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KT스카이라이프는 방송서비스로 운용하고 있는 무궁화6호의 EoC 측정을 위해 대한민국 영토 끝자락에 위치한 도서지역 중 한 곳인 최남단 마라도에 다녀왔다. EoC는 Edge of Coverage의 약자로 빔 커버리지의 가장자리를 뜻하며 스카이라이프는 전파법 시행령 제58조(방송구역) 제3항에 따라 매년 EoC 부근의 전계강도를 실측하여 분석하고 있다. 지구 전체를 커버하는 글로벌빔과 달리 무궁화6호는 일부를 커버하는 스폿빔으로 아래 사진과 같이 한반도의 보어사이트(Boresight)에서 멀어질수록 신호세기는 약해진다. Bore가 무언가를 ‘뚫어지게 보다’이고 Sight는 ‘시야’를 뜻하기에 보어사이트는 하향빔의 ‘조준’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무궁화6호의 다운링크 안테나로부터 방사되는 전파의 메인로브 중심방향(열십자 표시)이 가리키는 곳은 전라북도 무주이며 보어사이트 전계강도 또한 기록 및 관리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간단하게 EoC 실측과정을 설명하고 마라도의 교통, 환경, 먹거리, 볼거리 등에 대해 여행자 관점에서 기술하고자 한다.
EoC 실측
12월 1일 마라도는 북서풍의 영향을 많이 받아 안테나 포인팅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영구고정이 아니라 측정 후 다시 원상태로 돌려놔야 하기 때문에 부지선정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또한 비행기로 이동하였기에 수화물 무게제한이 있어 캐리어 형태의 측정 전용 케이스(무겁지만 각종 툴과 장비를 안전하게 보관가능)는 사용할 수 없었다. 대신 가벼운 종이상자에 손잡이를 만들고 일일이 주요장비 에어캡포장 및 남는 공간은 비닐봉지에 공기를 주입하여 삽입하는 등 완충기로 쓰기 위해 출장 전일 고생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랬던 터라 일부 설치자재를 빠뜨려 현지에서 구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측정 준비를 완료하고 본격적으로 스카이라이프가 운용 중인 18개의 중계기 전계강도를 측정하기 시작했다.
우선 중계기별 중심주파수 대역의 신호레벨을 측정하고 반송파대 잡음비인 Carrier to Noise Ratio(C/N)를 기록하였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 계측기는 무게를 줄이기 위해 포터블용 애질런트 N9343C 스펙트럼 애널라이저를 사용하였으며 계측기와 셋톱박스에 동일한 RF신호를 각각 인입하기 위해 Zinwell 사의 SAP-2A가 쓰였다. LNB와 TV모니터는 각각 MTI(AP8-ST2E-K)와 TVLogic(LQM-071W) 제품을 이용하였다.
마라도 교통
마라도는 둘레가 4.2Km밖에 되지 않는 작은 섬이라 비행기가 이착륙하지 못해 배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EoC 측정지 가운데 최동단 울릉도에는 2020년까지 공항이 들어설 계획으로 매우 편하게 갈 수 있겠지만 마라도는 인근 제주공항을 이용해야 한다. 그래도 배를 타고 서너 시간 들어가야 하는 최남서단 가거도에 비하면 교통이 매우 편한 편하다고 할 수 있다. 제주공항 2번 출구로 나오면 버스 정거장이 두 곳이 있는데 왼편은 구제주 방면이고 오른편이 신제주 방면이니 모슬포항으로 가는 755번 버스는 신제주 버스정거장에서 타야 한다. 송악산 선착장에서도 출발하나 버스로는 직행이 없다. 그 외에 미터를 켜고 가는 일반택시와 금액이 정해져 있는 콜택시가 있는데 전자의 경우 2만 원이 조금 넘게 나오며 후자의 경우 하행은 2만원 상행은 3만 원으로 차이가 있으니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버스의 요금은 대략 3000원으로 택시에 비해 저렴하다. 하지만 배차시간이 한 시간 정도로 길어 시간을 잘 맞춰야하며 소요시간이 길고(대략 한 시간) 짐은 화물칸에 손수 실어야 하니 상황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모슬포항에 도착하면 마라도 정기 여객선 대합실에서 생년월일과 연락처 등의 간단한 승선신고서를 작성하고 표를 구입해야 하는데 편도는 9000원이며 왕복은 17000원이다. 얼핏 보면 왕복이 저렴해 많이 구매할 것 같지만 1000원은 마라해상공원 입장료로 들어갈 때만 필수로 구입해야하니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편도로 구입하는 것이 낫다. 가파도행 선착장은 대합실 바로 옆에 있어 금방가나 마라도는 200미터 떨어져 있으니 배시간보다 미리 도착해야 한다. 그렇게 배를 타고 40분 정도 가면 최남단 마라도에 입도하게 된다.
