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주호의 테마클래식 9 – 꿈

송주호의 테마클래식 9 –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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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렙니다. 어린 시절에 꾸었던 꿈을 회상하기도 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그려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젯밤에 꾸었던 달콤한 꿈을 다시 떠올려보기도 하구요, 오늘은 길몽을 꾸었으면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하지만 중년이 된 지금, 꿈을 생각할 때면 왠지 모르게 밀려오는 허전함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대출, 자녀 교육, 부모님의 건강, 인간적 갈등 등 현실을 마주하면 꿈은 사치라는 생각이 뒤를 잇고 맙니다. 그래도 주저앉을 수만은 없으니, 어깨에 매어진 짐을 추스르고 삶의 여정을 또다시 힘차게 떠나봅니다.
우리에게 알려진 많은 위대한 예술가들은 거장으로서 명예를 누리며 잘 먹고 잘살았을 것 같지만, 사실 그들의 현실은 지뢰밭과 같이 험난했습니다. 연주자로서의 삶은 언제나 불안했고, 교수가 되어도 봉급은 많지 않았습니다. 음악가들의 인간관계는 무한 경쟁 속에서 질투와 시기로 얼룩졌고, 후원자에게 굽실거려야 했으며, 거장 소릴 듣고 명사가 되어도 세상을 움직이는 지도자의 자리는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음악가들은 음악을 통해 환상을 그리면서 꿈을 노래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갔습니다.

슈베르트 : 밤과 꿈, D.827 (1823)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

가장 불행한 삶을 살았던 음악의 거장은? 이러한 슬픈 질문을 누군가 한다면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프란츠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 1797~1828)는 수위에 들지 않을까 싶네요. 오스트리아 태생의 슈베르트는 키가 작고 외모가 매력적이지 않았습니다. 베토벤과 같은 교향곡 작곡가가 되고 싶었지만 숫기가 없어서 현실을 과감히 헤쳐 나가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슈베르티아데’라고 불리는 소수의 친구들과 어울리며 실내악과 가곡을 발표했고, 20대 중반부터 매독으로 고생하다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불행한 삶을 살았던 슈베르트는 20년이 채 되지 않는 작곡 기간에 무려 600곡이 넘는 가곡을 작곡하여 오늘날 ‘가곡의 왕’이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러한 평가를 받는 것은 단지 작품 수 뿐만은 아닙니다. 바로 ‘리트’(Lied)라고 하는 독일가곡의 특징을 확립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슈베르트 이전에도 가곡은 있었죠. 신승훈의 2집 타이틀곡 ‘보이지 않는 사랑’에 삽입되어 유명해진 베토벤의 가곡 <너를 사랑해>(Ich liebe dich)를 기억하고 계시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그렇다면 슈베르트의 공로는 무엇일까요?
18세기 후반 고전시대에는 리트에게 요구되는 가치가 있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리트 작곡가였던 요한 슐츠가 1785년에 쓴 글을 보겠습니다. “모든 리트는 민속적 특성을 추구한다. 애호가들도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도록 한다.” 즉, 리트는 훈련받은 성악가만이 아니라, 일상을 사는 평범한 사람들 누구나 부를 수 있는 대중적인 노래라는 것이죠. 역시 당대 리트의 거장이었던 요한 줄처는 1793년에 이런 글을 남깁니다. “사람들을 감동시키기 위한 중요한 방법 중 하나는 선율이 단순하고 짧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 가곡은 오늘날 독일 민요처럼 불리기도 합니다. 하인리히 베르너의 <들장미>처럼 말이죠.
모차르트는 이러한 리트의 의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데 반면, 베토벤은 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노래를 선보입니다. 하지만 아직 뭔가 부족했습니다. 바로 ‘드라마’였습니다. 슈베르트는 가곡에 자기 삶의 이야기를 반영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마음의 소리를 담았으며, 더 나아가 극적 이야기까지 넣게 됩니다. 홀로 아버지, 아들, 마왕, 나레이터의 네 배역을 소화해야 하는 <마왕, D.328>(1815)은 대표적이죠. 뿐만 아니라 <물레방앗간의 아가씨, D.795>(1823), <겨울 나그네, D.911>(1827) 등 일종의 심리극과 같은 연가곡도 내놓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연출을 더하여 짧은 음악극처럼 공연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면서 음악은 보다 복잡해지게 되었고, 슈베르트로 인해 리트는 일반인이 아닌 전문연주자의 공연을 위한 노래, 즉 ‘예술가곡’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소개해드릴 슈베르트의 노래는 <밤과 꿈>(Nacht und Träume)입니다. 마테우스 폰 콜린의 시에 붙인 이 곡은 밤의 심상을 꿈과 연결하여 동경하는 내용이죠. 매우 느리고 고요하지만, 화음의 미묘한 변화에 사람의 마음을 쥐어짜는 매력이 있습니다. 추천 영상으로 한국 최고의 테너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김세일의 빈 공연 실황을 골라보았습니다. 깔끔한 미성과 절제된 비브라토가 신비로운 밤과 꿈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연주입니다. 가사를 보면서 달빛만이 은은하게 비치는 깊고 밤을 거닐며 꿈을 동경하는 모습을 그리며 들어보세요.
추천영상 : youtu.be/gSSgy54tywk

