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튜브에서 범상치 않은 녀석이 등장하며 많은 화제를 낳고 있다. 그 화제의 주인공은 바로 EBS에서 기획한 디지털 콘텐츠 ‘자이언트 펭TV’의 ‘펭수’이다. 펭수는 재치 있는 말솜씨와 현란한 개인기로 10대부터 30대의 젊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이른바 ‘펭수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왜 많은 사람이 커다란 펭귄 탈 인형, 펭수에게 열광하고 있을까?
지상파 방송 콘텐츠의 확장과 변화
혹자는 펭수 신드롬을 단순히 유튜브 내 인기 콘텐츠로만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펭수의 인기 현상은 그 이면에 담긴 의미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로 기존 지상파 방송 콘텐츠가 TV 중심에서 벗어나 IP망을 통해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전체 방송사업자의 매출 현황은 증가하는 반면, 지상파 방송 사업자의 매출액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미디어 이용자들에게 지상파 방송은 더 이상 영상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중심 경로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자이언트 펭TV로 EBS는 지상파 방송사가 처한 위기를 기회로 바꾸며 본격적인 디지털 트랜스 포메이션을 시작한 셈이다.
기존 EBS 콘텐츠들에 비해 자이언트 펭TV는 이용자의 시청 환경을 고려해서 매체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즉 인터넷의 발달과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영상 콘텐츠가 다양한 인터넷 플랫폼에서 소비되는 현상을 반영한 것이다. 2018년 방송매체 이용 행태 조사에서도 미디어 이용자들은 TV보다 스마트폰을 필수 매체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2018년에는 TV와 모바일의 인식은 20% 수준의 차이를 보이며 모바일이 주요 매체로 자리 잡은 것을 알 수 있다([그림 2] 참조). 기존 EBS 콘텐츠들은 TV에서 방영된 콘텐츠를 재구성하여 일정 홀드백 기간을 두고 다시 유튜브에 서비스하는 형태였다. 자이언트 펭TV 역시 EBS1 채널에서 방송된 후, 유튜브 공식 채널을 통해 서비스되고 있기 때문에, 서비스 방식만 보면 기존 콘텐츠들과 비슷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이언트 펭TV는 TV와 모바일의 특성을 적절히 반영시킨 크로스 매체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비록 모바일에만 최적화된 콘텐츠라고 할 수 없지만, 지상파 방송의 대표 매체인 TV를 외면하지 않고 모바일에도 적합한 지상파 방송만의 콘텐츠를 구성한 것이다. 현재 자이언트 펭TV는 EBS1채널을 통해 새로운 에피소드 2편이 매주 금요일 저녁 20시 30분~50분까지 연속해서 방영된다. 두 편의 신규 에피소드는 유튜브에 TV 방송이 종료된 시점에서 1편은 반나절 안에 곧바로 서비스되고, 나머지 1편은 약 2일 이상의 홀드백 기간을 유지한 뒤 서비스된다. 기존 콘텐츠들이 약 7일~14일간의 홀드백을 유지하는 것에 비해 비교적 빠른 편이다.
콘텐츠 구성에서도 시청자의 편의를 위해 노력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유튜브 콘텐츠는 주로 모바일에서 스트리밍 형태로 시청하기 때문에, 에피소드 제공 형태와 편집 방식, 화면 구성에서 기존 TV 콘텐츠와 사뭇 다르다. 모바일 화면은 최소 4인치~최대 6인치 정도로 매우 작은 인터페이스를 갖고 있다. 따라서 모바일 콘텐츠는 TV 콘텐츠처럼 장시간 동안 시청을 유도하거나 작은 글씨를 식별하는데 종종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더욱이 모바일은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콘텐츠 시청에서 여러 가지 상황적 변수에 영향을 받을 수가 있다. 즉 교통수단 등 이동 중 시청, 여러 매체를 동시 이용 중에 시청, 이전에 보던 콘텐츠의 이어보기 시청, N 스크린 활용 등 시청환경에서 유동성이 많은 편이다. 모바일에서는 TV로 시청하던 것과 달리 콘텐츠 자체에 긴 시간 동안 몰입해서 시청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자이언트 펭TV는 모바일 이용자의 시청 환경과 콘텐츠에 대한 몰입을 고려해서 에피소드마다 10분 이내의 영상 길이를 보인다. 반면 TV에서는 2편의 에피소드가 연속 방송으로 모바일보다 10분이 더 추가된 20분으로 편성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자이언트 펭TV는 에피소드마다 10분의 한정된 시간 속에서도 빠르지만 완성된 플롯 구조를 담아내고 있다. 또한 모바일 화면에서도 자막 표현이 식별될 수 있도록 주요 자막은 큰 글씨로 모바일 화면에 적합하게 표기한다.
