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생애를 위한 나의 버킷리스트

남은 생애를 위한 나의 버킷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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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부담 절대 안 주고 살 거라고 호언장담하시던 아버지가 병원에 누우신지 벌써 2년째다.

10년 넘게 당뇨합병증으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신 어머니 탓에 아버지는 절대로 자식 걱정 안 시키겠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비교적 건강하게 사시던 분이 고관절 수술 이후 못 일어나시고 지금까지 병원 신세를 지고 계시는 것이다. 연세 구십이 넘으셨으니 그럴 만도 하다.

   
 

아버지는 만주 용정중학교를 나와 일제강점기에 강제징용 되시고 6.25 전쟁을 치르셨다. 그 시대의 여느 어르신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산전수전을 다 겪으셨던 나의 아버지는 삶 자체가 감동이요 드라마이며 역사 덩어리이다. 북해도 탈출기며 6.25 전쟁 영웅담을 늘어놓으실 때면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아버님은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삶을 사셨다. 미군부대 구정물도 건져 먹으셨다던 아버지는 어떤 음식이든 감사하며 맛있게 드셨다. 맞벌이인 나와 내 아내가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드리는 작은 용돈조차 너무 많아 분에 넘치다면서 행복해하셨다. 매사에 한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사셨기에 더욱 건강하셨다.

그런 아버지가 불과 2년 만에 저렇게도 빨리 몰골 흉한 모습으로 변해 버린 현재 상황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겉모습만 후패한 것이 아니다. 한 살배기 유아 정도의 정신수준이 더 마음 아프다. 모름지기 사람은 부지런해야 한다시며 몸을 도끼 삼아 움직여라 강조하시던 아버지는 정작 본인이 뻣뻣해진 피부를 피나도록 긁는 통에 양손이 묶인 채 병원침대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하반신은 이미 굳어진 채로…

 지금 아버지의 소원은 단연코 “등 긁기” 일게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 좀 긁어달라신다. 더 세게를 외치시면서… 이미 욕창으로 번져 있는 온몸을 시원스레 긁어주는 것이 나의 마지막 효도일 런지도 모르겠다.

아버지 병실에서 나는 사람이 잘살고 잘 죽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 보았다. 잘 사는 것의 완성이 잘 죽는 것인데 잘 죽고 잘 살기 위한 생각들을 버킷리스트로 정리해 봤다.

 

 

1. 잘 죽기(Well Dying)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죽는 것이 더 중요함을 뼛속 깊이 느낀다. 죽음이 아주 먼 시간의 공포스러운 일이 아니라 아주 가깝게 생활 속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 나에게도 곧장 올 수도 있는 일임을 알자. 잘 죽을 수 있는 마음 갖기, 나의 죽음에 친숙하기, 죽음을 준비하기, 그러다 보면 지금의 내 삶의 순간순간이 더 값지게 느껴지리라.

 

1) 연명(延命)하지 않기 위한 서약서 써두기

스스로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만약의 상황을 위해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서약서를 써둔다. 억지로 무의미한 생명을 연장하는 일이 본인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없게 하고 가족을 더 고통스럽게 한다. 연명치료의 중단에 대한 사전의료의향서 없이 갑자기 의식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의료진은 심폐소생술, 인공호흡, 튜브를 통한 영양공급 등 생명연장을 위한 의료행위를 할 수밖에 없단다. 최근에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에서 특별법 제정을 건의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찬반논란이 많다. 현대판 고려장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법안이 통과되기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의식 있을 때 미리미리 내 손으로 써 놓는 게 상책이다. 생각날 때 빨리 아내와 함께 써 놓아야겠다.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02-2281-2670)에서 안내하고 있다. 전화 통화가 어려우니 인내가 필요하다.

   
 

 

2) 돈 잘 쓰기

돈 벌어 모았다가 죽기 직전에 다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미래가 불투명하여 어떻게 될 줄 모르니까 무작정 모으기 일쑤다. 그렇게 살다 보면 꼭 써야 될 상황에서 쓰지 못하고 아까운 시절을 보내게 된다. 때에 따라 필요한 것, 때에 따라 필요한 경험, 죽기 전에 왕창 돈으로 연명하느니 살면서 꼭 필요한 경우를 잘 판단하여 값지게 쓰는 지혜로움을 갖겠다. 돈 잘 쓰기! 돈 벌기보다 더 중요하다. 수전노로 살지 말자.

 

 

2. 잘 살기(Well-Being)

평균연령 100세 시대를 기준으로 한다면 확률적으로 난 50년을 더 살 수 있다. 그러나 스트레스받고 병들어서 50년을 더 산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초고령 사회로 급속히 진행되는 사회문제의 해결을 위해 정부가 많은 대책을 세우고는 있으나 뚜렷한 해결책은 없어 보인다. 나 자신이 퇴직 이후를 적극적으로 준비하여 인생 황금기를 퇴직 이후에 누리겠다.

 

1) 자격증 취득하기

그러기 위해 우선 자격증에 도전해 본다. 지금까지 업무에 종사해 온 방송과 통신에 대한 잡지식을 모아서 체계적으로 정리한다면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자격증을 통해 향후 경제적 보탬이 될 것 같다. 약간 늦었지만 목표를 정하고 공부한다는 것 자체가 아주 자알 사는 일 아니겠는가?

