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앞당긴 디지털 세상, 최적화를 고민한다

코로나가 앞당긴 디지털 세상, 최적화를 고민한다

코로나가 앞당긴 디지털 세상, 최적화를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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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적화(最適化, optimization)
최적화(最適化, optimization), 바뀐 상황에 가장 잘 들어맞는 것이 되는 것, 더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이. 적자생존(適者生存, survival of the fittest)은 자연에서뿐 아니라, 산업에서도 훨씬 빠른 속도로 일어난다. 노키아와 블랙베리, 필름 카메라, VCR, 카세트테이프 등 한때 해당 분야의 표준이었으나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제품, 그리고 그를 만들던 기업들의 리스트는 계속 추가되고 있다. 심지어 이들을 밀어낸 것들도(필름카메라를 대체한 디지털카메라, VCR을 대체한 DVD, 카세트테이프를 대체한 CD…) 이미 그다음 타자에게 쫓겨났다. 영원할 것만 같이 잘나가던 이들이, 세상 변화를 받아들이기 미적거리다가 바뀐 세상에 맞춤으로 탄생한 그 누군가에게 자리를 내준 것이다. 최적화는 생존을 위한 근본적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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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초자산(坐礁資産, stranded assets)
좌초자산(坐礁資産, stranded assets). ‘시장 환경의 변화로 자산 가치가 떨어져 상각되거나 부채로 전환되어 버리는 자산’을 뜻한다. 과거 효율적 전기 생산 원으로써 높은 수익성을 보여주었지만, 이제는 탄소세 강화, 신재생에너지 부상이라는 시대 변화 속에 천덕꾸러기가 되어가고 있는 석탄발전소가 대표적 예다. 그 가치를 잃어가는 과정이 마치 배가 암초에 걸리는 것 같다고 해서 ‘좌초(坐礁)’란 표현을 쓴다.

캡처

넓고 깊은 바다, 해저 지형을 잘 아는 곳에서는 갑자기 암초를 만나지 않는다. 낯선 땅에 접근하는데 등대 같은 길잡이가 없거나 물 밑 상황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속도를 줄이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바위들에 턱, 턱.. 걸리기 시작하고, 허둥지둥 빠져나오려 하지만 이미 낮은 수심의 암초 지대에 들어온 상황이라 돌이킬 수 없다. 결국 큰 바위에 쾅! 걸리는 것이다. 이 과정을 단순화한 그래프로 표현해보면 다음 그림 정도 아닐까 싶다. 수평축은 시간, 수직축은 배의 속도라고 하면, 시간이 갈수록 배의 속도가 서서히 떨어지다가 어느 시점엔 절벽을 만나듯 기울기가 확 커지고, 결국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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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02

좌초자산도 원래 한때는 효율성 좋은 우량자산이었다. 다만 환경이 변했는데 – 깊고 잔잔한 바다에서 얕고 낯선 육지 근처로 – 그에 맞게 변화, 즉 최적화하지 못하다 보니 위 그래프를 따라가고 말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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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tal native vs digital immigrant
바뀐 환경에서 최적화하지 못한 개체가 가장 두려운 것은, 나와 비슷한 역할을 하면서 현재 환경에 최적화된 누군가다. 아날로그-디지털의 과도기를 넘어 이제 명실공히 디지털 사회로 진입하는 시점에서 그 누군가는 바로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디지털 환경에서 태어난 자). 처음 벽돌부터 디지털로 쌓아 올려서 디지털에 최적화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 그들이다.

