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는 몽골의 드넓은 초원지대를 직접 말을 타고 여행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시작한 몽골 야영승마 트래킹의 첫째, 둘째날의 여정을 다루었다. 이번 호에서는 셋째날~마지막날까지 드넓은 몽골 초원에서 있었던 트래킹 후기를 공유하고자 한다.
출발 셋째날 – 2015.06.20
어제에 이어 새로운 길로의 트래킹에 대한 기대를 안고 오전에 텐트를 철거 후 짐을 챙겨 출발할 준비를 했다. 말들이 풀을 뜯게 길게 묶어 놓았는데 연신 머리를 인사하듯 오랫동안 끄덕이고 나중엔 아예 벌러덩 누워서 다리를 하늘로 세우고 한 바퀴를 계속 돈다. 혹시 잘못된 게 아닌가 마부 형님한테 물으니 머리를 끄덕이는 건 파리나 벌레 쫓는 거고 드러눕는 건 흙에 마사지하면서 기분이 좋으면 하는 행동이란다. 그리고 나중에 보니 여행 내내 파리 떼가 말들을 엄청 괴롭혔다. 특히 말의 배 쪽을 많이 물어 피가 꽤 나고 나중엔 파리가 사람 허벅지까지 물었다. 10시에 차량이 먼저 출발하고 5명이 말을 타고 뒤따라 출발했다. 그리고 어젯밤에 여행객 3명이서 트래킹 동안 말을 바꿔 가며 타기로 해서 오늘은 백마를 타고 출발했는데 힘이 엄청 좋고 지치질 않는다. 출발하자마자 파란 풀밭을 500m 정도 내달리고 바로 산위를 올랐다. 꽤 높은 민둥산으로 경사도 완만하고 찻길도 있어 그 길을 따라 먼저 차량이 올라가고 우리가 뒤이어 올라갔다. 서서히 오를 때마다 아래의 경치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고, 꽤 긴 거리 경사를 오르는데도 말들은 생각보다 쌩쌩해 보였다. 산등성이에 도달해 정상에 있는 커다란 바위에 모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멀리 게르 몇 채와 온통 산과 들판만 보였다. 혹시 몰라 핸드폰 통신 여부를 보니 계속 불통지역이다. 산등성이를 따라 오면서 어젯밤에 일행 부부에게 배운 대로 다리를 펴고 몸을 세운 전경자세로 기승을 하니 훨씬 편하게 달린다.
점심때쯤 계곡에 도착하니 우리 차량이 늪에 빠져 있었다. 약간 골짜기 쪽 늪으로 중간에 빠져 전혀 움직이질 못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주변에 전에도 차량이 빠진 흔적들이 많았다. 모두 말에서 내려 밀고, 말까지 동원해 차량에 묶어 끌었는데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주변엔 민가도 전혀 없고 지나가는 차량도 안보이고, 더군다나 통신 불가 지역이라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한참을 아무리 해도 안 돼, 마부 형님이 주변의 커다란 나무를 잘라 말로 끌어 오고, 그 나무를 긴 지렛대로 삼아 주변의 통나무들을 차량의 네 바퀴 밑에 넣었다. 이 과정들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무엇보다 엄청 힘든 작업이었다. 중간에 잠깐 시간을 내서 요리사 형님이 볶음밥을 준비해 빗방울이 조금 내리는 와중에 늦은 식사를 했다. 식사 후 다시 모두 달려들어 긴 나무로 지렛대 삼아 바퀴를 들고 밑에 통나무를 괴는 작업을 다시 처음부터 하고, 밀고 당기고를 여러 번 해서 결국 4시경에 차를 겨우 뺄 수 있었다. 차가 빠질 때는 모두 환호성을 질렀을 정도로 모두 엄청 심신이 지쳐 있었다.
