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주산이자 우리나라의 수도 안에 명승지(사적 및 명승 제10호)로 지정된 북악산! 북악산은 북한산의 남쪽 지맥의 한 봉우리에 해당하며, 남산에 대칭하여 북악이라고 부른다. 청계천의 발원지이기도 한 북악산에는 208종의 식물과 81종의 나무와 도롱뇽과 개구리 송사리들이 깃들어 살며 조화를 이루어 수도 서울의 명승지로 손색이 없다.
사람들은 북악산을 명승지라고도 부르고 경승지라고도 부르는데, 개념상 명승지는 인공이 가해지지 않은 자연의 경관만으로 지정된 것으로 식물, 동물, 계곡만으로 이루어진 곳이고, 경승지는 경치가 빼어난 지역으로 명승지보다 포괄적이다. 예를 들면, 대한팔경이나 관동팔경이 경승지이다.
이번이 세 번째 걷는 길이다. 지난 두 번은 야경이 좋아 밤에 걸어 보았지만, 길 곳곳을 소개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부암동 숲 속을 들어갈 수가 없었다. 낮에 다시 걸으면서 보니 밤에는 쉬고 낮에는 보라고 있는 것 같아서 낮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게 하는 눈의 존재가 고맙기 그지없다.
먼저 길상사에 들르기 위해 선잠단지를 오른쪽으로 끼고 돌았다. 길의 초입은 평범한 상가 건물이 몇 동 보이더니 이내 견고한 성 같은 담을 자랑하는 가옥이 즐비하다.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를 생각하며 한참을 걷노라니 40년째 자기 번지를 지키고 있는 성북동 비둘기집이 하나 보였다. ‘북악슈퍼’ 그 앞에는 열심히 모이를 쪼는 등 굽은 비둘기도 보였다.
빛바랜 단청에 ‘삼각산길상사’라는 검은 글씨가 두드러져 보였다. 공덕주 길상화(김영한)님은 법정 스님께 음식점이던 대원각을 불도량으로 써 주기를 청했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무대의 막이 오르듯 마침내 법정 스님은 길상화님의 청을 받아들였다. 10년이란 세월 동안 몇 번의 막과 장이 바뀌어 1997년에서야 ‘길상사’라는 현재의 이름으로 태어났다. 길상사에는 어느 절에나 있는 대웅전이 없었다. 가장 큰 법당으로 보이는 곳은 극락전이었다. 꽤 이른 시간인데도 불자들이 많았다. 인생사 무슨 사연이 그리도 많은지!
경내는 무척 깨끗하고 아늑했다. 사찰의 규모가 작아서 아늑하기도 했지만 본래의 용도를 감은 눈 속에 떠올리며 한 발자국씩 옮기는 발걸음에 한 여인의 숭고한 사랑이 느껴져서 더욱 애절하고 고즈넉했다. 경내로 들어서면 바로 맑은 샘물을 마실 수 있도록 한 것과 초입에 탁자와 의자, 화장실이 있는 것은 아마도 불자가 아니더라도 지나가는 나그네의 마음을 헤아려서가 아닐까 싶다.
오밀조밀한 길상사 둘러보기를 마치고 북악산 둘레길을 걸을 채비를 하고 다시 걸음질을 시작했다. 또다시 궁전 같은 저택들을 지나고 10여 분 정도 걸으니 북악산 둘레길로 들어서는 팔각정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나왔다. 여기까지 오는데 잘못하면 삼청터널로 빠지기에 십상이니까 길가의 이정표를 잘 봐야 한다. 길은 흙길과 나무마루길, 굵은 고무줄을 엮어서 깔아놓은 길, 이렇게 세 종류의 길이 지형에 맞추어 용도에 맞게 번갈아가며 이어졌다. 한 사람이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길, 두 사람이라면 팔짱을 껴야만 걸을 수 있는 길, 이런 길을 일러 오솔길이라고 하나보다.
