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에는 각기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다. 음악에서 소리를 보존하려고 애쓰듯, 우리는 색채의 아름다움을 잃어서는 안 된다. 구성(構成)은 색채의 아름다움과 신선함을 살리는 일이다.” -앙리 마티스-
[푸른 누드 Ⅳ Blue Nude Ⅳ. 1952.] |
마티스는 작품을 하기 전에 형태와 선의 개념을 파악하기 위해 색종이를 오려 붙이거나 선 드로잉을 여러 차례 반복하였는데 노후 병상에서는 주로 색종이 오리기 작품만을 하였다.
이 <푸른 누드>는 자유롭게 드로잉한 지면 위에 푸른색의 과슈(Gouache)로 색칠한 종이를 오려 붙여 만든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 속 인체의 완벽한 포즈를 위해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쳤다. 평면 위에 치밀하게 색종이를 오려 붙여, 그림이 아니라 마치 입체적인 조각품을 감상하는 듯 한 착각마저 든다.
장식과 순수한 색채는 내 정신의 표현이다 – 붉은 조화
[붉은 조화 Harmony in Red. 1908.] [캔버스에 유화. 180×200㎝. 에르미타슈 미술관] |
1905년 이후 강렬한 색채와 그것들의 보색대비, 대담한 선을 이용한 작품을 해 오던 마티스는 “장식은 순수 색채와 추상적 아라베스크, 평평한 2차원과 리듬을 통해 정신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장식 미술은 정신적 내용을 내보이지는 않지만, 우리더러 그 내용을 추론하라 한다”라고 정의하고 장식적 요소를 그의 작품에 적극 표현하였다. 이슬람 미술의 아라베스크와 동양 미술의 색채, 도안을 살펴보면서 새로운 시각으로 사물을 보게 되었다.
1908년에 제작된 이 작품은 그의 장식성의 개념과 요소를 충분하게 보여주고 있다. 마티스의 추상적 장식성은 이후 그의 모든 작품의 큰 요소로, 회화의 중심적 철학으로 중요한 가치를 가지게 된다. 어느 날, 마티스의 작업실을 방문한 어떤 여인이 <붉은 조화> 속의 여인을 가리키며 “어머나! 이 여인의 팔이 너무 길군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마티스는 “잘못 보셨습니다. 이것은 여인이 아니라 그림일 뿐입니다”라며 그림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현실과 똑같아야 할 필요는 없음을 부연 설명했다고 한다.
팔이 너무 긴 여인(하녀)이 어디가 식탁이고 어디가 벽인지 구분할 수 없이 드리워진 푸른 색 패턴의 붉은 리넨 직물의 공간 속에서 식탁 위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다. 창문 밖과 안의 원근은 있지만 그것들은 모두 2차원적 공간으로 평평해져 버렸으며, 마티스의 화폭 안의 사물들과 화려한 아라베스크 장식은 그만의 새롭고 평평한 붉은 공간 속으로 귀속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