차량에서 빼낸 짐을 다시 챙겨 싣고, 이번엔 말을 탄 5명이 앞장서 갔는데 물기가 있는 풀밭이 많이 있었지만 다행히 차가 빠질 만한 길은 없었다. 마른 들판 쪽에 다다라 차량이 먼저 앞질러 가고 우리는 달리다 걷다를 반복하면서 6시경에 야영지에 도착했다. 야영지라고 딱히 정해진 곳이 있는 게 아니라 냇가가 있어 씻을 수 있고, 바로 옆에 큰 나무나 숲이 있어 그늘이 되고 화장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을 찾으면 그곳을 야영지로 택했다. 말을 좀 더 타기 위해 큰 냇가를 지나 초원지대로 나아가니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엄청 길게 초원이 펼쳐져 있고, 그 가운데 좁은 차량 길만 있을 뿐 주위엔 아무도 안 사는지 게르도 안보였다. 초원에 들어서 다시카의 “달릴까요” 라는 말과 함께 길을 따라 4명이서 신나게 달려나갔다. 어제와 같이 내가 맨 뒤쪽에서 3명을 따라 말을 달리는데 초원이 넓고 말도 엄청 빠르게 달려 겁이 날 정도였다. 다시카는 원래 말을 잘 타고, 일행 부부도 외승 경험이 많아선지 달리는 자세가 좋고 속도가 엄청 빠르다. 달리는 도중에 낙마 위기가 한번 있었는데, 여자 분이 내 옆을 앞질러 나갈 때 말안장 밑 깔개가 빠지면서 내 쪽으로 날라 와 말이 놀라 갑자기 방향을 왼쪽으로 틀어버려 내 몸이 쏠리면서 말 머리 우측으로 떨어질 뻔했다. 다행히 고삐를 놓지 않고 말 머리에 매달려 있었고 말도 속도를 줄여 아찔한 낙마 위기에서 벗어났다. 도중에 남자분의 제의로 안장 없이 말도 타 보았는데 생각보다 덜 아프고 구보도 가능했다.
야영지로 돌아와, 오늘 하루는 차 빼다가 모두 힘이 빠져 삼겹살과 쌈으로 늦은 저녁을 먹고 일찍 취침을 위해 각자의 텐트로 향했다.
출발 넷째날 – 2015.06.21
아침에 을지 형님이 만든 김치찌개를 먹고 짐을 챙겨 차량은 먼저 다른 길로 떠나고 5명은 말을 타고 넓은 초원 쪽으로 돌아서 출발했다. 깊은 개울물을 건너니 초원 위에 에델바이스 야생화와 노란 꽃이 지천으로 피어있고 멀리 현지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야영을 하고 있었다. 그 길을 따라 초원을 한참을 지나니 나무로 된 50m 정도 되는 다리를 건너 다시 테럴지 국립공원 내로 들어 왔다. 잠시 앉아 쉬는데 우리와 같은 20명 정도의 야영승마 여행자들이 지나간다. 유럽인들로 보였는데 앞쪽엔 여행객들이 말을 타고 앞서 가고 뒤쪽엔 짐을 가득 실은 짐말들이 따라가는 모습이 마치 서부 영화의 개척시대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그리고 커다란 오토바이에 가득 짐을 싣고 여행하는 그룹도 볼 수 있었고 나중엔 자전거를 타고 혼자 여행하는 사람도 있었다. 얼마를 더 가 통나무집으로 된 작은 구멍가게를 들렸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소화가 안 되고 배가 아프다고 해서 비상용으로 가져간 약품들을 드리고 샤롤이 직접 아주머니 손끝까지 바늘로 따줬다. 다시 출발해 넓은 초원을 지나는데 여기부터는 계속 게르가 중간 중간에 있었고 점심때 쯤 목장 근처 냇가에 도착해 짐을 풀고 닭볶음탕으로 식사를 했다.
