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천의 손자병법인문학 ② – 처음으로 달에 오줌을 누다

노병천의 손자병법인문학 ② – 처음으로 달에 오줌을 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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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해병의 통영상륙작전
아선거지(我先居之)
『손자(孫子) 지형 제10편』

출처 : 전쟁기념관, wmk.kr
출처 : 전쟁기념관, wmk.kr

귀신 잡는 해병의 시작
통영상륙작전이 성공된 4일 후인 1950년 8월 23일 최초의 퓰리처상 여성 수상자인 뉴욕 헤럴드 트리뷴지 마거릿 히긴스 기자는 ‘귀신 잡는 해병’(Ghost-catching Marines)이라는 제목으로 전 세계에 보도했다. “당신들은 정말 귀신도 잡을 만큼(The might capture even the Devil) 놀라운 일을 해냈소!” 그 이후로 한국의 해병대는 ‘귀신 잡는 해병대’라는 별칭이 붙었다. 통영상륙작전을 통해서 전 세계에 대한민국 해병대의 위용을 과시했고, 한 리더의 적확한 판단과 과감한 결심이 얼마나 중요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통영상륙작전은 우리나라 해병대의 ‘최초’ 상륙작전이라는 의미가 있다. ‘최초’ 또는 ‘처음’이라는 의미는 비중이 있다. ‘처음’이 있기 때문에 그다음에 여러 가지 일들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초’ 또는 ‘처음’이 갖는 상징성은 그 어떤 표현으로도 바꿀 수 없을 만큼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 해군은 1948년에 있었던 여순반란사건을 경험하면서 상륙군이 없이는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가졌다. 그래서 미국 해병대와 같은 부대를 목표로 하여 1949년 4월 15일 진해에 위치한 덕산 비행장에서 대한민국 해병대가 창설되었다. 사령관 신현준 대령과 참모장 김성은 중령으로 지휘부를 구성한 해병대는 지리산과 제주도 등지의 공비토벌작전에 우선 투입되었다. 6.25 전쟁이 터지자 북한군은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왔고 국군은 이들을 막기 위해 마지막 한 방울의 피까지 흘리며 결전을 하고 있었다. 통영상륙작전은 1950년 8월 17일에 있었다. 낙동강 전선에 모든 병력이 집중된 가운데 남해의 통영이 무방비상태로 놓여있었다. 그 틈을 노려 북한군 1개 대대병력이 침입했다. 이들은 북한군 7사단 병력의 일부였다.

김성은(金聖恩) 해병중장 (1924. 3. 14 ~ 2007 5. 15) /출처 : 전쟁기념관
김성은(金聖恩) 해병중장 (1924. 3. 14 ~ 2007 5. 15) /출처 : 전쟁기념관

해군본부에서는 진해에 있던 김성은 부대장에게 곧 북한군의 목표가 될 수 있는 거제도 일대를 지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명령에 따라 2척의 상륙함으로 그날 밤 10시경 진해를 출항했던 김성은 부대장은 그 다음 날 새벽 통영반도 동북방에 도착했다. 2개 조의 정찰대를 운용하여 통영시가지 쪽과 거제도 서해안 쪽의 적정을 살펴본 김성은 부대장은 과감한 결심을 했다. 즉 몇백 명의 적은 해병대 병력으로 거제도의 긴 해안을 지키는 소극적인 방책보다는 오히려 통영읍 장평리에 기습적인 상륙전을 감행하겠다는 것이다. 결심을 굳힌 김성은 부대장은 이 내용을 해군본부에 타전하여 작전명령의 변경을 요청했다.

삼각산 소형 함정(PC-703) / 출처 : www.ibiblio.org
삼각산 소형 함정(PC-703) / 출처 : www.ibiblio.org

현장 상황을 잘 모르는 해군본부에서는 작전명령 변경에 대해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끈질기게 요청하자 마침내 승인했다. 김성은 부대장은 통영 해상을 초계중에 있던 PC-703호를 비롯한 수척의 우리 해군함정의 지원을 받아 드디어 상륙작전을 시작했다. 1950년 8월 17일 오후 6시 장평리에 해병대가 처음으로 발을 디뎠다. 장평리는 오늘날 통영 북쪽에 있는 거제대교의 좌단에 위치하고 있다. 현장에는 ‘해병대 처음 상륙한 곳’이라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이렇게 통영 북쪽에서 상륙을 한 해병대가 마치 통영 읍내 남쪽으로 상륙하려는 것처럼 북한군을 속이기 위해 한산 앞바다에 위치한 해군함정에 의해 포화를 집중시켰다. 장평리에 상륙한 해병대는 통영을 향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두 개의 점령 목표를 정했다. 원문고개와 망일봉이었다. 상륙 이튿날인 18일 새벽에 1개 중대를 원문고개로 진출시켰다. 원문고개는 고성에서 통영과 거제를 가기 위해서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곳이다. 지금은 우측이 바다를 매립하여 신도시가 형성되었지만 1990년 이전에는 좌우측이 모두 바다였다. 원문고개를 반드시 점령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교통의 길목으로도 중요했지만 적의 퇴로와 적 후속부대의 진입을 차단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그리고 다른 일부 부대는 서둘러 망일봉을 선제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망일봉은 높이가 148m로서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그곳에 오르면 통영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중요한 장소다. 해병대가 망일봉에 오르자 곧 뒤따라 올라온 100여 명의 북한군을 요격했다. 그날 오후에 해군본부로부터 탄약과 1개 중대의 병력을 증원받았고, 그 다음 날인 8월 19일 새벽을 기해 총공격을 감행한 끝에 그날 오전 10시경 드디어 적 수중에 들어가 있던 그 통영시가지를 완전히 탈환했다. 이것이 한국 최초의 단독 상륙작전이다. 원문고개와 통영읍내를 빼앗긴 북한군들은 그날 오후 3시 30분부터 대대적인 반격을 해왔다. 북한군들은 고성을 거쳐서 1,000여 명이 원문고개로 공격을 해왔지만 함정들이 광도면 앞바다로 와서 함포를 쏴주었고 해병대의 목숨을 건 방어로 물리칠 수 있었다. 그 이후에도 해병대는 통영을 재탈환하기 위해 몰려온 북한군을 맞아 9월 10일경까지 공방전을 치렀다. 9월 15일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이 성공되자 9월 22일 해병대는 김성은 부대장의 인솔 하에 수도탈환작전에 참가하기 위해 인천을 향해 출항했다.

