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되면 뜨거운 낮보다는 서늘한 밤이 기다려집니다. 밤은 어둡다 보니 공포의 상징이 되기도 하는데요, 온갖 괴담들은 왜 하필 밤 12시마다 벌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밤은 달과 별을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시간이기도 하구요, 고요한 분위기에 자신을 되돌아보며 감상에 젖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불꽃놀이와 같은 축제의 시간이기도 하죠. 이번 달에는 여러 작곡가들이 노래한 밤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헨델 :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 HWV351 (1749)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1685~1759)은 오라토리오 <메시아>(1742)에 들어있는 ‘할렐루야 합창’으로 유명하죠.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세계 각지의 콘서트홀과 교회에서 이 곡을 부르고 있습니다. 아마도 독자 분들 중에는 성가대원으로서 이 곡을 불러보신 분들도 꽤 있으실 것 같군요. 헨델은 독일 할레 태생이지만 21세에 당시 음악의 중심지 이탈리아의 피렌체로 떠나 그곳에서 오페라를 작곡하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함부르크에서 카펠마이스터(음악감독) 직책을 제안받아 일단 함부르크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런데 자유분방한 헨델에게 의무가 많은 독일의 카펠마이스터 자리는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곧 장기 휴가를 얻어 런던으로 떠나고, 그곳에서 오페라로 큰 성공을 거두자 그냥 눌러앉고 맙니다. 이렇게 되면 그를 카펠마이스터로 임명한 함부르크의 통치자와 사이가 나빠질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요? 이젠 영국에서 살 건데.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함부르크의 통치자가 영국 왕 조지 1세가 된 것입니다! 헨델로서는 대략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는데요, 여기서 <수상 음악>(1717)이 조지 1세의 비유를 맞추기 위해 작곡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됩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그다지 신빙성이 없습니다. 함부르크의 선제후가 조지 1세로 부임한 것은 1714년입니다. <수상 음악>은 그 후 3년 후에 작곡된 것이니, 노여움을 달래기 위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시간 간격이 너무 길죠.
아무튼 헨델은 영국 왕실과 관계가 나쁘지 않았고, 그래서 오페라로 떼돈을 벌면서도 왕실 행사를 위해 여러 음악을 작곡했습니다.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1749)은 그중 하나죠. 이 곡은 1748년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의 종식을 축하하기 위한 축제를 위해 작곡되었고, 초연은 1749년 4월 27일 런던 그린파크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야외에서 대대적인 축하 행사를 위해 작곡된 음악인만큼 화려한 금관의 팡파르가 압권입니다. 당시 불꽃놀이가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약 한 달 후인 5월 15일에 열린 템즈강 불꽃놀이 그림이 남아있습니다. 이 그림에서 당시 분위기를 상상해볼 수 있을 것 같군요.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은 모두 다섯 곡으로 구성된 모음곡입니다. 바로크 시대의 ‘모음곡’(Suite)은 이름처럼 단순히 여러 곡을 모은 것이 아닙니다. 서곡이나 전주곡으로 시작하여 춤곡을 나열한 것이죠.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은 모두 다섯 곡으로 구성되어있는데요, 서곡과 두 개의 춤곡 부레와 미뉴엣이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부레와 미뉴엣 사이에 시실리나아 풍의 ‘평화’(La Paix)와 ‘축하’(La Réjouissance)라는 특이한 악장이 들어있습니다. 행사의 의미를 음악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각 춤곡의 리듬과 분위기를 생각하며서 들으신다면 보다 즐거운 감상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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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K.525 (1787)
18세기 후반 귀족 중심의 사회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귀족들은 복잡하고 진지한 음악보다는 여유롭고 유희적인 음악을 좋아했고, 음악가들도 이에 따라 귀족이 원하는 즐거운 곡들을 많이 작곡하고 연주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많이 작곡된 장르는 ‘디베르티멘토’(divertimento)였습니다. 이 말은 이탈리아어로 ‘오락’이라는 뜻이며, 음악용어로서 ‘희유곡’(嬉遊曲)이라고 번역되기도 합니다. 이 제목의 음악은 주로 하이든, 보케리니, 모차르트가 활동했던 고전시대에 크게 유행했으며, 의미에서 보듯이 감상자와 연주자가 즐기기 위해 작곡된 가벼운 곡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와 유사한 분위기를 갖는 또 하나의 장르가 있었습니다. 바로 ‘세레나데’(serenade)지요. ‘세레나데’는 본래 ‘밤의 노래’라는 뜻인데요, 연인에게 바치는 사랑노래로 많이 알려져 있죠. 그런데 18세기 후반 고전시대에는 디베르티멘토와 같이 여러 악장을 가진 가벼운 기악 앙상블 음악에 붙이는 또 하나의 명칭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시기를 살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역시 이 두 장르의 작품을 여럿 남겼습니다. 