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과 삶
김경섭 KBS 경영본부 수신료국 강남사업지사 차장
KBS의 TV 수신료가 전기요금에서 분리되어 고지되면서 수신료 관리와 민원, 관련 지원 등의 업무가 한국전력공사에서 KBS로 넘어오게 되었고, 늘어난 업무 처리를 위해 KBS는 작년부터 여러 직종의 직원을 각 수신료 지사에 파견해 오고 있다. 수신료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개념만 알고 있었을 직원들이 직접 민원 전화를 통해 시청자와 소통하며, 수신료 관련 업무를 훌륭하게 처리하고 있다. 이번에 만나본 김경섭 차장은 KBS 본사와 지역에서 방송기술 업무를 20년간 해오다 수신료국 업무에 도전했고, 두려움과 걱정을 뒤로 하고 빠르게 업무에 적응해 수신료 업무에 임하며 그동안 느낀 점과 업무에 대해 솔직하게 답년을 해주었다.
자기소개
2006년 공채 32기로 입사해, 올해 벌써 20년 차 KBS 생활을 하고 있는 엔지니어 김경섭입니다. 20년이란 세월 동안 다양한 업무를 담당해 왔는데요, 입사 후 바로 KBS 강릉방송국에 발령받아 TVR 유지보수 및 송출 운영을 3년간 담당했고, 이후 KBS 춘천방송국에서 라디오와 TV 제작 업무(오디오)를 담당했습니다.
2010년 10월부터는 본사로 자리를 옮겨 기술기획부를 거쳐, 시스템구축부에서 파일 기반 제작시스템 구축・운영 업무를 오랜 시간 담당했고, 2024년 11월에 수신료국 파견에 지원해, 현재는 TV 수신료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수신료국에 지원하신 계기
낯선 업무 환경이 두렵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1차 파견자들을 통해 민원 응대가 얼마나 고되고, 힘든지 많은 이야기를 들어 왔거든요. 같은 부서에서 근무했던, 언제나 예쁜 말만 입에 담던 후배는 1차 파견 이후 입이 많이 거칠어졌더라고요. (웃음)
파견 지원한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왜 사서 고생을?”이라는 말이 대부분이었죠. 그럴 땐 “위기에 빠진 KBS를 구해야죠!”라는 농담으로 넘겼지만, 사실은 같은 부서에서 오래 근무하며 느낀 매너리즘과 팀장을 내려놓은 뒤의 거취에 대한 고민이 컸던 것 같습니다.
본사에서 14년을 근무하며 기술기획부 5년을 제외하면 거의 9년 가까이 ‘시스템구축부’에서 유사한 업무를 맡았습니다. 조직 개편으로 부서 이름은 바뀌었지만, 업무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았죠. 언젠간 부서 이동 등 개인적으로도 변화의 기회가 필요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던 거 같아요. 또, 팀장을 맡다가 어느 날 갑자기 같은 자리의 동료로 돌아왔을 때 후배들이 불편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요. 물론 저는 후배들과 잘 지냈다고 생각합니다. (웃음)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때에 ‘2차 파견’ 공고가 나왔고, 망설임 없이 지원했습니다. 오히려 막상 지원하고 배치되기 전까지는 ‘과연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정말 잘한 선택일까?’ 하는 고민이 많았죠. 그래도 지원 사실이 알려진 뒤, 여러 선후배님의 걱정과 응원, 격려가 큰 힘이 되더라고요.
