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TV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

스마트TV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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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통신 산업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마트TV, 스마트미디어를 이야기하는 시절이다. 하지만, 누군가 열심히 스마트TV를 설명하고 있다면 그 이야기의 절반 이상은 확신할 수 없거나 또는 과거의 사실에 불과하다는 게 필자의 견해이다.
이렇듯 스마트TV는 산업표준으로 창조되었던 기존의 TV와 달리 아직 정의할 수 없는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정의하기 어려운 피조물로서, 이제부터 끊임없는 진화의 길로 접어든 개체가 아닐까 싶다. PC가 산업표준으로 정의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PC 하드웨어의 빠른 발전뿐만 아니라, PC를 통해 사용자들이 추구하는 기능과 서비스가 사회 문화적 토대 위에서 지속적으로 변화 발전해 나가는 점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TV를 둘러싼 수용자 환경을 들여다보면 50년을 우선적 ‘주류 매체 (Foreground Media)’의 지위를 누려왔던 TV가 이제는 ‘주변 미디어(Background Media)’가 되었고 주류 매체의 자리를 인터넷PC, 스마트폰 등이 대체하고 있다는 데에는 대부분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물론, 백그라운드 매체로서 TV가 영향력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관심사를 주도하고 사용자들이 향유하는 영상 콘텐츠를 대부분 제공하고 있는 TV의 영향력은 아직 절대적이다.
그러나, 여기서 던지고 싶은 질문이 하나 있다. 하루에 6시간 이상을 우선적 미디어로서 몰입된 TV 시청을 하고 있지만, TV 이외의 미디어는 절대 이용하지 않는 중장년 시청자 그룹과 반대로 30분도 몰입하지 않아도 백그라운드 매체로 TV가 쏟아낸 콘텐츠를 블로그, SNS, UCC로 확대 재생산시키는 적극적 신(新)시청자층 중 어느 그룹이 보다 중요한 미디어 소비자 계층이 될 것인가?
단순히 백그라운드 미디어 이용시간만을 미디어 경쟁력의 지표로 삼을 수는 없는 시대가 되었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렇다면 누가 백그라운드 매체와 포어그라운드 매체 간 선 순환적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고 동시에 다중 커뮤니케이션을 수용할 수 있는 신시청자층을 대상으로 어떻게 ‘복합적인 미디어(Complex Media)’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가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복합적인 미디어 서비스란 콘텐츠 포맷을 다중화 한 멀티미디어 서비스의 개념이 아니며, 미디어 수용자를 둘러싸고 있는 윈도우 간 커뮤니케이션 유형을 다각화함을 의미한다. 쉬운 사례를 들면, TV 드라마를 틀어놓고 관심 있는 배우의 프로필을 스마트패드로 읽어보면서 트위터로 전달되어 온 친구의 드라마 토크에 답변을 하고 있는 모습이 될 것이다.
2011년을 기준 시점으로 아직 스마트TV가 갖고 있는 한계점을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다.
 – 전송 리소스 책임을 콘텐츠 제공자와 단말기 사용자에게 전가하고 있다.
 – 표준 OS 기반 플랫폼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어 단말기 플랫폼 운영을 위한 CP의 총괄 비용이 과다하다.
 – 리모컨 등 휴먼 인터랙션에 대한 발전이 늦다.
 – 월드가든 콘텐츠와 UCC 콘텐츠가 뒤섞여 있다.
 – 실시간 연동기술에 대한 범 산업적 표준형성이 불투명하다.
 

   

