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 이상숙 BBS불교방송 1기

만나고 싶었습니다 – 이상숙 BBS불교방송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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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숙 BBS불교방송 1기(現 선엔지니어링 종합건축사사무소 감리본부 상무)

여기 남다른 삶을 살았던 엔지니어가 있다. 방송엔지니어, 택시회사사장, 감리사 등 한곳에 치우치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발전을 위해 노력해온 이상숙 상무이다. 같은 책을 30번씩 반복하고, 부품 하나하나의 세밀한 동작까지 파악했던 그 치열함과 완벽함. BBS 1기를 시작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고 있는 그의 발자취 속으로 들어가 보자.

 

■ 상무님, 방송과기술 독자들을 위해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네, BBS 공채 1기를 거쳐 현재, 감리사로 일하고 있는 이상숙이라고 합니다. 예전에 연합회 일도 했었는데 이미 추억이 되었네요. 예전 기억이 생각나는 것이 느낌이 참 새롭습니다. 하하.

 

■ BBS 불교방송을 시작으로 상무님의 인생 얘기를 한번 시작해 보는 것이 어떨까요?

BBS가 1990년도에 개국을 했지요. 벌써 22년 전 얘기인데, 당시 저는 금성(현 LG)에 다니고 있었어요. 하지만 마음 한쪽엔 방송국에 대한 동경을 간직한 채 말이죠. 그러다 BBS 채용 공고를 보게 되었고, BBS 공채 1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나이가 29이었나 했을 거에요. 팔팔했죠. 하하

BBS에선 2년간 주조근무를 하고, 남산송신소 근무를 하게 되었어요. 그때 1명이 3교대로 근무를 했는데 시간이 많이 남더라고요.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어요. 평소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고, 환경도 주어지니 금상첨화였죠. 공부는 기술고시 공부를 했어요. 현재는 행정고시가 되었다고 하는데 그때는 기술고시였죠. 고등고시에는 외무, 행정, 사법고시가 있는데 이 세 시험 모두 합격한 박찬종 변호사란 분이 있지요. 그분을 롤모델로 저는 공대이므로 기술고시, 기술사, 변리사를 목표로 공부했습니다.

기술고시를 시작해서 첫해에 1차 합격을 하고, 다음 해에 2차 합격을 했으나 3차 면접에서 떨어졌었죠. 지금은 아련한 기억이 되었죠.

 

■ 정말 아쉽게 떨어지셨네요. 공부는 어떤 식으로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BBS에서는 학구파로 불리신다고 하더군요.

기술고시를 32 ~ 34살 동안 준비했어요. 그때 정말 치열하게 했지요. 고시 과목이 전자기학, 전자회로, 통신공학 등이었는데 과목당 참고서를 30~40번씩은 봤어요. 전자기학을 예로 들면, 참 딱딱하고 어려운 과목인데 30번 이상을 보니 그 현상 하나하나가 그렇게 경이로울 수 없는 거에요. 단순한 이해를 넘어 제 모든 감각으로 받아들인다고나 할까요?

그런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사내에서 매주 스터디모임을 통해 기술공부도 꾸준히 했고, 분석을 정말 철저하게 했습니다. 예를 들어, 오실로스코프가 있으면 단순히 매뉴얼로 동작만 파악하는 것을 넘어 기기 안의 부품 하나하나의 기능 파악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아주 파고든 거죠. 이 부품의 역할이 무엇인지, 왜 있을 수밖에 없는지 따져보고, 공부했지요. 이런 식으로 평소에 지식 습득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 관련 분야에 능통하게 되더라고요.

   
 

■ 정말 열심히 하셨네요.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정말 명쾌하게 설명해 주신 것 같습니다. 명함을 보니 기술사를 취득하셨던데 이런 식으로 공부하셔서 합격하셨군요?

정보통신기술사를 97년도에 취득했어요. 고시 공부도 했었고 해서 도전했지요. 준비한 지 3개월 만에 합격했어요. 아마 가장 빨리 취득한 사례가 아닌가 합니다. 하하. 요즘도 준비하면 1~2년씩 걸리지 않나요? 전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 99년에 갑자기 퇴사하신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97년도에 IMF가 터졌었죠. 잘나가던 BBS 경영이 어려워지더군요. 그때 한 선배가 퇴사를 하더라고요. BBS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면서요… 전 감동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99년도에 다시 한번 BBS가 어려워졌을 때 과감히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변리사를 도전하게 되었지요. 변리사는 기존에 제가 했던 공부와는 많이 달랐어요. 법 부분이 참 어려웠어요. 그렇게 준비하던 중 집안에 일이 생겨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 그런 일이 있었군요. 변리사도 준비하셨었고, 퇴사 후를 자세히 말씀해주신다면 어떤 일들이 있으셨는지요?

네, 변리사 준비 중에 장인어른이 돌아가셨어요. 장인어른께서 울산에 택시회사를 운영하셨는데 그 회사를 제가 맡게 되었던 거죠. 고민이 많았습니다. 눈앞이 캄캄하더라고요. 평생 엔지니어로 살아오다 갑자기 회사 경영을 해야 하니 그럴 수밖에요.

