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천
미국미드웨스트대학교 리더십박사
전 육군대학 전략학처장
전 미국지휘참모대학 교환교수
전 나사렛대학교 교수. 부총장
현 한국전략리더십연구원 원장
반드시 성공하는 설득의 비밀
밀티아데스의 마라톤 전투
무약이강화자모야(無約而請和者謀也)
『손자(孫子) 행군 제9편』
“우리가 승리했다!” 이 유명한 말이 마라톤 경주의 시작이 되었다. 마라톤에서 아테네까지 달려 승전보를 전한 병사는 페이디피데스라 알려졌고 그때 달린 거리는 36.75km였다고 한다. 아니? 42.195km가 아니란 말인가? 마라톤 경주는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이 되었다. 오늘날 42.195km가 된 것은 1924년 제8회 파리 올림픽 대회 때부터였는데, 이는 1908년 제4회 런던 올림픽 당시에 윈저 궁전에서 올림픽 스타디움까지의 42.195km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마라톤 전투는 기원전 490년 제2차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당시 아테네의 밀티아데스가 지휘하는 아테네군이 마라톤 평원에서 페르시아군을 무찌른 전투다. 기원전 492년 페르시아의 제1차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이 실패로 끝난 뒤 다리우스 1세는 다시 군대를 이끌고 그리스를 침공했다. 마라톤 전투는 전사상 최초의 상륙작전이라 할 수 있다. 페르시아군이 마라톤 해안에 상륙했다는 소식이 곧 아테네에 전해지자 아테네의 자유민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당시 아테네 국민의 일반적인 감정은 대부분 반 페르시아적이었으나, 정치를 담당한 지도자 측에서는 친 페르시아 파와 반 페르시아 파로 양분되어 있었다. 성 밖으로 나가서 적을 요격할 것인지, 아니면 성에 틀어박혀서 농성전을 벌일지가 문제였다.
장군단 임원 10명은 마라톤에 대한 출격여부로 의견이 양분되고 있었다. 이때 밀티아데스는 최종 결정권자인 칼리마코스를 찾아가 그를 설득했다. “칼리마코스여, 바야흐로 아테네가 노예로 전락할 것이냐, 아니면 그 자유를 확보하고 하르모디오스와 아리스토게이톤 두 사람 조차 남기지 못했던 찬란한 업적을 세워 후세에 전할 것이냐 하는 것은 오직 그대에게 달려 있소.” 여기에 나오는 하르모디오스와 아리스토게이톤는 독재자 히파르코스를 죽인 영웅이었다. 밀티아데스의 출격 설득에 대해 칼리마코스가 동조함으로써 출격이 결정되었다. 만약 이때 출격하지 않고 아테네에 머물렀다면 아마도 그리스의 운명은 다른 데로 갔을 것이다. 아테네군은 밀티아데스의 지휘 하에 마라톤으로 향했다.
기원전 490년 9월 4일의 일이다. 이때 아테네의 군사는 약 1만 명이었고, 페르시아의 군사는 약 4만 명 정도였다. 이때 밀티아데스는 아주 절묘한 작전을 구상했다. 페르시아군의 주력이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이를 유인 고착하여 좌우 양익에서 포위하는 작전이었다. 이를 위해 아테네군 양익은 통상의 폭인 8오를 유지하고 중앙부는 4오로 하되 좌우로 길게 신장 배치했다. 전투가 시작된 것은 9월 11일이었습니다. 페르시아군과 아테네군 사이의 거리는 약 1.5km였다. 먼저 공격을 시작한 편은 아테네군이었다. 높은 언덕 위에 있던 아테네군은 천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페르시아의 궁수들은 제일 선두에 서서 이들을 상대했다. 궁수의 사정거리는 약 300미터다. 그런데 사정거리에 가까이 오자 아테네군은 갑자기 빠르게 달렸다.
