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말로 <바께쓰>라고 불렸던 <버킷>. <버킷리스트>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느낌이 좀 생소했다. 2007년 미국에서 제작된 롭 라이너 감독, 잭 니콜슨·모건 프리먼 주연의 영화 <버킷리스트>가 상영된 후부터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루하루 살아내기에 바쁜 일상에서 내가 정말 이루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
아이들 건강하게 키우기
내가 엄마여서 일거다. 아직 11살, 9살, 6살인 아이들이 건강하게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돕는 일이 가장 이루고 싶고, 이루어야 할 중요한 일이다. S본부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서 알려주었던 것처럼 부모가 먼저 바뀌어야 함을 깨닫고, 아이들에게 부끄럼 없는 엄마, 어려움이 있을 때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싶은 엄마가 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 해보지도 않고 ‘안 돼, 못해’ 하지 않고 한번 도전해보는 사람,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나는 행복한 사람이야 하고 느낄 수 있는 사람, 이것이 내가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모습이다.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에서 각각 1년 동안 살아보기
‘꽃바람 부는 대로 흐르는 세상 뭐 신나는 게 없을까?
가는대로 버려두기 아까운 세상 멋지게 살아보세~~
어린 시절에 꿈을 꾸었지 오 내 친구야~~~
이제는 떠나야지 꿈들을 찾아 퀴즈 아카데미로~~~’
1980년대 말 해외여행을 부상으로 내걸었던 <퀴즈 아카데미>. 7연승을 하면 유럽여행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마치 꿈같았다. 아쉽게도 내가 대학생이 되기 전에 폐지가 되었지만, 대학생 해외 배낭여행의 붐을 일으킨 주역이 되었다. 방학을 마치고 개강을 하면 누구는 어디에 갔다 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만한 돈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유독 나의 마음에는 소심함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아닌 곳에서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지? 별 볼 일 없는 외국어 실력으로 대처할 수 있을까? 무수히 많은 이유를 대가며 그 흔한 어학연수도 없이 4년 만(?)에 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회사에 입사해서 일본으로 연수를 다녀오면서 출국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많이는 아니지만 다른 나라를 여행하다 보니 이제는 여행을 넘어서 세계 곳곳에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커지고 있다. 당장은 회사 때문에, 아이들 학교 때문에 어렵겠지만 퇴직한 이후에는 꼭 경험해 보고 싶다. 아이가 셋이니 한나라에 한 명씩 보내놓고 (유학이든 취업을 위해서든) 일 년씩 살아보는 상상을 해본다.
도서관 옆에서 살기
2010년 K본부에서 방영한 <성균관스캔들>이라는 드라마에 푹 빠진 적이 있었다. 꽃미남, 꽃미녀가 한꺼번에 나오니 눈이 즐거웠다. 더러는 ‘나도 다시 저런 사람을 만나서 연애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겠지만 나의 경우는 좀 달랐다. 우리 아이들이 저렇게 멋지게 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 원작인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의 지은이 정은궐 씨는 전업작가가 아니다. 글쓰기는 부업인 셈이다. 작품성을 논하기 이전에 이렇게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다는 재능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해도 재미있게 풀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재미있는 내용도 평범하게 들리게 만드는 사람도 있다. 어느 모로 보나 나는 후자에 속한다.
그러나 모든 능력이 그렇듯 글쓰기도 노력을 하면 안 될 것 없겠지. 그럼 먼저 뭘 해야 하는 거지? 작가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책읽기가 우선이다. 어렸을 때부터 수없이 들어온 말이었지만 이제야 그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고 요즘엔 ‘활자중독’인 것 마냥 뭐든 읽고 싶다. 꾸준히 한 권 두 권 사게 되는 책들을 꽂아 둘 책장이 부족해지니, 아예 도서관 옆에 살면서 책을 맘껏 누리고 싶다. 글쓰기가 아닌 책을 욕심껏 읽기가 목표지만 누가 알겠는가. 남들이 알아주지는 않아도 ‘나는 글 쓰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지.
공예배우기
누군가 나에게 ‘왜 전자공학과에 갔어요?’라고 물어보면 딱히 할 말이 없다. 그냥이라고 할 밖에. 그래서 항상 온전히 몰입을 할 수가 없었다. 아직 사회인이 아닌 학생시절에 다른 분야를 기웃거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나의 어리석음과 소심함이 여지없이 나타나 주었다. 정형화된 대학교육에서만 대안을 찾았다는 것과 지금 다시 시작하기에는 늦었다는 생각에, 아주 못 견딜 정도가 아니라면 그냥 지내지 뭐 해버린 것이다. ‘100% 만족하면서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라는 자기 합리화와 함께.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렸을 적부터 손으로 뭔가를 만들고 있으면 1시간이 10분 같았다. 워낙에 꼼꼼한 성격이라 만들고 나면 결과물도 나쁘지 않았다. 가죽공예나 목공예를 배워서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것들을 만들면서 성취감과 함께 보람을 느끼고 싶다. 물론 이걸로 생계를 유지할 만큼의 경제적인 소득을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즐거움이라는 것은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수확이니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종합해보면 이런 모습이겠다.
퇴직하기 전까지는 도서관 옆에 살면서 아이들을 열심히 키우고, 퇴직하고 나서는 유럽에서 공예를 배우며 살기. 생각만 해도 참 멋진 인생이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소소한 몇 가지 리스트가 더 추가되어야 할 듯싶다. 가령 유럽에서 살기 위해서는 그 나라 말을 배워야겠고, 거처를 마련할 최소한의 자금도 모아야 할 것이다. 또한, 아이들을 바르게 잘 키우기 위해서는 양육자인 나부터 몸과 마음의 건강함을 잃지 말아야겠다.
행복이라는 것이 늘 최상의 상태가 유지될 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최악의 상황일지라도 아주 작은 긍정적인 변화가 감지되면 알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나의 버킷리스트가 그 변화의 촉매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