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승 아리랑국제방송 제작기술팀 부장
유시민 작가의 ‘표현의 기술’을 읽고 글쓰기에 대해서 새로운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방송기술인들이라면 글쓰기에 대해 참 할 말이 많다. 방송기술인들이 근무하면서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글쓰기는 각종 업무일지나 운행일지, 점검일지 같은 각각의 양식에 그날 발생한 것들에 대해 빈칸만을 채우게 되는 것들이다. 아니면 간혹 근무시간에 발생한 방송사고에 대해 육하원칙에 따른 사고보고서를 써본 것이 대부분이다.
경력이 쌓여서 관리자가 되거나 행정업무를 하게 되면 주로 기안문을 많이 쓰게 된다. 하지만 이것도 일정한 틀이 있어서 이전 기안문이나 유사한 글을 찾아보고, 그에 맞게 내용만을 수정하면 되기 때문에 새로운 글을 쓴다는 것에 고민을 가져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러한 방송기술인들의 글쓰기는 단순한 예전 글의 모방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결코 창조적인 글쓰기라고 볼 수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방송기술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직장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직장인 업무의 3분 1가량이 문서를 작성하는 업무용 글쓰기이다. 어떤 일을 시작하면서 기안서나 품의서, 기획 보고서를 작성한다. 그 일을 위해 여러 번 회의를 하고, 회의록이나 관련 보고서를 쓴다. 일을 실행하면서 상황보고서를 작성하고, 끝낸 뒤에는 결과보고서를 쓴다. 회사에 관련된 언론 보도나 벤치마킹 자료를 요약 보고서 형태로 정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매일 업무용 이메일을 쓰고, 보도 자료나 회사의 소셜미디어(SNS)와 관련한 멘션까지 작성할 때도 있다. 행사를 개최하기 위해 행사기획보고서를 써야 하고, 때로는 대표자의 초대 글도 만들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업무용 글쓰기는 패턴과 매뉴얼화 되어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런 업무용 글쓰기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글을 쓰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목적을 제기하기 위해서 이다. 우리가 글을 쓰는 것은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이다. 마찬가지로 상대방(타인)의 마음의 표현을 읽어주는 것도 글 쓰는 목적이 되겠다. 이 책에서 유시민 작가가 이야기하는 표현의 기술은 결국 진심을 담은 내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을 표현하고, 반대로 상대방이 표현하는 마음을 알아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담고 있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유시민 작가는 “나는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한 물음에 이렇게 답을 하고 있다. 열정을 가지고 의미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것, 그리하여 자신의 글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느낌에 솔직하며, 생각과 감정을 진부하고 상투적이지 않은 나다운 시각과 색깔로 표현해 내는 것이다. 자신을 표현하는 것과 정치적 글쓰기를 구분하지 않으며 어떤 목적을 위해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억압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러면 나에게 “나는 왜 글을 쓰나”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대답하게 될까?
아마도 나는 나 자신 스스로 물어보고 나에게 맞는 답을 찾아가는 게 “표현”이 아닐까라고 생각해 보았다. 내가 쓰는 글은 나 자신이 살아오면서 보고, 읽고, 들으며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것들에 대한 산물이라고 보았고, 글은 나 자신을 표현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글을 쓰는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내면에 지닌 생각과 감정을 글로 쓴다. 유시민 작가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래야 나다운 글을 쓸 수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면 무엇이 내 것이고, 무엇이 타인의 것인지 구별하지 못하여 틀에 박히고 진부하며 상투적인 글을 쓰게 된다. “내 생각과 감정을 나다운 시각과 색깔로 표현해야 한다. 내 목소리를 내야 한다.” 글을 쓰려면 생각과 감정에 자유의 날개를 달아 놓아야 한다. 고정관념과 도그마(독단적인 신념이나 학설)에 갇히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 글을 쓸 수 없다. 우리가 처한 현실은 빨, 주, 노, 초, 파, 남, 보로 무지개인데, 흑백 필름으로 사진을 찍어서 현실을 표현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내가 글을 쓰고자 할 때는 ‘사실에 부합하는가, 문장은 정확한가, 논리에 결함은 없는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인가’를 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쓴 글이 보는 이들에게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공감하는 글쓰기에 필요한 것은?
유시민 작가는 내가 쓴 글이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남이 쓴 글에 공감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하였다. 독서는 간접경험이다. 간접경험을 제대로 하려면 저자에게 최대한 감정을 이입한 상태로 글을 읽어야 한다. 독서는 타인의 말을 듣는 것과 같다. 글을 쓴 사람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 그 사람이 펼치는 논리, 그 사람이 표현하는 감정을 느끼고, 이해하며, 공감하는 것이다. 단순히 책을 많이 읽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단 한 권을 읽더라도 책 속에 깊숙이 빠져들어야 한다. 그래야 남이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다. 세상의 모든 다양한 책들을 읽으려는 것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다 사귀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가능한 일이다. 의미도 없을뿐더러 행복하게 살려면 나하고 잘 맞는 사람, 통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과 교감해야 한다.
배우는 책 읽기에서 느끼는 책 읽기에 도전하는 것을 권한다. 넓고, 깊으면서, 섬세하게 느끼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글로 타인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능력이 생긴다. 이렇게 글을 읽고, 또한 글을 쓰면서 자신과 타인을, 사회와 세상을, 관계와 삶의 의미를 더 깊고 넓게 이해하게 된다.
나는 수년 전에 제주도에서 몇 년간 근무할 기회가 생겨서 방송기술과는 전혀 상관없는 생소한 사회과학계열의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 내가 쓴 글을 보게 된 교수님의 첫 평가는 자기 생각이나 논리, 주장은 전혀 없는 건조한 보고서를 쓰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후 대학원 과정을 통해 수년간 여러 주제에 대해서 다양한 논리로 글을 쓰는 훈련을 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요즘에도 내가 글을 쓴 글을 읽은 주위 사람들은 마치 논문을 보는 것 같다고 한다. 이건 칭찬만은 결코 아닌 것 같다.
읽기 쉬운 글, 이해하기 쉬운 글,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글, 나의 주장과 의견을 자연스럽게 나타내는 글을 쓴다는 것은 역시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