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단어 –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여덟단어 –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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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종석 SBS 편집기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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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업계에서 손꼽히는 박웅현의 인문학 서적 ‘여덟단어’. 2013년에 출간된 이후 지금까지 OO문고 베스트셀러에 꾸준히 올랐던 기간만큼이나, 그동안 내 책장 귀퉁이에서도 꾸준히 외면당해왔었다. 공대인으로서 인문학이라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정도로 접근마저 두려워하던 내가 어느새 푹 빠져들 정도로 읽었으니, 이 책은 가히 ‘입문용 인문학 서적’이라고 부를 만하다.(적어도 나의 경우엔)

책은 총 8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인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8가지를 강의 형식으로 풀어냈다. 그 키워드는 ‘자존, 본질, 고전, 견(見), 현재, 권위, 소통, 인생’이다.
하나하나 단어들만 놓고 보면 결코 가볍지 않지만, 광고 CD(Creative Director)인답게 표현력이 뛰어나고 챕터마다 친근한 에피소드 및 저자의 경험이 녹아있는 삽화들이 무거운 챕터주제를 가볍게 해준다.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고자세에서 권위적으로 던지지 않고, 회사 및 가정 등 우리 일상생활에서 충분히 접할 수 있을만한 곳에서부터 편하게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이 책 전편에 걸쳐 저자가 좋아하는 부사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러한 이야기 전개방식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겸손하게도 저자는 ‘인생은 몇 번의 강의, 몇 권의 책으로 바뀔 만큼 시시하지 않다.’라는 글귀로 책표지를 장식했다. 감사하게도 저자가 시작을 이렇게 해주시니 그것을 소개하고 있는 지금 내 마음도 덩달아 가벼워지는 느낌이랄까? 이렇게 조금은 편하게 책을 읽기 시작해서인지. 겉멋 없이 담담하게 그리고 함축적으로 여덟단어를 설명하는 저자의 필력에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갔다. 지금 이 자리에서 키워드를 하나하나 모두 나열하는 것은 재미있는 이 책을 지루하게 소개하는 방법이 될 것 같아,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두 챕터만 간략히 소개하려 한다.
첫 번째 키워드 ‘견(見)’. 아래의 짧은 시가 그것을 대변한다.

「스며드는 것」 – 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에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갑자기 이게 웬 밥도둑 간장게장에 대한 사랑을 욕되게 하는 시냐고 묻는다면, 그게 바로 견(見)이라고 말하고 싶다. 똑같은 꽃게를 보고 다른 것을 읽어낼 수 있는 힘.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고 그때마다 제대로 보고 제대로 들어서 머릿속의 한 셀(cell)에 정확하게 입력해야 한다.
결핍이 결핍된 세상에서 제대로 들여다보는 방법에 대해 저자는 시간을 들이고 낯설게 봐야한다고 강조한다. 개의 주둥이를 보고 놀라며,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정류장 주변의 꽃들이 아침과 저녁을 맞이하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너무 많은 것을 보려하지 말라는 것이다. 호학심사(好學深思), 즐거이 배우고 깊이 생각하라. 깊이 들여다본 순간들이 모여 찬란한 삶을 만들어낼 것이다.

두 번째 키워드 ‘현재’. 아래의 두 발췌문만으로도 이번 챕터 소개 역시 충분할 것 같다.

1) TV프로그램에서 인터뷰어의 마지막 질문.
-. 박 CD님은 계획이 뭡니까?
-. 없습니다. 개처럼 삽니다.
부연설명) 개는 밥을 먹으면서 어제의 공놀이를 후회하지 않고 잠을 자면서 내일의 꼬리치기를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

개가 반갑다고 내 얼굴을 핥을 때 개는 그 일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것처럼 최선을 다한다. 밥을 먹을 땐 이 세상에서 밥을 처음 먹어보는 것처럼 최선을 다한다. 산책을 나가면 온 세상을 가진 듯 뛰어다니고 잠 잘 땐 ‘아, 아까 주인이 왔을 때 꼬리쳤던 게 좀 아쉬운데 어쩌지?’ 라는 고민은 추호도 없다. 그냥 잔다. 하나하나를 온전하게 즐기면서 집중한다. 순간에 집중하면서 사는 개. 개처럼 살자.

2) 한형조의 『붓다의 치명적 농담』 中
-. 스님도 도를 닦고 있습니까?
-. 닦고 있지.
-. 어떻게 하시는데요?
-.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잔다.
-. 에이, 그거야 아무나 하는 것 아닙니까? 도 닦는 게 그런 거라면, 아무나 도를 닦고 있다고 하겠군요.
-. 그렇지 않아. 그들은 밥 먹을 때 밥은 안 먹고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고 있고, 잠잘 때 잠은 안자고 이런 걱정에 시달리고 있지.

매 순간 내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 순간이 모여 인생이 된다면, 나는 최선을 다한 삶을 살게 된다는 어찌 보면 간단하지만 거리감 느껴지는 명제를 개와 스님과의 대화를 통해 저자는 쉽게 접근하였다. 흔히 어린이들에게 밥상머리 예절을 가르칠 때 돌아다니지 말고 가만히 앉아서 먹으라고 하는데, 우리 역시 다를 바 없다. 눈은 스마트폰 속 이야기에 빠져 내 가슴 앞에 높인 음식물을 입안에 욱여넣기 바쁠 때가 있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온전히 먹는 것에 집중할 때야 비로소 뜨거운 뚝배기에서 건진 순두부와 찌개국물이 한 톨 한 톨 살아있는 밥알들과 입안에서 맛있게 어우러지는 참맛을 느낄 수 있는데 말이다. 이렇듯 매 순간마다 내가 성의를 다하기 위해서는 좀 더 주변을 관찰하고 관심을 가져야하며 이것은 곧 앞서 소개한 견(見)과 맥락을 함께하게 된다.
위와 같이 8개의 키워드는 서로 긴밀히 연관되며 마지막 키워드 ‘인생’에서 저자는 앞서 소개한 일곱단어를 모두 아우르며 인생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마무리한다.

서두에 저자가 말했듯 단지 책 몇 권으로 인생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내 마음이 조금은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젊은 세대의 신조어로 인생에서 나에게 꼭 필요한 물건을 ‘인생템’이라고 부르는데, 이 책은 그렇게, 나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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