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음악 돌아보기 – 3 : 세계의 오케스트라들

클래식음악 돌아보기 – 3 : 세계의 오케스트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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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내한공연을 하는 오케스트라들의 홍보 문구에서 ‘세계 3대 교향악단’이라거나 ‘그라모폰 지(誌) 선정 세계 최고 오케스트라’ 등의 수식어를 만난다. 뉴욕 필하모닉,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등 미국의 유명한 다섯 오케스트라들을 두고 ‘빅 파이브’라고 하기도 한다. 이런 수식어는 정당한 것일까? 누가 어떻게 이를 정하는 것일까? 이는 좋은 교향악단이 무엇인지에 관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림 1]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 Ranald Mackechnie
[그림 1]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 Ranald Mackechnie

좋은 교향악단의 기준들
좋은 교향악단은, 두말할 필요 없이 연주를 잘하는 악단이다. 하지만 연주를 잘한다는 것이 참 모호한 표현일 수밖에 없다. 음악이나 예술은 백 미터 달리기처럼 측정 가능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야구나 축구처럼 두 팀이 승패를 가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평론가나 관객들은 연주를 듣고서 연주가 훌륭하다, 그렇지 않다, 등의 평가를 내린다. 어떤 언론들은 연주회에 별점을 매기기도 한다. 이것이 쌓이고 쌓여 공감대를 이루고 이것이 뚜렷한 성과(가령 음반이나 티켓 판매 등)를 보일 때 우리는 훌륭한 악단이라고 평가한다. (열 번 중에 한 번 잘하는 것은 잘하는 것이 아니다.)
연주를 꾸준히 잘하려면 오케스트라만의 성격과 특성이 중요하다. 기술적으로 얼마나 완벽한 연주를 하느냐, 독자적이면서도 보편성을 지닌 사운드를 가지고 있느냐 등이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이는 음악 미학에 관한 문제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훌륭한 지휘자가 있어야 한다. 지난번에 말했듯이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관계는 불가분이라고 할 만큼 밀접하기 때문이다. 나쁜 지휘자 아래에서 좋은 연주를 하기란 무척 어렵다. 교향악단의 지휘자는 대개 음악감독(또는 수석지휘자)와 수석객원지휘자, 기타 객원지휘자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들과의 음악 만들기가 쌓여서 오케스트라의 스타일과 연주 수준을 결정하게 마련이다. 협연자 역시 교향악단의 음악회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훌륭한 연주자를 부르기 위해선 돈도 필요하지만 악단이 쌓은 명성도 필요하다.
단원들 개개인이 훌륭한 연주자여야 하는 것은 필요조건이다. 그들이 함께 모여서 지휘자, 협연자와 좋은 음악을 만들 만큼 앙상블이 갖춰져야 한다. 좋은 단원들을 모아서 교향악단을 만들어도 5년, 10년 만에 좋은 소리를 만들 수는 없다. 교향악단의 핵심적인 레퍼토리를 몸에 익히고 모든 구성원들이 서로의 음악적 스타일을 알게 되기까지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림 2]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Vaclav Jirasek
[그림 2]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Vaclav Jirasek

