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이기대

비 내리는 이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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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 있어서 관광산업은 굴뚝 없는 수출산업, 무공해 산업이라고 인식되어져 한 나라를 부흥시키는 3대 산업에 버젓이 들어가 있다. 그 중에서 해양관광자원은 바다를 중심으로 한 천혜의 자연적 경관을 거저 보고 즐길 수 있는, 인간이 누리는 특혜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서울 강남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부산 행 심야 버스에 몸을 실은 시간이 자정이다.  새벽 4시 40분, 부산에 내리니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일기예보에서 오늘 하루 동안 30mm가 내린다고 했으니 햇빛 쨍쨍한 날 보다는 걷기에 훨씬 좋겠다. 30분가량 부슬비를 맞으며 타지의 새벽을 즐기다가 5시 15분 첫 전철을 타려고 역으로 갔다. 날이 밝을 때까지 부산 역 부근의 찜질방에서 허리 좀 펴며 시간을 보낼 생각이다.

이기대(二妓臺)는 부산 남구 용호3동 산 1번지 해안일대로, 기장군 일광면 달음산(587.5m)에서 시작해 장산, 금련산, 황령산으로 이어져 동쪽 바닷가 끝자락에 있다. 자연이 만든 해안절벽과 기암괴석은 그야말로 절경이다. 이기대 주변의 암반들은 비스듬히 기울어져 바다로 살포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곳은 산을 따라 해안선 2㎞ 정도가 바다와 이어져 있다.

   
 

   
 
   
 

이기대라는 이름 유래는『내영지(萊營誌, 1850)』산천조에 “본영(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에서 남쪽 15리에 있다. 위에 두 기생의 무덤이 있다”라고 한데서 이기대(二妓臺)라 불리게 되었다고 전한다. 향토사학자 최한복(1895~1968, 수영출신)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수영성을 함락시키고 경치가 좋은 이곳에서 베푼 축하잔치에 수영 기녀 두 사람이 참석하여 왜장(倭將)에게 술을 잔뜩 권하고, 술 취한 왜장과 함께 물속에 뛰어들어 죽어 그 두 기생(妓生)의 무덤을 썼다’고 하여 의기대(義妓臺)가 맞는 이름이라고도 하였다. 그러나 그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고 구전(口傳)으로 전할 뿐이다.

이기대는 그동안 군사작전지역으로 통제되어 오다가 1993년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해운대구청 홈페이지에서 발췌>

오늘 이기대 트레킹 코스는 용호부두에서부터 시작이다. 그런데 이기대 입구 버스 장류장에서 이기대 공원 가는 길을 못 찾아서 한참을 헤맸다. 이정표를 잘 만들어 놓으면 좋으련만! 버스 내린 곳에서 주위의 사람들에게 물어서 가면 쓸 데 없는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를 막는 길인 것 같다. 용호부도를 찾고 나니 이정표가 없는 게 오히려 나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한산하다. 맑은 날이면 용호부두에서 광안대교의 장관을 충분히 구경할 수 있겠지만 검푸른 바다에 하늘마저 회색이니 제 아무리 용을 써도 광안대교의 모습은 호롱불에 비친 그림자 같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가까이 있는 사물은 제법 카메라 앵글에 잡힌다.

 

바다와 야산으로 이루어진 이기대는 울창한 숲과 동식물이 공존하는 청정지역이다. 산을 기점으로 했을 때 정적이 감도는 해안선 쪽이 앞이라면 그 뒤쪽의 초고층 아파트와 질주하는 자동차들로 붐비는 거리는 흡사 야누스와도 같다. 이기대는 해운대나 태종대와는 달리 해안선을 끼고 도는 동안은 자동차가 다니지 않아 소음도 없고 매연도 없다. 뿐만 아니라 유명하지 않아서인지 사람들로 들끓지 않아서 생각하며 걷는다거나 근심 걱정을 떨쳐버리려고 걷는 길로는 안성맞춤이다.

제법 굵어진 빗줄기가 빗금을 그으며 바다로 바다로 내리 꽂힌다. 비 내리는 바다는 말로 형언할 수 없이 외롭고 쓸쓸하다. 그 쓸쓸함에 취해서일까! 한 여인이 동생말 전망대에 우두커니 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필자가 가까이 가자 쑥스러웠는지 약도로 눈길을 옮긴다. 그 모습이 하도 처연해서 슬쩍 한 컷 찍고 나서 뒷모습이니까 좀 써도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미소로 답한다.

 

   
 
   
 
   
 
   
 

동생말 전망대를 거쳐 구름다리 위에 섰다. 구름다리는 아주 짧았지만, 해안 절벽이 어항모양으로 움푹 들어가서 그 모형을 따라 길을 만들기 보다는 구름다리를 설치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었을 것 같다. 덕분에 멋도 더하고 운치도 좋다. 구름다리 아래서 하얀 거품을 만들며 노는 아기파도를 보노라니 발바닥이 간질간질하다. 비는 그치기는커녕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고 그 힘의 세차기가 대단하다. 우산도 무용지물이다. 더 이상 사진을 찍는 것은 무리다. 카메라를 넣은 백팩을 앞으로 메고 다시 전진!

해안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좋을 터인데 길옆에 새까만 조약돌로 맨발 지압길을 만들어 놓았다. 이 조약돌 길은 신발 속에 갇힌 발의 피로를 풀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할 것 같다.