Digital native의 예를 라디오가 속한 소리 매체 분야에서 찾아본다면, 음원플랫폼, 팟캐스트플랫폼, 오디오북플랫폼, 그리고 스튜디오 기업(크리에이터 집단)으로 좁혀볼 수 있겠다. 이들은 콘텐츠 제작부터 전달까지 디지털화된 수단을 사용하고, 디지털 콘텐츠 비교우위의 핵심인 메타데이터를 콘텐츠와 동시에 생성해서 유통의 끝까지 따라 붙인다. 메타데이터 생성도 인간의 수작업에 의한 사전 입력이 아닌, 콘텐츠 전체를 STT(Speech To Text)로 받아 적어 텍스트화하는 방향으로 잡는다. 심지어 콘텐츠 내용과 주제 파악도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려 한다. AI에 의한 MRC(Machine Reading Comprehension, 기계 독해)가 그들의 활용 기술 목록에 올랐다.

한편, 지상파 라디오 방송사는 어떤가? 국내 라디오 방송사도 이미 오디오를 디지털 파일로 제작하고 편집하지만, 지상파 송출과 수신은 아날로그 방식이다. 메타데이터는 스트리밍과 팟캐스팅에서만 따라붙으며, 그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미진하다.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아카이빙은 사람의 노동력에 기대고, 여전히 창고에 테잎 형태로 쌓여있는 소중한 자료들의 디지털화는 그 오래된 테잎들의 열화 속도를 앞설 수 있을까 걱정된다. 모바일앱을 만들어 스트리밍도 열심히 하고 있지만 – 전체 청취량의 25~30% 수준까지 올라온 상황 – 그 안에 들어 있는 광고는 형식만 디지털일 뿐, 영업과 판매와 활용에서는 아날로그 지상파 광고와 근본적 차이가 없다. 기존 아날로그의 프레임과 구조를 건드리지 않은 채 부분부분 디지털로 보수한, 전형적인 digital immigrant(아날로그에서 디지털 환경으로 건너온 자)의 모습이다.

자동차 분야의 digital native(Tesla)와 digital immigrant(전통 완성차 기업)의 근본적 차이도 같은 맥락이다. 테슬라는 하나의 통합 컴퓨터가 차량 전체를 제어하는, 진정한 의미의 바퀴 달린 스마트디바이스이지만, 전통 완성차 메이커들의 차종들은 수십 개의 부품별 ECU(electronic control unit)들이 각자 역할하고 이를 힘겹게 조율한다. 군데군데 아날로그적 요소가 남아 있다 보니 디지털의 강점을 100% 발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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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tal immigrant의 좌초자산
디지털 환경에서 가치 있는 자산은 주로 무형인 경우가 많다. 반면 아날로그 시대에선 누구나 쉽게 소유할 수 없는 비싸고 덩치 큰 유형자산이 중요했다. 역시 소리 매체 분야에서 예를 찾아볼까?

Digital native인 음원플랫폼, 팟캐스트플랫폼, 오디오북플랫폼, 그리고 스튜디오 기업(크리에이터 집단)이 직접 보유한 자산은 코드화된 상품(앱, 웹사이트), 브랜드, IP(지식재산권), 또는 아이디어와 스토리를 머릿속에 담고 있는 크리에이터다. 모두 무형이다. 비즈니스에 필요한 유형자산, 즉 콘텐츠를 제작·전달하는데 필요한 인프라는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비용을 내고 쓴다. 심지어 자금도 필요할 때 지분 일부를 떼어주고 수혈받는다. 몸이 가볍고 움직임이 유연할 수밖에 없다.

