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래프로 시작해봅니다. 여기 레드 기업과 블루 기업이 있습니다. 2008년만 해도 별로 유명하지 않던 레드 기업은 꾸준한 상승세를 보입니다. 블루 기업은 10년 전엔 많이 검색되다 2011년을 기준으로 레드기업에 역전을 당한 뒤, 계속 밀리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2019년 11월, 맨 우측 점선과 같이‘급상승’하고 있습니다. 두 기업은 어디일까요? 짐작하셨겠지만, 레드는 넷플릭스, 블루는 디즈니입니다. 디즈니 뉴스량이 급상승한 이유는, 아시다시피, 디즈니+ 때문입니다.
Disney+ is finally up and running.
2019년 11월 12일, 디즈니가 수년간 계획하고 투자했던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 ‘디즈니+’가 미국과 캐나다에서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디즈니는 심슨과 디즈니, 픽사, 마블, 스타워즈까지 500편 이상의 영화와 7,500편의 TV 콘텐츠 라이브러리를 월 6.99달러라는 경제적인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 디즈니+ 출시와 동시에 스타워즈 스핀오프인 ‘만달로리안’을 포함한 독점 오리지널 콘텐츠 10편도 공개했습니다. 런칭 첫날 천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하는 등 OTT 시대, 스트리밍 시대의 포문을 열었습니다.
디즈니의 이런 행보는 사실 강력한 독점 콘텐츠를 만들고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서비스하는 Netflix의 전략과 유사합니다. 디즈니+는 수십 년간 쌓아온 독점적인 지식재산권(IP)을 이미 많이 확보하고 있고, R등급 미국의 영화 관람 등급 중 하나로, 17세 미만의 경우 부모의 동반을 필수로 하는 시청 등급
이 전혀 없는 가족 친화적인 콘텐츠를 유통한다는 점에서 넷플릭스와는 또 다른 시청자층을 타깃으로 삼고 있습니다. 한편, 디즈니엔 미국 지상파 콘텐츠 중심의 OTT인 Hulu도 있어 성인 시청자 확보에도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 Disney+를 만들다 – Disney Streaming Service
디즈니+는 Walt Disney Company의 Direct-to-Consumer and International(이하 DTCI) 사업부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DTCI는 디즈니의 글로벌 사업 진출 및 온라인 스트리밍을 담당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Disney Streaming Service(이하 DSS) 부서에서 디즈니+를 관리합니다. DSS는 디즈니 전체의 모든 디지털 비디오 구독 서비스를 감독하고 비디오 비즈니스를 개발․운영하고 있으며, 전 세계 사용자에게 연결된 기기․시간․위치에 관계없이 각국의 언어로 콘텐츠에 자유롭게 접근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지난 1년간 DSS는 직원을 두 배 이상으로 늘려 1,600여 명을 확보한 상태입니다. 동영상 스트리밍 개발자뿐만 아니라 데이터․분석 전문가, 제품 전문가를 적극적으로 영입했습니다. 특히 사용자 경험(UX) 및 디자인을 통해 디즈니 오리지널, 픽사, 마블, 스타워즈,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 다양한 브랜드가 섞인 디즈니의 거대 콘텐츠 집합체 속에서 다양한 선호를 가진 가입자가 ‘보고 싶은 것을 찾을 수 있도록’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또한 어린이용 서비스라는 느낌을 주지 않고, ‘디즈니’라는 브랜드에 대한 흥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DSS는 지난 9월, (아이러니하게도) 넷플릭스의 유럽 본사가 있는 네덜란드에서 디즈니+ 무료 테스트를 하며 공식 출시 전 오류를 최소화하고자 했으나, 전 세계 이용자들의 폭발적인 관심과 함께 출시 당일 여러 오류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 BAMTech에서 Disney Streaming Service가 되기까지
디즈니의 OTT 서비스 실험은 몇 해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디즈니 CEO 밥 아이거는 넷플릭스의 성장을 보며 2015년 영국에서 ‘DisneyLife’라는 앱으로 콘텐츠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2016년에 들어서는 온라인 스트리밍 사업을 개발할 필요성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지난 2018년 5월호 <방송과기술>에서 다뤘듯 자세한 내용은 <방송과기술> 2018년 5월호‘디즈니의 트윈 스트리밍 이니셔티브’ 참고
, BAMTech의 투자 및 인수를 시작했습니다. 2017년에는 넷플릭스에 디즈니 콘텐츠 공급을 중단함과 동시에 자체 스트리밍 플랫폼 개발을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고, 2018년에는 BAMTech의 이름을 Disney Streaming Service로 변경했습니다. 그리고 2019년 11월에 이르러서 드디어, ‘디즈니+’를 공개했습니다. 최초의 시도부터 따지고 보면 4년이라는 시간, BAMTech에만 총 25억 5천만 달러를 투자한 결과입니다.