너, 성스러운 밤이 깊어간다./꿈들도 깊어간다./달빛처럼 공간을 통해,/사람의 잔잔한 가슴을 통해.
그들을 기쁨으로 듣는다./날이 밝아 오면 외친다;/= 성스러운 밤이여, 돌아오라!/= 아름다운 꿈들이여, 돌아오라!

바그너 : <베젠동크 가곡집> 중 No. 5 ‘꿈’ (1857)

1861년의 바그너
1861년의 바그너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 : 1813~1883)는 오페라 작곡가로 잘 알려져 있지요. 그는 여러 오페라를 작곡했습니다만, 최후의 작품들인 <니벨룽의 반지>(1853~74)와 <트리스탄과 이졸데>(1857~59), <파르지팔>(1877~82)은 ‘오페라’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오페라’는 ‘작품들’이라는 뜻으로, 기존의 이탈리아식 오페라가 여러 노래의 모음으로 되어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숫자 오페라’라고 말하기도 하죠. 그런데 이 곡들은 전체가 하나의 음악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오페라’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그너는 이 곡들을 ‘무대축전극’(Bühnenfestspiel), 심지어 <트리스탄>에 대해서는 ‘연극’(Handlung)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러한 말들에는 중요한 의미가 내포되어있는데요, 음악이 중심이 아니라 스토리가 중심이 된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오페라는 멋들어지고 기교적인 프리마돈나의 노래 실력 중요했다면, 바그너에게 노래는 대사를 보다 극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이며, 관현악은 배경 음악일 뿐입니다.
그런데 소개할 곡은 무대음악이 아닌, 바그너가 작곡한 소수의 가곡 중 가장 유명한 <베젠동크 가곡집>입니다. 바그너는 1849년에 드레스덴 봉기가 일어나자 아내와 함께 도망쳐 나와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후원자 오토 베젠동크의 영지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그너는 이곳에서 후원자의 아내 마틸데를 연모하게 되고, 둘 사이는 매우 가까워졌죠. 바그너는 애정의 마음을 담아 마틸데의 시에 노래를 붙였습니다. 그런데 둘의 관계를 의심하던 바그너의 아내는 1858년에 마틸데에게 보내는 바그너의 러브레터를 가로채어 증거를 확보했고, 바그너는 홀로 베젠동크의 집에서 빠져나옵니다. 바그너는 베젠동크와의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을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반영했다고 하죠.
<베젠동크 가곡집>이 작곡된 때는 1857~58년으로, 도망쳐 나오기 직전 한창 사랑이 끓어오를 때였습니다. 바그너의 여러 음악극을 듣다가 이 곡을 들으면 바그너가 당시 완전히 다른 감정 속에 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때까지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가곡을 쓴 이유는 뭘까요? 슈만이 사랑을 쟁취했을 때 갑자기 수많은 가곡을 써댄 것을 함께 생각해보면, 가곡은 사적인 마음을 표현하기에 가장 좋은 장르인가 봅니다. 이 가곡집의 마지막 곡은 ‘꿈’(Träume)이라는 제목을 갖고 있습니다. 슈베르트가 밤과 달을 통해 잔잔한 꿈을 꾸었다면, 바그너는 낮과 태양을 통해 희망의 꿈을 꿉니다. 그래도 느린 선율과 미묘한 화음 변화로 극적 흐름을 만든다는 점은 비슷해 보입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떠올리며 노래하는 밝은 꿈, 가사를 보면서 들어보세요.
추천영상: youtu.be/Vsbl6q_g4gk?t=18m20s

얼마나 멋진 꿈이/내 마음을 감싸고 있는 것일까./매 시간, 매일 아름답게 빛나고/하늘로부터 받은 행복을 마음에 가득 채워준 꿈./봄의 태양이 눈 속에 핀 꽃에 키스하는 꿈./그리고 꽃은 피고 향기를 내어/그대 가슴에 불을 붙이고,/이윽고 무덤에 잠기게 된다.

