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툰드라 제작을 마치고

최후의 툰드라 제작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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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툰드라』, 지구의 땅 끝에서
툰드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인천에서 출발해 툰드라에 도착하면 최소한 일주일이 훌쩍 흘러가 있었으니 말이다. 영하 40도 아래로 내려가는 겨울 툰드라는 자연의 위대함 앞에서 촬영팀을 하염없이 작게 만들었다. 출발하기 전, 밤잠을 설치면서 추위에 대한 대비를 고민했던 것이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 만큼 상황은 예상을 벗어나 있었다.
역시 겪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이구나. 에베레스트와 알래스카 취재로 오지 촬영에 이력이 나 있던 카메라 감독도 툰드라 앞에서는 생애 처음 겪어보는 난관이라고 고백할 정도였다. 핫 팩, 방한 깔창, 방한 양말 등 기능성을 자랑하는 온갖 방한 용품은 툰드라의 추위 앞에서 무용지물이었고 수시로 촬영이냐 생존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졌다.
가장 먼저 나가떨어진 카메라 장비는 배터리와 액정이었고, 그때마다 가슴에 장비를 품고 작동 가능한 상태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다행히 메인 촬영용으로 가져 간 DSLR 카메라(캐논 EOS 5D마크2)는 그나마 추위에 강한 편이라 그럭저럭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혹독한 자연은 생존한 자에게 마치 보답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선사했다.
그 중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역시 툰드라의 오로라였다. 스노모빌을 타고 툰드라 한복판에서 길을 잃고 기름마저 떨어졌을 때, 생사의 갈림길에 선 우리의 머리 위로 피어오른 찬란한 오로라는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 있다. 자연은 위대하다고 표현하기엔 너무 무서웠고, 아름다운 풍경은 아름답다고 표현하기엔 너무 찬란하고 처연했다. 자연이 문명을 압도하는 지역은 그래서 항상 신비롭다.

툰드라와 DSLR 카메라
지구의 땅 끝, 툰드라를 촬영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많이 고민을 했던 것은 카메라 기종의 선택이었다. 예상대로『최후의 툰드라』가 방송되고 난 뒤,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인 것도 DSLR 카메라가 보여준 독특한 색감과 심도였다. 사실 DSLR 카메라를 다큐멘터리에, 그것도 4부의 대작 다큐멘터리에 메인 장비로 쓴다는 것은 모험이었다. 드라마나 극영화와 달리 피사체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이고 다음 씬이 어떤 장소가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정확하게 포커스를 맞추고, 적절한 색온도와 감도, 노출을 그것도 모두 수동으로 맞춘다는 것은 정말 달인이 아니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포기하기엔 너무나 장점이 분명한 카메라였다. 툰드라로 가기 전 약 2~3개월 동안 PD로서의 직분을 망각하고 카메라에만 매달렸다. 기획과 자료조사를 할 시간을 쪼개서 DSLR 카메라의 특징과 장단점, 안정적인 동영상 촬영을 위해 필요한 보조 장비들과 녹음 시스템을 연구했다. 국내의 유경험자 몇 분들께 자문을 구해보고, 몇 달간 해외 블로그를 섭렵한 결과 조금씩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DSLR 카메라를 메인 촬영 장비로 선택했다.

   


