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은 구글, 페이스북, 애플 등 글로벌 IT 기업들이 앞다투어 자체 VR・AR 플랫폼과 서비스를 선보인 한 해였습니다. 상반기에 형성되었던 업계 분위기가 하반기까지 이어지진 않았지만, 올해 초 있었던 CES 2018을 통해 다시금 가상현실 관련 기술이 주목받게 되었습니다. 이번 트렌드&리포트에서는 VR, AR, MR 등 가상현실 기술 중에서도 증강현실(AR) 개발 트렌드를 구글과 페이스북의 사례를 통해 종합해보고자 합니다.
| 들어가며
먼저 오늘 다뤄볼 ‘가상현실’의 개념을 정리해보겠습니다. VR(Virtual Reality)은 HMD(Head Mounted Display)를 이용해 실제가 아닌 완전한 가상의 환경이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고, AR(Augmented Reality)은 현실 공간에 가상 정보를 실시간으로 증강하여 보여주는 기술입니다. 추가적으로 혼합현실(MR, Mixed Reality)은 아직까지 명확히 정의되진 않았지만 주로 현실 공간에 가상의 콘텐츠를 혼합하여 보여주는 것을 의미하며 실제 공간에서의 반응까지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VR, AR, MR 관련 시장을 일컬어 ‘실감형 미디어 시장’이라고 합니다. 국내에서 실감형 미디어 시장은 2016년 초, 저가형 VR 기기가 보급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생소한 개념이었기 때문에 VR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지만, VR 콘텐츠라고 불리던 대부분의 영상은 ‘가상현실’이 아닌 실제 장소를 촬영한 360도 영상에 불과했습니다. 즉, VR기기의 유통은 증가했으나 이 기술을 즐길 만한 콘텐츠는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AR의 경우 ‘포켓몬 고’ 게임이 국내에서도 서비스되면서 많은 관심을 모았으나 그 이후 이렇다 할 관련 콘텐츠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IT 기업들은 작년 상반기 개발자 컨퍼런스를 통해 VR・AR을 차세대 핵심 사업 중 하나로 선정하고 완전한 가상공간을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 가상공간을 만들어낼 보다 쉬운 기술과 플랫폼까지 제공해주면서 말입니다.
2017년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이 각 사(社)의 특성에 맞춰 가장 자신 있고 확실한 분야에서 VR과 AR 활용방안을 강화했습니다. VR과 AR 무엇하나 놓지 않겠다는, 오히려 VR 플랫폼 개발을 통해 VR 생태계를 선점하겠다고 앞다투어 나섰던 글로벌 IT 기업들은, 2018년이 된 지금은 AR로 눈을 돌린 모습입니다. 작년에도 애플은 ARKit를 통해 개발자들이 보다 쉽게 AR 콘텐츠를 만들 수 있도록 API를 공개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AR 전용 단말기인 HoloLens를 통해 PC 속 윈도우를 AR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는 혼합현실(MR) 플랫폼을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구글과 페이스북의 사례는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구글
카드보드와 데이드림 등 하드웨어는 물론 WebVR Experiments로 자체 VR 플랫폼까지 갖춘 구글은 AR 분야에도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구글은 2014년에 AR 플랫폼 ‘탱고(Tango)’를 선보인 바 있습니다.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통해 작년에는 기존 증강현실의 가장 큰 문제였던 현실과 가상이 따로 노는 부분을 해결하여 사용자가 어색함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현실과 가상을 합성했다고 평가받기도 했습니다. 탱고는 모바일 기기에서 구현되며, 기본적으로 공간학습, 모션트래킹, 깊이 인식 기반의 AR 서비스이기 때문에 이러한 기능이 내장된 전용 단말기가 필수적입니다. 2016년에는 Lenovo와의 협력으로 팹2 프로(Phab2 Pro)를, 2017년에는 Asus의 젠폰 AR(ZenFone AR)을 선보였습니다.
