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호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주관방송사업단 기술기획 매니저
광주세계수영선수권이 지난 7월 28일에 그 막을 내렸습니다. 갑자기 날아든 풀기 어려운 숙제와도 같았던 15개월간의 짧고도 긴 여정을 이 자리에 풀어보고자 합니다.
주관방송사로 선택되기까지
작년 5월 중계부로 복귀하자마자 광주세계수영선수권 대회의 주관방송사 프로젝트를 맡게 됐습니다. 대형 프로젝트였던 만큼 압박감과 부담감, 걱정이 뒤섞인 감정으로 사업의 구성을 살펴봤습니다. 그동안 MBC가 해본 적 없었던 일이었지만, “우리가 못 할 것도 없지”라며 왠지 모를 자신감은 있었습니다.
주관방송사 사업권 획득을 위해선 주관방송사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다는 근거 자료를 만들어 FINA(세계수영연맹)에 제출해야만 했습니다. 우선 전체적인 아웃라인을 잡고 어떤 맥락으로 구성해야 할지 아이디어 회의를 거친 후, 몇 번의 수정을 거쳐 최종 계획안을 세웠습니다. 이 작업만 거의 며칠은 걸렸던 것 같습니다. 아웃라인에 따라 국제신호 제작 계획, 인력운용계획, IBC/TOC 설계 등 주관방송사로서 수행해야 할 밑그림을 기획하고 세부적인 계획을 만들었습니다. 결국, 몇 주 동안 야근까지 감행하며 제안서를 완성하여 FINA에 제출했습니다. 대답을 듣기까지 기다림의 시간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긴 시간 동안 FINA는 아무런 소식을 전해주지 않았습니다. ‘제안서에 문제라도 있나? MBC가 못 미더운 건가?’라는 불안한 마음도 없진 않았습니다. 한편으론 시원섭섭하면서도 답답한 심정이 뒤섞인 기다림의 시간이었습니다.
여름에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중계를 다녀온 뒤 9월 중순에 광주에서 FINA 사무총장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때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니 중국 항저우에서 최종협상을 하자’는 말을 들었습니다. 80% 이상은 합격인 셈이었습니다. FINA가 언급했던 포인트들을 다시 다듬는 작업을 하며 항저우 미팅을 준비했습니다.
중국 항저우에서의 최종협상은 순조롭지만은 않았습니다. 좀 더 완벽한 국제신호 제작을 위해서 여유로운 예산 확보는 절대적이었지만, FINA는 최소 비용으로 대회를 치르고자 했습니다. 예산을 더 받아내야 하는 MBC와 사업 예산을 조금이라도 더 깎아내려는 FINA와의 줄다리기 협상이 이어졌고, 8시간의 마라톤협상 끝에 최종 사업권을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월나라의 본거지 항저우에서 MBC와 FINA는 미묘한 신경전과 협상이 오간 끝에 한배를 타게 됐습니다. 역시 지역의 기운이 있는 건지, 오월동주(吳越同舟)라는 말이 절로 생각나는 밤이었습니다.
산 넘어 산 ‘국제방송사회의(World Broadcaster Meeting)’
국제방송사회의(WBM)는 주관방송사와 조직위원회가 방송권자(Rights Holding Broadcasters)에게 제공할 호스팅 서비스를 소개하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방송권자들의 요구사항을 청취하고, 개별방송사의 중계 제작(Unilateral Production)을 위한 개별 미팅을 갖기도 합니다. 주관방송사 계약을 맺고 나니, 국제방송사회의가 당장 3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예정된 일정보다 한 달이나 미뤄진 것이어서 더 이상 미룰 수도 없었습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바로 회의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주관방송사 제안서와 이전 대회 자료를 기준으로 배포 책자(Broadcaster Manual)와 발표 자료를 완성하고 나니 어느새 회의가 코앞이었습니다. MBC가 전면에 소개되고, 국제신호 제작과 IBC 운영에 관한 설명회가 진행됐습니다. 회의에서 각 방송권자의 요구사항을 듣고, 개선점을 생각해 보면서 이번 프로젝트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대회 준비와 방송 서비스 청약
FINA와 4차례에 걸쳐 대회가 열리는 장소(Venue)를 찾아 현장 답사를 진행했습니다. 경기장의 카메라 위치 확보, 특수카메라 설치 계획, 전력과 회선 인프라 구축 방안 등 끊임없는 논의와 협의가 이어졌습니다. 대회 준비와 동시에 방송 서비스 청약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국제대회인 만큼 전 세계의 많은 방송권자(RHB)가 주관방송사 서비스를 청약했고, 그중에 시간대가 같은 일본의 TV아사히와 중국의 CCTV는 대규모 인력과 장비를 파견했습니다.