슈만 : <어린이 정경, Op. 15> 중 No. 7 ‘꿈’ (1838)

로베르트 슈만과 그의 아내
로베르트 슈만과 그의 아내

독일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 : 1810~1856)의 본래 꿈은 피아니스트였습니다. 19세기 음악가들이 으레 그랬듯이, 슈만도 스턴트와 같은 고난도 기교를 구사하는 화려한 스타 음악가가 되고 싶었죠. 그래서 구슬을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연습하는 등 무리한 방법을 썼는데요, 이로 인해 손가락에 영구적인 물리적 손상을 입고 말았습니다. 결국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고 작곡가의 길에 들어서게 되죠. 20대인 1830년부터 1839년까지 10년간 작곡한 23곡이 모두 피아노 작품이라는 사실을 보면, 그가 얼마나 피아노에 미련을 갖고 있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아니면 피아노에만 몰두한 나머지 피아노 이외에는 잘 몰랐을 수도 있죠. 아무튼
그림 4. 로베르트 슈만과 그의 아내 클라라
잃어버린 피아니스트의 꿈을 피아노 작품으로 승화시킨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슈만은 ‘쉬운 소품들’이라는 피아노 모음집을 만들기 위해 30개의 소품을 썼습니다만, 이 중 열세 곡을 추려 ‘어린이 정경’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했습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슈만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작곡했다고 하죠. 이 중 일곱 번째 곡은 ‘꿈’이라는 제목을 갖고 있습니다. 독일어 원제 그대로 ‘트로이메라이’(Träumerei)라고 부르는 경우도 많죠. 단골 앵콜곡으로 연주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 곡은, 앞의 슈베르트의 가곡처럼 단순한 화음 위에 잔잔히 흐르는 선율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온전히 음악에 빠져들게 하는 마력이 있습니다. 추천영상은 1986년 4월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열렸던 20세기 전설의 피아니스트 중 한 사람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앵콜 연주입니다. 연주뿐만 아니라 음악에 몰입하는 관객들의 모습도 인상적입니다.
추천영상 : youtu.be/3fhKaAX5dOc

발페 : 오페라 <보헤미아의 소녀> 중 아리아 ‘대리석 홀에서 사는 꿈을 꾸었네’ (1843)

마이클 윌리엄 발페
마이클 윌리엄 발페

오늘날 오페라라고 하면 넓은 무대와 거대한 무대 장치, 옛 의상, 그리고 화려한 아리아를 떠올리실 겁니다. 다양한 요소들이 어우러진 멋들어진 종합 예술로서 말이죠. 하지만 19세기 이전 오페라의 기능은 오늘날과 비교하면 오히려 뮤지컬이나 영화에 가깝습니다. 사람들이 만나서 이야기하고 재밌게 즐기는 오락 콘텐츠였던 거죠. 요즘에는 뮤지컬과 영화가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오페라는 클래식으로서 미적 가치가 높은 작품들이 선별되어 상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작 오페라들이 진지한 예술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죠.
그래서 과거에 오락 콘텐츠로써 인기를 끌었던 작품들은 오히려 오늘날 잊히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18세기에 성행했던 이탈리아의 오페라 부파와 독일의 징슈필은 페르골레시나 모차르트와 같은 거장들이 작품을 남겨 오늘날에도 종종 연주됩니다만, 19세기의 오페레타나 발라드 오페라는 무대에 거의 오르지 않고 있습니다. 그나마 오펜바흐의 오페레타 <지옥의 오르페우스> 정도가 기억될 뿐이죠. 당시에는 프랑스의 오펜바흐를 비롯하여 영국의 아서 설리반, 아일랜드의 마이클 발페 등이 이 분야에서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 이들의 작품들은 오늘날 뮤지컬의 시조격이라고 할 수 있죠.
여기서는 이 중 발페(Michael William Balfe : 1808~1870)를 소개할까 합니다. 발페는 19세기 발라드 오페라의 선구자였습니다. ‘발라드 오페라’는 일상적인 언어와 대중적인 음악을 사용하는 가벼운 오페라를 말합니다. 그의 대표적인 발라드 오페라는 <보헤미아의 소녀>로, 세르반테스의 ‘집시 소녀’를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1막. 오스트리아에 패한 폴란드의 귀족 청년 타데우스는 집시 무리에 숨어 지낸다. 그러던 중 오스트리아의 아른하임 백작이 사냥하는 중에 어린 딸 아를리네가 사슴에 치이게 되고, 이를 타데우스가 구해준다. 아른하임은 기쁜 마음에 건배를 제의하지만 타데우스는 적의 잔을 거절하고, 결국 폴란드 첩자로 몰려 집시들과 도망친다. 이 과정에서 아를리네는 집시 두목 데빌스후프에 의해 납치된다.
2막, 12년 후.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아를리네는 타데우스의 연인이다. 한 축제에서 타데우스를 흠모하는 집시여왕의 계략으로 아를리네는 도둑으로 몰리고, 심문 중에 아를리네 팔의 상처로 아른하임의 딸임이 밝혀진다.
3막. 타데우스는 아를리네를 만나러 백작의 연회장에 숨어들지만 집시여왕의 밀고로 발각된다. 둘은 백작에게 결혼 승낙을 구하고, 백작은 감동하여 결혼을 승낙한다. 질투심에 사로잡힌 집시여왕은 부하에게 타데우스를 향해 총을 쏘라고 명령하지만, 데빌스후프의 방해로 집시여왕이 총탄에 맞아 쓰러진다.