한참을 쉬다가 다시 차량이 먼저 출발하고 우리가 뒤를 따랐다. 목장을 지나 초원이 나왔는데 이번엔 전보다 더 넓은 들판으로 앞쪽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넓었다. 마부 형님은 속보로 계속 일행 옆으로 가고 4명은 달리다 걷다를 반복해서 나아갔다. 며칠 기승했더니 자신감이 생겨 이번엔 휴대폰을 오른손에 들고 동영상 촬영을 하면서 달려보기도 하면서 계속 갔는데 달려도 달려도 계속 초원이다. 들판 군데군데 게르가 보이고 멀리 산기슭엔 양떼와 염소가 풀을 뜯고 있다. 도중에 풀밭에서 털이 길게 나고 엄청 큰 동물이 있어 가까이 가보니 야크라고 하는데 털이 엄청 멋있고 크기도 소보다 커 보였다. 오늘 일정은 50km 이상을 간다고 했는데 끝없는 들판만 계속 나와 점점 지쳐갔다. 들판의 샤머니즘 돌탑과 성황당을 지나고 숲 쪽으로 빠져나와 나무 사이사이를 한 시간 정도 빠른 속보로 달려 결국 6시가 넘어 목적지인 마부 형님의 게르에 도착했다. 마부 형님네 게르에서 가족들도 만나보고 수태차와 버터를 대접을 받고 주변 구경을 했다. 게르 주변엔 말과 야크, 양들이 방목되어 떼 지어 있고, 게르 안엔 배터리 전원으로 위성TV와 무선 전화 등을 사용하고 있었다.
마부 형님 게르 주변의 큰 냇가 옆에 텐트를 치고 야영했는데 긴 거리 여정으로 모두 많이 지쳐 있었다. 50km 넘게 말을 내달리고 뜨거운 태양 아래 들판을 지나니 온몸이 다 녹초가 된 느낌이다. 난 차가운 냇물에 샤워를 하고 피곤해 텐트에서 그대로 누워 버렸다. 두 시간쯤 있다 일어나 소고기로 만든 몽골 음식으로 늦은 저녁을 먹고, 엄청 피곤해 일찍 텐트로 들어가자는데 내복 위에 겉옷까지 입고 자는데도 너무 추워 밤새 뒤척였다.
출발 다섯째날 – 2015.06.22
아침에 일어나 보니 다시카가 타던 검은 말이 없어졌다고 했다. 어젯밤에 풀을 뜯게 앞발과 뒤발을 가깝게 서로 묶어 풀어 놓았는데 새벽녘에 말이 없어져 마부 형님이 계속 말을 찾고 계셨다. 우리가 아침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마부 형님은 계속 주변에 말을 찾아 다녔지만 결국 못 찾고 돌아오셨다. 말을 잃어 버려 엄청 걱정되었는데 말이 귀소본능이 있고 더군다나 집 주변이라서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결국 다시카는 검은 말 대신 다른 말을 가져와 탔고 이틀 후에 그 검은 말 집 주위에서 찾았다고 했다.
오늘 일정은 숲이 우거진 바위산에 올라보기로 하고, 차량과 다른 인원은 마부 형님 게르에 머물고 다시카와 3명만 말을 타고 출발했다. 개울을 건너 산속 목장 주변을 지나고 산골짜기의 풀밭으로 가 4명이서 말을 달리니 초원에서 달리는 기분과는 또 다른 경험이다. 더군다나 겨우 사람 한 명이 지나가는 산속 비탈길에서 말을 달린다는게 위험하면서도 신기하고 재밌었다. 그렇게 계속 올라가니 완전히 산속이다. 주위엔 나무가 무성하고 옆엔 엄청 커다란 바위들이 둘려싸여 있다. 계속 커다란 바위산을 따라 나무들 사이를 지나 산 정상 바로 아래까지 다다랐다. 말에서 내려 70m 정도를 걸어서 커다란 바위산의 정상에 올라 꼭대기에 오르니 아래로 산과 들이 한눈에 다 내려다보인다. 아찔한 절벽 바위 위에서 한참을 쉬면서 주변 경치를 감상하다 내려왔다. 다시 말 등에 앉아 가파른 산을 내려오는데 오를 때보다 훨씬 힘들었다. 한참을 내리막길을 내려오다 평지를 만나 다시 내달려 산 입구 쪽에서 왔던 길을 따라 내려왔다.
