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영곤 OBS 기술국 사원
어느 먼 옛날 검은 돌(黑石) 마을에 ‘곤’이라는 어느 노총각이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독립이라는 생각이 떠올라 집을 알아보기로 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집이 빌라다 보니 처음에는 금액에 맞춰 신축 빌라를 사려고 했다. 일단 위치가 중요했다. 본가에서 너무 멀지 않고 출퇴근이 용이하며, 주차하기 편한 곳으로 알아보고 다녔다. 네*버나 다*부동산 사이트와 방 관련 앱들은 거의 매일 보고 다녔던 것 같다. 주말 무작정 부동산에 찾아가서 5~6군데 집을 보고 다녔다. 그때가 한참 추운 1월이었다. 원래 계획은 구정 전 입주를 목표로 삼았다. 그런데 주위의 반대로 인해 아파트로 선회하게 되었고 그래서 이곳 강서구 등촌동으로 오게 되었다. 좀 더 살아봐야겠지만 회사까지 20분 정도니 뭐 나름 잘 선택한 것 같다.
1월이 나름 좋은 것은 이사 철인 봄, 가을보다 조금 저렴하다. 지금 여기도 10% 정도 저렴하다. 그런데 아파트 전세를 보니 현금 보유 금액보다 높아서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부동산의 소개로 은행 전세자금 대출을 알아보던 중 왜 이리 서류가 많은지 10가지가 넘어 준비하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계약서까지 제출해야만 했다. 거기에 추가상품에 가입해야 한다고 해서 포기하고 결국 이자가 조금 비싸지만 조금씩 갚아 나갈 수 있는 보험약관대출과 마이너스 통장으로 현금을 마련했다. 여기저기 있던 예금을 모으고 대출을 받고 나니 내 생애 0이 8개인 수표는 처음 만져봤다. 그러고 나서 수표를 다 놓고 인증샷을 찍어 두었다. 찰칵~~
새벽부터 폭우가 쏟아지던 2월 12일 오전 잔금을 치르고 바로 동사무소에 가서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받고 회사로 출근했다. 주민등록등초본을 한부씩 떼보니 내 집은 아니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집을 얻었다는 뿌듯함을 느꼈다. 그 날 퇴근 후 텅 빈 집에 들어가 봤다. 처음 이 집을 봤을 때는 도배는 안 해도 될 줄 알았다. 그래도 페인트로 벽면만 칠하려고 했는데 막상 가구와 짐들이 다 빠져나가고 보니 벽지는 여기저기 찢어지고 시꺼멓고 걸레받이는 너덜거려 도배 공사를 의뢰했다. 예상치도 못한 비용이 추가됐다. 베란다와 방문 4개는 페인트를 직접 사서 주말 하루 날 잡고 혼자서 칠했다. 베란다는 흰색으로 방문은 아이보리색으로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벽에는 마스킹테이프를 붙이고 한번 칠하고 잠시 쉬었다가 재벌 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그날 처음으로 혼자서 외식을 했다. 바닥 장판도 교체하고 싶었지만 현금이 부족한 관계로 교체하지 못했다. 요즘은 입주 시 청소 업체를 부른다고 하는데 ‘아껴야 잘 산다‘라는 생각으로 마스크를 쓰고 걸레를 박박 문질러 가면서 청소했다. 청소하면서 지금까지 락스, 베이킹소다, 식초를 몇 통씩은 쓴 것 같다.
일단 이사는 가져올 짐이 별로 없는 관계로 자차로 왕복했다. 큰 가구도 없고 침대, 책상, 의자를 놓고 오니 가져간 것은 이불 2장, 숟가락 젓가락 2벌, 베개, 밥그릇 국그릇 2개, 컵 2개 그리고 입을 옷 정도였다. 모든 게 2개다. 혹시나 나중에 쓸 일이 있을 줄 알고… 그러나 나는 혼자다!! 참고로 여기는 금남(禁男)의 집이다.
이삿짐 중에서 가장 무거운 것은 책이었다. 한 300권 정도의 책을 옮기는게 문제였다. 직접 옮기다 보니 하루에는 다 못하고 본가에 갈 때마다 끈으로 묶고 차에 싣고 가져와서 풀고 정리하고 이것을 여러 번 했다.
아파트 잔금을 치르고 난 후 남은 현금이 250만 원 정도였던 거 같다. 그리고 이것으로 집 인테리어와 살림을 장만해야 했다. 작은 물건은 인터넷을 이용해 샀고 택배로 받았다. 밥통은 3인용, 다리미, 전자레인지, 가스렌즈, 행거 등등 한동안 가격비교를 다 보면서 최저가로 구매했다.