이 작품은 비슷한 시기의 이탈리아 오페라와 비교하면 음악이 무척 단순하고 가볍습니다. 하지만 아름답고 감각적인 멜로디로 대중에게 크게 어필될 수 있었죠. 특히 아를리네가 2막에서 부르는 아리아 ‘대리석 홀에서 사는 꿈을 꾸었네’(I dreamt I dwelt in marble halls)는 조수미가 2000년에 자신의 앨범 ‘Only Love’에 수록한 이후 우리에게도 잘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 아리아는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아를리네가 자신이 어렸을 때 살던 곳을 꿈속에서 본 후 부르는 노래입니다. 뮤지컬에도 잘 어울릴 것 같은 서정적인 멜로디가 매우 감동적입니다.
추천영상 : youtu.be/sKyt-777SwU

드뷔시 : 꿈 (1890)

클로드 아쉬유 드뷔시
클로드 아쉬유 드뷔시

종종 ‘몽환적’이라는 표현을 합니다. 이 말은 꿈꾸듯 환상적이라는 뜻이죠. 몽환적인 음악이라고 하면 프랑스의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Claude Achille Debussy : 1862~1918)가 가장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싶네요. 드뷔시는 관현악곡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1894)으로 인상주의 음악을 처음 선보인 작곡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 여기서 ‘인상주의’에 대해 짚어보죠. 인상주의는 ‘impressionism’이라고 쓰는 데요, 여기서 ‘im’은 ‘밖에서 안으로’라는 의미이고, ‘press’는 표현한다는 뜻이죠. 따라서 인상주의는 밖의 사물을 내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대로 표현하는 사조를 뜻합니다. 그래서 인상주의는 구체적인 대상이 있어야 하는데요, 당시 인상주의 화가들은 주로 야외 풍경을 그 대상으로 선택했습니다. 여기에는 인상주의가 19세기 중엽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풍경화로부터 유래한 연유도 있지요. 그리고 그 대상을 눈에 보이는 모습(혹은 빛에 비친 모습)을 그대로 그리되 주관적인 표현을 더합니다. 모네와 르누아르, 고흐의 그림을 보시면 보다 빨리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대상이 빛에 비친 모습이 기준이 되기 때문에 사물의 빛의 경계는 비교적 뚜렷하지만 사물의 경계는 모호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음악에서의 인상주의는 어떨까요? 우선 묘사하려는 구체적인 대상이 존재하구요, 그리고 음향을 모호하게 처리하게 됩니다. 음향을 모호하게 처리한다는 것은 화음이 조성의 원리에 따라 명확하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드뷔시는 기존의 장단조 음계 대신 5음 음계와 교회선법을 사용하여 이를 성취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드뷔시의 인상주의 음악은 신선하고 감각적인 표현으로 곧 대중적인 호응을 얻었고, 드뷔시를 추종하는 음악가들도 많았습니다.
드뷔시의 피아노곡 <꿈>은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보다 이전에 작곡된 초기작으로서 인상주의적인 모습이 비교적 덜하지만, 곳곳에 몽환적인 화음이 우리를 다른 세상으로 옮겨놓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저는 이러한 기분이 좋아서 드뷔시의 피아노 음악에 빠져있던 때가 있었는데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추천영상 : youtu.be/0MieMOljSUE