특히 이탈리아어인 ‘세레나데’를 독일어로 그대로 옮긴 듯한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Eine klein Nachtmusik), 즉 ‘소야곡’(小夜曲)은 그중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모차르트의 열세 번째이자 마지막 세레나데입니다.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는 오페라 <돈 지오바니>의 2막을 쓸 무렵인 1787년 8월 10일에 완성되었습니다. 그런데 모차르트가 이 곡을 왜 썼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저명한 저술가이자 모차르트의 전기를 썼던 볼프강 힐데스하이머는 모차르트의 세레나데 대부분은 위촉에 의해 작곡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이 곡 역시 위촉에 의해 작곡되었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누가 위촉했는지, 그리고 어디서 누가 초연했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오늘날 모차르트는 몰라도 이 곡은 누구나 알고 있을 정도로 모차르트의 가장 유명한 곡 중의 하나죠. 영화 ‘아마데우스’의 시작 부분에서 정신병원에 있는 살리에리가 신부와 대화하면서 이 곡을 아느냐며 이 곡의 시작부분을 입으로 불러주는 장면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습니다. 그 정도로 이 곡은 모차르트의 대중성을 대표하는 곡이죠. 하지만 모차르트의 미망인인 콘스탄체가 1799년에 출판업자인 요한 앙드레에게 이 악보를 팔았음에도 1827년에야 첫 출판이 이루어질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편성은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로 되어있습니다만, 더블베이스가 합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현악사중주, 현악오중주, 스트링 오케스트라 등 다양한 형태로 연주되고 있습니다.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를 들을 때 한 가지 팁을 드리면, 1악장이 전형적인 소나타 형식이라는 것입니다. 힘차고 강력한 특징을 가진 유명한 제1주제와 이에 대비되는 우아하고 여유로운 제2주제가 등장하는데요, 이 주제를 한 묶음으로 제시부와 발전부, 재현부라는 부분으로 세 번 등장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약간의 변형 혹은 변주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코다’라고 불리는 빠른 연주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제1주제와 제2주제를 찾으시고, 이 주제가 세 번 등장하는 소나타 형식의 진행 과정을 생각하시면 클래식 음악을 보다 흥미롭게 들으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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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 피아노 소나타 14번, Op. 27 No. 2 ‘월광’ (1801)
구 서독의 수도 본 태생의 작곡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에게는 ‘악성’(樂聖)이라는 별칭이 있습니다. 음악의 성자라는 뜻인데요, 어떻게 그런 굉장한 칭호가 붙게 되었을까요? 베토벤은 조성이라고 하는 음정과 화음 시스템을 완성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일 것입니다. 학창 시절에 음악 시간에 배웠던 다장조, 내림마단조 등을 기억하시죠? 이것을 ‘조성’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조성은 17세기 중엽에 자리 잡았지만 발전이 더디게 진행되었습니다. 조율의 문제와 여기서 연루되는 화음의 문제가 조성의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되었죠. 또한 관악기가 갖는 연주 한계도 자유롭게 곡을 쓰는 데 제약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8세기 중엽에 조율법이 정리되어 보다 자유롭게 화음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비로소 조성의 체계가 완성된 것이죠. 그리고 악기도 많이 개발되었습니다. 바로 그 지점에 베토벤이 있었고, 그를 음악의 ‘고전’ 즉 ‘클래식’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그래서 음악은 베토벤 이전에는 베토벤을 향하여 발전했고, 베토벤 이후에는 베토벤과 멀어지는 방법을 찾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토벤은 특히 두 장르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들을 남겼는데요, 바로 교향곡과 피아노 소나타입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는 모두 35곡으로, 한스 뷜로(Hans Bülow : 1830~1894)라는 음악가는 이 곡들을 ‘피아노 음악의 신약성서’라고 말했습니다. (참고로 피아노 음악의 구약성서라고 불렀던 곡은 바흐의 <잘 조율된 간반악기 작품집>입니다.)
이번 달에 들으실 곡은 밤의 소나타, 즉 저 유명한 <월광 소나타>(1801)입니다. 이 곡은 같은 해에 앞서 작곡된 <피아노 소나타 13번>과 함께 묶여 ‘콰시 우니 판타시아’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이 말은 ‘환상곡처럼’이라는 뜻인데요, 이전의 피아노 소나타와는 달리, 특정한 형식 없이 마음 가는 대로 작곡된 환상곡과 같은 분위기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실제로 이전의 소나타와는 달리 매우 감상적인 분위기로 시작합니다. 19세기가 되자마자 마치 고전시대는 끝나고 낭만시대가 시작했다고 알리는 것 같군요. 그런데 베토벤이 이 곡을 발표할 때 ‘월광’이라는 제목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후 1832년에 평론가 루트비히 렐슈타프가 “루체른 호수에 비친 달빛과 같다”라고 평하여 붙여졌습니다. 1814년에 영국의 위대한 화가 J. M. W. 터너의 ‘멀리 리기 산이 보이는 루체른 호수에 비친 달빛’이라는 그림을 보면서 감상한다면 더욱 새로운 감동을 얻을 것 같습니다.
