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전쟁들
졸속(拙速) ― 『손자(孫子) 작전 제2편』
전쟁을 벌여 계속 이기다 보면 승리에 도취하거나, 이왕이면 더 큰 성과를 얻기 위해서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멈출 줄 모르고 질주하는 경우가 있다. ‘승자 효과(Winner’s Effect)’라는 것이다. 남성들은 혈액 1L당 0.1g의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을 가지고 있는데 승리를 거둘 때마다 테스토스테론의 분비가 더욱 왕성해진다고 한다. 공격적 행동을 유발하는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아질수록 전투력도 향상되기 때문에 한 번 이기면 승승장구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승자 효과다. 하지만 현명한 리더는 승자 효과를 잘 이용하되 멈춰야 할 때는 멈출 줄 알아야 한다.
1805년 12월 2일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이 지휘하는 프랑스군은 9시간에 걸친 힘든 싸움 끝에 차르 알렉산드르 1세가 지휘하는 러시아·오스트리아 연합군을 결정적으로 격퇴했다. 이것이 유명한 아우스터리츠 전투(Battle of Austerlitz)다. 이 전투는 러시아의 대문호인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의 배경이 된다. 이 전투는 블렌하임 전투, 칸나에 전투와 마찬가지로 전술상의 걸작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이때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에 4만 프랑의 배상금을 물게 했다. 아우스터리츠(현 지명은 체코의 슬라프코프)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나폴레옹은 독일 서남부 영토를 보호국으로 삼아 라인 동맹을 만들고 20만 명의 군대를 주둔시켰다. 이에 위협을 느낀 프로이센의 빌헬름 3세는 1806년 15만 명의 병력을 동원해 나폴레옹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그러나 10월 14일에 벌어진 예나 전투에서 나폴레옹에게 패하고 말았다. 프로이센군을 격파한 나폴레옹은 프로이센 본토까지 일거에 달렸고, 10월 25일에는 수도 베를린에 입성했다. 빌헬름 3세는 쾨니히스베르크로 달아나 러시아에 구원을 요청했다. 러시아는 10만 명의 병력을 지원해 나폴레옹에게 대항했지만 역시 패하고 말았다. 그야말로 나폴레옹의 거침없는 승리였다.
1807년 2월 러시아 국경의 칼리닌그라드 주에 있는 네만 강 위에 띄운 뗏목에서 나폴레옹은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와 회동했고, 6월에는 네만 강 왼편의 도시 틸지트에서 프로이센의 빌헬름 3세와 회동을 했다. 6월 25일에 체결된 틸지트 조약은 프랑스와 프로이센과 러시아 간의 강화 조약이다. 프로이센은 틸지트 조약으로 1억2000만 프랑의 배상금과 함께 엘베 강 서부 영토의 할양, 군대 규모 축소(4만 명 이하) 등을 강요받았다. 특히 당시 프로이센령인 서폴란드를 분할해서 프랑스의 괴뢰국인 바르샤바 대공국을 세우는 조치를 강요받았다. 프로이센 편에 선 러시아에는 영국의 목을 죄기 위한 대륙봉쇄를 강요해 이를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이런 조건들은 프로이센이나 러시아 입장에선 매우 굴욕적이고 가혹한 것이었다.
나폴레옹에게는 지혜로운 외교관이 한 명 있었다. 외무장관 탈레랑이다. 그는 나폴레옹을 정계에 데뷔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탈레랑은 오스트리아·프로이센·러시아에 대한 무리한 요구들을 철회하라고 나폴레옹에게 요청했다. 그런데 연이은 승리에 과다 분비된 테스토스테론은 나폴레옹을 그 자리에 멈출 수 없게 만들었다. 그는 탈레랑의 건의를 묵살해 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탈레랑의 우려대로 이후 오스트리아는 끊임없이 프랑스를 괴롭혔다. 러시아는 대륙봉쇄령을 무시했다. 이로 인해 나폴레옹으로선 러시아 진격이라는 최악의 카드를 사용하게 됐다. 만약 나폴레옹이 네만 강에서 멈췄더라면 그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멈출 수 없는 자의 비극이다.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에게 패배의 잔을 안겨준 웰링턴은 “정복자는 포탄과 같다”는 말을 했다. 잘 날아가다가 결국에는 포탄처럼 폭발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는 말이다. ‘시작하기에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빠르다’는 말처럼, ‘그만두기엔 이르다고 생각될 때가 적당한 때’라는 말도 명심해야 한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 ‘졸속(拙速)’이라는 용어가 부쩍 많이 등장하고 있다. 졸속 처리, 졸속 협상, 졸속 행정, 졸속 추진 등으로 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졸속은 대체로 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사전에선 졸속의 의미를 ‘서투르지만 빠르다는 뜻으로, 지나치게 서둘러 함으로써 그 결과나 성과가 바람직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로 풀이한다. 역시 부정적 의미다. 졸속의 출처는 『손자병법』이다. 그런데 손자는 졸속을 부정적 의미로 사용하지 않았다. 졸속이 포함된 작전(作戰) 제2편의 원문을 보면 이렇다. “전쟁에 있어 그 솜씨가 매끄럽지 못하더라도 빨리 끝내야 함은 들었어도, 솜씨 있게 하면서 오래 끌어야 함은 보지 못했다. 무릇 전쟁을 오래 끌어서 나라에 이로운 것은 없다(兵聞拙速 未睹巧之久也 夫兵久而國利者 未之有也).”
