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헌 UBC 울산방송 부장/음향감독
들어가며
최근 모 방송사에서 제작한 미스트롯이라는 프로그램이 전국적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트로트 음악에 대한 전 국민의 애정과 관심이 지대해졌다. 이에 전국 민영방송이 공동으로 제작하고 있는 ‘전국 TOP10 가요쇼’에 대한 제작기를 얘기해보고자 한다. ‘전국 TOP10 가요쇼’는 민영방송 9개사가 공동 투자하여 제작하는 트로트 음악 프로그램이다. 동 프로그램은 각 민영방송사가 2년씩 돌아가며 제작하는데, 2017년 1월부터 2019년 5월까지 UBC 울산방송에서 주관하게 되었다.
한번 녹화하게 되면 하루에 3회분의 분량을 강행하여 체력이 많이 달려 집중도가 떨어질 때가 있다. 하지만 매번 트로트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관객들을 비타민 삼아 피로를 잊고 열심히 일할 수 있었다. 실내녹화는 주로 울산 중구 문화의 전당에서 하였고, 야외녹화는 울산 및 각 지방 행사나 축제의 특설무대에서 이루어졌다.
전국 TOP10 가요쇼의 구성은 2MC, 8인조 악단, 6명의 여성 코러스, 20여 명의 안무팀, 십여 명의 트로트 가수들로 회당 평균 16곡 정도의 트로트 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세히 살펴보면, 반주를 담당하는 밴드(일명 Top10 밴드)는 8인조이며 드럼, 베이스, 일렉기타(곡에 따라 어쿠스틱 기타도 연주), 키보드 1, 키보드 2, 색소폰, 트럼펫, 트롬본으로 이루어졌다. 즉, 8인조 밴드, 6인조 여성 코러스와 가수가 하모니를 이루어 내는 순수 트로트 쇼이다. 이 프로그램의 구성은 큐시트와 같다.
전국 TOP10 가요쇼 프로그램 화면 / 출처 : G1 강원방송 홈페이지
음향 측면에서 제작과정을 고찰해보면 기본적으로 현장에서 2트랙 믹싱으로 완성되기보다는, 더욱 나은 음질을 위해 조금 더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멀티트랙녹음과 사후 믹싱을 하였다. 멀티트랙녹음과 그 음원에 대한 사후편집, 믹싱 및 마스터링의 과정이 추가되므로 일반적인 방송 녹화프로그램과는 워크플로우가 다르다. 따라서 오디오 작업을 먼저 한 후에 가편집을 하게 된다. 워크플로우는 다음과 같다.
그럼 워크플로우 과정별로 간단한 설명을 하고자 한다. 이 글은 음향작업에 국한해서 설명하고 있기에 가편집 이전까지의 과정까지 서술하려고 한다.
전국 TOP10 가요쇼 음향작업
1. 현장 믹싱 및 녹음
현장에서의 시스템은 방송믹싱과 SR믹싱으로 이원화하여 모든 소스를 스플리터를 사용하여 1대 1로 나누어 각자의 특성에 맞는 운용을 한다. 그리고 현장 멀티트랙 녹음과 2트랙 믹싱을 동시에 작업한다. 멀티트랙 음원 녹음과는 별도로 2트랙 믹싱으로 VCR에 레코딩하게 되는데 이는 PD의 화면전환과 중계 스텝들의 원활한 제작, 그리고 만에 하나 발생할 멀티트랙 레코더의 에러로 인해서 음원을 확보하지 못하게 되는 위험성 때문이다.
① 방송시스템 세팅과 운용
방송의 경우는 Soundcraft 사의 VI-6 콘솔을 사용하여 2트랙으로 믹싱해 광짚장비를 통해 중계차로 신호를 보내게 되고, 동시에 MADI 64채널을 하나의 광케이블로 연결된 멀티트랙 레코더(Sonud Device 970)로 녹음하게 된다. 이 레코더는 아날로그, AES/EBU, DANTE, MADI 포맷이 지원된다. 필자의 경우 광케이블 한 가닥으로 MADI 연결하는 것을 선호한다. 녹화 준비 시간이 2시간여로 짧기에 50채널 가까운 신호를 일일이 연결하고 확인할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때 녹음 시 유념해야 할 사항은 각각의 소스가 너무 커서 피크가 치고 있는지 혹은 너무 작거나 hiss 노이즈가 발생하는지 시간 날 때마다 체크하여야 한다. 한 가지 팁이라면 어떤 가수나 연주자이든지 리허설보다도 공연에 대한 긴장감과 흥분 때문에 본방송에서는 볼륨이 더 커진다. 그래서 모든 채널의 인풋 레인지를 -4dB로 설정하여 녹음을 시행한다.