이상이 순수하게 교향악단만의 인적 구성을 이야기한다면, 이들을 떠받치는 조직(사무국) 역시 중요하다. 사무국이 무능한 악단이 세계적인 악단일 수 없다. 단원들과 사무국의 관계는 악단마다 다르지만, 사무국이 있어야 공연을 무대 위에 올리고 홍보를 하며 스폰서를 유치할 수 있다. 요즘처럼 민간 후원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시대에 사무국의 마케팅/스폰서 부서는 미국의 경우 50명에 육박할 만큼 큰 경우가 많고, 단원 숫자에 육박하는 사무국 인원이 자리 잡고 있는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사무국이 있어야 훌륭한 공연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매개 역할을 잘할 수 있다.
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결국 돈(예산)이다. 좋은 음악가와 직원들을 고용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공연을 널리 알리고 스폰서를 찾는 것도 돈 없이는 할 수 없다. 이 돈은 대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곧 시민의 세금)이거나, 기업이나 개인의 후원이거나, 공연 보러 가는 이들이 내는 티켓값이다. 이 셋의 비율은 대륙마다, 나라마다, 개별 악단마다 다 다르지만 유럽의 경우 공공의 지원이 많은 편이고, 미국은 공공지원은 거의 없이 기업이나 개인의 후원이 중요하다. 일류 악단의 경우 티켓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개 40~50% 전후이다.
크게 보아 이 삼박자가 잘 맞아떨어지면 대개 일류 교향악단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들의 경우 1년에 약 100회 전후의 정기공연(영어식 표현으로는 subscription concert, 곧 신문을 구독하듯이 티켓을 구입하여 공연을 관람하는 형태를 말하며, 일회성 관람보다는 지속적인 관람을 하는 청중을 기본적인 대상으로 삼는다)을 무대에 올린다. 이 정도 공연을 올리지 않고 좋은 연주를 하기란 쉽지 않은데, 이는 대개 연간 30주 이상의 활동을 한다는 의미고 바꿔 말하면 이 정도의 기간은 함께 연주를 해야 좋은 음악적 앙상블이 유지된다는 뜻이다. (국내 대부분의 오케스트라가 1년에 십여 회 정도의 정기연주회를 개최하고 있는데 이 정도 횟수로는 제 아무리 좋은 지휘자나 연주자가 있어도 훌륭한 공연은 어렵다고 봐야 한다. 이는 결국 수요의 문제이기도 하다. 사막에서 혼자 음악을 연주할 수는 없다.)
100회 남짓의 공연을 통해 교향악단은 고전주의부터 후기 낭만주의까지를 주요 레퍼토리로 삼고, 바로크 음악과 현대음악까지 음악사를 아우르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게 된다. 물론 20세기 후반 들어서 바로크음악이나 고전주의 시기 음악에 대한 주도권이 이를 전문으로 하는 고음악 앙상블로 넘어갔기 때문에 무게중심이 뒤로 이동한 경향이 있지만 레퍼토리의 다양성은 역시 좋은 교향악단의 또 다른 기준이다.

[그림 3]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 Matthias Creutziger
[그림 3]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 Matthias Creutziger

한편으로 ‘주특기’도 있어야 한다. 특정 국가나 작곡가 레퍼토리를 잘 연주한다거나 독특한 개성이 있어야지, 남들과 비슷비슷한 음악을 해서는 좋은 악단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대개의 경우 자국 작곡가 음악에 강점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독일-오스트리아, 러시아, 체코, 프랑스의 악단들이 대부분 그렇다. 하지만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키기도 한다. 영미 악단들은 자국 작곡가가 그리 많지 않았기에 오히려 다양한 레퍼토리를 습득했다.
또한 좋은 음악이란 기준에는 좋은 음향적 조건도 필요하기에, 외부적 요인이긴 하지만 상주 공연장의 퀄리티도 교향악단의 평가에 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우리가 아는 명문 악단의 본거지들은 대부분 빼어난 음향으로 이름 높은 곳이다. 자리를 가리지 않고 빼어나고 정확한 음향을 들려주는 베를린 필하모니, 오스트리아의 황금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휘황찬란한 인테리어와 이에 상응하는 음향을 가진 빈 무지크페라인, 울림이 풍부한 암스테르담의 콘세르트헤보우, 미국 최고의 음향을 들려준다는 보스턴 심포니 홀 등이 그렇다. 이런 공연장의 음향적 특성은 오케스트라의 사운드 형성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본거지에서만 공연을 개최하기엔 글로벌한 시대다. 해외 투어를 다녀서 이름을 알리고 수익을 올리며, 음반을 판매하는 활동도 중요하다. 음반산업이 사양세이긴 하지만 여전히 (음원을 포함하여) 음반은 중요한 활동 수단이고, 자체적으로 음반을 만드는 교향악단도 많다. 여기에 베를린 필의 디지털 콘서트홀처럼 인터넷 기반으로 공연을 실황 또는 지연 중계하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조류가 되었다.