유형의 가치를 담아낸 가상의 세계와 팬슈머 현상
자이언트 펭TV는 얼핏 분절된 에피소드 형태로 독립적인 콘텐츠를 구성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모든 에피소드는 펭수를 중심으로 하나의 유기적인 연결고리를 형성해간다. 무형의 존재인 펭수에게 인적사항, 소속,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 설정 등 유형의 실재적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며 의인화하고 있는데, 이런 요소들은 스토리라인을 더욱 섬세하고 풍성하게 만드는데 기여한다. 이러한 세세한 설정들은 결국 가상의 세계관 속에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며 자발적인 팬덤과 커뮤니티로 이어질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었다.
본래 자이언트 펭TV는 10대 어린이를 위한 오락프로그램으로 기획되었지만, 정작 대중적인 인기는 20~30대 젊은 시청자들의 역할이 컸다. 지난 9월 중순, 자이언트 펭TV가 유튜브에 서비스된 지 5개월 만에 펭수가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다. 유튜브에 9월 19일 자로 서비스된 이육대 에피소드는 20~30대 젊은 시청자들에게 큰 공감대를 형성하며 인터넷상에서 빠르게 확산하였다. 이육대는 MBC 오락프로그램 아육대의 포맷을 차용한 에피소드인데, EBS 캐릭터가 총출동하여 운동 경기를 펼치는 과정에서 선후배 간의 상하관계를 묘사한 내용이 꽤 인상적이었다. 특히 어린 시절의 뚝딱이, 뿡뿡이를 기억하는 20~30대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20~30대 시청자들에게 자이언트 펭TV는 과거에 경험했던 EBS 콘텐츠와 전혀 다른 형태였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EBS의 기존 캐릭터들은 과거의 시청 경험을 통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감성적인 코드로 작용했고, 새로운 펭수 캐릭터는 EBS 콘텐츠의 고정관념을 깨며 새롭게 다가왔다. 근래에는 열성 시청자들을 주축으로 점차 팬슈머(fansumer) 현상으로 확장되고 있다. 시청자들은 펭수에 대한 관심과 제작 방향을 직접 표현하기 위해 EBS 홈페이지에 가입해서 게시판에 글을 남기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펭수와 관련된 굿즈(goods) 개발과 출시에 관여하는 형태를 보인다. 굿즈 구매는 가성비를 고려한 실용적 측면이 아니라 상징적인 가치를 구매하는 행동이다. 특히 20~30대는 콘텐츠 소비에서 취향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굿즈는 취향 공동체의 소속과 연대를 강화시키는 작용을 한다. 팬슈머가 활용된 펭수의 팬덤 마케팅은 홍보 효과와 충성도를 높일 수 있는 락인(lock-in)효과에도 크게 기여하며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 수가 연일 상승세를 보인다.
팬슈머 현상은 주로 연예인이나 유명 크리에이터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물론 자이언트 펭TV에서 펭수가 ‘유명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EBS 연습생’으로 설정된 점에서 팬슈머 현상은 기획의도를 잘 실행한 결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개인방송 콘텐츠는 일반적으로 특정 크리에이터가 중심이 되어 콘텐츠를 이끌어가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시청자의 성별, 취향, 연령 등에 따라 매우 파편화된 형태를 보인다. 또한 캐릭터가 활용된 버츄얼 크리에이터는 2D나 3D의 애니메이션 형식이다. 펭수는 결이 좀 다르다. 펭수가 인플루언서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기존의 개인방송이나 크리에이터 유형으로 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 즉 자이언트 펭TV는 방송 전문가들에 의해 기획되고 제작된 콘텐츠이며, 펭수는 직관적인 펭귄 탈 인형을 쓴 사람 연기자의 절묘한 조화로 만들어진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마케팅 전략에서 일명 ‘3B 전략’인 미녀(beauty), 아기(baby), 짐승(beast)은 많은 사람에게 쉽게 호감을 살 수 있는 대상으로 알려져 있다. 특정 인물이나 버츄얼 캐릭터는 자칫 편향된 취향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펭수라는 동물 캐릭터는 대중적 콘텐츠로 다가가는 데 별다른 무리가 없었던 것 같다.