디즈니+는 전통적인 미디어 회사가 빠르게 성장하는 온라인 비디오 영역에서 실리콘밸리의 기업과 경쟁하는 첫 시작이자, 전환점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디즈니라는 대체 불가능한 글로벌 브랜드 파워도 있지만, BAMTech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디즈니는 BAMTech 인수를 통해 온라인 스트리밍 인프라에 대한 깊은 역사 없이도 빠르고 강력하게 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었고, BAMTech의 전문성 덕에 다른 기업이 갖지 못하는 큰 이점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BAMTech는 이미 MLB를 스트리밍했고, 스포츠 분야이긴 하지만 ESPN+를 개발․서비스했던 이력이 있어 다른 미디어 기업과 비교할 수 없는 기술적 우위에 있습니다. DSS 사장인 Michael Paull은 “앞으로 5년 안에 최대 9천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 할 수 있는 기술 인력과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실리콘밸리의 디지털 기업과 전통적인 TV방송 사업자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조직이 의사결정을 내리는데 사용하는 데이터 및 통찰력의 양에 있습니다. DSS는 지속해서 테스트하고 반복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참고로 넷플릭스는 2007년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로 기술개발 부분에만 54억 달러를 지출했습니다. 스트리밍 시대에, 국내 방송사에 양질의 데이터 확보, 데이터 분석력, 그리고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장려하는 문화, 무엇보다 변화에 대비할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두 가지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점은 디즈니가 콘텐츠를 제시하는 ‘방법’에 있습니다. 첫 번째는 4K 리마스터링 콘텐츠 제공입니다. 예를 들어, 오리지널 <스타워즈> 일부는 UHD라고도 하는 4K로 스트리밍됩니다. R2-D2의 거친 부분을 선명하게 볼 수 있고, 다스베이더의 망토는 더 검게 보입니다. 1995년 개봉한 <토이스토리> 등 디즈니의 일부 고전 영화는 4K로 리마스터링되었습니다. 오래된 디즈니 팬들 입장에서는 환영할만한 서비스입니다.
4K TV가 대중화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넷플릭스의 UHD 요금제가 월 15.99달러라는 점을 고려하면, 디즈니의 월 6.99 달러와 콘텐츠 품질은 소비자 입장에서 매우 저렴한 셈입니다. 또 오프라인에서도 시청할 수 있도록 라이브러리의 모든 콘텐츠를 다운받을 수 있는 기능을 탑재했고, 계정당 최대 7개의 프로필을 생성, 최대 4명이 동시 스트리밍할 수 있는 기술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Disney Collections’라고 부르는 라이브러리입니다. 마이클 폴(Michael Paull) DSS 사장은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일련의 콘텐츠들과 소비자가 원하는 것, 머신러닝 알고리즘에 대한 판단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디즈니는 디즈니 오리지널 외에 그동안 인수합병을 거듭하며 스타워즈, 마블, 내셔널지오그래픽까지 압도적인 콘텐츠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이용자가 원하는 것을 검색해서 보려고 할 때, 검색 버튼을 누르면 원하는 콘텐츠를 검색할 수도 있지만, 큐레이션 서비스 ‘디즈니 컬렉션’을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디즈니 컬렉션에서는 디즈니의 1920년대의 작품까지 볼 수 있는 ‘Disney Through the Decades’부터 스타워즈, 마블 등 대표 시리즈를 큐레이션 해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런 큐레이션을 통해 이용자는 콘텐츠의 양에 압도되어 무엇을 선택할지 모르는 역설적인 상황을 극복할 수 있어 이용자의 선택을 도와줍니다.
