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악단 공연의 중심에는 지휘자가 있다. 맨 나중에 따로 입장하며, 공연 후에는 가장 먼저 퇴장한다. 공연의 찬사도 한 몸에 쏟아지는 듯하고, 공연이 시원치 않으면 비판의 화살도 그에게로 향한다. 무대 위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지휘봉을 들고 휘젓는 것밖에 없는데 말이다. 심지어 단원들이 연주하면서 쳐다보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지휘의 간단한 역사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의 규모가 커지면서 필요해진 존재이다. 18세기까지만 해도 오케스트라라고 부를 수 있는 음악 조직은 흔치 않았으며, 대개 10~20명 규모의 악단이었다. 음악도 박자대로 딱딱 맞추어서 연주하면 그만이었기에 지휘자라는 존재는 없고, 리더 역할을 하는 연주자(대개 바이올린 연주자나 건반악기 연주자)가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공연장이 커지고 작품의 편성이 커지고 악단이 커져갔다.
베토벤 시대 교향곡은 바로크 시대 음악들에 비해 훨씬 많은 인원을 필요로 한다. 바로크 시대엔 금관악기는 극히 드물게 사용되었고, 목관악기도 한정적이었다. 베토벤 시대에는 목관악기들이 골고루 사용되고 금관악기도 점차 많이 쓰인다. 목금관 악기들의 음량과 밸런스를 맞추려면 현악기의 숫자도 늘어나야 할 수밖에 없다. 더 큰 음량을 낼 수 있도록 악기도 개량되었다. 왕이나 귀족들이 궁전 안에서 듣던 음악은 이제 큰 공연장으로 나왔고 시민계급이 관객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점점 더 많은 악기들이 사용되고 음악은 더 길어지고 복잡해졌다. 비슷한 정서의 표제음악이지만 비발디의 ‘사계’와 베토벤의 교향곡 6번 ‘전원’의 차이는 무척 크다.
음악이 복잡해졌다는 것은, 비유하자면 과거 음악이 장난감 기계처럼 단순한 구조라고 했을 때 스위스 시계의 부속품들처럼 치밀하고 정교하게 설계되었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연주자들은 자신들을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오차 없이 돌아가게 해줄 지시가 필요해진다. 물론 이전에도 지휘자의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있긴 했다. <왕의 춤>이라는 영화에 등장하기도 하는 프랑스의 궁정 작곡가 륄리는 음악의 박자를 맞추기 위해서 큼지막한 막대기로 바닥을 쿵쿵 찍었다. (결국, 그는 그것으로 발등을 실수로 찍는 바람에 파상풍에 걸려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단순한 박자 맞추기로는 복잡한 곡을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이 소화해낼 수 없게 되었다. 좀 더 정확하게 지시를 해주는 사람이 필요해졌고, 이를 연습을 통해서 숙지시키는 사람이 필요해졌다. 우리가 오늘날 보는 지휘자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된 것은 베토벤 시기부터라고 해야겠다.
19세기를 지나며 더 감정의 폭이 커진 낭만주의와 민족주의 음악의 시대가 도래했고, 이후 바그너, 브루크너, 말러 등의 작품은 오늘날 100여 명의 단원으로도 부족한 거대한 음악으로 진화(?)했다. 예전에는 작곡과 지휘를 겸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 점차 전문 지휘자의 시대가 되었다. 그들은 자신의 음악적 개성을 오케스트라를 통해 발현시키고자 했다. ‘지휘자의 해석’이라는 것이 예전이라고 없진 않았겠지만, 이제 어떤 지휘자가 지휘봉을 잡느냐에 따라 같은 음악이라도 다르게 들린다는 인식이 공유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경향이 가속화된 것은 분명 20세기 이후 레코딩 산업을 비롯한 기술의 발전과 연관되어 있을 터이다. 음악회에 가지 않아도 우리는 집에 앉아서(지금은 모바일 기기만 있다면 어디서나) 수많은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곧 ‘비교 청취’가 가능한 환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지휘자(가령 존 엘리엇 가디너)는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을 59분에 지휘하고, 다른 지휘자(가령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는 73분에 연주한다. 이 속도의 차이는 노래방에서 ‘더 느리게’나 ‘더 빠르게’ 버튼을 서너 번 눌렀을 때 얼마나 느려지거나 빨라지는지를 연상하면 된다. 뿐만 아니라 악장별로 느낌이 다르고, 누구는 금관악기를 도드라지게 들리게 하고, 누구는 템포를 늘이고 당김을 극단적으로 하며, 누구는 날렵함을 강조하고 누구는 묵직한 소리를 추구한다. 이 차이를 종합하여 비평가나 청자는 연주와 지휘를 판단하는 시대가 된 셈이다. 가령 악보에 근접한 빠르고 힘찬 토스카니니와 느리고 디테일을 한껏 살린 장중한 푸르트벵글러의 스타일은 대척점에 있고, 묵직하고 투박한 클렘페러, 날렵하고 선율미를 강조한 클라이버, 유려한 발터 등의 표현이 말해주듯이 지휘자의 개성은 음악 감상의 필수요소가 되었다. 이 개성을 위해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지휘자의 지시에 따라야 했고, 지휘자는 음악적으로 ‘독재자’에 가까운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20세기 중반까지의 일이다.