마라도 먹거리
사실 마라도에는 여러 기후, 지리, 환경적 요인으로 육상식물이 자라지 못해 음식재료가 빈약한 편이다. 대부분이 현무암으로 되어있고 소금기 많은 해풍과 거센 바람은 식물이 자라기에 열악하기 그지없다. 한때는 울창한 원시림으로 가득했지만 개간을 위한 화전으로 인해 이마저도 지금은 다 사라지고 없다. 그러나 해산식물은 반대로 매우 풍부하여 해마다 3월이면 6만 톤에 이르는 톳을 채취한다. 밀물 때 바닷물에 잠겼다가 썰물 때 모습을 나타내는 곳을 ‘조간대’라고 하는데, 이곳에서 톳을 채취한다고 한다. 이 톳을 짜장면에 넣어 파는 곳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아마도 과거 “짜장면 시키신 분~”이란 통신사 광고가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톳짜장은 입맛에 안 맞을 것 같아 해물짬뽕을 시켜보았다. 가격은 톳짜장보다 4000원 비싼 만원이지만 해산물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 서울에서 먹은 삼선짬뽕에 비해 맛이 더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야외에서 바닷바람을 쐬며 드넓게 펼쳐진 자연경관과 함께하니 값이 아깝지 않았다. 소주 한 잔이 간절했지만 점심이고 곧, 측정 작업이 있어 참아야 했던 점이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뒤에 사진에 나오지만 숙소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었다. 짜장면 가게와 횟집을 빼면 이렇다 할 식당이 없기에 숙박과 끼니를 해결하기엔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사장님이 요리까지 해주시는데 흑돼지는 마라도에서 귀한 재료이고 해산물만 먹다 그런지 몰라도 입 안에 넣자마자 사라졌다. 이름에만 채소가 들어가지 실상은 호박과 양파조금이 전부였다. 식자재 대부분을 본섬에서 조달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게스트하우스엔 독립공간이란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공유가 대세이다. ICT 트렌드와 유사하다. 잠도 같이 자고 식사시간이 하루 세 번 정해져 있어 밥도 같이 먹는다. 심지어 화장실, 샤워실도 하나여서 처음 보는 사람과 알몸을 공유해야 하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면 그리 불편하지 않다. 이쯤 되면 가족이나 다름없다. 위 사진의 유비끼(껍질데침)를 먹는데 단돈 만 원이면 된다. 물론 식사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살짝 데쳐 껍질째 먹는 유비끼는 활어회보다 식감은 물론 고소함이 배가 된다. 가히 미식가들이 선호할 만하다. 복분자를 곁들이니 금상첨화다. 사진은 생략!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질 않아 사장님께 살짝 여쭤보니 오늘 강한 북서풍으로 조황이 좋지 않아 미리 잡아 수족관에 보관해 놓은 고기를 게스트하우스 낚시꾼들에게 서비스로 내주신 거라고 하셨다. 그렇게 저녁식사가 끝나니 밥상은 자연스럽게 술상이 된다. 운 좋게 44cm 벵에돔을 잡은 다른 손님이 고기를 내놓자 옹기종기 모여 앉는다. 조과가 없어도, 낚시채비를 안 챙겨 와도 상관이 없다. 그냥 먹는 게 미안하다면 바로 옆 편의점에서 술 한 병 사 들고 오면 된다. 사진으로 구분이 잘 안 가지만 불그스름한 것이 벵에돔이고 한얀 것은 볼락이다. 맛은 비교 불가. 비교 대상은 오로지 긴꼬리 벵에돔뿐이나 상에 놓이자마자 사라져 그만 사진 찍는데 실패했다. 어차피 회를 치면 전문가도 구별이 어려워지니 큰 의미는 없다. 하지만 맛은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여름에 가장 많이 잡히는 어종이지만 겨울철 요맘때는 봄철 산란기에 앞서 좋은 먹이로 살을 찌우며 지방을 축적하기에 고소하다. 하지만 그 맛을 단순히 ‘고소하다’라고 표현하기엔 인간이 만들어낸 언어로 결코 형용할 수 없는 분명한 한계에 봉착하게 됨을 느낀다. 한입 물고 있으니 자연스레 대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느껴진다. 당송 8대가라 칭해지는 소동파가 극찬한 죽음과도 바꿀 수 있는 복어와도 견줄 만하다.
