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미디어 시장은 격변의 시기를 맞이했다. 국내 미디어 산업은 재무적 악순환과 글로벌 경쟁의 피폐함 속에서 대내외적 악재와 변수가 영향을 미치며 그야말로 위기 중의 위기였다. 2025년도에도 상황은 나아지기보다는 더 악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학계와 산업계 관계자들은 ‘미디어 산업은 언제나 위기가 아니었던 시절이 없었다’라며 반농담처럼 이야기를 꺼내지만, 체감 수준은 예전과 크게 달라서 올해보다는 내년이 더 고비가 될 것으로 입을 모아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처럼 생존의 갈림길에 선 위기의 상황에서도 다행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2024년 미디어 사업자들의 신기술 활용에 대한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더구나 올해는 OpenAI Sora를 기점으로 국내외 시장에서 비디오 생성형 AI를 적용한 사례들이 등장하며 미디어 제작에서 생성형 AI의 본격적인 활용을 크게 기대하고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미디어 산업을 비롯한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생성형 AI를 도입해 수익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으며, 특히 ChatGPT는 알고리즘과 언어 모델의 고도화를 통해 독보적인 대중적 입지를 구축했다. 와이즈앱·리테일·굿즈 자료에 의하면, 국내에서도 ChatGPT 앱의 이용자 수는 계속 우상향 추세를 보이는데, 2023년 10월 72만 명에서 2024년 10월 기준 526만 명으로 1년 사이에 무려 7배 이상 크게 증가했다. 이는 국내 스마트폰 이용자 5,120만 명 중에서 약 10% 수준으로, 10명 중 1명꼴로 ChatGPT를 사용 중인 셈이다.
또한 사용자 1명당 월평균 ChatGPT 앱의 사용 시간은 51.6분, 사용 일수는 5.7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 동월 대비 사용 시간은 31.6분에서 20분이 증가했고, 사용 일수는 3.3일에서 2.4일이 늘어났다.
그러나 생성형 AI 기술의 기대와 관심은 2025년을 기점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지도 모르겠다. 최근 가트너(Gartner)에서 발표한 ‘Hype Cycle for Emerging Technologies, 2024’에서 2025년의 기술 트렌드를 어느 정도 예측해 볼 수 있는데, 이 그래프에서 생성형 AI의 위치를 보면 ‘부풀려진 기대의 정점(Peak of Inflated Expectations)’에서 ‘환멸의 골짜기(Trough of Disillusionment)’로 진입하고 있다. 즉 기술의 성숙, 소멸, 기대 등을 보여주는 가트너의 기술 하이프 사이클에 의하면 생성형 AI 기술은 실질적인 사업적인 결과물로 이어지지 못해, 2025년에는 생성형 AI의 기대와 관심이 급격히 줄어들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담겨 있다.
따라서 2025년은 2024년과 다르게 생성형 AI의 도입부터 세밀한 전략이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 이전처럼 시험적인 도입은 지양하고, 기획 단계에서 사업 목표와 방향에 부합하는지 검토하고 타당성 여부를 더 꼼꼼하게 따져볼 가능성이 크다. 즉 생성형 AI 기술이 어느 서비스에 도입할지, 왜 도입할지, 그리고 수익은 어떻게 낼지 등을 철저히 살펴보고, 사업적 관점에서 이해득실을 고려해 선택과 집중의 전략적인 도입을 실행하게 될 것이다.
올해 생성형 AI 기술을 활용하는 과정에서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기술적 방법과 트렌드를 따라잡으며 시행착오 끝에 체득한 사업자들의 경험과 생성형 AI 시장이 글로벌 빅테크나 대기업 위주로 재편되면서, 2025년 AI 미디어 시장은 자연스럽게 정리되고 있는 셈이다.
미디어 분야에서 AI는 커뮤니케이션을 극대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특히 생성형 AI의 등장 이후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은 이용자의 참여와 경험을 극대화하는 방향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중에서도 광고나 게임과 같은 스토리와 메시지로 구성된 콘텐츠는 AI를 통해 더욱 강력한 커뮤니케이션을 구사하는 데 도움을 준다.
크래프톤 산하 스튜디오 ReLU Games에서 출시한 AI 기반 인터랙티브 추리 게임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은 OpenAI사 GPT-4o 모델을 이용해서 플레이어가 NPC와 자유롭게 소통하며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 기존 게임들이 시나리오 형태에 따라 정해진 선택지를 따라가는 형태였다면 <언더 커버 더 스모킹 건>은 플레이어가 AI NPC를 심문하고 범죄 현장을 수사하는 추리 과정에서 자유로운 소통을 지원하며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한다.