러시아 혁명 이후 러시아의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 페르심판스’의 실험은 바로 이런 독재자에 대한 거부라는 명분 아래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는 앞서 말한 바대로 복잡하고 큰 규모의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불가피한 존재였던 지휘자를 없애버림으로써 모든 단원들이 자율적으로 생각하고 본인들의 생각을 토론하여 결론을 낸 이후에야 연주가 가능한, 너무나 힘들고 긴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과두제의 철칙’을 어긴 그들의 실험은 성공하기 어려웠다.
20세기 후반 오케스트라에도 ‘민주화’가 찾아왔다. 이제 토스카니니처럼 단원들이 맘에 안 들면 고함을 지르거나 지휘봉을 부러뜨리는 위압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은 없다. 단원들과 자유롭게 소통하고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이 대세가 되었다. 카라얀에 뒤이어 베를린 필하모닉의 수석지휘자를 지낸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리허설에서 별다른 지시를 하지 않고 단원들에게 자신들끼리 서로의 소리를 듣도록 하고 자율적으로 생각하도록 했다. 사회주의자였다는 그는 어쩌면 또 하나의 ‘페르심판스’를 추구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는 꽤 극단적인 이야기고 대부분은 본인들의 해석을 리허설을 통해 오케스트라에 불어넣는다.
음악의 시공간을 만드는 지휘자
도식적으로 말해서 음악에는 시간의 축이 있다. 우리가 노래를 부를 때 느리게도 빠르게도 부르고, 특정 음을 조금 더 길게 조금 더 짧게 부르기도 하듯이 오케스트라 음악도 마찬가지다. 지휘자는 이를 통제한다. 악보에 정해진 대로 하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컴퓨터 음악이다. 인간이 하는 한 악보대로 한다는 것에 100명이 합의에 이르기는 불가능하다. 아무리 꼼꼼하게 악보에 지시가 되어 있더라도 수없이 많은 빈틈이 있고 이를 채우는 건 결국 음악가의 몫이다. 그 대표자 역할을 지휘자가 맡는 셈이다. 한편, (공간의 축이라고 말하는 건 다소 이상할 수 있지만) 음악은 공기가 진동되어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이고, 오케스트라는 약 100개의 악기가 소리를 낸다. 어떤 소리로 채울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100개의 악기에는 포르티시시모부터 피아니시시모까지 무한대로 다양한 음의 크기들이 있다. 또한 같은 음량에도 전혀 다른 음색이 있고(가령 트럼펫은 째지는 금속성의 사운드도 있고 호른처럼 푸근한 소리를 낼 수도 있다.) 이를 통해 무엇인가를 표현한다. 매시간의 축에서 100개 악기들의 음량과 음색을 조정해내는 콘솔 박스가 지휘자인 셈이다. 그 작업을 통해 그들은 작곡가가 전달하려고 했던 정서를 물리적인 소리로 만들어 관객에게 전달한다. 지휘자는 100명의 음악가가 없다면 어떤 소리도 낼 수 없는 존재이지만, 그들에게 (어떤 방식으로건) 그들의 할 일을 인지시켜서 소리를 내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음악’을 만들어내는 리더다. 그렇기에 리허설은 오케스트라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과정이다.
