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을 꿈꾸는 나의 버킷리스트

전원생활을 꿈꾸는 나의 버킷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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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할 즈음 본격적인 진로 고민 아니 생계 고민을 한 지가 어언 20여 년이 되어간다.

처음 방송기술에 청운의 뜻을 품고 입사하던 해에 선임이었던 사수 선배는 “나는 40살까지만 (방송기술) 공부하고 그 이후론 여유작작하게 지낼 거다.”란 얘기를 했었다. 그때 난 속으로 “그럼 난 힘들게 노력해서 입사했으니 40살까지만 놀고 그 이후로 (방송기술) 공부해야지.”라고 마음을 먹었었다. 아무래도 ‘이유 없는 반항’ 같은 그런 심정이었던 것 같다. ‘말이 씨가 된다’고 하더니 결국 남들이 기피하는 생소한 ‘방송네트워크 유지 및 관리 (NI)’라는 보직을 맡아 오늘도 공부에 여념이다. 물론 학습 성과나 시간당 효율성은 형편없다. 20년 전의 자신감은 볼록한 복부비만과 함께 스르륵 사라진 지 오래고 지금은 실력이 월등한 후배들의 친절한 지도편달(?)을 받으며 낙오되지 않으려고 하루하루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

결국 “말이 씨가 되었다”

첨언하면 NPS로 통칭되는 NI 업무는 방송국의 송신소나 조명분야처럼 특수 직종이기에 일반적인 방송제작 업무와 달리 시작도 다를뿐더러 꾸준히 오랫동안 집중해야 전문직이 될 수 있는 분야이다. 더구나 나의 일터(OBS)엔 방송제작, 녹화, 송출, 저장(아카이브)까지 모든 방송시스템이 ‘File(Clip) 기반의 서버 네트워크 시스템’이어서 어느 한 곳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는 근무환경이다. 나와 마찬가지로 방송기술엔 관심이 별로 없어 보이는 편집위원 후배의 뜬금없는 원고 청탁을 받고 나니 주마등처럼 지나온 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어디인지? 무엇을 위해 하루하루 소심줄처럼 질긴 일상을 경쟁하는지? 나는 오늘 뭘 했는지? 나는 뭐가 되고 싶었던 건지?

스스로 자문해도 쉽게 답이 생각나질 않는다. 결국 실패한 인생의 큰 그림을 조각 맞추고 있었던 건 아닌지 하는 생각에 왠지 모를 서글픔과 불안감이 몰려왔다. 피로감도 더 쌓이는 것 같다. 목표가 분명한 속세의 중생이 되지 못 한 채 목표도 없이 하루하루 지낸다니 처량해지기까지 한다. 부자아빠, 능력 있는 꽃중년, 인정받는 엘리트는 일상 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럭저럭 무탈하게 지내기만 해도 만족해하는 일상의 연속 속에서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 있었다.
거창하게 ‘버킷리스트’라고 표현하지 않아도 내가 하고 싶었던 그 무엇인가는 있었던 것 같다. 어릴 적 좋아했던 (아카데미사)프라모델이 그랬었고, 청소년기에 심취했던 80년대의 팝송이 그랬었던 것 같다.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요즘 곰곰이 신중하게 나의 버킷리스트를 생각해봤다. 아니 중년 이후의 하고 싶은 일을 아련한 첫 사랑의 기억처럼 흐릿하게라도 그려보기로 했다.

결론은 “난 정말 하고 싶은 게 없다.”라는 인정하기 싫은 현실에 도달했다. 그냥 염세주의자처럼 비겁하고 적극적으로 회피하는 게 아닌 그냥 하고 싶은 게 별로 없었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서라도 이러면 안 될 것 같은데…
그러던 와중에 KBS ‘강연 100°C’프로그램에서 평소에 이상처럼 꿈꾸던 이를 보게 되었다. 바로 ‘벌들에게 물어봐’편의 강연자 안상규 씨로 보는 내내 내가 꿈꾸었던 전원생활을 회상하게 되었다. 강연자처럼 모진 고생을 할 마음의 준비는 없지만 자연과 함께 자족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내가 그리려 했던 중년 이후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 KBS 강연 100°C의 안상규 씨
   