Digital immigrant인 한국 라디오 방송사들은 어떤가? 비싸고 덩치 큰 제작 설비와 주조정실 장비, 송출 시설, 부동산을 포함한 중계망을 직접 소유하고 있다. 정규직 직원들 다수는 기획과 관리가 주 업무다. 콘텐츠를 직접 매만지는 작가와 진행자, 출연자는 대부분 프리랜서로 외주화했다. 주파수 사용을 위한 방송 허가권은 무형자산이지만, 들을 것이 한정적이었던 과거에 비해 가치가 확 떨어졌다. 또 다른 무형자산인 브랜드는 낡은 이미지가 입혀졌고, 아카이브는 활용에 허들이 많다. 가지고 있는 유형자산이 만들어내는 수익은 하향세가 굳어졌고, 유지 비용은 같거나 높아졌다. 보유한 무형자산들 역시 가치가 하락했거나 그림의 떡이다. 좌초자산을 많이 들고 있다고 말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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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불안, 설마 설마의 10여 년, 우린 지금 암초 지대에 있는가?
필자가 라디오 PD로 커리어를 시작했던 20여 년 전, TV에 덩치가 밀리긴 했어도 라디오는 캐시카우(cash cow – 지속적으로 안정적 수익을 창출해주는 사업)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연비 좋은 엔진이었다. 자동차는 더 늘어나고 있었고, 새로운 포맷의 아침 시사프로그램과 오후 공개방송 토크쇼 등 킬러 콘텐츠들의 등장이 멈추지 않았다. 인터넷망의 광범위한 보급도 놓치지 않고 올라탔다. 흑백TV, 컬러TV, 인터넷의 파고를 요리조리 피하거나 올라타며 적응해온 역사가 길다 보니 매체 위기 대응에 막연한 자신감도 있었다. 그런데 10여 년 전 본격화된 모바일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급은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라디오의 최대 비교우위이던 병행성, 기동성, 제작 편의성을 기본 내장하고 있는 매체였기 때문이다. 과거 몸이 무거웠던 동영상까지도 스마트폰에 들어가면 과거 라디오만의 비교우위를 손쉽게 갖출 수 있었다. 각각 독립적인 기기와 매체로 존재하던 모든 것들을 코드화하여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은 존재가 스마트폰이었다. 필름카메라를 대신했던 디지털카메라도, 별도 기기로 존재하던 내비게이션도, 캠코더도, CD도, mp3 플레이어도, TV도, PC도, 만화책도, 신문도, 달력과 플래너도.. 모두 0과 1의 코드가 되어 스마트폰의 앱이 되었다.

주식 시장에서 가장 비싼 네 단어가 ‘This time is different’ – 폭락과 폭등이 반복되는 주식 시장의 역사를 외면하여 공포에 팔고 장밋빛 미래에 현혹되지 말라는 격언 – 라고 했다지만, 스마트폰으로 촉발된 이번 위기는 왠지 이전 위기들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음원플랫폼이 CD 시장을 잡아먹고 음악FM의 힘을 조금씩 빼기 시작했을 때, 불안하긴 했으나 설마 했던 세월이 지난 10여 년..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음악이 필요한 시간’에 음악FM을 떠올리는 사람들은 소수가 되었고, 팟캐스트와 오디오북을 찾아 듣는 사람, 유튜브를 라디오 듣듯이 끼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라디오도 그간 앱을 만들어 스마트폰에 들어가기도 하고, 스튜디오에 카메라를 밀어 넣어 유튜브도 기웃거려봤지만 레거시의 내력벽을 건드리는 ‘구조적 최적화’까진 이르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지상파 광고 매출 곡선은 앞서 제시한 ‘좌초자산 그래프’의 전반부와 닮아가고 있다. 전성기 때와 같은 규모의 인원과 유지비를 송출에 들여야 하지만 FM을 통해 듣는 사람은 점점 적어지고, 지상파 광고 매출은 줄고 있는 지상파 라디오. 혹시 우리는 암초 지대로 들어선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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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What?
가장 확실한 최적화는 디지털 네이티브를 키우는 것, 또는 네이티브 수준의 이민자가 되는 것. 전자는 방송사 지배구조를 포함한 최고 단위 경영 의사 결정이므로 논외로 하고, 라디오 콘텐츠 유통 현장에서 부딪치며 느낀 문제의식과 해법을 공유하고자 한다.