통영상륙작전 당시 상황도 / 출처 : 통영상륙작전기념관
통영상륙작전 당시 상황도 / 출처 : 통영상륙작전기념관
통영상륙작전 당시 상황도 / 출처 : 통영상륙작전기념관
통영상륙작전 당시 상황도 / 출처 : 통영상륙작전기념관
통영상륙작전 당시 상황도 / 출처 : 통영상륙작전기념관
통영상륙작전 당시 상황도 / 출처 : 통영상륙작전기념관

손자병법 지형(地形) 제10편에 보면 여섯 가지 유형의 지형에 대해 나온다. 지형의 모양과 특징에 따라서 어떻게 군사작전을 해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다. “애형에서는 내가 먼저 위치하여 반드시 그곳에 충분히 군사를 채우고 나서 적을 기다려야 한다. 만약 적이 먼저 위치하여 군사를 채우고 있으면 들어가지 말아야 하고, 군사를 채우지 않았으면 쫓아 들어간다.”(隘形者 我先居之 必盈之以待敵 若敵 先居之 盈而勿從 不盈而從之) 원문고개와 같은 지형은 애형(隘形)에 속한다. 애형이라는 곳은 운신하기에 좁은 지형을 말한다. 이런 지형에서는 먼저 가서 병력을 채우고 적을 기다리면 유리하다는 것이다. 장평리에 상륙한 해병대가 이러한 애형인 원문고개를 선점한 것은 매우 현명한 작전이었다. 만약에 원문고개를 차지하지 않았다면 통영 탈환작전은 물론 그 후에 재탈환하려고 몰려온 수많은 북한군을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좋은 지형의 점령은 군사작전을 매우 유리하게 도와주는 것이다. 손자병법 행군(行軍) 제9편에 보면 “지형은 군사작전을 도와준다.”(地之助也)는 말이 나오는데 바로 이런 것이다. 무릇 군대를 지휘하는 리더는 이런 지형안(地形眼)이 있어야 한다.

我  先  居  之
아  선  거  지
내가 먼저 가서 거한다.

유리한 곳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먼저’ 가는 것이 중요하다. 나중에 가면 아무것도 차지할 수 없다.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을 보면 ‘먼저’ 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최초’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2011년도 기네스북에 보면 호주에서 개가 ‘처음’으로 60m를 서핑한 기록이 있다. 기네스북에 보면 이렇게 ‘처음’ ‘가장’ 이란 용어를 사용한 기록으로 가득하다. 사람들은 ‘최초’를 ‘최고’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둘째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비행기를 ‘처음’ 만든 사람은 미국의 라이트 형제다. 처음 비행기를 만들었을 때 겨우 40초 정도를 날다가 추락했다. 그러나 오늘날 비행기하면 당연히 라이트 형제를 기억한다. 그 후 비교가 되지 않을 엄청난 보잉 747 비행기를 개발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기억하지 않는다. 최초만 기억하기 때문이다. 『달에 맨 처음 오줌 눈 사나이』라는 책이 있다. 엔드레 룬드 에릭센이 실화를 바탕으로 동화 형식으로 만든 책이다. 달에 최초로 발을 디딘 사람은 아폴로 11호의 선장 닐 암스트롱이었다. 사람들은 닐 암스트롱은 기억하고 있지만 함께 우주선을 탔던 다른 선원들은 기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최초’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버즈는 함께 한 선원 중에서 가장 박력이 있었다. 그런 만큼 욕심도 많았다. 자기가 ‘맨 처음’ 달에 발을 디디고 싶었다. 그래서 닐 암스트롱에게 자기가 먼저 내릴 수 없느냐고 따졌다. 닐 암스트롱은 단호하게 거부하며 말하기를 자기가 앉은 자리가 달착륙선 문에서 가장 가깝기 때문에 먼저 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설득해도 닐이 도무지 듣지 않자 버즈는 비장의 결심을 하게 된다. 어떡하든지 ‘최초’ ‘맨 처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닐 암스트롱이 ‘최초’로 달에 발을 딛는 그 뒤를 따라 내려와서 ‘최초’로 달에 오줌을 갈긴 것이다. 기억하자. 세상에 ‘기억’되는 것도 좋겠지만 비록 기억되지는 않더라도 기억되는 사람들보다 가치 있고 의미 있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되는 것만이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我            先           居           之
나 아     먼저 선    있을 거   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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