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젊은 피카소는 프랑스 파리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는 이 시기에 화려한 도시, 파리의 이면에 가려진 빈곤과 질병의 무리, 또한 보헤미안에 합류하여 그들을 주로 그렸다. 이때의 작품들은 피카소의 ‘청색시대(靑色時代)’라 불리는데 하급계층 사람들의 가난한 참상과 고독감이 푸른색 속에 감성적으로 스며들어 있다. 대표작으로는 <인생. La Vie>이 있다.
1940년 2차 대전 중 파리가 독일에 함락되자 많은 예술가들이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떠나갔지만, 피카소는 파리를 떠나지 않고 묵묵히 아틀리에에서 그림을 그렸다. 전쟁이 끝나고 파리가 해방되자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한다. 이 시기 그의 작품들의 가장 중요한 이슈는 정치적인 요소였으며, ‘전쟁과 평화’는 그에게 당연한 주제였다. 1951년 공산주의자였던 그는 한반도의 전쟁(6.25전) 중 벌어진 미국의 잔혹한 행위를 <한국에서의 학살(Massacre in korea)>이라는 작품을 통해 비판하기도 했다.
한국에서의 학살 Massacre in korea. 1951. 패널에 유화. 11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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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프랑스의 공산당은 세계평화회의를 위한 포스터를 의뢰하였고, 피카소는 억압받는 사람들을 진정으로 공감한다는 뜻에서 비둘기를 도안하여 그려 주었다. 이 후 비둘기는 평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심벌(symbol)이 되었다.
파블로 피카소는 1973년 프랑스 남부 무쟁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죽기 전까지 일정한 양식이나 기존의 규칙적인 회화기법에 억매이지 않고, 다양한 장르(그림, 조각, 판화, 도예 등)를 넘나들며 끊임없이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였다. 그는 미술사를 통틀어 유례없이 풍성하고 뛰어난 재능을 보여준 현대 회화의 거장이자 위대한 천재 화가였다.
도라 마르의 초상 Portrait of Dora Maar. 1937. 캔버스에 유화. 9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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