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디 오는 봄의 기운을 느끼며 대학로 거리를 거닌 독자가 있을지 궁금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의 날씨 또한 소나기 같은 봄비가 내린 후라 후텁지근한 나날은 요원하기만 하다. 지난 4월은 서울 근교 연극이 숨 쉬는 장소를 둘러보았으니 이번 달에는 조금 더 멀리, 시선을 두고자 한다.
문화예술공간에 근무한지도 6년. 안타깝게도(?) 일로써, 취미로써 연극을 대하고 있는지라 (감각 수용은 ‘일로서의 취미’?!) 어쩌면 글을 쓰는 이조차 진정한 취미로써 연극을 즐기는 방법을 알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문득 입사 초기, 연극 관람 후 나름대로의 평을 쓴 리포트 묶음을 선배에게 보였던 일이 생각났다. 작품 스태프는 누구, 배우는 누구, 이야기는 어떤 내용인지 무대와 조명은 어떻게 꾸몄는지, 어떤 점이 인상 깊었고 어떤 점이 아쉬웠는지 등. 지금 읽어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공연 감상문이지만 그 글을 쓸 때는 매우 진지했다. 그 노트를 본 선배는 “지금 이 감각을 잃지 않도록. 평가의 칼날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관객으로서 스스로가 연극을 즐겨야 해”라고 이야기해주었더랬다. 그때는 “당연하지요” 라고 말했지만, 지금 다시 그 말을 듣는다면 왜인지 대답에 자신이 없을 것 같다.
그래서 Go abroad! 이번에는 해외로 눈을 돌려보려 한다.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것은 여행을 떠나 지금 위치에서 잠시 멀어져야 더 쉬운 것처럼 말이다. 너무 주관적으로 설정된 글의 주제인가? 그렇더라도 관심의 끈을 놓지 말아주길. 연극과 공연 축제의 세계 대표급 행사이자 여름휴가의 팁이 될 축제 정보가 있기 때문이다.
종합 예술축제의 메카, 영국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
영국 스코틀랜드의 작은 도시 에든버러. 이곳의 명물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국제 문화예술 축제라는 명예로운 이름 아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아픔이 있다. 매년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를 축제 기간으로 삼고 있는데, 대부분 유럽의 공연 시즌이 10월부터 다음해 9월정도인 것을 생각한다면 세계 속 공연 마니아에게는 정식 공연 시전 전, 여름휴가를 신선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이다. 물론! 이 듣도 보도 못한 공연 축제를 보기 위해 당장 영국으로 떠나라…는 아니다. ‘이런 공연 관객들도 있다’로 가볍게, 부담 없이 여겨주길.
이 권위 있는 예술 축제 기간에는 300여 개의 극장에서 전 세계에서 모인 예술인의 실험적 작품 약 3천 개가 올라간다. 특히 에든버러의 대표 극장인 어셈블리에는 올해부터 3년간 코리안 시즌(Korean Season)이 계획되었다. 심사를 통해 선발되는 다섯 팀의 우리나라 예술단체가 3년 동안의 축제에 정기적으로 공연을 선보이게 되었다 한다.
에든버러 페스티벌의 최고 볼거리는 군악대 연주(Military Tatoo)다. 에든버러 성에서 열리는데, 이곳은 에든버러의 랜드마크로 지역 수호를 담당한 요새의 기능으로 6세기에 지어진 문화유적지라 할 수 있다. 역사가 숨 쉬는 곳, 에든버러 성에서 듣는 스코틀랜드의 전통의상을 입고 백파이프 드럼을 연주하는 우렁찬 군악대의 연주는 유럽 여행 중 본 다른 어떠한 연주와도 비교될 수 없는 특별한 감동이 있을 것이다. 군악대는 각 나라별로 연주를 펼치고 공연의 마지막은 화려한 불꽃놀이로 장식하며 장관을 이룬다.
이 외에 더욱 가깝게 축제를 즐기는 법은 바로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Edinburgh Festival Fringe)을 둘러보는 것이다. 축제의 기간에 정식으로 초청받지 못한 예술가나 단체는 축제가 열리는 로열 마일 거리 곳곳에서 무료로 공연을 연다. 거리를 지나는 모든 사람이 아무런 부담 없이 즐기고 참여할 수 있는, 자연스럽게 생긴 축제다. 어찌 보면 시간이 정해진 공연 일정보다 방문 시간에 상관없이 만날 수 있는 공연이기 때문에 관광객에게 더욱 반갑다. 비록 이름은 변두리, 프린지이지만 그 명성과 축제의 내용은 엄연한 명물이자 메인 스트림으로 자리 잡았다. 올해는 8월 7일부터 31일까지 뜨거운 축제의 여름이 준비되어 있다.
공연계 종사인으로서 한 가지(사실 여러 가지) 부러운 것은, 이러한 축제가 도시의 주요 사업으로 매우 전사적으로 운영되고 관리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종류의 행사들이 있지만 이처럼 대대적으로 움직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위에는 에든버러의 공연 축제만 소개했지만 공식 홈페이지에는 더욱 많은 축제가 예정되어 있다. 4월에는 에든버러 세계 과학축제(Edinburgh International Science Festival), 5월은 상상 축제(Imaginate Festival), 6월 열리는 영화 축제(Edinburgh International Film Festival)와 7월 여름밤은 재즈와 블루스(Edinburgh Jazz & Blues Festival) 축제가 예정되어 있다. 이후 책, 세계 음악과 춤을 주제로 한 축제도 있으니, 거의 1년 내내 축제가 벌어지는 도시다. 작게는 우리나라 공연 축제만 해도 공연장과 그 주변 거리를 성대하게 채우는 공연이 없고, 연극과 무용을 관람하러 온 사람뿐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는 흥겨운 거리 이벤트나 거리 음악 공연도 부재하다. 각각으로 독립되어 있는 소규모거나 통합되지 않는다는 점, 그 매력도 있을 수 있지만 어느 지역의 랜드마크로 세계 속 경쟁력을 갖는 공연 축제가 없다는 점은 개인적으로도 매우 아쉽다.
