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동 KT스카이라이프 과장
‘Write the code, Change the world!’ 국내 및 해외 유수의 박람회나 전시회 포스터의 핵심문구를 보면 그 시대의 전반적인 흐름이나 개최의 이유 또는 목적을 가늠할 수 있는데요 … (중략)…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국화 옆에서> -中- 아시다시피 국화는 꽃 피우기 어려운 품종입니다. 봄에 움이 트기 시작하면 순을 따서 모래판에 꽂아둔 후 조금 자라면 작은 화분에 옮겨 심고, 여름이 되면 곁순을 내기 위해 적심(줄기 자르기)을 합니다. 그다음 본분에 아주심기를 하여 가지가 올라오면 가지마다 지주를 세운 뒤 고정 철사로 묶어주면 긴 여름비, 바람, 태풍을 견디어 가을쯤 화려한 황금 옷으로 갈아입고 낙목한천에 오상고절처럼 심한 서릿발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외로이 절개를 지키는 꽃이 되지요.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새로운 디바이스 출시를 위해) 또 어떤 천둥(애플-WWDC, 구글-I/O, MS-Build)들이 먹구름(IoE Cloud) 속에서 또 그렇게 울고 있을지(미래 플랫폼을 선점하기 위한 ICT 세계시장 판도에 어떻게 자리 잡을지) …(후략)…
정확히 4년이 흘렀다. 세월도 참 빠르다. 지난 2014년 위 글머리와 같이 애플 개발자회의 관련 원고(WWDC 2014)를 이곳에 쓰기 위해 밤잠을 설친지 엊그제 같은데 얼마 전 WWDC 2018이 끝났으니 말이다. ‘Write the code, Change the world!’… 프로그래밍 소스코드로 세상을 한번 바꿔보자는 뜻의 지난 WWDC 2014 표어로 앱 개발자들의 명제로서 손색이 없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들의 얘기를 전하려는 것이 아니다. 솔직히 4년 전, 애플의 맥 OS 요세미티를 처음 타이핑했을 때만 해도 그것이 지명이란 것만 알았지(향후 10년간 캘리포니아 명소의 이름을 붙일 것이라고 함) 유서 깊은 국립공원인지는 몰랐었다. 그런 요세미티를 적어봤던 인연이 방문으로 이어지게 되었으니 내 표어는 ‘Write the Yosemite, Visit the place!’ 쯤으로 하고 오랜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대자연의 경관! 바로 그곳으로 떠나보자.
우선 요세미티를 간략히 소개하자면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 중부를 관통하는 시에라네바다 산맥에 위치한 국립공원이다. 이곳은 약 천만여 년 전 자연적으로 땅이 솟구쳐 생성된 지역으로 빙하가 만들어낸 절벽과 계곡이 어우러져 전 세계적으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아메리카대륙의 여느 곳처럼 원래는 원주민이 살고 있었으나 서부 개척자들에 의해 거처를 빼앗기게 되고, 이후 스코틀랜드 출신의 환경운동가 존 뮤어에 의해 1890년 마침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게 된다. 그래서인지 공원 곳곳에 존 뮤어의 일대기, 어록 등 그의 행적을 기념하는 팻말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캘리포니아 주요 도시인 샌프란시스코와 LA에서 요세미티로 가기 위해 차로 각각 4시간, 6시간 정도 소요된다. 필자는 실리콘밸리가 있는 산호세에서 출발하였기에 이른 아침을 먹고 차로 꼬박 달려 점심때가 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요세미티의 핵심 포인트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터널뷰였다. 실제로 이 터널을 통과해야만 LA에서 공원의 남쪽 입구로 진입할 수 있다고 하였다. 사진 속을 빽빽이 채우고 있는 나무들이 다소 왜소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보니 대부분 2~30m가 넘는 고목들이었다. 터널뷰 왼편에 보이는 거대 화강암 바위가 바로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엘 캐피탄이다.
