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를 아름다움으로 덮어 버리자”며, 빈 분리파를 창설하여 오스트리아 현대회화에 있어 가장 혁신적이고 탁월했던 화가. 사랑했던 여인들과 정원의 꽃들에서 영감을 받아 수많은 작품을 남긴 정열적이었던 황금빛의 화가. 고독했지만 평화로웠던 세기말의 로맨티스트 구스타프 클림트.
[키스(The Kiss. 1908. 유화. 108×180cm. Austrian Gallery. Vienna)]
|
많은 사람들은 이 작품을 보고 그에게 빠져들기 시작한 클림트의 대표작이다. 그의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키스(The Kiss)’는 남성과 여성 사이의 조화와 통합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상징이 되었다.
작은 들풀, 들꽃이 만발한 언덕 위에 두 연인이 서로에게 의지한 채 서 있다. 그 순간에 도취하여 지그시 두 눈을 감은 여인, 그 찰나의 감흥이 얼마나 큰지를 말려 들어가는 손끝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 작품을 통해 클림트는 남성과 여성의 화해를 통한 영원한 사랑을 말하고 있지만 결코, 따뜻하다거나 희망적이라는 느낌을 주지 못한다. 매몰차게 돌려져 있는 남자의 머리와 창백한 빛으로 모든 것을 차단해 버린 듯, 꼭 감은 두 눈의 여자얼굴은 오히려 소외감과 우울함을 느끼게 한다. ‘키스’가 전시된 1908년, 오스트리아 황실은 작품이 전시된 미술전이 끝나기도 전에 이 작품을 구입해 갔다.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
2006년 회화 경매 사상 최고가인 1억 3500달러(한화 1,300억 원)에 에스티로더 사장‘로덜드’에게 낙찰된 작품이며, ‘키스’와 함께 황금시기에 가장 중요하게 평가받는 작품이다. 아델레의 작은 얼굴과 거대한 황금빛 배경이 대비되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초상화는 구상과 추상의 통합이 절묘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의 풍경화에서 다루고 있는 비잔틴 양식의 문양들이 황금빛으로 화면을 가득 덮고 있다. 아델레는 오스트리아 빈 은행연합 감독의 딸이자, 재력가인 페르디난트 블로소의 아내였다. 사교계에도 넓은 발을 자랑하던 이 상류층 여인은 초상화의 모델로 클림트와 만나게 되고 연인으로 발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