당시 그리스에는 ‘갑옷 입고 400m 달리기’라는 육상 경기가 있었다고 한다. 마치 육상경기를 하듯이 아테네 군사들은 빗발치는 화살을 뚫고 달려들었다. 페르시아의 궁수들은 너무나 당황했다. 30kg의 중무장을 한 병사들이 저렇게 달리다니! 당시에 이렇게 싸우는 예는 없었다. 서로 접촉할 때까지는 대형을 유지한 채 서서히 다가서는 것이 관례였다. 전투는 처음부터 혼전이었다. 하지만 결국 밀티아데스의 의도대로 전개되었다. 예상대로 아테네군은 중앙을 돌파 당했지만, 좌우 양 날개에서 페르시아군을 포위하는데 성공했다. 이제 아테네군에 의한 일방적인 살육이 시작되었다. 전투 끝! 전투결과를 보면, 페르시아군은 6,400명의 전사자가 발생했고, 아테네군은 불과 192명이 전사했다. 마라톤 전투는 동양과 서양이 최초로 벌였던 본격적인 전쟁이었다. 그리스군은 마라톤 전투에서 ‘아테네’만을 지킨 것이 아니라 서양, 즉 ‘유럽’을 지켜냈다. 그러므로 마라톤 전쟁에서 유래하는 마라톤의 출발선은 단순한 마라톤 경주의 출발선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유럽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역사적인 마라톤 전투는 출전을 주장한 밀티아데스의 효과적인 설득작업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손자병법 행군(行軍) 제9편에 보면 “사전에 아무런 약속도 없었는데 강화를 청해온다면 그 속에 ‘꿍꿍이’가 있다.”(無約而請和者謀也)는 말이 나온다. 물론 이 말은 손자가 제시한 32가지의 각종 징후에 관련된 말이다. 그러나 설득과 관련해서 이 어구를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꿍꿍이’가 무엇인가? 남에게 드러내지 않고 혼자 속으로 우물쭈물하는 궁리를 말한다. 우리가 누구를 설득하려고 할 때는 바로 이런 ‘꿍꿍이’를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다. 밀티아데스가 칼리마코스를 설득했을 때 사용했던 설득의 기술이 무엇이었나? 첫째, 대의명분을 걸었다. 단순한 전쟁이 아니고 ‘자유’를 위해 전쟁을 해야 한다고 했다. 보다 큰 가치를 내걸었던 것이다. 이는 가치를 중요시 여기는 사람에게는 먹힌다. 둘째, 누구나 인정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을 내세워 자기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셋째, 직접 해본 사람으로서의 장점을 최대한 이용했다. 이런 경우는 어떤 것보다도 설득력이 강하다. 밀티아데스의 장점은 그가 직접 1차 페르시아 전쟁에 참전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해봤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마치 정주영 회장이 입버릇처럼 말했던 “해보기나 했어?”는 설득과 관련된 최고의 명언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이런 ‘꿍꿍이’를 가지고 밀티아데스는 칼리마코스를 만났고 마침내 설득에 성공했다.
無約而請和者謀也
무약이청화자모야
아무런 약속도 없었는데 강화를 청해온다면 그 속에 꿍꿍이가 있다.
설득은 모든 것의 시작이다. 그래서 설득에 관한 여러 견해를 알아보자. 귀곡자는 전국시대에 활약한 설득의 귀재다. 소진과 장의도 그의 제자였고, 손빈병법으로 유명한 손빈과 위나라의 방연도 그의 제자다. 그는 설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말을 하기 전에 먼저 그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대상을 고려해야 한다.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지 않거나 또는 듣고 나서도 이해할 수 없을 때에는 말을 꺼내지 말아야 한다. 더욱이 그에게 듣기를 강요하거나 나의 뜻을 이해하라고 훈계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특히 관심을 가져야 할 것으로 “상대가 설득당하고 있음을 눈치 채지 못하게 하라.”고 강조했다. EBS 다큐에서 『설득의 비밀』을 방영한 적이 있다. 중요한 내용만 보면 이렇다. “말을 많이 하면 설득하기 쉽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설득에 방해가 된다. 상대방의 입을 열게 하라. 상대방은 7, 나는 3의 비율로 말을 하라. 설득은 논쟁이 아니다. 나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며 논쟁하기 보다는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구체적인 대안과 데이터를 제시하면 설득가능성은 높아진다. 한 번에 해결할만한 설득은 거의 없다. 설득은 마지막 버스가 아니다. 설득은 여러 번의 만남을 기약하며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좋다.”
최근 회사가 어려워지자 김부장은 부하 직원에게 야근을 강요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서로의 입장만 주장하며 옥신각신하게 되었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부하직원은 상사의 잘못을 지적하며 자신의 입장만을 강하게 주장해서 상사의 감정을 상하게 만들었다. 김부장도 부하직원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결국 설득과 인간관계 모두 실패하는 결과를 낳았다. 설득에 대해 모두가 무지한 결과가 빚은 비극이다. 설득을 잘 하기 위한 금언이 있다. “물은 100도가 되어야 끓는 것처럼 80도에서 중지하지 말고 좀 더 노력해라. 철저히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작은 행동 하나로도 설득은 가능하다.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먼저 생각하라. 설득은 뺏는 것이 아니다. 내 제품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을 가지고 대하라. 나부터 설득시키지 못하면 그건 속이는 것이다. 나의 말을 줄이고 고객의 얘기를 많이 들어 고객이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라. 상대가 마음을 여는 순간은 반드시 온다. 기다려라. 타인을 깎아내려서는 이익이 없다. 상대와 나의 공통된 이익을 찾아내라. 설득은 윈윈이다.” 어떤가? 이제 회사에서 누구를 설득하려고 할 때 자신감이 생기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