용해왔습니다. 하지만 국내 시청자 역시 더 이상 TV를 통한 스포츠 중계를 시청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화려한 광고는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먼 이야기긴 하지만 VR 기기를 쓰고 스포츠 중계 시청 시, 가상세계 속에서 직관하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다른 사람과 함께 응원하고 그 팬들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게 된다면 방송사는 그에 앞서 VR 시청환경에 맞는 중계기술에 대해 고민해봐야 합니다. 또 미국을 중심으로 VR 게임이 e스포츠로 자리 잡고 있는 상황에서 VR 게임의 중계는 어떻게 준비할지도 생각해볼 부분입니다. 가까운 미래에 방송기술인은 AR과 VR 기술 적용방법까지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는 VR보다는 AR 기술기반의 스포츠 중계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전문가들은 VR은 카메라 배치, 편집 기술 등이 새로 정립되어야 하지만 AR은 실제 중계화면에 다양한 데이터·효과를‘증강’시키면 되기 때문에 VR에 비해 기술 장벽이 낮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구글과 페이스북이 AR에 집중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입니다. 둘째, TV 중계에 적용하기보다는 모바일 앱을 통해 유무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보다 실현가능해 보입니다. 전용기기가 필요한 VR과 달리 AR은 모바일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고, 서비스를 즐길 모바일 이용자도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미 모바일 기기에 친숙한 Z세대에게 밋밋한 TV 중계화면 대신 화려한 스포츠 중계화면을 제공함으로써 Z세대의 유입을 기대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실제로 LG U+는 자사 OTT 서비스 ‘비디오포털’ 앱을 통해 10대 타깃의 아이돌 전용 서비스, 자체 콘텐츠를 제작하며 아이돌 팬덤으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었습니다. U+ 프로야구 앱을 계속해서 개선해나가는 것도 이러한 ‘야구덕후’를 사로잡아 충성고객으로 만들기 위한 전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방송기술은 전통적인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해보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이번에 소개한 BBC와 Fox Sports의 스포츠 앱은 모두 AR·VR 관련 회사와의 협업을 통해 시청자에게 제공했다는 점입니다. MWC 2019에서 SKT와 KT가 내놓은 VR 게임도 그 기술을 잘 다루는 전문회사와의 협업을 통해 만들어냈습니다. 자체 개발이 어렵다면, 이런 사례와 같이 최신 기술을 가진 회사와의 협업을 통해 방송 콘텐츠를 다양한 기술에 접목하고 활용해보도록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요? TV를 떠나고 있는 시청자를 사로잡기 위해서 말입니다.
| 참고자료
스포츠 중계 분야의 신기술 도입 사례: VR/AR을 중심으로 (KCA, 2018년 12월호)
이통3사 5G 경쟁, 어떤 콘텐츠 보여줄까 (블로터, 2019.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