손자가 말하고 있는 졸속은 무엇인가? 그렇다. 빨리 끝내라는 것이다. 뭔가 제대로 해보겠다고 질질 끄는 것보다 적당한 선에서 빨리 끝내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훨씬 좋다는 얘기다. 전쟁을 오래 끌면 그로 인해 패자도 승자도 큰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오래 끈 전쟁들을 몇 가지 살펴보자. 먼저 7년 전쟁이 있다. 프랑스혁명 이전에 벌어졌던 마지막 주요 전쟁으로 유럽 열강들이 모두 참전했다. 1756년 시작돼 1763년에야 끝났다. 이 전쟁의 결과로 프랑스는 해외 식민지 모두를 잃게 된다. 동양에서 이와 기간이 비슷한 7년 전쟁은 조선과 일본 그리고 명(明)나라 사이에 있었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다. 1592년 시작돼 1598년에 끝이 났다. 조선은 국토가 황폐해져 170만 결이나 되던 경지 면적이 전쟁 직후 54만 결로 급감했다. 중국에선 명나라가 오랜 전쟁에 지쳐 만주 여진족이 흥기했다. 결국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다. 왜 이렇게 전쟁이 장기전으로 가는 것일까? 바로 인간의 채울 수 없는 욕심 때문이다. 아니 욕심을 넘어선 과욕 때문이다. 적당한 어느 선에서 끝을 내야 하는데 과욕이 생겨 끝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장기전으로 치닫게 되고 그로 인해 패자도 승자도 큰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일제가 태평양전쟁에서 패한 뒤에 일본 군부가 자체적으로 패인을 분석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조금만 더 『손자병법』이 말하고 있는 졸속의 정신을 알았더라면 이렇게 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拙 速
졸 속
미흡하지만 빨리 끝낸다
주식투자에서 망하는 사람을 보면 대체로 졸속의 정신이 부족해서다. 잘 달리고 있다고 해서 뛰어내릴 시기를 놓치는 것이다. 부부싸움에도 졸속의 정신이 필요하다. 극한의 감정대립으로 갈 데까지 갈 수 있는 것이 또한 부부간의 싸움이다. 대체로 부부싸움은 거창한 것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 출발한다. 세계평화를 운운하다가 부부가 싸우는 일을 봤는가? 손자의 표현대로 한다면 부부싸움을 오래 끌어서 가정에 도움이 됐다는 말은 아직 듣지 못했다. 손자의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비록 못마땅하지만 적당한 선에서 끝내라. 아니 가능한 한 빨리 끝내라.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게 나중에 돌아보면 후회하지 않는 길이다. 회사에서 회의를 할 때도 가능한 한 빨리 끝내는 게 좋다. 회의하는 시간에 경쟁업체는 몸으로 뛴다. 30분에 끝나는 모래시계를 탁자 위에 놓고 회의하는 방법도 좋다. 회의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사전에 의제를 알려주고 꼭 필요한 말만 할 수 있도록 시간제한을 둔다. 회의를 오래 하다 보면 “내가 왜 사는가.”하는 ‘회의’(懷疑)를 품게 된다. 회의와 치마는 짧을수록 좋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졸속을 잘하기 위해서는 영어 단어 ‘STOP’을 떠올리면 도움이 된다. 이 단어의 철자 S를 Stop, T를 Think, O를 Observe(주변을 둘러본다), P를 Plan(계획한다)으로 기억해 보길 권한다. 멈추고, 생각하고, 둘러보고, 그리고 다음 행동을 계획하는 것이다. 현명한 사람은 어디서 멈추고 언제 떠나야 할 것인가를 잘 안다. 끝내야 할 때 끝내라. 그게 지혜로운 삶의 방식이다.
아쉽다싶을 때 끝내는 것이 가장 좋다
拙 速
서투를 졸 빠를 속
그림 참조 : 위키완드, www.wikiwand.com/en/Battle_of_Austerlit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