▲ 안상규 씨 공연 모습

        
요즘은 귀농과 도시농부에 대한 교육과 훈련 프로그램을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물론 치밀한 준비 없이 마음만 앞서다가는 모든 일이 그러하든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아이의 교육환경도 전원생활을 고민하게 만드는 큰 요인이다. 아이들이 훌쩍 커버린 다음에는 아무래도 내가 기력이 없을 것 같기에 매년 조금씩 실천사항을 만들어 준비하기로 했다.

   
 
   
▲ 항동 주말농장

그 실천의 일환으로 집 근처(서울시 구로구 항동)에 주말농장을 분양받아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역시 노력을 들인 만큼 결실이 있기에 쉽지 많은 않은 도시농부의 과정을 경험하고 있다. 집 근처 주말농장의 한 곁에서 원주민 한 분이 양봉을 하고 있었기에 자연스레 텃밭 일을 하면서 양봉 현장의 경험을 귀담아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꿀벌’이 인간과 자연에 주는 무한한 기여와 혜택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 매일유업 상하목장 초지
   
▲ 매일유업 상하목장 퇴비 안내

아울러 주말농장의 경험을 살리고자 집 베란다에 조그만 텃밭 상자를 키우고 있다. 모 유업사의 목장체험 프로그램이 있는데 도시에서도 전원생활을 경험할 수 있게 비료를 나눠주기도 하고 아이들 방학기간에는 방문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상식 같지만 햇볕이 적은 곳일수록 자연 친화적인 비료를 써야 한다는 점도 경험을 통해 다시 배웠다.
  

  
갈수록 자신이 없어지는 기억력 때문에 망각하지 않고자 나만의 버킷리스트를 정리해보면

첫 번째, 양봉업 해보기(양봉업자 되기)
꿀벌이 자연에 주는 무한한 혜택을 보존하고 유지하며 인간의 생활에도 도움을 주는 자연친화적인 삶을 구현하고자 양봉을 해보고 싶다. 물론 경제적인 소득도 부수적으로 따라올 것 같다. 풍족하지는 않겠지만 제철에 나온 꿀을 지인들과 함께 나누며 자족하는 풍경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규모가 늘어나면 트럭을 구비해서 세월 따라 꽃을 따라 이동형 양봉도 시도해 볼 생각이다.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우리 국토의 남쪽지방을 벌들과 함께 차분히 체험하고 싶다.

두 번째, 전원주택 마련
최근에 월드컵 축구스타 송종국 선수의 전원주택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양봉은 계절 특성상 겨울에는 불가능하기에 주로 추동기에는 도시가 아닌 전원주택에서 자연을 벗 삼아 안분지족(安分知足)하는 삶을 영위하고 싶다. 주말농장의 노하우를 경험삼아 텃밭도 일구어 본다면 제철에 나는 무공해 채소는 알찬 결과물이 될 것 같다. 여유가 된다면 전원주택 한 곁에 ‘어린이를 위한 자연 과학체험장’도 마련하고 싶다. 아이들이 직접 경험하는 자연 과학체험 프로그램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지렁이도 잡고 배추흰나비 벌레도 만져보고…

세 번째, 결혼기념 가족여행 실천
결혼 10주년에 가기로 약속했던 제주도 가족여행을 실천에 옮기지 못했었다. 무능력한 가장이 된 것 같아 내심 미안한 마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는데 와이프가 먼저 적금을 모아 해외로 가족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 결혼 15주년이 되는 내년엔 신혼여행의 설렘을 갖고 여우 같은 마누라와 아들, 딸을 동반해서 가족여행을 꼭 다녀올 계획이다. 

    
불혹의 나이에 접어드니 다시금 지나온 날들을 반추해 보게 된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실패할수록 값진 경험과 성공의 빛이 될 수도 있다. 윤택하거나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다면 진정한 행복의 근처에 다가선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자연과 함께하는 전원생활을 그리며 스스로 만족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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