KBS 수신료국 소개
KBS 경영본부 산하 수신료국은 크게 수신료운영부와 6개의 본사 직할 지사로 나뉩니다. 수신료운영부는 수신료 정책 수립과 한국전력공사(한전)와의 협력 등 대외 업무를 담당합니다.반면, 본사 직할 6개 사업지사(강남, 강북, 인천, 경기 동부, 경기 남부, 경기 북부)와 전국 각 지역총국에 설치된 수신료 지사는 수신료 고지 관리, 관련 민원 상담, 수신료 신규 발굴, 수신기술 지원 등 대민 업무를 주로 맡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수신료 고지 관리와 민원 상담 대부분을 한전에서 담당했지만, TV 수신료 분리 고지가 본격 시행되면서 이 업무들이 KBS로 넘어왔습니다.민원량이 급격히 늘어난 만큼, 기존 인원만으로는 대응이 어렵다고 판단한 회사는 직종을 떠나 PD, 기자, 아나운서, 경영, IT, 엔지니어 등 다양한 분야의 직원을 1년 단위로 파견하고 있습니다. 이 파견은 2024년 1차에 이어 2025년 현재 2차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2차 파견으로 KBS 본사 직할 6개 지사 중 하나인 강남사업지사로 배치받았는데, ‘강남’이라는 지사 명칭 때문에, 우리가 흔히 아는 강남(부유한 이미지의 강남) 지역 담당으로 오해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말 그대로 ‘한강의 남쪽 = 강남’ 전역을 담당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강북사업지사’ 역시 한강 이북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서울 전체를 한강을 기준으로 나누어 관리하다 보니 다른 직할 지사보다 인원이 조금 더 많은 편이고요, 현재 강남사업지사에는 약 35명 정도가 근무 중입니다.

“수신료는 KBS의 운영을 위한 공적 재원으로, 법령이 정한 바에 따라 수상기를 소지한 모든 시청자가 의무적으로 납부해야 하는 특별부담금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수신료를 기반으로 KBS는 TV·라디오 방송, 전국단위 송·중계 인프라 운영 및 방송기술 개발, 재난방송주관, 각종 문화 사업, EBS 지원 등 대한민국 유일의 국가기간방송이자 대표 공영방송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본인의 업무 소개
공동주택(아파트, 오피스텔) 수신료 고지 업무와 단독주택, 다세대, 빌라, 상가 등에서 발생하는 정말 각종의 다양한 민원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분리 고지 이전에는 한국전력공사에서 담당하던 업무였으나 현재는 KBS로 이관되어 지사 직원들이 나누어 담당하고 있습니다.
공동주택 관리의 경우, 분리 고지 시점에 마침 ‘공동주택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TV 수신료도 전기, 수도, 가스 요금처럼 아파트 관리비에 포함해 납부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는데요. 이에 따라 각 아파트 단지의 부과/미부과 세대와 시청각 장애 등 면제 세대 등을 종합 관리하여 매월 TV 수신료를 고지하고 있습니다. 공동주택 관리업무는 관리사무소와의 협업으로 이뤄지지만,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민원 업무도 상당한 편이고, 아무래도 담당 지역이 넓다 보니 보통 1인당 약 150개 정도의 단지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직무와는 전혀 다른, 일에 임하는 본인의 마음가짐
저뿐 아니라 직종을 가리지 않고 모든 파견자분이 이곳에서의 첫 한 달은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관련 지식이나 수신료에 대한 개념도 부족하고, 그동안 회사 생활에서 겪어온 일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업무였거든요. 몸도 마음도 고생이고, 잘못 처리한 민원이 구천을 떠돌다 원혼이 되어 더 강하게 돌아올 때는… ‘내가 이것밖에 안 됐나?’ 하는 자괴감(?)마저 들더라고요.
어떤 일이든 첫 기반이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첫 달은 야근을 꽤 많이 했어요. 잔업 때문이 아니라, 업무를 익히고 저만의 업무 관리와 처리 방식 등 루틴을 만드는 시간이었죠. 그 시기에 조금 힘들더라도 체계를 확실히 잡아놓지 않으면 파견 기간 내내 고생할 게 눈에 보였거든요.
그리고 저는 ‘적당히’라는 걸 잘 못 하는 거 같아요. (웃음) 어차피 할 거면 제대로,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잘해보자는 마음으로 임하는 편이에요. 덕분에 몸은 좀 힘들더라도 대신 일에 대한 자신감은 그만큼 빠르게 쌓이는 것 같습니다.