우두머리, 대장이란 뜻의 이 바위는 높이가 무려 천 미터에 이르는 단일 화강암으로 세계 최대를 자랑한다. WWDC 2014에서 소개된 맥 OS X의 10.10 요세미티의 배경이자 WWDC 2015에서 발표된 10.11 버전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사진에는 안 보이나 엘 캐피탄 바위 옆에 있는 요세미티 폭포는 높이는 무려 700m가 넘고 폭도 30m에 달하는 3단(상층, 중층, 하층부)으로 이뤄진 거대한 폭포로 국립공원 내 가장 인기가 많다. 실제로 지상에서는 하층부밖에 안보이며 워낙 높이서 떨어지다 보니 물이 수증기가 되어 떠다니며 수채화 속 배경을 붓으로 뿌옇게 색칠해 놓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일일 투어라 정상까지 오르지 못했지만 구름도 잠시 쉬어간다는 클라우드 레스트(Cloud Rest)는 해발 삼천 미터가 되기에 그 위에서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요세미티 계곡과 자이언트 세쿼이어림, 다양한 폭포, 기암절벽 등 하이킹을 하면서 감상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란 생각이 들었다. 사진 우측에 보이는 폭포가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브라이들베일 폭포이다. 필자가 방문했을 당시에는 빙하가 녹아내린 물의 양이 많을 때여서 멀리서도 선명하게 수직으로 낙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유수량이 많지 않은 가을이나 겨울에는 지면까지 내려오기도 전에 바람에 날려 흩날리는 신부의 면사포와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 바로 Bridal Veil이다. 비단 이곳뿐만이 아니라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세계의 여러 곳에서도 이 이름을 쓴다 하니 여행 좀 해봤다는 분들은 분명 들어 보았을 것이다.
요세미티 계곡의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하프돔은 실제론 그렇지 않으나 둥근 돔의 절반이 잘려나간 것처럼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해발은 2,700m에 달하며 계곡 아래서부터도 1,500m 정도로 높아 등벽 시즌에는 등반가를 종종 볼 수 있다. 봉우리 전체가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시간이 멈춰 있는 천혜의 자연경관 중 하나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허기진 배를 달래려 차들이 길게 늘어선 피크닉 존에 다다르니 가족, 친구, 연인끼리 삼삼오오 야외 테이블에 둘러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다. 바비큐 시설도 되어 있었으나 대부분 간단한 도시락으로 해결하고 남는 시간에 주변 산책을 하였다. 스윙잉브릿지(Swinging Bridge)를 건너면 산책로가 나오는데 왼편엔 거대한 화강암 바위가, 오른편엔 자이언트 세쿼이어림이 그 웅자를 드러내고 있었다. 스윙잉브릿지 아래 상류에는 송어가 흐르는 강물 속에서 시간과 함께 멈춰서 있었고 하류에는 사람들이 고무보트를 즐기고 있었다. 강 한가운데 있는 땅은 꼭 바닷가의 모래사장과 비슷하게 생겨 레인저(관리인)의 경고를 무시하고 헤엄쳐 가는 관광객이 종종 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봐도 고요한 푸른 강물에 하얀 백사장이 꾀 인상적이었다.
사실 서울 면적에 4~5배에 달하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하루에 다 구경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주요 명소 위주로 차량을 타고 가능하겠지만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자 수박 겉핥기식이라 추천해 주고 싶지 않다. 필자는 준비 없이 갑자기 떠나 어쩔 수 없었으나 혹시 요세미티를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트래킹과 별밤 야행이 가능한 최소 1박 2일의(이것도 부족하지만) 코스를 강추한다. 끝으로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투어하며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은 화려하고 유려한 경관보다 공원 내 어느 곳을 가든 환경을 보호하고 태고의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려는 당국의 노력이란 점이었다. 수많은 자연보호 캠페인, 동물을 배려하고 생태계를 보호하려는 시설과 또 이를 철저하게 관리하는 레인저를 보며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환경운동단체인 ‘시에라 클럽’의 정신이 그대로 깃든 곳이라 생각되었다. 그 중심에 바로 환경보호클럽을 창설한 존 뮤어가 있다. 국립공원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는 요세미티 계곡을 처음 보고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한다. “산으로 된 그 원고의 장엄한 한 페이지를 읽을 수만 있다면 기꺼이 내 일생을 다 바치고 싶다” 실제로 그의 삶이 그러했다. 자연보호주의자이자 작가로서 다양한 글을 통해 환경의 소중함을 널리 알렸으며 그로 인해 요세미티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수 있었다. 일생을 다 바칠 수 있는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발견하여 그것에 헌신하며 개인적 삶의 목적을 이룬 존 뮤어야말로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으로 추앙받아야 마땅하다.
애플은 지난 2001년 맥 OS의 첫 이름을 치타로 시작하여 퓨마, 재규어, 타이거, 라이언 등 고양이과 동물로 지어왔었다. 그러던 것이 2013년부터는 캘리포니아 지명으로 바뀌어 매버릭스를 시작으로 요세미티, 엘 캐피탄, 시에라, 하이 시레라로 명맥이 이어왔다. 얼마 전 막이 내린 WWDC 2018에서는 모하비(Mojave)로 명명되었다. 비록 사막일지라도 또다시 인연이 되어 그곳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기꺼이 그러할 것이다. 그것이 소망이자 소명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