새벽까지 비가 내린 후라서 나뭇잎에 맺힌 빗방울이 영롱하다. 걷고 있는 길 바로 옆에는 늘씬한 S라인 여성의 몸매 같은 매력 있는 북악 스카이웨이가 있건마는 우거진 숲으로 인해 길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간혹 차 소리가 들리고 어쩌다 키 작은 나무나 풀들이 있는 곳에서 돌아보면 손에 닿을 듯이 가까이 있는 아스팔트 길이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유유자적 걸으며 들꽃도 보고 사진도 찍으며 주말을 만끽하노라니 등줄기에 촉촉하게 베인 땀마저 기분 좋았다.
어이쿠, 코 바로 앞에 전선이 전봇대에서 이탈해 덜렁거리고 있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언덕 아래 정글처럼 얼크러진 숲을 감상하며 걸었다. 헌데 이번에는 제대로 걸렸다. 길을 가로질러 쓰러진 나무를 못 보고 잘못 디뎌서 곡예를 하다가 기어이 넘어지고 말았다. 얼마 전에 온천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지나간 태풍 볼라벤의 짓거리임이 틀림없다. 마주 오시던 남자분이 깜짝 놀라 일으켜 세우시며 걱정을 하셨다. 이 나이에도 아픈 것보다 창피한 게 먼저였다. 무릎과 손바닥이 벗겨져 쓰라렸지만, 얼른 일어나 아무렇지도 않은 척 걸어가 아무도 없는 데서 혼자 중얼중얼(욕)했다.
팔각정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평창동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곳곳에 있는 쉼터와 잘 정비된 식물들, 게다가 하늘을 찌를 듯이 키가 크고 인상이 고약한 장승도 있다. 일반 음식점치고는 꽤 볼거리가 쏠쏠했다.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것은 3개의 우체통이었다. ‘느린 우체통’이 우체통의 특징은 편지를 부치는 날로부터 1년 후의 오늘에 받아 볼 수 있단다. 느린 우체통은 우체국에서 운영하는 정식 우체통이 아니라 팔각정을 운영하는 업체가 고객들에게 무언가 특별한 서비스를 하고자 착안한 것이란다. 느린 우체통을 이용하려면 팔각정 2층 레스토랑에 문의하면 친절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단다. 느린 우체통을 이용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전하는 것도 좋겠지만, 나 자신에게 편지를 써서 1년 후에 받아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우송료는 일금 3.000원.
부암동 숲을 나와 다시 북악스카이웨이 옆길을 걸었다. TV 드라마에서 커피프린스 1호점으로 나왔던 산모퉁이 찻집을 지나 창의문 삼거리로 내려왔다. 창의문 삼거리 건너 오른쪽에는 윤동주 시인의 언덕으로 오르는 길이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횡재를 한 셈이다. 시인의 언덕은새겨진 대리석이 박혀 있었다. 누가 그것을 왜 만들어서 박아 놓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런 장식이 없는 넓은 잔디밭이었다. 새파란 잔디 속 바닥에 <시인 윤동주의 영혼의 터>라고 글자들 사이에 일본어가 섞여 있었다. 풀리지 않는 의문을 안고 조금 올라가니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새긴 바위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참 허전하고 쓸쓸한 곳이었다.
드디어 사직 공원이다. 장장 6시간의 걸음질을 마칠 시간이다. 오늘 걸은 거리는 약 14km, 정상적으로 걸으면 4시간 거리다. 여러 곳을 거치는 동안 중간 중간에 마실 물이며 화장실은 충분히 해결이 되는 길이었다. 이 길은 무지개색의 양파 껍질을 까는 것만 같았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밤에 걸으면서 야경을 찍은 사진을 실수로 다 지워버린 것이다. 아뿔싸!
교통 정보
전 철 : 4호선 한성대역 하차, 6번 출구로 올라와서 50m 전방에 길상사 셔틀버스 정류장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 까지 1시간 간격으로 운행
버 스 : 초록색 1111, 2112번 승차 3번째 정류장 하차 -> 길상사(전철역에서 걸어서 20분)식사 정보
음식점 : 팔각정(한식, 양식), 삼청동(북 가든, 옛날손만두집)
복 장 : 트래킹화에 긴바지 ‧ 긴소매의 옷, 운동화와 평상복도 O.K
도움주신 카페: 다음카페 [나를 찾아 길떠나는 도보여행]
http://cafe.daum.net/walkabouts
< VOL.202 방송과기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