DSLR 카메라를 선택한 이유
첫째, 툰드라의 원주민인 네네츠족이 수줍음이 매우 많아서 작은 카메라 일수록 접근성이 높았다.
둘째, 춤(원주민들의 집)은 실내가 매우 좁아 큰 카메라가 들어가서 활동하기 어렵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매우 어두운 환경이었다. 하지만, DSLR 카메라를 써서 좁은 환경에서도 다양한 앵글을 확보할 수 있었고 50mm(f1.2)렌즈로 등잔불과 촛불 아래에서도 훌륭한 영상을 구현해 낼 수 있었다.
셋째, 2~3일에 한번씩 20km 이상 이동을 하는 네네츠 유목민을 따라 함께 이동해야 하는데 겨울을 제외한 시즌은 유일한 육지의 이동수단이 순록이 끄는 썰매였다. 그런데, 순록썰매에 익숙하지 않은 제작진은 수시로 굴러 떨어지기 일쑤였다. 만일, 큰 카메라를 툰드라로 가져갔다면 썰매에서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오래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넷째, 피사체에 집중할 수 있는 얕은 피사계심도와 특유의 따뜻하고 화려한 색감, 높은 해상도가 고급스런 영상을 만들어 냈다. 밤하늘의 별, 오로라, 리니어 달리를 이용한 미속 촬영 등은 DSLR 카메라만이 만들 수 있는 특유의 영상미를 제공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꼽자면 러시아와 같이 아직도 보안검문이 강한 곳은 DSLR 카메라가 여러모로 유용하다. 모든 점을 종합해 봤을 때, 『최후의 툰드라』촬영에서 DSLR 카메라의 선택은 최상이었다고 판단된다.

툰드라의 웅장한 풍경 vs. 최소한의 촬영 장비
툰드라에서는 일단 촬영 장비를 최소화해야 한다. 앞서 기술한 것과 같이 순록 썰매로 이동하는 툰드라의 특성상 무거운 장비를 가져갔다간 장비를 옮길 수가 없어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기 십상이다. 제작진은 최대한 장비를 줄이되, 훌륭한 영상을 위해 꼭 필요한 장비는 팔이 부러져도 가져가자고 합의(?)를 봤다. 그래서, 심사숙고 끝에 툰드라에 가져갈 장비를 선정했다. 우선, EOS 5D 마크2 DSLR 카메라 본체 6대를 총 3명의 카메라 감독들에게 2대씩 지급해 돌발 상황이 생겼을 때, 렌즈를 갈아 끼우는 시간을 최소화했다. 사용된 렌즈군은 15대의 EF렌즈(16-35mm, 24-70mm, 24-105mm, 50mm, 100mm마크로, TS-E 24mm, 500mm, 70-200mm, 70-300mm)로 다양한 화각과 함께 망원과 접사촬영, 초고감도촬영을 동시에 수행했다.
메모리 카드는 32기가 60MB/s 6개를 썼으며, 매일 발전기를 돌릴 수가 없는 상황이라 촬영한 파일소스는 그날 그날 NEXTODI 500기가 외장하드를 이용해 바로 저장했다. 조명 장비는 LED 라이트와 수중촬영용 특수 빔 조명을 썼는데, 수중촬영용 조명장비는 수중촬영을 위한 것이 아니라 빛이 멀리 나가는 특성에다 확산필터를 이용해 야간 전경촬영을 하기 위함이었다. 녹음 장비는 Sennheiser MKE-700 마이크, SVM Rode 마이크, Sony PCM-D50을 이용해 동시 녹음했고, 보조 장비로는 CAVISION의 DSLR 견착대, ZACUTO 뷰파인더, VARAVON 뷰파인더를 사용했다.
특수 장비로는 Contour HD 헬멧카메라 3대를 이용해 순록 썰매를 모는 사람의 앞모습, 썰매가 지나가는 장면, 차량 바퀴 밑으로 달리는 장면 등의 다양한 앵글을 만들었고, 리니어 달리에 DSLR 카메라를 올려 타임랩스 스틸촬영, 7M 지미집과 모터패러글라이더를 이용해 부감, 항공촬영을 실시했다.
 