 

   
 

얼마를 걸었을까? 눈앞이 온통 회색인데 난 데 없이 허여스름하고 넓은 반석이 나타났다. 반석은 곳곳이 움푹 움푹 파여 있었다. 이것이 바로 공룡 발자국화석으로 추정된다는 바위인가 보다. 삶에는 흐린 날과 맑은 날이 있다더니, 오늘 필자는 날씨가 흐린 덕분에 맑은 마음으로 태평스레 공룡 발자국에 고인 빗물을 보며 이 생각 저 생각에 잠기는 여유를 맛본다. 보는 사람에 따라 청승스러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움푹 파인 화석발자국에 나를 아는 사람, 내가 아는 사람들의 마음을 담아 재보는 것도 재미있다. 그러다가 내 마음을 잠시 담아 놓고 멍 때리며 앉아 있기도 참 좋은 곳이다.

 

   
 

이른 11시에 걷기 시작 했는데, 아스팔트길로 잘 못 들어서서 입구로 내려와 다시 걷는 바람에 벌써 늦은 1시다.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운 순간에도 꽃은 눈에 뜨인다. 폭우에 온 몸을 내 맡긴 구절초가 배시시 웃고 있다. 자연에 순응하는 법을 말없이 가르치고 있다. 구절초를 바라보며 초코렛을 꺼냈다. 다 젖어서 포장지가 너덜너덜하다. 포장지를 벗겨 주머니에 넣고 젖은 초코렛을 먹는 이 상황이 서글픈 게 아니라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따스하다.

 

   
 
   
 

멀리 보이는 해안 철책 산책로가 암벽과 한 몸인 양 잘 어울린다. 저 길을 가야하나 중간에 빠져야하나 잠시 고민을 하다가 언제 또 오랴싶어서 내쳐 걸었다.

해안 절벽에 한 그루의 소나무 사이로 농바위가 보인다. 농바위는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그 모양이 다르단다. 그래서 인지 그림으로 보던 농바위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오늘 필자가 본 농바위는 쪽을 찐 여인이 무엇인가를 머리에 인 형상이었다. 어떤 모습이던 작고 큰 돌덩어리가 층층이 중심을 잡고 쌓여 있다는 게 신기하다.

   
 

   
 

오륙도가 희미하다. 안 그래도 다섯 개인지 여섯 개인지 구분이 안가는 오륙도가 비사이로 보니 네 개 같기도 하고 다섯 개 같기도 하다.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24호, 오륙도는 동쪽에서 보면 6개 서쪽에서 보면 5개로 보인다고 하기도 하고, 방패섬과 솔섬이 조수 간만의 차이로 인해 한 개 또는 두 개로 보인다고도 하여 오륙도라고 불린단다. 그 이름은 육지에서 가까운 섬부터 방패섬, 솔섬, 수리섬, 송곳섬, 굴섬, 등대섬이다.

오륙도는 언제까지였는지는 모르지만 육지에 이어진 작은 반도였던 것이 오랜 세월 동안의 침식작용으로 인해 육지에서 분리되어 섬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여섯 개의 섬 중에 사람이 사는 섬은 등대섬 하나란다.

   
 

 

장자산 해맞이 공원, 오늘은 사람 그림자조차 볼 수 없지만 정월 초하루면 새해의 새 해를 마중 나온 사람들로 엄청 붐비겠지. 조금이라도 이름 있는 곳에는 에누리 없이 사람들은 돌탑을 쌓아 놓고 소원을 비는데, 하물며 이곳은 태양이 뜨는 곳이니 어련하랴. 해맞이 공원이 오늘 코스 중에 마지막 코스다. 원래 일정은 이기대를 돌아서 광안리 해수욕장을 거쳐 바닷길을 따라 해운대까지 걸을 요량이었는데 무척 섭섭하다. 지나 온 길도 더 볼 것이 많은데 쏟아지는 비를 감당할 재간이 없어 그냥 지나친 것이 못내 아쉽다.

 

   
 

맑은 날이라면, 바다에서 배를 타고 바라다보는 이기대도 색다른 경관과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겠다.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 산책로로 이름이 난 이기대! 소문만 듣고 찾아 간 이기대는 그야말로 산책로로서는 아름다웠지만 트레킹을 하기에는 조금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트래킹을 즐기는 사람들이 이기대를 돌아 광안리 해수욕장을 거쳐서 해운대까지 두루 섭렵해야 트래킹의 한 코스를 마쳤다고 하나보다.

   
 

오늘 걸은 길이 대략 6km 정도, 소요시간 2시간 10분. 걸음질꾼들에게는 거리상 많이 미흡한 거리지만 산책을 한다면 충분한 길인 것 같다. 그렇게 두 시간을 함께한 길손이 떠나는데도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비 내리는 이기대는 나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다.

이기대를 걷는데 따로 준비할 것은 없다. 거리가 짧아서 걸음 끝나고 매식을 하기에 편리하고, 신은 편한 것을 신으면 되고, 입성은 일상의 복장이면 굿! 잠잘 곳 역시 해양 관광지의 특성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일기 예보에서 당일 30mm정도 내린다던 비는 130mm의 폭우를 퍼붓고, 광안리에서 펼쳐질 예정이던 부산 국제 불꽃 축제를 다음날로 연기시키고, 필자가 서울행 심야버스를 탈 무렵에야 겨우 그쳤다.

*맑은 날의 사진4매 제공: 카페, 나를 찾아 길 떠나는 도보여행

 

교통 정보

버스 : 20, 22, 24, 27, 39, 131번 이기대 입구 하차

버스 노선 찾기:http://bus.busan.go.kr/

전철은 직접 가는 것이 없고, 1.2호선을 타더라도 다시 버스를 타야한다.

 

 < VOL.204 방송과기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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