1. 자동차에 더 많은 관심을
자율주행이 모든 차량에 일반화되면 자동차에서 오디오의 역할과 지위에 큰 변동이 있겠지만, 일단 그때까지라도 카인포테인먼트의 주역은 오디오다. 최근 다른 오디오 매체들이 카인포테인먼트 분야에 진입하려 기를 쓰고 있지만, 틀면 나오는 lean-back형 미디어가 더 유용한 카인포테인먼트에서는 여전히 라디오 사용량이 절대적이고 그 감소세도 다른 라디오 청취 공간보다 약하다(라디오 청취 장소에서 자동차의 점유율은 역대 최고 수준 수도권 라디오 청취자의 청취 장소는 자가용(67.7%) > 집(18.2%) > 사무실/ 학교(16.3%) > 대중교통 수단(5.6%) 순. 여기서 ‘라디오’란 FM과 스트리밍 등 다양한 청취 경로를 모두 포함한 것 (2021년 5월, 한국리서치 Radio usage report)
– 물론 가정 등 다른 공간에서 라디오 청취가 줄면서 자동차 점유율이 늘어나는 ‘불황형 흑자’ 성격도 무시할 수 없지만). 여기서 놀라운 것은 한국의 라디오와 자동차산업은 이제껏 별 대화 없이 지내왔다는 사실이다. 권태기 부부도 아니고, 서로 무관심해도 늘 그 자리에 있을거라 생각했을까? 반면 유럽 라디오 업계와 완성차업계는 함께 워킹그룹을 만들고 긴밀하게 교류하면서 라디오와 자동차의 연관성을 강조하고, 모빌리티의 변화에 같이 발맞춰가려 노력한다. 특히 지금은 커넥티드카와 음성 인터페이스 등 자동차에 큰 변화가 일어나면서 라디오도 새로운 사용자 경험(UX),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열리는 시점인데, 한국의 라디오와 자동차는 이를 각자 따로 고민하고 서로 교감하는 데는 인색했다. 변화가 필요하다.

2. 디지털 네이티브 오디오 미디어 사업자들이 활용하는 기술에 관심을
디지털 환경에 최적화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네이티브들이 중시하는 기술들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방송사는 그간 FM과 직관된 제작, 송출, 중계 기술만 신경 써왔다. 개발자들을 뽑기 시작하면서 아카이빙까지는 업무로 편입했지만, 온라인 유통 관련 기술은 인터넷 자회사에 맡기고 신경 꺼버리고 싶어했다. 본사 내재화가 왕도라는 것은 아니다. 맡기더라도 잘 알고 맡기라는 것. 여기서 각 기술을 모두 설명하자면 책 한 권을 써야 할 테니 일단 생략하고, 분류와 나열로 갈음한다.

· 디지털 오디오 광고 관련 기술 : live midroll, dynamic insert, programmatic buying, targeting tech rep on server or app, audio-display companion ads
· 오디오와 텍스트 간 변환 기술 : voice font, STT
· 오디오 저작권 보호 기술 : audio fingerprint, music DNA
· AI에 의한 내용 파악 : MRC(Machine Reading Comprehension)
· 제작 효율화, 오픈 플랫폼을 위한 기술 : podcast producing app

3. 위 기술들의 창의적 결합을 상상해야
위에 나열한 기술들을 이해했다면, 이들의 결합으로 어떤 유용한 사용자 경험, 비즈니스가 만들지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답은 독자분들 스스로 찾으시기 바란다.

· STT + MRC + audio fingerprinting = ?
· News priority·duration·urgency tagging + MRC + voice font = ?
· audio fingerprint for ads in car cabin + audio display companion ads + GPS = ?

4. 1~3은 한 팀에서 해야
‘마지막으로 위 1~3번은 사내 여러 부서에서 각자 따로 해선 제대로 구현하기 힘들다. One team, 또는 그에 버금갈 만큼 활발히 소통하는 팀들이 같이해야 한다. 디지털 네이티브들은 그렇게 한다. 좌초하지 않고 다시 큰 바다로 나가고 싶다면, 더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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