우리 시대의 지휘자들
오늘날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마리스 얀손스, 다니엘 바렌보임, 리카르도 무티 등의 70~80대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 정명훈, 사이먼 래틀, 에사페카 살로넨, 크리스티안 틸레만 등 50~60대 지휘자, 그리고 구스타보 두다멜, 안드리스 넬손스, 네제 세겡 등 30~40대 이상의 젊은이들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최근에 베를린 필하모닉의 차기 수석지휘자로 단원들이 키릴 페트렌코를 뽑은 것은 의외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43세의 나이, 독일 바깥에선 바실리 페트렌코라는 30대의 젊은 지휘자보다도 인지도가 낮은 무명 신세였고, 전임자인 사이먼 래틀처럼 사교성이 좋은 유형도 아니었다. 그는 베를린 필을 딱 세 번 지휘(약 3주)하고서 낙점을 받았다. 하지만 어느 인터뷰에서 베를린 필의 단원은 이렇게 말한다. “보통 객원 지휘자가 지휘를 하고 나면 단원들끼리 ‘이 지휘자가 다시 오는 게 좋겠어?’라고 이야기를 나누지만, 당신(키릴 페트렌코)이 왔을 때엔 모두들 ‘그는 언제 또 오는 거지?’라고 이야기를 했다.” 다시 부를까 말까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부를 것인가 만이 문제였을 만큼 그는 음악적으로나 인간적으로 단원들에게 깊은 신망을 짧은 시간 안에 획득한 셈이다. 이것이 지휘자의 매력이고 마법이다. 물론 쉽게 갖출 수 있는 능력은 결코 아니다. 지휘자와 단원들의 관계도 사람들 사이의 만남인지라 미래를 예단할 수 없다. 3년을 못 채우고 헤어지는 관계도 허다하고, 20년 넘게 서로를 신뢰하며 지내는 악단과 지휘자도 있다. 이런 것을 지켜보는 것도 지휘자를 보는 또 하나의 재미다. 페트렌코와 베를린 필은 얼마나 오래 함께할 수 있을까?
부다페스트의 공연장
여름을 빼면 클래식 음악과 오페라가 매일 넘치는 곳이 부다페스트이다. 중심 공연장은 ‘예술의 궁전’이라는 뜻의 헝가리어를 축약시킨 ‘뮈퍼(Műpa)’인데 그 안에는 벨러 버르토크 국립 콘서트홀이 들어서 있다.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인정받는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등 헝가리의 주요 교향악단 외에도 해외 유명 음악가도 자주 이곳 무대에 선다. 시내 중심에 있는 리스트 음악원 콘서트센터도 실내악과 교향악 공연까지 커버하는 아르누보 스타일의 공연장으로 놓치기 아까운 공연이 많다. 헝가리 국립 오페라는 시내 언드라시 대로에 있는 오페라 하우스와 라코치 거리 근처에 있는 에르켈 극장 둘 모두에서 오페라와 발레를 연중 공연한다. 고풍스러운 오페라 하우스는 구스타프 말러가 지휘자로 활동한 곳으로 헝가리인들의 문화적 자존심이며 에르켈 극장은 리노베이션을 거쳐 신식 극장이 되었는데 최고가 1만 5천 원 정도의 저렴한 금액으로 오페라와 발레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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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 소피 폰 오터 & 카밀라 틸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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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메조소프라노 안네 소피 폰 오터가 동향의 후배 소프라노 카밀라 틸링과 함께 한국을 찾는다. 오터는 바로크부터 현대, 오페라와 가곡부터 비틀즈와 샹송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 달려왔으며 30여 년간 빼어난 음반과 실황으로 관객을 매료시켰다. 카밀라 틸링도 청아한 목소리로 바로크 음악과 가곡을 소화해내는 정상급 가수다. 둘은 따로 또 함께 슈베르트, 멘델스존, 슈트라우스의 유명한 가곡부터 그리그와 린드블라드 등 조금은 생소한 레퍼토리까지 부를 예정인데, 아름답고 기품 있는 두 여성의 목소리를 감상할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