봉주르 프랑시스, 프랑스 아비뇽의 연극 축제
아비뇽. 글 쓰는 이에게 이 도시의 첫 이미지는 세계사 시간에 배운 ‘아비뇽 유수’의 장소였다. 생각만 해도 먼지 나고 (왜인지) 굴욕감과 당혹스러움이 공감되는 역사의 장소였다. 그리고 그나마 조금 더 예술적이라고 할 수 있는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이 두 번째 이미지로 떠오르는 곳이다. 독자들은 어떠한가.
프랑스 남동부의 작은 도시 아비뇽에서 7월에 열리는 예술 축제는 원래 지역 주민을 위해 수준 높은 연극 작품을 선보이자는 소소한 목적으로 1947년 시작되었다. 프랑스 연출가이자 배우 장 빌라르가 아비뇽 교황청의 뜰에 설치된 야외무대에서 연극 세 편을 올린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국제적 축제의 전신이다.(축제가 정착할 수 있도록 한 이 세 편의 공연은 W.셰익스피어의 <리처드 2세>, 모리스 클라벨의 <한낮의 테라스>, 폴 클로델의 <토비트와 사라>라고 한다.) 처음에는 연극을 중심으로 축제가 꾸며졌는데 1960년대 이후부터는 무용과 음악 등 공연 예술분야로 범위를 넓혔고 최근에는 전시회와 문학, 영화 등의 종합문화예술을 다루게 되었다. 아비뇽 페스티벌(Festival d’Avignon) 또한 공식 무대에서 이루어지는 공연(In Festival)과 그 밖의 인근에서 자유롭게 벌어지는 프린지 형식의 공연(Off Festival)이 함께 진행되어 공연 관람객은 물론 지역 관광객의 발길까지 사로잡는다.
특히 아비뇽 인 페스티벌에서는 주최 측의 엄정한 심사로 공식 작품이 정해지는데, 세계 초연 또는 프랑스에서 공연되지 않은 40여 편의 작품으로 선보여진다. 이곳에서 데뷔하는 공연 단체나 개인은 작품의 퀄리티를 검증 받음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세계무대에 진출한 셈이다. 인 페스티벌에 공연된 작품은 세계 곳곳의 무대에 초청되어 보다 많은 관람객을 만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공연하는 크고 작은 해외작품들 중에 ‘아비뇽 페스티벌 공식 초청작’이라는 타이틀을 본다면 그 공연의 진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 축제 일정은 7월 25일부터 8월 4일까지다.
영문학과 극작의 처음과 끝이라 할 수 있는 대문호 W.셰익스피어를 기념하는 페스티벌은 세계 곳곳에서 저마다의 자긍심으로 열리고 있다. 그중 매일 매일이 ‘셰익스피어 축제’인 곳은 영국의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이다. 1599년 설립되어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상연되는 주 공연장으로 사용되었다. 올해는 4월부터 9월까지 셰익스피어의 공연을 만나볼 수 있다.
영국으로, 프랑스로 미리 가상 여름휴가를 살짝 다녀왔다. 연극이나 공연예술에 심취하지 않더라도 마침 휴가 기간에 열리는 해외의 유서 깊은 공연예술 축제의 현장이 궁금하지 않은가? 방문하지 않아도, 지나쳐도 상관없다. 하지만 이러한 축제가 있고 세계 문화예술을 선도하는 공연이 열린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다면, 언젠가 한 번쯤 경험해보아도 좋을 인생의 이벤트가 될 것이다.
5월의 연극소개
들어는 봤나, 헤라클레스가 아닌 페리클레스!
SAC CUBE 2015 연극 <페리클레스>
셰익스피어의 후기 낭만주의 경향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손꼽히는 <페리클레스>는 <로미오와 줄리엣>, <리차드 3세>, <햄릿> 등의 작품과 더불어 당대에 엄청난 인기를 구가한 레퍼토리였다. 불완전한 대본 때문에 전 세계적인 난제(難題) 공연이며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에 단 한 번 공연되어 다른 셰익스피어에 비해 절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지만, 이 보석 같은 이야기를 예술의전당이 상상력을 보태 다시 꺼내든다.
<페리틀레스>는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페리클레스가 모험과 수난이라는 인생의 큰 파도에 맞서며 겪는 화해와 삶의 이야기로 내용도 낯설지 않은 사실주의 판타지 로맨스극이다. 정치와 시대를 다룬 기존 유명 작품들과 달리 수려하고 낭만적인 문체가 돋보이며 현대인에게까지 통하는 보편적인 정서가 담겨있는 것이 특징. 또한 해설자 고우어와 노년의 페리클레스 역할로 활약하는 ‘연극배우’ 유인촌의 진면모를 무대에서 다시 만날 수 있는 의미 있는 연극이다. 페리클레스의 운명을 지휘하는 이는 연출가 양정웅. 셰익스피어의 고장 영국의 바비칸센터와 글로브극장 등 셰익스피어 축제에 공식 초청된 셰익스피어 전문가다.
일정 : 5.12(화)~5.31(일)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문의 : 02-580-1300
원작 : 윌리엄 셰익스피어
연출 : 양정웅
출연 : 유인촌, 최우리, 김은희, 이국호, 전중용, 한윤춘, 김대진, 정재우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