[그림 4] 암스테르담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 Simon van Boxtell
[그림 4] 암스테르담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 Simon van Boxtell

세계 정상의 교향악단들
이런 요소들을 종합해 보았을 때 대체적으로 베를린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 암스테르담 로열 콘세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 이 셋을 현재 최고로 꼽는 것에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모두 최고의 음악가들이 모여서 개성적이면서도 화려한 소리를 내는 악단들이고, 지난 세월 동안 쌓아온 명성을 지켜내고 있다는 것도 중요하다. 앞서 좋은 악단이 만들어지기까지 긴 세월이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거꾸로 좋은 악단이 망가지는 것은 생각보다 쉽다. 이는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인데 아마도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일 터이다. 나쁜 지휘자가 온다거나,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경영이 어려워져 좋은 단원들이 떠난다거나 하는 이유로 악단은 쉽게 무너질 수 있다. 그래서 40년 전에는 뛰어난 악단으로 꼽혔을 미국의 뉴욕 필하모닉이 지금은 그렇게 평가받을 수 없고, 뉴욕 필, 필라델피아, 시카고 심포니, 보스턴 심포니,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등 다섯 악단을 일컬어 ‘빅 파이브’라고 했던 것이 이제는 유효하지 않다는 말이 나온 지 오래다. 지금은 샌프란시스코 심포니나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을 위해 둘은 빼야 할 것이다.

[그림 5]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 Gert Mothes
[그림 5]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 Gert Mothes

영국에서도 한때 영화를 누렸던 로열 필하모닉이 지난 이삼십 년간 고전을 면치 못하는 사이, 사이먼 래틀과 안드리스 넬손스가 거쳐 간 버밍엄 심포니나 마크 엘더가 오랫동안 맡고 있는 할레 오케스트라가 런던 심포니와 함께 주요한 악단으로 부상했다. 이반 피셔가 창단하여 30년 넘게 이끌면서 뛰어난 호흡을 보여주는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헝가리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체코 필하모닉과 함께 구 사회주의권의 세계적인 악단으로 인정받고 있다. 오케스트라의 천국 독일에선 동서독 통일 이후 구동독 쪽의 악단들이 더 시야에 들어온 셈인데,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등이 뛰어난 지휘자들과 함께 깊이 있는 소리를 만들고 있고,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등 방송국 산하의 오케스트라들이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필자는 이 악단들이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난 악단들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이 역시 주관적이며 설사 객관적이라고 할지라도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 교향악단도 기업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선 끊임없이 혁신과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하며, 이를 못하면 금세 관객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된다. 아시아의 교향악단들 중에선 NHK 교향악단이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서울시향이 지난 10년간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위에서 언급한 기준들을 충족시키기엔 아직 미흡한 점이 많다. 최근의 논란들은 세계적인 교향악단을 하나 갖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달의 추천공연
<정명훈&서울시향의 브람스 이중협주곡>
10. 16(금)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6. 10월추천공연두 명의 뛰어난 협연자가 필요한 브람스 이중 협주곡은 좋은 연주를 실연으로 만나기 쉽지 않다. 서울시향의 악장으로도 활약 중인 스베틀린 루세브와 이탈리아 산타체칠리아 오케스트라의 수석인 루이지 피오바노는 정명훈이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음악가들이다. 후반부에 연주하는 버르토크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은 협주곡보다는 관현악곡이긴 하지만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개인기가 요구되는 곡이다. 정명훈과 서울시향으로서는 10년 만에 연주하는 곡인데 그동안 쌓은 실력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부다페스트 관광 <영웅 광장 일대>
7. 영웅광장페스트의 중심거리인 언드라시 대로를 따라 동쪽 끝까지 가면 영웅 광장이 나온다. 건국 1천년을 맞아 건설한 이 광장에는 헝가리로 부족을 끌고 건너온 일곱 명의 족장들이 가브리엘 대천사 아래 말을 타고 서 있고, 뒤로는 1천년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들의 동상이 서 있다. 영웅 광장 좌우편에는 순수회화 미술관과 현대미술관이 서로 마주 보고 서 있는데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키는 순수회화 미술관은 개보수 공사 중으로 이곳의 소장미술품들은 부다왕궁의 내셔널 갤러리로 이전된 상태다. 영웅 광장 뒤편에 시민공원이 펼쳐져 있는데 거기엔 100여 년 전 박람회를 위해 지은 버이더후녀드 성과 세체니 온천이 있다. 세체니 온천 근처에는 부다페스트에서 음악을 공부한 작곡가 안익태의 동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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