탱고 홍보 영상에는 박물관에서 공룡 화석을 스캔하면 살아 움직이는 공룡이 스마트폰에 증강되어 보이는 장면(Dinosaurs Among Us 앱), 빈 공간에 임의로 가구 배치를 해보는 장면(Lowe’s 앱)이 나옵니다. 실제 공간에 가상의 가구를 배치해보는 게 가능한 이유는 탱고를 지원하는 스마트폰에 ‘깊이 카메라(Depth Camera)’가 장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3차원 공간을 감지하는 ‘3D 깊이 센서’로 주변을 인식하고 스캔하여, 실제 공간을 일종의 Map으로 만들어 저장하는 3D 스캐닝 기술이 적용됐습니다.
그러나 탱고의 경우 높은 사양의 하드웨어가 받쳐줘야 하기 때문에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구글은 기본 스마트폰 카메라로도 기능할 수 있는 AR 플랫폼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현재는 탱고에 대한 지원을 종료하고 MWC 2018에서 ARCore 1.0을 정식버전으로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일반 스마트폰에서 AR을 구현한다는 점에서 구글의 ARCore는 작년에 애플이 선보인 ARKit와 유사합니다.
올해 1월에는 웹 브라우저상의 3D 객체를 증강현실로 확인해 볼 수 있는 3D 모델뷰어(3D Model Viewer)의 프로토 타입인 ‘Article’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웹 AR인 Article은 웹에서 3D 객체를 확인하거나 증강현실로도 볼 수 있으며, 필요한 경우 3D 객체를 다운로드할 수 있는 서비스까지 지원합니다. PC로는 마우스로 방향을 조절해 3D 이미지를 볼 수 있고, ARCore를 지원하는 모바일기기에서는 화면이 카메라로 전환되면서 실제 환경에 증강된 3D 객체를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구글은 작년 11월 VR과 AR 앱에서 이용 가능한 3D 객체공유 플랫폼인 ‘Poly’를 출시한 바 있습니다. 여기에 올해 초 선보인 AR플랫폼 ARCore를 통해 콘텐츠를 제작하고, 웹 AR인 Article을 통해 일반인 누구나 웹에서도 AR 콘텐츠를 볼 수 있게 된다면 구글에서 선보인 서비스를 통해 전체 AR 콘텐츠 시장이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별도 기기(HMD)가 필요하고 피로도가 높은 VR과 달리 AR은 스마트폰을 가진 누구나 보편적으로 이용할 수 있고, 실제 공간에 가상의 콘텐츠를 증강시킨다는 점에서 실생활 속에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새로운 시장 창출을 위해서 AR 플랫폼 개발에 보다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 페이스북
페이스북 역시 AR 시장 진출에 적극적입니다. SNS 플랫폼 회사가 왜 새로운 기술 개발에 적극적인지 의아하실 수도 있지만, 페이스북은 관계형 플랫폼이기 때문에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서 AR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은 일찍이 쉽게 AR을 즐길 수 있도록 스마트폰 카메라를 활용한 AR 서비스 구현에 초점을 맞췄으며, 여기에 사용자들이 만들어내는 막대한 사진과 영상을 인공지능 기반으로 분석하여 자신들의 AR 플랫폼을 고도화시키는 전략을 펼치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은 2017년 4월 페이스북 개발자 컨퍼런스 F8에서 AR 플랫폼인 Camera Effects를, AR 콘텐츠 제작 툴인 AR Studio를 함께 공개했습니다. Camera Effects는 화상채팅을 할 때 화면에 AR 효과를 덧입힐 수 있는 서비스를 지원합니다. 크게 두 가지 서비스를 지원하는데, AR Studio를 통해 객체의 움직임이나 주변 환경, 실시간 상호작용 등에 반응하는 마스크, 스크립트, 애니메이션 등의 AR 효과를 제작할 수 있습니다. 사진만 봐도 아시겠지만 페이스북 플랫폼 내에서의 재미있는 상호작용 이어가기 위한 것들입니다.