② SR(Sound Reinforcement) 시스템 세팅과 운용
SR의 경우는 Yamaha PM5D 혹은 M7CL 콘솔을 사용하여 2트랙 믹싱하여 하우스 스피커로 방청객에게 공연음향을 들려주며, 또한 다양한 AUX 채널을 통해 무대 위 각각의 악기 파트, 코러스, 가수 모니터 스피커 & 인이어 모니터 등에 원활한 연주와 노래를 할 수 있도록 별도의 믹싱 된 신호를 주게 된다.
③ 무대 위 마이크 설치 및 악기 연결 후 리허설
녹화 일주일 전에 테크니컬 라이더(Technical Rider)를 작성하여 SR팀에 이메일로 보내게 되며 이를 토대로 마이킹 및 콘솔 레이아웃, 전체 음향시스템 세팅 등이 녹화 전날 이루어진다. 테크니컬 라이더는 다음과 같다.
위의 테크라이더에서 보이듯이 비고에 마이킹과 인서트란이 추가되어 있는데, 이는 필자의 경우 2006년부터 UBC 울산방송에서 매주 방송하는 ‘뒤란’이라는 음악프로그램의 음향감독으로 작업하면서 수많은 마이킹 기법과 믹싱 기법들을 시험해왔던 경험 때문이다. 그중 특이한 점은 드럼 오버헤드에 Neumann U87 마이크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필자가 전국에 다양한 음악프로그램을 보아도 중계 현장에서 실내외를 막론하고 이 마이크를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워낙 고가의 마이크라 야외에 사용하면 고장이나 분실의 우려 때문이라 생각되는데 어쨌든 필자의 경우 4개의 U87과 2개의 Shoeps MK4 마이크를 주력으로 사용하여 더욱 나은 음질을 구현하였다. 드럼 오버헤드에 U87을 사용함으로써 장점은 풍부한 탐탐사운드 음색과 드럼 전체 사운드의 앰비언스 사운드가 일반적인 스몰 다이어프럼 콘덴서 마이크를 사용한 것보다 훨씬 좋아진 점이다. U87은 라지 다이어프럼 콘덴서 마이크라 픽업 감도가 매우 우수하다. 게다가 심벌사운드가 픽업이 잘 되고 조잡하지 않아 풍성해졌는데 박자를 표현하기 위해 라이드 심벌로 연주하는 경우 믹싱 과정에서 살리기가 힘든데 라지 다이어프럼 특성상 픽업이 잘되어 필자의 믹싱본에서는 표현이 잘 되고 있다.
현장에서의 또 다른 특이점은 3대의 스탠드얼론 컴프레서를 사용하는데 디스트레서라는 장비로 이는 컴프레서 + 디스토션의 합성어이다. 그래서 리듬을 담당하는 악기 중 가장 중요한 킥, 스네어, BASS에는 EL8X Distressor(Empirical labs)를 사용하여 존재감과 펀칭감을 강하게 표현하여 전체적으로 믹스를 들어보면 리듬 파트가 화성이나 멜로디를 연주하는 악기에 묻히지 않으면서도 두각되어 들린다. 이 컴프레서의 특징은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살짝(1∼3%) 왜곡을 시켜 악기의 음색에 힘과 변색감을 주어 낮은 레벨에서도 잘 들리게 된다. 또 하나의 특징은 12∼18dB 정도 컴프레션되어도 억눌린 느낌이 나지 않아 필자가 정말 좋아하는 컴프레서로서 세계적인 명기로 알려져 있다.