아울러 가전사와 지상파 방송사 사이의 스마트TV에 대한 동상이몽도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가전사의 경우 글로벌 TV 산업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며, 불확실한 콘텐츠 유통 부담을 피하기 위해 가능한 개방적 플랫폼 정책을 유지해 비(非)방송 콘텐츠 시장을 육성하고 싶은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지상파의 경우 수십 년 동안 지켜온 월드가든 콘텐츠의 가치를 유지하면서 통신사 플랫폼에 비해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스마트TV 플랫폼의 장점을 인정하지만, 전체적인 운영투자 대비 수지균형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실시간 방송과 연계된 오픈하이브리드 기능을 범 산업표준으로 정착시켜 플랫폼 영향력을 유지시키고 싶다는 것이다.
물론, 10여 년에 걸친 지상파 양방향 데이터방송을 통해 절실하지 않은 수준의 양방향 콘텐츠로는 결코 수용자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편안한 ‘거실 미디어(Lean Back)’로 오랜 세월을 안착해 온 TV를 상대로 실시간 양방향 서비스의 사업적 가능성을 섣부르게 주장할 수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지상파가 오픈하이브리드 기능을 정의할 때 좀 더 분명해져야 할 부분은 DTV의 협소한 대역폭을 통해 데이터를 전송하고 실시간 연동 기술을 의미하는 원론적 하이브리드 개념과 지상파 채널에 브로드밴드와 ‘RIA(Rich Internet Application)’ 기반 애플리케이션을 병합한 커넥티드 개념 중 어느 것에 더 무게를 실어야 할 것인가 이다.
BBC가 설계하고 있는 ‘유뷰(YouView)’ 플랫폼은 지상파 전송과 I-플레이어와 같은 RIA 서비스가 병합된 커넥티드 서비스 개념에 더 가깝다고 보여 진다. 이러한 선택의 배경에는 미디어 서비스 전체를 IP망을 통해 구현하는 IPTV 서비스를 이미 경험한 슈퍼 유저들에게 제한적 기능과 협소한 대역폭의 오픈하이브리드 서비스는 결코 이해를 구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 사용이 익숙한 TV 수용자들은 브로드캐스트 모드와 IP 모드에 대한 각각의 차별화된 기능과 User Experience에 대해 상당히 적응해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한국적 상황에서는 디지털 튜닝 기능과 이와 연계된 양방향 구현 기능 그리고 리치 인터넷 애플리케이션의 3개 기능이 병합된 스마트TV 개념이 일정기간 우세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스마트TV는 전통적 TV 산업이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왔던 몇몇 기능 탑재보다는 스마트폰에서와 같이 터치센서와 엔터테인먼트 애플리케이션의 결합이 전혀 새로운 미디어적 경험을 창출한 것과 같은 양상으로 진화하고 있다. 또한, 기존 리모컨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TV 인터페이스와 사회적 네트워킹을 바탕으로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TV 미디어 경험을 제공하며 진화해 나갈 것으로 생각된다.

최근 출시되고 있는 스마트TV에 탑재된 콘텐츠를 보면 기존 지상파의 월드가든 콘텐츠와 전혀 콘텐츠 심의규제와 상관없는 UCC 콘텐츠가 병존하고 있다. 하지만, 수십 년을 통해 대중들에게 각인된 TV의 정체성은 안전한 월드가든 콘텐츠에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가전사와 방송사가 누려온 변영의 역사 또한 정제된 콘텐츠만 제공되어 왔던 TV만의 차별성에 근거한 것이다. 만일, 30년산 위스키와 에틸 알콜을 거의 동일한 것으로 판단하고 스마트TV 콘텐츠 전략을 세운다면 이는 하루아침에 무너져 버릴 수도 있는 사상누각이 될 수 있다.
기존 방송 산업 종사자들의 일상 업무는 과반 이상이 규제 준수와 관련된 일들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프로그램 심의뿐만 아니라 PPL, 방송사고, 광고심의, 외주비율, 장애인 자막, 시청자 민원, 방송사업 재허가, 수많은 외부기관 감사 등 쏟아지는 규제 관련 대응에 막대한 역량을 소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책무에서 아직까지 자유로운 스마트TV는 기존 방송 산업과 비교해 막대한 비용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스마트TV의 비용 간극은 망에 대한 분담비용에 있다. 얼핏 보면 스마트TV는 지상파TV와 IPTV에 비해 더욱 진보된 기능을 갖추고도 네트워크 부담이 없는 남는 장사처럼 보이기 쉽다. 하지만, 이는 기술 주도형 신규 서비스 초기에 발생하는 착시효과로 보인다.
기존 지상파 사업자가 막대한 자원을 투입, 전국 곳곳에 지역 방송국과 송∙중계소를 세우고 운영하는 것은 산골짜기 한가구를 위해서도 전송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이며 IPTV 역시 가입자의 월정액에는 상당분이 전송 안정성에 대한 비용이 계상되어 있을 것이다.
기존 TV 산업체가 감당해 온 전송자원에 대한 부담은 상당하며, 스마트TV 서비스가 확대되어 갈수록 소요되는 총량적 비용은 증가하게 될 것이다. 결국, 누군가는 부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설사 잠정적으로 이를 콘텐츠 제공자에게 분담시킨다 하더라도 이내 산업적 원가로 계상되어 소비자 또는 플랫폼 사업자가 부담해야 할 몫으로 돌아올 것이며, 한동안 통신 산업과 가전 산업 사이에 쉽게 풀기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다.

   


끝으로 스마트TV의 광역 표준에 대해서 언급하고 싶다. 지난 50년의 지상파 TV 산업의 역사 속에서도 NTSC, PAL, SECAM 등 각기 다른 TV 표준이 존재해 왔고, 이는 하나의 글로벌 표준으로 지역의 이해와 문화를 대표하는데 한계가 있음을 반증했다.

스마트TV도 중기적으로는 개별국가 또는 제조사별 경쟁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동아시아 지역 내 기기와 콘텐츠에 대한 호환 규격을 세워가는 것이 더욱 중요해 질 수 있다. 이러한 광역표준은 거대 글로벌 기업의 플랫폼에 대응해 로컬 콘텐츠 마켓의 생존 경쟁력을 높이고, 지역문화와 미디어 산업의 독립성을 유지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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