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론인인가?

우리는 언론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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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혁 아리랑국제방송 주조정실 부장

지난 늦가을부터 시작된 변화
작년 가을 한 종합편성채널의 단독 보도가 지난 4년간 정부의 행동을 이해하는 단초를 제공했습니다. 국민들은 알게 되었고, 분노했고, 광장에서 폭발했습니다. 초겨울 추위를 뜨겁게 달군 촛불은 주춤거리던 여당의 일부 의원들을 탄핵 찬성 표결로 몰아갔습니다. 12월 9일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되었습니다. 급격한 사회 변화를 따라 잡지 못하는 일부 노년층과 팬클럽을 제외하고는 쫓겨난 대통령에 대한 생각이 하나로 통일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광장의 시민들은 언론에도 원망의 눈길을 보냈습니다. 어떤 공영방송은 취재 중에 ENG 카메라와 마이크의 자사 로고를 가려야만 했습니다. 보수적 논조의 언론들도 하나둘 대통령에 대한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시민들은 대한민국 국민임을 부끄럽게 만든 책임을 질문하지 않는, 받아쓰기만 하는 언론에도 돌렸습니다.

표현의 자유의 선발대 : 언론의 자유
대한민국헌법은 국민들이 동의한 약속입니다. 또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목표이기도 하고, 당위이기도 합니다. 새로 도입한 장비가 궁금하면 그 장비의 매뉴얼을 보듯, 대한민국에 대해 알고 싶으면 매뉴얼인 헌법을 읽어보면 됩니다. 다양한 생각들이 경쟁하여 합리적인 삶의 방식을 찾고 이를 통해 국민국가들 간의 경쟁에서 앞서 나갈 수 있습니다. 그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헌법 21조 1항에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이 네 가지를 한마디로 ‘표현의 자유’라 합니다. 표현의 자유는 다양한 생각이 자유롭게 경쟁할 환경을 만듭니다. 여러 의견이 공존하는 민주국가에서 표현의 자유는 정치 사회 질서의 중추신경 역할을 합니다. 그중 언론의 자유는 순서상으로만 맨 앞에 위치한 것이 아니라 기능적으로 민주주의의 오작동에 가장 먼저 반응하여 알람을 울리는 역할을 합니다. 언론인은 권력을 가진 강자에게 회의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바른길을 가고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합니다. 지난 몇 년간 우리나라 언론의 자유라는 중추신경은 거의 기능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공영방송의 인기 주말 예능 프로그램이 그 방송사의 마지막 남은 저널리즘이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있었습니다.

(시계방향으로) 연합회 심볼마크 제정(1988. 12), 안덕상 연합회장 구속(1990. 5. 12),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창립총회 공고문, 창립총회모습, 창립총회에 참석한 연합회원들(1987. 11. 14. 14:00 63빌딩 컨벤션센터)
(시계방향으로) 연합회 심볼마크 제정(1988. 12), 안덕상 연합회장 구속(1990. 5. 12),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창립총회 공고문, 창립총회모습, 창립총회에 참석한 연합회원들(1987. 11. 14. 14:00 63빌딩 컨벤션센터)


방송기술인은 언론인인가?

저는 항상 궁금했습니다. 방송기술인은 언론인인가?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언론인은 신문, 방송, 통신, 잡지 따위의 언론 기관에 관계하여 언론으로써 업(業)을 삼는 사람’이라 되어 있습니다. 이같이 폭넓게 정의하면 우리는 언론 기관에 관계하는 것이 확실하므로 언론인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를 언론인이라기 보다 엔지니어라고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속칭 ‘기레기’라는 언론인 비하에서 멀리 떨어지고 싶기도 하고, 정치 사회적 입장을 요구받지 않을 수 있는 ‘엔지니어’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우리는 기자, PD와 함께 일하지만, 프로그램의 내용보다는 기술적 완성도에 집중합니다.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것이 일상생활에서 손해 볼 수 있다는 자기 검열도 작용합니다. 시민으로서 유연한 사고와 동시에 정치 사회적 입장이나 소신을 갖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러나 좌와 우가 극단적으로 나뉘어 대립하는 상황에서 굳이 성향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는 엔지니어는 여러모로 편리합니다.

안덕상 초대연합회장과 1990년 KBS 사태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는 1987년 6.10 민주항쟁의 성과로 11월 14일 출범했습니다. 기술인 직능단체의 출범조차도 당시 상황으로 얼마나 어려웠을지 지금 우리는 상상하기도 힘듭니다. 연합회 출범의 주역은 KBS 방송기술인협회 안덕상 회장이었습니다. 연합회의 창립을 주도했고 초대 연합회장에 취임했습니다. 안덕상 초대 연합회장은 KBS 사태로 구속되었던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낙하산 사장의 출근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되어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중앙일보 1990.9.3.)
1990년 KBS 노동조합은 4월부터 6월까지 파업을 했습니다. 이를 KBS 사태라고 합니다. 이 사건은 3당 합당으로 힘을 얻은 노태우 정부가 민주화 바람과 여소야대 국면에서 취임한 사회운동가 출신 서영훈 사장을 강제 퇴직시키고, 서기원을 낙하산에 태워 내려보내는 과정에서 발생했습니다. MBC 노조의 연대제작거부까지 끌어낸 이 파업은 방송제작환경이 민주화 이전으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막으려는 노력이었습니다. 사태는 정부의 무력 진압으로 마무리되었고, 오백 명 이상이 연행되고 스무 명의 조합원이 구속되었습니다. 안덕상 회장은 구속된 스무 명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연행자와 구속자 수는 참고자료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방송기술인 윤리강령
안덕상 회장과 선배 기술인들은 어떤 생각으로 우리를 방송기술인이라는 틀로 묶는 연합회를 출범시켰을까요? 연합회는 1989년 12월 22일 방송기술인 윤리강령을 선포했습니다. 그 일부를 발췌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항상 전문가로서의 품위를 유지하도록 노력하며 방송민주화와 공정방송에 일익을 담당하여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업무수행이 방송민주화와 공정방송 이념에 위배되는 경우에는 어떠한 업무도 담당하지 아니한다.”

안덕상 회장은 실천하는 언론인이었고, 우리에게도 언론인임을 요구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지난 2016년 7월 22일 제24・25대 회장 이취임식에서 축사 중인 안덕상 초대연합회장
지난 2016년 7월 22일 제24・25대 회장 이취임식에서 축사 중인 안덕상 초대연합회장
25대 연합회장인 박종석 연합회장의 취임사 모습
25대 연합회장인 박종석 연합회장의 취임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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