가장 많은 문의를 하는 민원과 그에 대한 대응
가장 많이 들어오는 민원은 ‘TV 등록 말소’와 ‘수신료 환불’입니다. 등록 말소는 실제로 TV가 없는 경우도 있지만, 의외로 TV는 있는데 “KBS는 안 보고 OTT만 본다”라며 수신료를 빼달라는 잘못된 요청도 은근히 많습니다.
TV가 없는 경우에는 일일이 세대를 방문할 수 없기에, 거실이나 안방 등 주로 TV가 놓이는 공간의 실내 사진을 증빙으로 받아 처리합니다. 그런데 단순히 말소로 끝나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환불 요청으로 이어집니다. “저 몇 년 동안 TV 없었으니 환불해주세요”라는 식이죠. 이때부터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러워집니다. 업무 매뉴얼과 제 설명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안 되거든요. 9개월 가까이 수신료 업무를 하다 보니, 민원인이 말씀하시는 상황이 뭔지, 왜 그런 일이 발생하게 됐는지 등의 상황 파악은 빠르게 되는 편인데, 언제나 환불 민원은 저를 어렵게 만드는 것 같아요.
업무의 보람과 힘든 점
각종 민원과 다양한 민원인을 상대하다 보면 힘들 때가 많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보람도 분명히 있습니다. 분리고지 시행 이후 콜센터와 지사별 전화량이 폭주해, 연결이 쉽지 않았습니다. 꼭 필요한 이유로 전화를 거는 분들이라, 받을 때까지 계속 시도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연결이 안 될 때마다 분노 지수가 조금씩 올라가고, 그 분노가 극에 달했을 때 전화가 연결되면 감정이 터져 나오기 마련입니다. “대체 뭐 하느라 전화를 안 받느냐”라거나 “일부러 안 받는 거 아니냐”는 말도 듣습니다.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지만, 그럴 땐 솔직히 감정적으로 지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 속에서도, 어떤 분은 전화 연결 후 “정말 어제부터 계속 전화했는데 받아줘서 고맙다, 그리고 바로 처리해줘서 고맙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했을 뿐인데, 그 순간 저는 무슨 해결사가 된 양 뿌듯하면서도, 동시에 그동안 너무 불편이 발생하게 된 것에 대한 죄송한 마음도 들더라고요.
기억에 남는 민원인의 전화
정말 많은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지사 직원들과 점심시간마다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매일매일 새로운 에피소드에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죠.
그중 떠오르는 게 몇 개 있는데, 제가 지사 배치받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땐데요, TV 수신료 관리를 위해 세대별 부여된 ‘TV 관리번호’라는 고객번호가 있습니다. 전화 연결이 되면 이 고객 번호를 첫 질의 후 전산에 조회하여, 이전에 민원 이력은 있는지, 그동안 TV 수신료 고지/납부는 어떻게 됐는지 등을 파악해야 상담이 가능하죠. 그런데 대부분 이 ‘TV 관리번호’를 모르시고 전화부터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주소로도 검색도 가능하게 되어있는데,
“안녕하세요. KBS입니다. TV관리번호 확인 부탁드립니다.”
“네? 그건 모르겠는데요?”
“그럼, 거주지 주소 부탁드릴게요.”
“아, 여기가 성남시 오야붕로 0길 0이요.”
“…네? 오야붕이요?”
그 순간 ‘이런 도로명이 진짜 있나?’ 싶더라고요. 야인시대의 안재모, 김영철 배우 얼굴이 스쳐 지나가고, 장군의 아들과 관련이 있는 동네인가 싶기도 하고… 역시나 검색도 안 되고 난감하더라고요.
“오야붕으로는 검색이 안 되는데, 주소가 맞으실까요? 도로명 말고 구주소는요?”
“성남시 수정구 오야동 000번지요.”
구주소로 입력하고 나서보니 ‘오야붕로’가 아니라 ‘오야북로’더라고요. 과천의 ‘부림동’을 ‘불임동’으로 알아듣고 ‘이건 동네 이름이 좀 그런데…’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거든요. 제 청력에 좀 문제가 있는 것 같네요. (웃음)
또 요즘처럼 세상이 흉흉하니, 저희 전화를 보이스피싱으로 의심하시는 경우도 꽤 있는 편입니다.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왔는데요.