추천 영상은 특별히 베토벤이 살았을 때인 1820년에 만들어진 피아노, 즉 피아노포르테로 연주하는 것을 골랐습니다. 당시 피아노는 지금과 같이 철제 프레임이 아닌 나무로 만들어져 현의 장력이 작으며, 음량도 작고 여음도 짧아 길게 소리 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소리가 가볍고 음들이 짧게 끊깁니다. 그런데 당시 베토벤이 원했던 소리는 보다 길게 남은 여운으로 만들어지는 몽환적인 화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베토벤은 1악장의 경우 연주 내내 페달을 밟으라고 되어있죠. 피아노에서 페달을 밟으면 최대로 음을 지속하게 됩니다. 하지만 오늘날 피아노에서 이렇게 연주했다가는 왕왕 울리는 소리만 들리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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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뷔시 : ‘베르가마스크’ 중 3곡 ‘달빛’
클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 1862~1918)는 프랑스 음악의 흐름을 완전히 바꾼 인물이었습니다. ‘인상주의’라는 타이틀로 말이죠. 인상주의란 본래 그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영어로 쓰면 ‘impressionism’인데요, ‘im’ 즉 밖의 것을 내가 느끼는 내면적인 방향성을 가지며, ‘press’ 즉 이렇게 받은 내면적 인상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밖의 것 즉 외적인 구체적 대상이 존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을 주관적인 느낌으로 표현하게 되죠. 그래서 인위적인 정물화보다는 날씨와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야외를 선호했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풍경에서 자신이 그 순간에 받은 느낌을 모호한 경계 처리로 그렸습니다. 이를 음악에 적용해보면, 묘사하는 음악외적 대상이 존재하고, 그림이 모호한 경계처리를 한 것에 대응하여, 모호한 조성을 갖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드뷔시는 출세작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1894)과 같이 문학적인 시나리오를 묘사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고, 베토벤이 확립한 고전적인 조성을 따르기보다는 그 이전의 음계와 화음을 적용하면서 ‘모호한’ 음악을 만들어냈죠. 드뷔시는 자신의 음악이 인상주의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했다고는 하지만 특징을 살펴보니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드뷔시의 작품 중 비교적 초기에 속하는 <베르가마스크 모음곡>(1890~1905)는 드뷔시의 가장 인기 있는 피아노곡 중 하나입니다. ‘베르가마스크’는 이탈리아 북부 베르가모 지방의 춤곡을 뜻하는데요, 프랑스의 중요한 상징주의 시인 폴 베를렌(Paul-Marie Verlaine : 1844~1896)의 ‘달빛’이라는 시에 등장하죠. “그대의 영혼은 선택된 하나의 풍경 / 그곳에는 매력적인 가면을 쓴 베르가마스크 행렬이 간다. / 류트를 켜고 춤추며 지나가며 / 환상적으로 변장한 모습 속에 슬픔이 있다.” 드뷔시는 이 시를 대상으로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을 작곡하면서, ‘모음곡’에 맞게 전주곡으로 시작하여 미뉴엣과 파스피에라는 두 춤곡을 배열했습니다. 그리고 미뉴엣과 파스피에 사이에 베를렌의 시의 제목을 딴 ‘달빛’(Claire de lune)이라는 곡을 삽입했습니다. 이 곡은 매우 감성적이어서 오늘날 이 네 곡 중 ‘달빛’만 따로 연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베토벤의 달빛과 드뷔시의 달빛 중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요?
추천 영상은 요즘 클래식을 몰라도 다 아는 이름 조성진의 연주로 들어보겠습니다. 최근 미국 미시건에서 있었던 길모어 건반음악제에서의 연주입니다. 드뷔시는 쇼팽 콩쿠르 우승자로 쇼팽 연주에 정평이 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드뷔시에 이에 못지않은 일가견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드뷔시 음반이 출시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무척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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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세 : ‘멕시코의 노래’ 중 2곡 ‘작은 별’ (1912)
마지막으로 소개해드리는 곡은 멕시코 작곡가 마누엘 폰세(Manuel Ponce : 1882~1948)의 <작은 별>(Estrellita)입니다. 폰세는 기타리스트의 레퍼토리지만, 사실 가장 유명하고 자주 연주되는 곡은 향수를 노래하는 이 노래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는 야샤 하이페츠가 바이올린 소품으로 편곡한 이후 바이올린으로 더 많이 연주되고 있습니다. 클래식을 잘 모르시는 분이라도 이 아름다운 멜로디를 들으면 누구나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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