그러다 신문을 보니 ‘감성경영’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더군요. ‘이거다’ 싶었어요. 회사에 부임하자마자 사장실을 폐쇄하고, 직원들과 같이 생활했습니다. 직원 사무실 한편에 제 책상을 놓고, 업무를 봤지요. 한편으론, 택시 기사들이 왔다갔다할 때 커피도 타주면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마당 청소도 사장인 제가 직접 했고, 심지어 화장실 청소도 제가 했어요. 그렇게 한 5개월을 보내니 사람들이 인정해 주더라고요.

또한, 회사 경영이 어려웠는데 부임 후 2년 만에 울산시 경영 평가에서 1등을 했습니다. 택시 수급과 가독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

 

■ 회사경영을 하셨었군요. 심리적으로 많이 부담되고, 힘드셨을 텐데 슬기롭게 극복하긴 것 같습니다. 경영 얘기를 더 안 들어 볼 수가 없겠는데요.

그럼 좀 더 얘기해 보겠습니다. 회사경영이란 것을 하다 보니 제일 무서운 것이 ‘세무조사’더군요. 세무서에서 탈세 혐의가 있다고 하니 답답해 미칠 노릇이었습니다. 회사에서 잘못한 것도 있지만 세무서도 잘못한 것이 있는 것이지요. 이런저런 일이 있지만 생략하기로 하고, 제가 ‘세법’ 공부를 하기도 한 계기가 된 일이었지요. 이런 일 저런 일로 회사를 지탱해오다가 사고가 하나 났어요. 우리 회사 기사와 관련된 사고였는데 죄책감이 들더라고요. 저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일이었는데 회사 책임자로 있다 보니 제 잘못 같기도 하고, 몸도 마음도 힘들었어요. 2009년 일이었는데 자세히 말씀 못 드려서 죄송하지만 결국 그 일로 사장직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 그러시군요. 그러면 2009년부터 감리 업무를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좀 생소한데 ‘감리’에 대해서 한 말씀 해주시겠습니까?

네, 보통 보면 사람들이 자격증 활용을 잘 안하는 것 같아요. 저만 봐도 기술사 자격증이 있었는데 아무것도 안하고 있었지 않습니까? 그래서 감리 업무에 눈을 돌리게 되었지요.

‘감리’라는 것은 건설 사업 감리로 관리 및 감독의 줄임말입니다. 설계감리가 있고 시공감리가 있지요. 업무별로 나눠보면 건축, 토목, 기계, 전기, 통신, 소방, 조경 7개 분야가 있고요.

구로에 지금 야구 돔구장을 짓고 있는데, 그 설계감리를 제가 했어요. 작년 10월부터는 시공감리를 맡고 있고요. 지금은 ‘김천 혁신 도시’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감리라는 직업을 살펴보면 고급기술자가 가장 많이 모이는 것이 감리 분야인 것 같습니다. 기술, 회계, 재무 등 다방면의 최고 지식인들이 모이는 곳이지요. 또한, 근무를 하다 보니 감리라는 직업에 있어서 도덕성과 책임감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공정하고 정당하게 감리를 보는 것이 건축에 있어서 절대적이기 때문이죠.

 

   
 

■ 그러니까 건물 건축에서 핵심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요. 7개 분야가 있다고 하셨는데 통신 쪽을 맡고 계시겠군요?

기술사가 그쪽 아닙니까. 하하.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요즘 건물의 가치는 어디에서 판가름이 날까요? 바로 정보통신 분야입니다. 건물을 짓는데 있어서 방송‧통신 분야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고, 특히 방송분야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AV 쪽이 커지고 있고 그만큼 대우를 받고 있죠.

또 하나 감리의 장점이 정년이 없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많을수록 경력이 많을수록 우대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래서 매력적이라 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 감리의 장점이 많고, 우리 방송기술인들에게도 정년 후, 새로운 일터가 될 수도 있어 보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 주시겠어요?

감리와 개인적 입장에서 말씀드리죠. 업무에 있어서는 요즘 100층이 넘는 고층빌딩 건설이 많이 생겨나는데 이런 큰 건물의 감리를 한번 맡아보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제 모든 것을 한번 쏟아부어보고 싶고,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사회과학 쪽에 좀 치중을 하려고 합니다.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 손자들에게 올바를 국가관과 윤리관을 전달해주고 싶습니다. 올바른 정신이 말과 행동을 만들기 때문이죠.

 

   
 

■ 이 글을 보고 있는 분들께도 한 말씀 해주시죠.

제가 이렇게 하라 입장은 안 돼지만 향후 10년 정도는 예측하며 살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목표가 될 수도 있고, 급변하는 정세 속에 나름대로의 중심이 없다면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겠습니까. 저같은 경우는 순수하게 공부의 재미를 추구하며 살아왔는데 평소에 준비를 하다 보니 위기가 와도 바로 대처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정답이 아닐까 해요.

또한, 시야를 좀 넓힐 필요가 있지요. 요즘 융합이다 뭐다 해서 여러 분야가 섞이고, 새로운 직업도 많이 생기잖아요. 엔지니어의 시야를 좀 더 풍부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쯤에서 인터뷰를 마칠까 합니다. 상무님 같은 경우가 좀 특이하고, 삶의 경험이 풍부하셔서 방송과기술 독자들에게 많은 공감과 배울 점을 알려 주신 것 같네요.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하하. 아닙니다. 인터뷰 요청이 왔을 때, 할까 말까 고민도 하고, 많이 망설였는데 제 이야기가 괜찮다고 하시니 그저 기쁘네요. 옛 추억도 생각나고, 저에게도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VOL.199 방송과기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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