| 디즈니의 미래, 디즈니+
디즈니는 기록적인 블록버스터 영화, 테마파크, TV 네트워크 및 자사 IP 기반 제품들 덕분에 지난 몇십 년간 미디어 세계의 정상에 올랐습니다. 그렇다면 왜 세계에서 가장 지배적인 미디어 회사가 새로운 사업을 창출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을까요? 의외로 단순합니다. 디즈니는 빠르게 변화하는 미디어 세계에 적응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TV 방송을 포함한 미디어 산업은 불안정한 시기에 도달했습니다. 해외는 물론, 국내 시장 역시 인수합병이 이루어지고 있고,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기술 기반의 미디어 기업과 경쟁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해있습니다. 디즈니는 영리하고 빠르게 시장의 변화를 파악했고, 과감히 투자해 변화하는 시장 트렌드를 따라갈 방법을 찾은 셈입니다.
이제 시청자들은 ‘콘텐츠’에 따라 시청할 플랫폼을 선택합니다. 어디서 제작한 콘텐츠인가 보다는 내가 ‘보고 싶은’ 콘텐츠를 ‘어디서’ 볼 수 있느냐에 따라 OTT 서비스를 선택합니다. 이런 이유를 알았기 때문일까요. CNN 비즈니스의 그림을 보면, 그동안 넷플릭스에 콘텐츠를 유통했던 미국 방송사들은 넷플릭스와의 제휴를 끊고 자사 OTT를 개발, 독점 유통할 계획입니다.
국제방송미디어기술협회(IABM)는 IBC 2019에서 업계의 변화 방향성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첫째, 넷플릭스, 애플, 디즈니 등 대기업들의 글로벌 OTT 서비스 경쟁, 둘째, 콘텐츠・플랫폼에 대한 투자 증대, 셋째, 변화되는 시장에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 주요 이슈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시장에서의 변화로만 알 수 있겠지만, OTT 시장에 진입하는 더 많은 서비스가 우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국내외 모두, 앞으로 몇 달 혹은 몇 년 동안 여러 가지 요인이 미디어 업계에 영향을 줄 것입니다.
디즈니는 넷플릭스와 아마존 사이에서 얼마만큼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할까요? 미국 내에서만 HBO Max, Peacock 애플TV가, 유럽에서는 영국의 Britbox나 프랑스 salto 등이 경쟁자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1020세대의 시간을 잡고 있는 Youtube와 비교하면 또 어떻게 될까요? 전통적인 방송사와 더 많은 스트리밍 서비스 사이에서 소비자들은 선택의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원하는 콘텐츠를 시청하기 위해서는 결국 중복으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어떤 서비스가 더 매력적으로,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비자를 만족시킬까요?
| 스트리밍 전쟁 – Winter is coming
Winter has arrived and Hollywood is in chaos.
지난 2018년 11월, 미국 NBC 뉴스는 재미있는 기사를 내놓았습니다. 미국 OTT 기업을 인기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주요 캐릭터에 비유해 풀어냈습니다. 그림을 보면, 아마존, 넷플릭스, 디즈니, 애플, 컴캐스트, AT&T 등 미국의 주요 미디어 기업이 모두 묘사되어 있습니다. 당시엔 아마존이 스트리밍 왕국의 꼭대기에 앉아있었지만, 1년여가 흐른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그리고 앞으로는 또 어떻게 바뀔까요? ‘Winter is Coming. 겨울이 오고 있다’라는 <왕좌의 게임> 속 스타크 가문의 가언은 ‘긴 겨울이 오기 전에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상황은 어떤가요? 겨울을 준비하고 있나요? 우리에겐 계절적으로나, 산업적으로나 ‘진짜 겨울’이 오고 있습니다.
| 참고자료
Disney is staking its future on Disney+ (CNN Business, 2019.11.12.)
Disney+ Is Here—and It’s a Fully Formed Streaming Juggernaut (Wired, 2019.11.12.)
Inside Disney’s New York Stream Factory (Variety, 2019.10.01.)
Disney bets big on the streaming revolution (2019.11.13.)
This is what using Disney’s new $7-a-month streaming service looks like (Business insider, 2019.11.13.)
Disney Is New to Streaming, but Its Marketing Is Unmatched (NYtimes, 2019.10.27.)
The Streaming Wars: How the new kingdoms of Hollywood are battling it out for the future of entertainment (NBCnews, 2018.11.01.)
* 2년 동안 트렌드 리포트를 관심있게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