오른쪽에 보이는 자칭 고무파마 매운탕은 회를 뜨고 남은 서덜에 재료라곤 고춧가루, 무, 파, 마늘이 다지만 지금껏 가짜 매운탕 맛에 속아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새벽에 출조를 나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술자리는 금방 끝이 난다. 아쉬움을 살짝 달래주는 정도라고 해야 할까? 잠자리에 들기엔 시간이 이른 것 같아 소화도 시킬 겸 숙소 앞 산책로를 무작정 거닐었다. 빛이라곤 적막한 섬 주위를 비춰주는 외로운 등대뿐이며 빚이라곤 집에 홀로 쓸쓸히 있을 아내 생각 뿐이었다. 오로지 하늘과 바람과 별만이 나를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다음날 점심에는 성게미역국과 흑돼지 제육볶음을 먹었다. 사진에 성게가 별로 보이지 않지만 실은 미역 아래로 숨어있다. 생전에 바위틈에 몸을 숨기듯 죽어서도 본능은 여전한가 보다. 성게는 설명이 필요 없는 바다의 영양보고이다. 단백질, 비타민, 철분, 아연은 기본이고 인삼에 들어있는 사포닌 성분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내 입맛엔 조금 짰다. 미역의 짠맛을 못 뺄 리 없으니 간을 조금 세게 한 것 같았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물을 조금 붓는 순간 사달이 났다. 성게 알의 깊은 맛이 달아나 버린 것이다. 상황은 다르나 강태공이 떠난 후 다시 돌아온 처에게 말한 ‘복수불반분’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흑돼지 제육볶음은 깔끔했다. 동파육이란 이름에서 보듯 소동파는 돼지고기 예찬론자였다고 한다. 필자 또한 둘째가라면 서럽다.
마라도 볼거리
마라도는 동서로 500m, 남북으로 1300m 길이의 고구마 모양으로 되어있다. 작정하고 둘레 길을 걸으니 1시간도 체 걸리지 않는다. 군데군데 사진을 찍으며 돌았으니 성인 걸음으로 40분이면 충분할 듯하다. 자연경관 빼고는 이렇다 할 볼거리는 없다. 대부분의 해안선은 해식과
풍화 작용에 의하여 생긴 낭떠러지인 해식애를 이루고 있으며 높은 곳은 20m의 절벽으로 되어 있다. 파도 침식으로 생긴 해식동굴도 많이 볼 수 있다.
둘레 길을 걸으며 가장 많이 눈에 띈 것은 긴 여정으로 피곤한 몸을 달래고 있는 새들과 대어를 꿈꾸며 시간을 낚고 있는 낚시꾼들이다. 아마도 마라도에서 가장 많이 사진 찍는 장소가 있다면 ‘대한민국최남단’이란 기념비와 ‘가파초등학교 마라분교장’일 것이다. 필자 또한 사진을 찍기 위해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음에도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순서가 돌아왔다. 기념비 아래에는 동경 126도, 북위 33도라 쓰여 있어 지금 있는 이곳이 최남단이라 알려주고 있다.
마라분교에는 현재 1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다고 한다. 한 명마저도 내년이면 졸업한다고 하니 학생 유치를 위해 방치된 학교건물 중 일부를 2가구 정도가 살 수 있는 주택으로 정비 중이다. 60년 가까이 되는 개교 이래 많을 때는 20명 정도의 재학생이 있었으나 현재 마라도 주민은 약 100명! 대부분 성인이며 실제 거주자는 60~70명이라니 명맥을 잇기 위해 시도 교육청은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학생 수 감소는 비단 마라도만의 문제는 아닌 듯싶다.
기암절벽을 따라 길게 뻗은 산책로를 걸어봤는데 어떤 곳은 낭떠러지와 불과 1m 정도 떨어져 있어 그 아래가 훤히 들여다보여 아찔한 기분이 든다. 오른쪽 사진에 보이는 건물은 마라도 성당과 등대이다. 거주 인구는 작지만 ‘할망당’이라는 신당도 있으며 종교시설로 절, 교회, 성당 3대 종파가 다 들어서 있다. 마라도 등대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일제강점기 때부터 빛을 비추고 있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세계 각국의 해도에 제주도는 없어도 마라도 등대는 표기될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선원들 사이에서 ‘희망봉’이라 불리나 보다. 서쪽으로 남중국 상하이, 동쪽으로 대마도와 일본열도 사이에 우뚝 서 있는 지표이다.
마라도를 다시 찾은 건 대략 10년 만인데 달라진 건 무수히 생겨난 비슷한 맛의 짜장면집이라 조금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자연경관은 그대로 간직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더 이상의 개발보다는 보존을 했으면 하는 이기적인 생각도 해본다. 한 가지 확연하게 달라진 건 세월호 대참사 이후 안전의식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항상 두 명의 해양경찰 입회하에 승객들이 한 줄로 길게 줄을 서고 난 뒤에야 승선이 이뤄진다. 그리고 여객선 내부에는 선실 밖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CCTV가 설치되어 안도감이 들었다. ‘세상 어떤 상식보다 안전에 대한 상식이 먼저’라는 공익 캠페인 선전구호가 뜬금없이 떠오른다. ‘세상 어떤 구호보다 안전에 대한 실천이 먼저’라는 말로 출장기를 맺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