살림 장만 시 가장 신경 썼던 것은 책상, 책장이었다. 다른 것들은 상품평이 좋은 것 위주로 샀지만 책장과 책상은 조금 비싸더라도 오래 쓸 수 있고 모양 좋은 것으로 샀다. 그래서 두꺼운 원목으로 마련했다. 내 작은 소원이 있다면 거실이나 한 방을 책장으로 만들고 책을 가득가득 채우고 싶다.
문제는 부피가 큰 냉장고와 세탁기가 문제다. 집에 아무도 없다 보니 물건 배송이 문제였다. 주말 배송은 어렵고 또 받으려면 2주 이상씩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집 근처에 있는 전자제품점으로 향했다. 이것을 살려고 한동안 아무것도 못 한 거 같다. 2월 27일까지 냉장고가 없다 보니 반찬도 넣지 못하고 금액도 40만 원 정도 오버한 것 같다.
현재도 가구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 그래도 조그마한 가구는 이케*를 종종 다녔다. 6시 퇴근 후 매장가면 7시 나름 소파도 보고 테이블도 보지만 막상 가면 사지는 못한다. 어쩔 수 없다. 쇼핑이란 누가 옆에서 바람을 넣어줘야 사는데 혼자다 보니 물건 앞에서 한참 고민만 하다가 결국 돌아선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다 큰맘 먹고 암체어, 티테이블, 선반, 조명등 그리고 조그마한 책장들을 사고 와서 그날 저녁 조립을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집에 큰 가구가 없으니 조그만 소리가 나도 집이 울린다.
그리고 한동안 다*소에 거의 출근하다시피 했다. 살 게 없더라도 그냥 갔다. 숟가락, 젓가락, 컵, 접시, 락앤락, 앞치마, 유리병 등등 그러면 언제나 봉투 한가득 들고 온다. 그러기를 거의 한 달 정도를 했다. 또 집 앞에 있는 대형마트에 가서 카트에 먹을거리를 가득 싣고 집으로 오곤 했다. 갈 때마다 큰 봉투를 들고 가서 100원도 아끼고 환경도 보호하고…
조그마한 냉장고에는 반찬보다 생수나 맥주가 한동안 가득했다. 그래서 그런지 한동안 수입보다 지출이 많았던 것 같다.
얼마 전 몇 달을 고민하던 커튼을 하나 설치했다. 원래 못을 박는 것을 싫어해서 이사 후 지금까지 시계 하나만 박고 살았다. 그런데 방으로 빛이 너무 많이 들어와 밤에 잠을 설치다 보니 암막 커튼을 사서 달았다. 달고 나니 어둡고 좋기는 한데 바람이 통하지 않으니 덥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예전에 살던 곳은 빌라 2층이었다. 계단 몇 개만 내려가면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 여기는 아파트 5층이다. 집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생각에 귀찮더라도 밖으로 나가서 핀다. 그러다 보니 점점 담배 피우는 횟수가 줄어들게 되었다. 집으로 와서 저녁을 먹고 하나, 뉴스나 야구 보다가 하나, 그리고 날짜 바뀔 시간쯤 하나 이렇게 3개비 정도 피는 듯하다. 하루 한 갑피던 담배가 지금은 하루 10개비 내외로 줄어들게 됐다. 이러다가 언젠가는 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서 외식은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한다. 배달음식도 일절 시키지 않는다. 지금까지 이사하고 혼자 회식을 한 것이 10번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다. 그동안 먹은 음식이 중국집, 추어탕, 김밥 정도인 것 같다. 그것도 냉장고가 들어오기 전이었다. 쌀과 반찬은 본가에서 가져다 먹고 마트에서 독신자의 단골메뉴인 젓갈, 깻잎을 한두 번 정도 사보기는 했다. 또 한 번 이야기하면 아껴야 잘산다.
혼자 사는 사람의 친구는 야식이다. 밤늦은 시간에 군만두를 굽고 소주 한잔 곁들이면 최고다. 그래서 그런지 이사 후 3kg 정도는 살이 찐 것 같다.
여기는 관리비가 매월 20일 전후로 고지서가 나온다. 입주 후 총 5번 정도 냈다. 요즘 같은 여름철에는 95,000원 내외로 개별 금액은 16,000원 정도 나온다. 도시가스 요금은 따로 나오는데 월 2,000원 정도로 거의 기본요금 외에 1,000원 정도 나오는 듯하다. 혼자 사는 사람보다 더 조금 나오지 않을까한다.