④ 본 녹화
1회차 녹화가 시작되면 제일 먼저 멀티트랙 레코더를 녹음하여야 한다. 아차 실수해버리면 현장 믹싱본으로 방송을 하게 되는 참사(?)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필자의 경우는 휴대폰에 매주 화요일 1시, 3시, 5시에 알람을 설정하여 녹음하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모든 녹화가 종료되고 나면 멀티트랙 레코더에서 SSD 메모리를 꺼내서 믹싱룸으로 가져가게 된다. 믹싱룸에서 가져온 SSD 메모리를 프로툴에 연결하여 멀티트랙 음원들을 임포트 한다.
2. 사후 편집
편집과정부터 마스터링까지는 프로툴을 이용한 작업을 하게 되며 시스템 구성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현장에서 가져온 멀티트랙 음원을 모니터하면서 히스나 험 같은 잡음이 발생한 곳, 하울링이 발생한 곳, 키보드에서 주기적인 틱노이즈 발생한 부분, 믹싱 시 필요 없는 부분을 무음 처리하고 때에 따라 극히 짧은 페이더를 추가하기 위해 편집과정을 거치게 되며 Plug-In도 사용하게 된다. 편집과정은 복잡하고 섬세한 수작업이 많이 들어가게 되는데, 주로 노이즈 제거에는 izotope에서 제공하고 있는 RX 노이즈 제거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다음 그림은 RX 노이즈 제거 프로그램으로 Declick이라는 항목에서 틱 노이즈를 없앤 예시를 보여준다. 좌측그림은 틱 노이즈가 있는 소스이며 우측그림은 틱 노이즈를 제거한 부분을 비교해서 보면 된다. 붉은색 테두리 영역에서 틱 노이즈 2개를 제거하였다. 음원 파형을 보면 아래 방향에 폭이 좁으면서 길게 내려온 부분이 틱 노이즈이다.
3. 사후 믹싱
압도적인 외관에 멋지고 큰 라지 프레임의 콘트롤서페이스를 사용하면 좋겠지만 예산을 절감하기 위해 가성비를 감안한 아티스트 믹스(8개의 모터라이즈드 페이더)와 아티스트 컨트롤(터치스크린과 4개의 모터라이즈드 페이더) 2대를 연결하여 구성한 ProTools 시스템으로 믹싱하였다. 총 65여 개(8VCA 채널 + 48악기 및 무선마이크 채널 + 8Effector 채널 + 1Master 채널)의 채널을 사용하여 채널별로 노이즈게이트, 컴프레서, 이퀄라이징 등을 처리하고 필요 시 리버브와 딜레이를 이용하여 믹싱하였다. 코러스도 6명이라 각각의 6개를 복사하여 좌우로 하드패닝하였다. 원 소스는 좌측으로 보내고 복사 소스는 우측으로 보내어 6kHz 이상의 주파수를 6dB 이상 부스터하여 좌, 우가 다르게 들리게 하고 코러스 이펙트를 걸어서 스테레오 확장감을 더욱 넓혀서 잘 들리게 할 뿐 아니라 이렇게 함으로써 십수 명이 부르는 듯한 효과를 얻게 되었다.
또한, 정위감에서 가수들의 센터 위치를 침범하지 않아서 믹싱하기에도 편했다. 특히 브라스 파트가 색소폰 1명, 트럼펫 1명, 트롬본 1명으로 이루어져 있어 사운드가 빈약할 수 있는데 멀티딜레이를 사용하였다. 20퍼센트 정도의 피드백 파라미터 여러 개가 동시에 울리니 여러 명이 합주하는 듯한 사운드를 연출하여 브라스에 화려함을 더하였다. 그리고 모터라이즈드 페이더를 채용한 컨트롤러로 오토메이션 모드를 이용하기 때문에 수정작업이 용이한 믹싱작업을 함으로써 보다 더 디테일하고 조화로운 믹싱을 할 수 있었다. 다음은 콘솔 페이더 오토메이션 곡선을 보여주고 있다.