포레 : <세 개의 노래, Op. 7> 중 No. 1 ‘꿈꾼 후’ (1870~77)

가브리엘 위르뱅 포레
가브리엘 위르뱅 포레

드뷔시는 마른하늘에 번개 치듯 갑자기 인상주의 음악을 만들어냈을까요? 그 이전에 단초들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고전적인 조성과 음악구조를 추종한 카미유 생상스와 드뷔시 사이, 거기엔 바로 가브리엘 포레(Gabriel Urbain Fauré : 1845~1924)가 있었던 거죠. 포레는 생상스의 애제자였으며 가족처럼 지낼 정도로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은 당대 최고의 음악가였던 포레를 선택했습니다. 그의 음악은 점차 일탈적인 화음으로 얼룩져갔고, 결국 생상스도 포레의 후기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할 정도가 되었죠. 드뷔시는 포레의 수업을 받으며 이러한 그의 새로운 음악으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그 결과 우리가 알고 있는 드뷔시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포레의 대표작은 <레퀴엠, Op. 48>(1887~1890)입니다만, 오늘날 자주 연주되는 곡은 관현악 소품인 <파반, Op. 50>(1887)과 가곡 <꿈꾼 후>(Apres un rêve)입니다. <꿈꾼 후>는 작자 미상의 이탈리아
그림 9. 가브리엘 포레
시를 로맹 뷔신이 프랑스어로 번역한 것을 가사로 하고 있습니다. 연인과 함께 땅을 박차고 빛을 향해 날아가는 꿈을 꾸고 깨어난 후, 다시 그 신비로운 꿈속의 밤으로 돌아가지 못하여 슬퍼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래서인지 <꿈꾼 후>를 듣고 있으면 꾸었던 꿈을 회상하며 괴로워하는 모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오늘날에는 원곡보다는 첼로로 연주하는 경우가 훨씬 많은데요, 추천영상도 첼로 연주로 골라보았습니다. 애수가 짙게 서린 잔잔한 선율을 들으며 자신의 꿈을 생각해보세요. 어쩌면 음악을 들으며 오히려 꿈에 빠질지도…….
추천영상 : youtu.be/xtyWVrmQPwY

망고레 : 숲속에서의 꿈

아구스틴 바리오스 망고레
아구스틴 바리오스 망고레

18세기 후반 고전시대 이후 대형극장에서의 공연이 인기를 얻으면서 음량이 작은 악기들은 빠르게 주류에서 밀려났습니다. 기타도 유구한 역사를 뒤로하고 이탈리아와 스페인, 그리고 남미의 향토 악기로 전락하고 말았죠. 그러다 대중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악기가 되면서, 오늘날 기타는 클래식 악기라는 생각보다는 대중음악 악기라는 안식이 더 강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앞서 말씀드린 지역에서는 클래식 악기로서의 기타를 지키는 음악가들이 이어졌고, 기타 레퍼토리를 풍성하게 채워주었습니다. 파라과이 태생의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인 아구스틴 바리오스 망고레(Agustín Barrios Mangoré : 1885~1944)도 그중 한 사람이죠.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구요? 클래식 애호가들은 잘 모를 수 있지만, 기타 애호가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스페인 출신인 페르난도 소르, 미구엘 요베, 프란치스코 타레가, 화킨 로드리고, 그리고 남미 출신의 레오 브루워, 망고레, 막시모 디에고 푸홀 등. 그래도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타레가, <아란후에스 협주곡>의 로드리고는 익숙하실 것 같군요. 클래식 기타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반드시 기억해야할 기타음악 작곡가입니다.
마지막 선곡은 망고레의 기타곡 <숲속에서의 꿈>(Un Sueño en la Floresta)입니다. 7분의 길이를 가진 기타곡으로서는 장대한 작품으로, 매 순간 가슴을 어루만지며 따뜻하게 감싸 안는 멜로디와 기타 스트링의 화음에 매혹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기타 한 대로 표현하는 다양한 음향과 극적 이미지를 듣고 있으면 “기타는 작은 오케스트라”라고 말했던 베토벤의 말을 실감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추천영상 : youtu.be/xfbxCsFS09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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