요즘 날도 더운데 전기요금 누진세 때문에 에어컨을 집에서 틀지 못한다고 한다. 여기는 에어컨이 없다. 선풍기 한 대로 푹푹 찌는 여름을 견디고 있다. 방법이 없다. 땀은 나니 그대신 샤워를 많이 하게 된다. 전기 제품은 스위치형 멀티탭을 사용한다. 쓸 때마다 켜고 다 쓰면 오프한다. 24시간 항상 켜져 있는 제품은 냉장고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지 전기요금은 거의 5,000원 정도 나오는 듯하다. 내년에는 에어컨을 생각 좀 해봐야겠다.
에어컨이 없다 보니 찌는 더위와 열대야를 피하고자 시원한 곳으로 가야 한다. 집에서 저녁을 간단히 먹고 영화관을 간다. 나는 혼자 보는 조조 영화를 좋아한다. 조조 4,000원에 카드할인을 더하면 1,000원으로 영화를 보곤 했다. 그리고 팝콘과 음료수를 먹는다. 통신사 VIP인 관계로 매월 1편을 공짜로 볼 수 있어 동네에 뭐가 있나 마실 나가면서 영화관으로 향한다. 영화는 주로 액션으로 늦은 시간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러면 12시에서 새벽 1시쯤 된다. 다시 집에 와서 샤워를 간단히 하고 숙면을 취한다.
주말 하루는 본가에 간다. 집밥도 먹고 반찬도 가져오고 집 정리와 청소도 하고 수리할 것도 있으면 하고 온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일주일에 한 번 세탁기를 돌린다. 그동안 청소도 하고 걸레로 바닥도 닦는다. 그러고 보니 난 독립을 한 게 아니라 두 집 살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ㅠㅠ
나는 책 보는 것을 좋아한다. 년 40~50권 정도는 보는 것 같다. 만화책 몇 권을 포함해서… 그래서 그런지 책 보는 환경을 중요시한다. 그런다고 해서 TV를 안 보는 것은 아니다. 볼 거 만 본다. 한동안 소파를 사고 싶었지만 너무 비싸고 맘에 드는 제품이 없어서 못 사고 그 대신 암체어 의자를 하나 샀다. 앉아서 베게 하나 올리고 하루에 한두 시간 정도 보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요즘 새롭게 시도하고 있는 것이 200자 원고지에 만년필로 시 한 편 정도 써보고 있다. 어제는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원고지 3매에 써봤다. 독서의 마지막은 글쓰기라고 하지 않던가. 오늘은 또 무슨 글귀를 써 볼까나? 나중에 이런 습관이 길들여 지면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을 원고지에 써보고 싶다. 전 10권 정도를 쓸려면 200자 원고지 16,500매 분량이 필요하다고 하니 나의 큰 목표 중의 하나가 될 것 같다.
따르릉~~ 알람이 울린다. 아침 7시 30분부터 울린다. 여러 번 울린다. 일어나 샤워를 하고 옷을 입고 가방을 메고 아침 출근점검을 한다. 멀티탭 전원이 다 꺼져있는지, 가스밸브는 잠겨있는지 그리고 수도꼭지는 잠겨 있는지 그리고 문을 열고 나선다. 띠링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잠긴다.
혼자 사는 이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심심함이다. 주말 늘어지게 늦잠도 자고 하루는 약속이 없으면 혼자 돌아다닌다. 시내 서점도 가고 동네 책방도 돌아다니고 혼자 놀기 위해서는 혼자 갈 만한 곳을 알아 두어야 한다. 돌아다녀 봐도 고깃집과 아파트 공사장이 눈에 가장 많이 들어온다. 혼자 즐길만한 곳은 별로 없는듯하다. 이번 주말에는 시원한 만화카페에 가서 짜장면이나 시켜먹고 온종일 만화책이나 봐야겠다.
나의 노래방 18번은 봄여름가을겨울의 ‘외로운 사람들’이다. 노래방 창문틀 위에 앉아 밖을 바라보며 노래를 부른다.
거리를 거닐고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얘기들을 나누다가
집에 돌아와 혼자 있으면 밀려오는 외로운 파도~~
이상 혼자 사는 사람의 이야기였습니다. 읽어보면 뭐 그리 특이할만한 것은 없습니다. 그냥 평범한 독거남의 삶입니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왜 독립했냐고? 집에 있으면 편한데…” 그렇습니다. 나와서 따로 살면 시간과 돈과 일이 배로 늘어납니다. 그렇지만 편한 것도 있죠. 부모님의 결혼 잔소리를 피할 수 있고 또 집에서 늘어지게 잘 수도 있고요. 또 내 맘대로 시간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이상 독립 후 반년의 스토리였습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혼자이지는 않을 겁니다. 내년에는 두 사람이 사는 이야기를 써 볼까 합니다.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