2017년 12월에는 페이스북 메신저에 ‘World Effects’ 기능을 추가하기도 했습니다. 스마트폰 후면 카메라로 동영상을 촬영할 때 AR 기술을 활용해 3D 객체나 텍스트를 추가할 수 있는 기능입니다. 동영상 촬영 시 심장 아이콘, 화살 아이콘, 로봇 등의 3D 객체를 배치하거나 텍스트 풍선을 띄워서 촬영할 수 있습니다. 비슷하게 스냅챗의 World Lenses, 구글의 AR Sticker가 있지만 사람이나 동물에 3D 객체(하트 아이콘)를 고정시키면 이들이 움직여도 3D 객체가 계속 따라 움직인다는 점에서 페이스북의 World Effect가 좀 더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포켓몬 Go의 반짝 흥행에서 알 수 있듯, 이러한 단순 AR 효과는 이용자들의 초반 흥미를 이끌 뿐 지속적인 이용까지 이어지긴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페이스북은 올해 2월에는 뉴스피드에 3D 포스팅을 확대하며 ‘이용자 방문 빈도 및 이용시간 확대’를 꾀한다고 밝혔지만, 이러한 목적보다는 사실상 VR, AR 콘텐츠를 자사에 더 활발히 유통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해 보입니다. 향후 페이스북의 AR 기술이 메신저뿐만 아니라 뉴스피드 상에서도 적용된다면 다양한 3D객체를 현실에 증강해서 보거나, 페이스북에서의 e커머스 기능이 보다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혹은 트위터용 증강현실 앱 TweetReality가 보여주는 것처럼 뉴스피드를 보는 방법이 ‘지난 피드보기’가 아닌, 증강현실 화면에서 다수의 뉴스피드를 펼쳐서 한 번에 볼 수 있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 AR에 주목하는 이유, 확장성
구글, 페이스북, 애플, MS 등 글로벌 IT 기업이 보여주는 AR 서비스는 자사 플랫폼 내에서 활용될 수 있는 방법이라 AR의 활용에 한계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AR의 핵심은 Computer Vision 기술을 활용해 주변 환경을 이해하고, 필요 시 스캔을 통해 원하는 주변 환경과 관련 정보를 자동으로 제공하는 것인데, 이러한 진정한 의미의 AR은 IoT, 클라우드,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이 모두 종합된 결과라고 봐야 합니다. 현재 이러한 기술이 점진적으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기술이 융합되어 선보일 AR 서비스 역시 그 확장성을 기대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실제로 이번 CES 2018에서는 게임과 영상을 넘어 AR이 인공지능, IoT 등과 만났을 때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스피커로만 활용될 줄 알았던 아마존의 인공지능 비서 ‘알렉사’는 미국의 AR 안경업체 뷰직스(Vuzix’s)의 안경 ‘블레이드(Blade)’에 탑재되어 이용자의 질문에 대한 답을 안경에 증강시켜 보여주기도 했고, 자율주행·인공지능 기술업체인 엔비디아는 자동차 앞 유리에 길을 안내하거나 음악을 재생하는 ‘드라이브 AR’ 소프트웨어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AR 관련 트렌드를 정리해보니 별도의 검색 없이 말로 묻고 이미지로 답을 얻는 시대가 생각보다 빨리 도래할 것 같습니다. 글로벌 IT 기업들이 AR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개발을 지속하는 이유도 폭발적으로 성장할 바로 그때를 선점하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참고자료
– 뉴스피드에 3D 포스팅을 확대하는 Facebook (디지에코 동향브리핑, 2018.02.22.)
– 일반 웹으로 증강현실을 확장하는 Google (디지에코 동향브리핑, 2018.01.25.)
– Augmented reality on the web, for everyone (구글 블로그, 2018.01.22.)
– “스마트폰 이후 새 먹거리”… 美 IT기업들 AR에 푹 빠졌다 (비즈조선, 2018.01.15.)
– Facebook, FB 메신저에 ‘World Effects’ 기능 추가…의미와 전망 (디지에코 동향브리핑, 2017.12.18.)
– 증강현실 시장을 선점하라 (디지에코 보고서, 2017.07.27.)
– VR·AR 보는 구글·마이크로소프트·페이스북 3사의 서로 다른 시선 (IT조선, 2017.04.21.)
– More ways to watch and play with AR and VR (Google blog, 2017.02.28.)
– 기존 증강현실과 구글 탱고의 차이점 (IT동아, 2016.12.01.)
– 가상현실 및 증강현실의 기술 동향 및 게임 엔진에서의 구현 사례 (정보와통신, 33권 1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