1시쯤 게르에 도착해 불고기 메뉴로 점심식사를 하고 유목민들 생활하는 모습과 말, 가축들을 구경하다 3시경에 다시 마부 형님을 포함한 5명은 첫날 머물던 캠프로 먼저 향했다. 캠프까지 가는 길에 많이 달려보라고 마부 형님이 새로운 길로 안내해 줬다. 보통 승마 여행 시 마부가 함께 다니면 본인의 말이 다치거나 혹사 당할까봐 마부는 기승자가 채찍을 들거나 많이 달리는 걸 싫어한다고 한다. 그런데 마부 형님이 우리보고 얼마든지 달리라고 하고 달리기 좋은 곳으로 안내까지 해준다고 하니 너무 고마웠다. 모두 산기슭의 넓은 풀밭 쪽으로 가서 마음껏 달리고 산을 넘어 6시쯤에 캠프에 도착했다. 뒤따라 차량도 도착해 여행한 7명이 모여 게르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요리사 을지 형님은 다른 차량으로 울란바투르로 떠났다.
게르에 짐을 풀고 오랜만에 찬 개울물 대신 물줄기가 약한 더운물이나마 샤워를 하니 한결 몸이 가볍다. 저녁에 나온 먹음직스러운 몽골 튀김만두는 맛은 좋은데 속이 전부 고기로만 채워져 있어 배가 불러 많이 남겼다. 주변 산책을 하고 게르에 들어왔는데 야외 텐트보다 훨씬 따듯하고 내부가 아주 밝다.
출발 여섯째날 – 2015.06.23
여행 내내 계속 더웠는데 오늘은 구름이 많이 끼고 시원한 게 말 타기 딱 좋은 날씨다. 10시에 도시락을 챙겨 다시카와 3명이 캠프 뒷산 쪽으로 말을 타고 바로 출발했다. 오늘은 캠프 뒷산 너머 있는 초원지대까지 갔다 오는 일정인데 한참을 높은 산언덕을 넘어야 해서 말들이 힘들어한다. 산 중턱에 소들이 많이 방목되어 있고 차량을 이용해 여행하는 외국인들이 많이 지나간다. 산을 넘는데 1시간 이상이 걸려 내려가 보니 넓은 초원지대가 나오고, 4명이 말을 내달려 뛰다 걷다를 반복했다. 넓은 초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아래를 보니 50여 마리의 야크 무리가 풀을 뜯고 있다. 자세히 보니 맨 후미의 야크가 방금 새끼를 낳아 몸을 핥고 일으켜 세워 무리 쪽으로 겨우겨우 따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새끼가 자꾸 주저앉기를 반복해 보는 내가 안쓰럽다. 식사 후 언덕 아래 멀리 보이는 게르를 돌아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캠프 앞 들판에 도착해서 승마여행 마지막이 너무 아쉬운 우리 3명은 말을 타고 여기저기 내달렸다. 나중에 마부 형님이 오셔서 본인이 입던 전통 의상도 입혀주고 몽골식 안장으로 말도 달려 봤다. 얼마 후 인상 좋은 마부 형님은 우리가 탔던 말들을 데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5시에 캠프에서 차량으로 울란바투르로 출발하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소리와 함께 엄청난 소나기가 내려붓는다. 그나마 모든 일정이 끝나고 비가 와서 다행이다. 울란바투르에 도착해 국회의사당 등을 둘러보고 시내 구경을 잠깐하고 모든 일정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6박 7일간의 모든 여행 일정을 너무 잘 챙겨준 가이드 다시카, 샤롤를 뒤로 하고 몽골 초원에서의 가슴 벅찼던 여행을 가슴에 담아 인천행 비행기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