또한 지난 9월 항공업계 최초로 카타르항공은 AI 기반 몰입형 콘텐츠를 선보였다. 카타르의 국영 항공사인 카타르항공은 딥페이크(deepfake AI 기술을 접목한 ‘AI 어드벤처’라는 글로벌 광고 캠페인의 일환으로 새로운 몰입형 콘텐츠를 서비스했다. AI 어드벤처는 이용자가 영상 속의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는 몰입형 경험을 제공한다. 이 콘텐츠는 이용자가 테마와 장면을 선택할 수 있고, 자신의 사진을 업로드하면 딥페이크 AI 기술을 통해 10~20초 만에 영상 속 주인공으로 설정되는 방식인데, 이용자의 얼굴 특징이나 피부톤까지 세밀하게 구현해서 적용해주며 이색적인 경험과 즐거움을 선사한다. 카타르항공의 AI 어드벤처는 다른 항공사와 차별화된 기술과 콘텐츠 경험을 제공하는 체험형의 캠페인 서비스를 시도했다.
한편, 패스트푸드 체인 롯데리아는 광고대행사 대홍기획과 협업하여 롯데리아 45주년 기념 영상을 AI로 제작했다. 이번 영상은 과거 롯데리아 광고에 등장했던 모델, 버거, 캠페인을 AI로 구성했으며, 대홍기획의 자체 Non-shooting film 제작 AI 스튜디오를 통해 100% AI로만 제작되었다. 이미 2023년에도 롯데리아와 대홍기획은 AI를 활용해 버거 이미지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광고를 선보이며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버거뮤직 프로젝트’로 불린 이 광고에서는 지올팍의 ‘Rhythm of Pop’과 윤하의 ‘Be My Side’가 AI를 통해 새우버거와 불고기버거의 이미지를 음악으로 변환한 결과물로 제작되었다.
롯데리아 45주년 기념 영상은 ‘버거뮤직 프로젝트’와는 엇갈린 반응을 얻었다. 버거뮤직은 버거 이미지를 음악으로 변환하는 신선한 발상과 AI 기술의 합리적 활용으로 설득력을 갖췄다. 또한 음원은 광고 외에도 플레이리스트에 공개되며 다양한 확산 가능성을 갖췄다. 반면, 45주년 기념 영상은 어색하고 인위적인 이미지와 음성으로 조작된 딥페이크처럼 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아마도 버거뮤직 프로젝트가 미디어 이용자에게 즐거운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관점에서 접근한 반면, 45주년 영상은 기념과 홍보에 초점을 맞춘 미디어 생산자 관점에서 접근했기 때문에 AI 기술만 강조된 부자연스러운 영상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2024년은 미디어 전 영역에서 AI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실증화를 시도했던 도전적인 한해였다. 정부에서도 2023년 ‘미디어·콘텐츠산업융합발전위원회’ 이후, 미디어 분야 신기술의 실증화 부분에 관심을 두고 정책 지원을 위해 노력 중이다. 예컨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경우, 2023년 『AI와 디지털 기반의 미래 미디어 계획』에 이어 2024년 『AI 기반 미디어 콘텐츠 10대 핵심응용기술 성장지원체계』를 통해 실증화 사업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 정책적 취지와 의도는 좋지만, 이러한 정부의 미디어 정책 과정에서 항상 부족한 점은 엔드유저인 이용자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글로벌 빅테크 플랫폼 서비스 경험에 익숙해진 미디어 이용자들은 과거와 달리 까다롭고 영리해졌음에도 여전히 미디어 정책에서는 주로 정부의 관료적 시각이나 특정 사업자 중심으로 구성된다는 점이 아쉽다. 또한, 당면한 위기에 급급해 중·장기적인 산업적 관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2025년에는 AI 미디어의 세밀한 전략이 요구되는 만큼, 미디어 이용자를 고려한 정부의 밀도 높은 정책안 마련도 고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 김민범(2024. 9. 5). 딥페이크를 마케팅으로 활용하는 카타르항공… ‘AI 어드벤처’ 캠페인 운영. 동아일보.
・ 대홍기획(2024.11.12.). 영상 생성 AI 이렇게 달라졌다고? D magazine.
・ 롯데리아 유튜브.
・ 와이즈앱·리테일·굿즈(2024.11.12). ChatGPT 앱 사용자 수 1년 새 7배 이상 증가, 한국인 10명 중 1명 사용.
・ N콘텐츠(2024.6.26.). AI로 만들고, AI와 즐기고, AI로 운용하는 K-게임. 한국콘텐츠진흥원, K-콘텐츠 핫이슈. 53호.
・ Gartner(2024. 10. 10). Spotlight on 2024 Gartner Hype Cycle™ for Emerging Technolog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