4. 마스터링과 2트랙 바운싱
마스터링을 위한 세션을 따로 만들었으며 Nugen 리미터로 다이내믹을 줄임으로써 보다 큰 음량감과 7밴드 이큐를 통해서 전체적으로 믹스 결과물에 부족한 저역이나 고역 부분을 살짝 가감하였다. 최종 모니터 후에 2트랙 바운싱을 오프라인 작업으로 하게 되는데 이는 이유가 있다. 온라인 바운싱 작업은 프로그램 실제 리얼타임으로 하기 때문에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반면 오프라인은 몇 분에서 십여 분 정도로 짧게 소요된다. 따라서 외장의 프리앰프, 고급서밍앰프, 최고급 진공관 컴프레서, 리버브(렉시콘 960 혹은 480) 등을 인서트하여 리얼타임 바운스를 하며 보다 더 고퀄리티의 음질을 기대할 수 있었으나 힘든 중계 일정, 뉴스 부조 및 FM 근무, 장비점검 등을 혼자서 소화해야 하는 지방 방송사의 근무환경으로서는 고급스러운 마스터링을 위한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엄두를 낼 수가 없었는데 이 점이 녹화가 끝나고 나서 아쉬운 점의 하나다. 심한 경우엔 중계가 많은 5, 6월의 경우에는 퇴근 후에 잦은 야근과 주말에 휴일 근무를 통해 믹싱 물량을 소화해 낼 수 있었다.
5. 완성된 음원 파일을 PD에게 전달
24bit 48KHz의 2트랙 스테레오 Wave File(24.97 Drop Frame)을 PD에게 전달하면 가편집을 하게 되고 종편을 거쳐 완제품이 나오게 되면 주조정실에서 방송으로 송출하는 과정이 남아있다.
나가며
이렇게 다양한 음향 작업 과정을 통해서 전국 TOP10 가요쇼는 탄생하게 되며, 서울을 제외한 전국에 방송하게 된다. 본인이 믹싱한 음악을 시청자들이 함께 따라 부르며 즐기는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를 뿌듯한 감동과 함께 방송인이 된 것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사실 필자는 초등학생부터 팝, 락, 헤비메틀, 재즈 음악 등을 들어온 마니아로서 현재 5,000여 장의 LP와 CD를 보유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시끄럽고 복잡한 음악적 취향 때문인지 사실 트로트를 단조롭다는 편견을 가지고 별로 즐기지 않았다. 그런데 회사에서 트로트 프로그램을 제작한다는 얘기를 듣고 녹화 시작 2달 전부터 멀티트랙 음원을 구해 다양한 버전의 믹싱과 마스터링을 끊임없이 해보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다 보니 나도 모르게 트로트에 빠지게 되었다. 어떤 때에는 온종일 머릿속에서 믹싱한 곡이 뽕짝뽕짝 떠올라 일상생활에 방해가 될 정도였다. 심지어 조문을 갔을 때도 트로트가 떠올라 깜짝 놀라며 나 자신을 추스르기도 했다. 이렇게 직업적으로 트로트를 자주 듣다 보니 이런 편견은 사라지고 어느새 트로트에 매료된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음악적인 면에서 하늘거리는 뽕짝 리듬에서 주는 흥겨움과 풍부하고 많은 악기의 조화로운 앙상블, 그리고 가수들이 간드러지면서 구성지게 꺾어 부르는 창법에서 이 장르의 매력을 실감하게 되었다. 지금은 중계를 떠나 내근 근무 중이며 그때의 아련한 추억과 감동, 열정이 떠올라 이 글을 쓰면서 무척 즐거웠다.
필자는 음악 믹싱작업이란 것은 요리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똑같은 재료가 주어지지만 부단한 실험과 연구를 통해 어떤 조리과정을 거치는지 혹은 각 재료의 적절한 배합 비율 그리고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마음, 열정, 철학 등이 첨가되면서 맛과 모습에서 그 결과물은 천양지차가 된다. 맛있으면서 또 보기도 좋은 그리고 모두가 사랑하는 요리를 만드는 것이 요리사의 꿈이듯이 음악 믹싱엔지니어는 누가 들어도 부담 없고 편하며 듣기 좋은 음악을 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살짝 솔직히 매너리즘에 빠지고 있었는데 이 글을 기고하면서 음향 엔지니어로서 마음을 재무장 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끝으로 이 졸고를 읽어주신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회원분들에게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