“안녕하세요. KBS입니다.”
“아, KBS라고는 하네요? 아니 제가 좀 전에 환불해준다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계좌번호를 말했는데, 갑자기 찜찜해져서요. 진짜 KBS 맞죠? 아, 맞다고 하겠죠. 아, 괜히 계좌번호 알려줬어. 2,500원 환불 안 받아도 되는데, 괜히 말했어. 괜히 말했어 아, 찜찜해, 찜찜해”
이렇게 내면의 불안함을 혼잣말로 랩을 하시더니 전화를 끊으셨는데, 웃프면서도 다시 전화 걸어서 안심시켜 드리고 싶어도 막상 방법이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지난 4월 17일수신료 통합징수 방송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재표결에서 가결되어 10월에 시행될 예정인데, 그 후 수신료국은 운명은?
이미 다들 잘 아시다시피, 지난 4월 공영방송의 재원 안정화를 위한 ‘방송법시행령’ 일부가 재개정되면서, 올해 말부터 TV 수신료는 한전의 전기요금과 함께 결합 고지됩니다. 즉, TV 수신료 분리 고지가 본격 시행된 지 1년 남짓하여 다시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셈이죠.
하지만 업무 구조는 과거와 완전히 동일하게 복귀하지는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분리 고지 이전에는 한국전력이 공동주택을 포함한 가정, 상업용 TV의 고지 관리와 징수, 그리고 대부분의 민원 처리를 맡았고, KBS는 수신료 발굴, 수신기술 지원, 기타 민원 처리 역할을 담당했습니다.그러나 이번 통합 고지 시행 이후에는 공동주택 관리와 상당 부분의 민원 업무를 KBS가 계속 담당할 가능성이 높기에 각 지사로 파견되는 인력 규모는 일부 축소될 수 있겠지만, 과거처럼 최소 인력 체제로 운영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TV 수신료
KBS 직원으로서 수신료에 대한 소신
지사로 파견 오고 나서 어느 날 술자리에서 친한 친구가 묻더라고요. “넷플릭스나 유튜브 같은 건 볼 것도 많고, 쿠팡플레이는 로켓배송도 되고 정말 돈 안 아운데, KBS 수신료는 뭘 봐서 내야 하는 거냐?”
친구니까 편하게 던질 수 있는 가벼운 질문이었지만, 순간 말문이 막히더라고요. 방송법 64조나 공영방송 제도와 기능, 재원 마련, 공적 가치 실현 등의 이야기를 과연 진지하게 받아들일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었죠. 결국, 농담으로 “뭘 봐서 내긴! 그냥 나봐서 내!”라고 웃어넘겼지만, 이번 파견은 저에게 수신료의 의미를 한 번 더 깊게 고민하게 만든 시간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전기요금에 함께 부과되어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온 수신료였기에, 수신료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거 같습니다. 오히려 이번 분리 고지가 저를 비롯한 KBS 구성원 모두가 수신료의 가치를 다시 깊이 새기고, 어떻게 하면 국민에게 더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을지를 더 고민하게 만든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마지막 한 마디
비록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수신료 업무를 하면서 늘 마음 한 켠에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요즘은 TV(튜너가 달린 기기)가 아니어도 IP(OTT 서비스)를 통해서도 실시간 방송을 자유롭게 볼 수 있는 시대이지만 현행 방송법은 여전히 ‘TV(튜너가 달린 기기)’를 기준으로 수신료 납부를 규정하고 있다 보니,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과는 괴리가 크다고 느낍니다.
사실 해외 여러 국가에서는 이미 이런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수신료 제도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거나 ‘공공서비스세’ 같은 새로운 방식으로 전환하는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이제 우리도 국민의 다양한 시청 환경과 미디어 이용 행태를 충분히 반영해, 공영방송의 지속 가능성과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제도 개편에 나설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직종을 떠나 각 수신료 지사에서 저와 함께 동고동락하시는 분들 모두에게 언제나 응원을 보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