순조롭게 일이 잘 풀려간다 생각하고 있을 때쯤, 아니나 다를까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문제가 터지고야 말았습니다. 방송 서비스 청약이 마무리될 때쯤, 미국의 NBC가 스페셜 요청을 해온 것입니다. IBC와 경기장 간 회선은 주관통신사인 KT가 담당하기로 했으나, NBC는 KT 회선이 아닌 싱글모드 광케이블을 포설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엄연히 원칙에 어긋난 일이었기 때문에 쉽게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NBC만 KT 회선보다 저렴한 광케이블을 포설해 줄 경우, 비싼 KT 회선 비용을 지불한 다른 방송사들과의 형평성에 어긋남은 물론, 기본적인 신뢰가 깨지게 됨은 당연한 이치였습니다. 그래서 정중히 NBC의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힘센 자는 바로 ‘자본’을 많이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NBC는 다른 방법으로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전했습니다. 방송권료를 가장 많이 지불하는 방송사로 FINA 입장에서는 ‘큰 손’, ‘갑 of 갑’이었던 NBC가 FINA에 압력을 넣은 것입니다. 결국, FINA는 우리에게 NBC의 요구사항을 들어줄 것을 부탁해 왔고, NBC는 기본 서비스 항목에도 없는 광케이블을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주관방송사의 원칙을 고수할 것인지, NBC만 특혜를 줄 것인지 많이 고민했었습니다. FINA 방송 컨설턴트와 언성을 높여가며 다투기도 했습니다. ‘돈’을 많이 낸 NBC가 이기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는 없었습니다.
‘시작이 반이다’ 국제신호 제작의 시작과 마무리
우여곡절 끝에 대회가 다가왔습니다. 중계부엔 “개막식만 끝나면 국제신호 제작의 절반은 끝났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준비 기간 정신없이 바쁘지만, 막상 방송이 시작되고 나면 잘 흘러가는 게 국제신호 제작입니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분야가 바로 국제신호 제작인 것 같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 물론 대회 중간에도 많은 문제가 있긴 했습니다. 초반에 코멘터리석 CATV 딜레이 문제를 시작으로 전원 사고와 무선카메라 노이즈 등 크고 작은 문제가 생겼지만 신속한 대처로 별 탈 없이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아티스틱 수영은 수영선수권 최초로 4K로 제작했습니다. 사업권 획득을 위해 4K 제작을 선언했지만 아무도 4K 신호를 수신하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TV아사히와 CCTV에서 4K 신호를 수신했고, 본국에서 라이브 중계를 했습니다. TV아사히는 4K 제작 관련 특집 프로그램까지 편성해가며 주관방송사의 4K 제작을 홍보해주기도 했습니다.
인원 : 515명
라이브 제작 : 295시간
방송권자(RHB) : 23개 방송사
중계차 : 6대
카메라 : 122대
LSM : 22대
숫자로 본 주관방송사
계약 당시만 하더라도 사업권을 따낼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준비하던게 1년 전입니다. 끝나고 보니 짧은 시간 동안 숨 고를 새도 없이 많은 일들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FINA도 처음엔 우리를 100% 신뢰하지 못했지만 대회가 끝나고 나서는 우리의 제작 능력을 인정해줬습니다. 제 입으로 말하기엔 부끄러운 일이지만, 올림픽 주관방송사(OBS)보다 잘했다는 칭찬까지 들었습니다.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주신 스탭분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맡은 일이라 부족한 점도 많았고, 실수도 많았습니다. 요령이 없어 야근도 밥 먹듯이 했고, 협상력과 친화력이 부족해 조직위와의 협의 과정에서 감정 소모도 심했습니다. 하지만 순간순간 주어진 일에만 집중하려 했고, 이러한 집중력이 쓸데없는 긴장을 사라지게 하는데 도움이 됐던 것 같습니다. 큰 대회일수록 조직위와의 마찰과 여러 이해관계로부터 오는 압박감은 당연하다 생각하며 모두가 오케이 할 수 있는 선에서 협상을 진행하도록 노력했습니다.
‘완벽’함을 추구하기보다는, 모두가 ‘만족’할 수 있도록 주관방송사로서의 역할을 다 했고, 그 결과 FINA도, 해외의 방송사들도 웃으며 이번 대회를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저 또한 이렇게 큰 대회의 방송을 준비하며, 기획부터 운영까지 깊숙이 관여할 수 있는 행운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저의 부족한 점과 장점들을 객관적으로 알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도 성장의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를 믿고 좋은 기회를 맡겨주신 오영철 국장님과 정희찬 부장님께 감사드리고 오랜 시간 무더위와 태풍 속에서 함께 동고동락했던 본사와 지방사 그리고 C&I의 선후배님께도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