   

‘최초 시도’의 연속이었던 툰드라 촬영
『최후의 툰드라』촬영은 매번이 첫 시도였다. 도전의식과 헝그리 정신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들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툰드라에 지미집을 가져가겠다는 발상과 모터패러글라이더로 항공촬영을 하겠다는 발상은 정말 제 정신으로는 하기 힘든 발상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무모한(?) 연출자 덕분에 스태프들이 겪은 고생은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는가.
항공촬영만 해도 Cineflex를 쓰고 싶었지만 러시아에서는 구할 수 없었고 한 시간에 400만원씩 하는 헬기 비용을 감당할 수도 없었다. 한 번 눈여겨 찾아보면 시베리아 툰드라에서 순록 유목민의 장대한 이동을 항공촬영한 방송사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설령 Cineflex를 쓸 수 있다고 해도 문제는 남아 있다.
툰드라에서는 그날의 날씨와 순록들의 상태에 맞춰서 유목민들의 이동이 결정되기 때문에 언제 헬기를 띄워야 할지 판단하기 힘들다. 그리고, 육중한 굉음을 내는 헬기를 순록 떼 위로 띄웠다가는 순록들이 놀라서 난리가 날 것이고, 그럼 그날로 취재진은 쫓겨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모터패러글라이더는 최상의 선택이었고, 앞으로 조금만 더 전문화되면 활용 가능성이 매우 많은 분야라고 생각한다. 툰드라 영상의 백미를 제공했던 항공촬영 씬은 무엇보다 한 달 이상을 원주민들과 동고동락하며 툰드라의 추위를 뚫고 항공촬영을 감행한 촬영팀의 열정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5D마크2 촬영에 대한 첨언
방송이 나간 후, 많은 분들로 부터 촬영 장비에 대한 문의가 있었다. 특히, 5D마크2 카메라 촬영에 대한 문의가 많았는데 사실 5D마크2 카메라의 사용은 쉽게 선택할 부분이 아니라는 점을 고언 드리고 싶다. 어지간한 수준에 오르지 않고는 캠코더를 쓰는 것보다 못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다큐멘터리에서는 핸드 헬드로 촬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손에서 카메라로 전해지는 떨림은 치명적이다.
또한, 포커스 문제도 어지간한 경험자가 아니고서는 매우 어렵다. 게다가 색온도와 노출을 수동으로 설정해야 하는 문제까지 겹쳐지면 그야말로 달인의 수준이 아니고서는 만족한 결과를 얻기 어렵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툰드라의 촬영감독님들은 정말 고맙고 존경하는 분들이다.
5D마크2의 또 다른 결정적인 단점은 오디오 문제이다. 그 어떤 마이크를 사용해도 카메라에서 생기는 화이트노이즈를 피할 수가 없다. 이 부분은 제작팀에게 계속 고민거리가 되어 왔고, 후반 작업에서 어느 정도 제거는 가능했지만 앞으로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툰드라 사람들의 눈에 비친 한국인
툰드라 사람들에게 한국 사람은 어떤 이미지일까? 놀라운 것은 툰드라 사람들도 바깥세상과 교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모두는 아니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분명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에게 비친 한국은 자원은 없지만 기술로 먹고 사는 나라, 부자 나라이고, 한국 사람은 기술이 훌륭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사실 툰드라의 네네츠 원주민들도 아주 손재주가 뛰어난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칼을 한 자루씩 가지고 있는데 그것으로 툰드라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만들어 쓴다. 그들의 눈썰미와 손재주가 얼마나 좋은가 하면 촬영팀의 트라이포드 슈가 망가졌을 때 즉석해서 나무를 깎아서 만들어 줄 정도였다.
약 10개월 간의 촬영을 마치고 작별인사를 하던 날, 그들은 한국 사람들과 자신들은 너무 비슷하다며 언제라도 다시 오라고 했다. 기술이 좋고 근면한 툰드라 사람들과 한국 사람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자연과 멀어져 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도 원래는 툰드라 사람들처럼 자연 앞에 겸손하며 자족하는 민족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가. 우리가 잊고 있었던 우리의 모습을 수 천 킬로미터 떨어진 머나먼 땅, 툰드라 사람들에게서 발견한 것은 참 신기한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방송이 끝난 지금 툰드라 사람들이 가끔씩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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