독특한 커뮤니케이션 방식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펭수는 이전의 EBS 캐릭터들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 EBS 간판 캐릭터인 뿡뿡이, 뽀로로 등을 비롯해 대부분의 캐릭터는 외·내형적인 속성이 유사한 편이다. 주로 어린이 시청자가 대상이라는 점에 캐릭터 속성이 선한 이미지로 친근감을 형성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먼저 얼굴에서 입꼬리를 위를 향한 형태로 즐겁고 행복한 감정을 전달할 수 있도록 웃는 얼굴을 표현한다. 몸통은 머리보다 작고 3등신~5등신의 비율로 구성해서 가상의 캐릭터라는 점을 더욱 강조한다. 목소리 톤은 다소 높고 격앙되어 있으며 상냥한 말투로 바른 언어표현을 구사한다. 몸짓은 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크고 명확하며 약간 과장된 동작을 보인다.
펭수는 다소 묘하다. 표정, 몸 비율, 말투와 목소리가 기존 캐릭터와 일치하지 않는다. 특히 표정은 감정을 나타내는데, 눈, 입, 눈썹 등에 따라 표정이 달라진다. Ekman & Friesen(1975)은 6가지 기본 감정에 따른 표정을 제시했는데, 이 중에서 기존 캐릭터들은 기쁨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펭수의 얼굴은 입꼬리의 방향이 분명하지 않고 입이 살짝 벌어진 형태이기 때문에 표정에서 어떤 감정을 나타낸 것인지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이러한 펭수의 표정은 오히려 다양한 연출에 활용되어 재미 요소를 만들어 낸다. 또한 몸통은 황제펭귄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에 현실감을 주고 있지만, 사람보다 큰 몸집으로 상징성을 나타낸다. 펭귄은 짧은 팔과 다리로 지상에서는 뒤뚱뒤뚱 느리게 걷는 모습은 귀여워 보이지만, 우스워 보이기도 한다. 반면 바닷속에서는 날렵하고 빠른 몸동작을 보이며 지상에서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펭수 캐릭터는 아직 완벽하지 않지만 성장 가능성을 지닌 우리들의 모습을 나타낸 것일지도 모르겠다. 펭수의 독특한 말투와 목소리는 쉽게 잊히지 않고 각인되어 캐릭터를 강조하는 요소가 된다. 화법에서는 군대식 ‘다’, ‘나’, ‘까’ 화법으로 경직된 느낌이지만 사회적 예의범절을 준수하는 초년생의 모습을 담아낸다. 반면 젊은 세대의 문법이 반영된 돌직구 화법은 상하관계를 파괴하며 시청자에게 재미와 대리 만족을 주는 요소가 된다.
인터넷 공간에서 누구나가 자유롭게 방송 콘텐츠를 제작하고 서비스하면서 일부 콘텐츠에서 선정성, 비윤리성, 가학성 등이 논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EBS는 방송의 고수답게 지상파 방송 콘텐츠만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지상파 방송 콘텐츠에 B급 정서를 자연스럽게 담아내며 자칫 문제가 될 수 있는 내용이나 표현을 재치 있게 풀어낸다. 과연 펭수가 다른 방송사의 캐릭터였다면 지금처럼 인기를 얻을 수 있었을까? 아마도 EBS에서 만든 캐릭터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학창시절 이후 EBS 콘텐츠를 외면했던 젊은 시청자들이 펭수를 통해 다시 결집되고 있다. 자이언트 펭TV는 시대적 흐름에 맞게 B급 정서를 녹여내며 과거의 기억 속에 낡고 고착화된 EBS의 이미지를 쇄신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펭수의 인기 현상에 대해 많은 사람이 콘텐츠의 본질적인 의미보다는 부가적인 수익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점이 매우 아쉽다. 펭수가 다른 방송사의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유명인들과 협업하는 모습은 EBS가 지상파 방송의 경계를 넘어 콘텐츠 중심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2019년 하반기에 이어 2020년에도 펭수의 행보를 통해 지상파 방송 콘텐츠의 변화를 기대해본다.
참고문헌
김난도 외 (2019). 트렌드 코리아 2020. 서울: 미래의 창.
자이언트 펭TV 공식 홈페이지.
자이언트 펭TV 공식 유튜브 채널.
KISDI (2018). 2018년 방송매체 이용행태 조사
Ekman, P., & Friesen, W. V. (1975). Unmasking the face. Englewood Cliffs, NJ: Prentice-H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