 

2) 하꼬네 온천가기

   
 

또 하나 하꼬네 온천가기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하꼬네는 후지산 남동쪽의 산지로 도쿄 신주쿠에서 한 시간 거리다. InterBee에 가면 어김없이 거쳐 오는 온천마을로 나보다는 허약한 나의 아내를 데려가고 싶다. 일본식 전통여관인 뇨칸에서 푹 자고 미끌 거리는 유황온천에 몸을 담그며 망중한을 즐겨보리라. 한 달에 한 번씩 하꼬네 가서 목욕하기를 약속하는 나에게 아내가 말한다. 실천하지 못하면 자기는 죽으면서 하꼬네! 하꼬네! 할 거라고.

 

3) 요가 배우기

   
 

잘 살려면 건강해야 하니 건강을 위해서 요가를 하고 싶다. 수영이나 헬스를 해보면 정해진 시간에 일정장소에 날마다 간다는 것이 고역이다. 해서 시간을 절약하고 공간제한에 비교적 자유로운 요가를 해야겠다. 물론 일정수준까지는 고정적인 시간투자(보통 3개월)가 필요하겠지만 경지에 도달하면 집에서도 가능한 기(氣) 운동이라서 요가는 더욱 매력 있어 보인다. 그런데 몇몇 요가원을 알아봤더니 모두가 여성전용이란다. 집 바로 옆의 요가원(여성전용)을 두고 멀리 가는 것이 손해 보는 느낌이라서 차일피일 미루다 몇 개월이 후딱 지나갔다. 빨리 시작해야겠다.

 

4) 클래식 기타 배우기

   
 

대학 때 폴리포니라는 클래식 기타 합주 서클의 한 선배가 비 갠 오후 등나무 밑에서 레인 드롭을 연주하는 모습에 반해 한때 기타를 달고 다닌 적이 있다. 생활이 바빠서 생각도 못 했는데 퇴근길에 전봇대 모집광고를 보며 확 달아올라 당장 집에 가 뽀얀 먼지 털어내고 기타튜닝을 해보았다. 옆에 있던 아들 녀석이 신기한 듯 쳐다본다. “아빠도 기타 칠 줄 아느냐”는 눈치다.

클래식 기타합주는 작은 교향악이다. 눈 지그시 감고 기타의 전율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렵다. 며칠 전 아내와 참석한 기타합주발표장에 흰 머리 날리며 열심히 연주하시는 인자하게 생기신 노인네 한 분을 보며 나도 결심했다. 다시 시작하기로… 연말 송년회에 직원들 앞에서 가장 쉬운 로망스 한번 연주해 주겠다! 앵콜 나오면 레인드롭까지…

  

5) 마당 있는 집 짓고 살아보기

   
 

공교롭게도 나는 어릴 적을 제외하곤 한 번도 마당 있는 집에서 살아보거나 자 본 적이 없다. 친척들조차도 아파트에 살기에 좀처럼 그런 기회가 없었다. 마당에 개 키우고 나무 심어 보는 것. 아침이면 개똥 치우고 개와 한바탕 놀아보는 것, 저녁엔 모닥불 피워놓고 고기 구워 먹는 것, 먹고 난 후 치우기 귀찮으면 한쪽에 몰아놓고 다음날 치워도 전혀 부담되지 않는, 그런 편한 마당 있는 주택을 지어보리라… 아파트보다 몇십 배 잔손이 많이 간다는 주택관리의 부담도 있겠지만 그래도 난 어딜 가나 똑같은 디자인과 배치의 아파트보다 마당 있는 개성 뚜렷한 집에서 살고 싶다.

사실 몇 년 전에 지역에 있을 때 그럴 기회가 있었는데 아쉽게도 근무지 변경으로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더욱 생각이 난다. 마당 있는 집!

헌데 이런 계획이 됨직한 일인가? 당분간은 어림없어 보인다.(굳이 밝히지 않아도 이유를 아실 것이다) 그래서 우선은 아파트 대표를 맡아서 여러 일들을 해보아야겠다. 봉사도 하고, 공동구역 수리도 해보고, 미래를 훈련하며… 고기는 아쉬운 대로 옥상 가서 구워먹으리라(참고로 우리 아파트는 20가구임)

 

6) 사진 정리하기

   
 

사진 찍는 것보다 사진 정리가 더 어렵다. 찍어 놓은 사진을 분류해서 버릴 것은 버리고 정리해 놓는 일이 즉시 이루어지지 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 어렵게 된다. 오래전부터 사진을 찍어 왔지만 똑딱이 사진기로 찍는 것만도 못한 사진실력이다. 하지만 사진실력을 키우기보다 사진 정리가 더 급하다. 쌓여 있는 사진들을 조금씩 내어 적당한 글을 써둠으로 사진에 생명을 불어넣어 보겠다. 특히 앞으로 찍는 모든 사진은 하루가 가기 전에 반드시 정리해두리라 다짐한다.

 

7) 기타로 신앙생활 잘하기(나의 팡세 쓰기), 모든 사람과 화목하기, 마음 정화 운동하기, 집중훈련 지속하기 등 생활에 활력을 넣는 영성을 키우는 일들을 날마다 지속하겠다.

 

글을 쓰다 보니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며 기대와 호기심에 살아갈 내 모습에 벌써 가슴이 설렌다. 나열한 버킷리스트를 한꺼번에 이룰 수는 없겠지만 부지런히 살다 보면 리스트들이 진짜로 성큼 다가와 있을 것이라 믿는다.

건강하셨던 나의 아버지가 인생 마지막 즈음에 무의미하게 보이는 연명을 오늘도 하고 계시다. 목숨 다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자식의 도리일 텐데 아버지의 하루 삶을 그저 무의미한 연명으로 보는 나는 정말로 불효막심한 놈인가 보다. 하지만 성경 잠언에 나오는 말씀으로 위안을 삼으며 글을 맺는다.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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