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철호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회장
<방송과기술 11월호 수록>
지난 15일 KBS 국정감사에서는 변재일 의원 등이 방송기술의 발전과 미디어 환경변화를 언급하면서 지상파 방송의 무용론, 직접 수신율 하락, 지상파 UHD의 포기 등을 언급하였다. 방통위원장 인사청문회에서는 “시청자 입장에서 지상파와 종합편성 채널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고, 지상파 직접 수신율은 불과 2.6%밖에 되지 않는다”라며 지상파 방송의 존재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현재 미국에서는 ATSC 3.0 지상파 방송이 다양한 서비스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한국에서만 지상파로 UHD 방송 서비스를 하고 있다는 잘못된 사실까지 언급하였다.
1. 지상파 방송의 무용론에 대해
지상파 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국민 대다수가 생수를 사 먹고, 정수기를 이용한다고 해서 수돗물 수질을 ‘식용 불가’에 맞춰도 될까?”, “재정 악화가 심각해지니 건강보험을 없애고 의료 민영화를 도입해도 될까?”
아마 국민 대다수는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국민은 전 세계적인 펜데믹 상황에서 미국 등 선진국보다 우수한 의료체계를 경험하며 적정수준의 공적 보험료를 부담할 가치가 있다는 데 동의했다.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최소한의 공적 서비스가 왜 필요한지 온몸으로 체감한 것이다. 지상파 방송도 마찬가지다. 공영방송 등 방송의 공적 서비스 영역이 사라진다면 우리나라 방송 생태계는 상업적, 자극적 콘텐츠로 채워지게 될 것이다. 지상파는 국민의 재산인 전파를 사용하여 무료 보편적 서비스를 제공한다. 비싼 통신료의 부담 없이 시청할 수 있으며, 송신소가 고지에 위치하여 집중호우와 태풍 등 재난방송에도 유리하다.
세계에서 지상파 방송을 포기한 나라가 얼마나 되는가? 영국 BBC는 지상파 무료 채널 Freeview를 통해 70개의 SD 채널과 15개 HD 채널, 그리고 30개의 라디오 채널을 서비스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멀티편성』이라는 명칭을 사용해 스포츠 중계와 교육방송에 대해 방송사의 자율적인 편성으로 지상파 다채널방송(MMS)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의 지상파 방송사들은 2009년에 디지털로 전환하면서 다채널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시청자에게 다양한 채널 선택권을 부여하여 시청자 복지를 향상했다. 특히 LA지역은 최대 90개 채널(HD 26개 + SD 64개)이 지상파를 통해 무료로 제공되고 있다.
2. 저조한 지상파 직접수신율에 대해
사실 변재일 의원이 지적한 지상파 직수율 하락의 가장 큰 원인도 잘못된 디지털 전환정책에 있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디지털 전환을 주도한 영국과 미국, 일본 등 대부분의 국가는 디지털 전환 이후 직수율이 증가했다. 디지털로 전환하면서 다채널 서비스가 가능해져 다양한 채널을 시청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지상파 방송은 아날로그 1채널을 디지털 1채널로 변환하는 1:1 전환에 그쳤고, 케이블 TV와 IPTV에 점점 점유율을 빼앗기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아날로그 방식을 사용하던 2007년 21.4%이던 직수율이 디지털로 전환된 이후 10% 안팎으로 떨어졌고, 이제는 겨우 한 자릿수만 유지하고 있다. 또한, 종합편성 채널을 4개나 허가해 신문이 방송을 소유하게 하는 등 매체 균형 발전을 저해하는 정책으로 지상파 방송의 추락은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 최초로 상용화 서비스를 시작한 5G를 보자. 기존 LTE보다 20배의 속도와 초저지연이 가능한 주파수는 28GHz 대역인데 설비 투자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3.5GHz 대역으로 대충 LTE 속도보다 3~5배 빠르게 해놓고 8, 9만 원대의 5G 요금을 받았지만, 최근 원가가 3만 원대임이 공개되었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28GHz 대역의 5G 전국망 설계를 포기한다고 밝혔다. 전국 커버리지가 15%밖에 안 되면서 전 국민을 우롱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이제 5G를 포기하라고 하면 어찌할 셈인가?
3. 한국에서만 UHD 방송을 한다는 의견에 대해
세계 최초로 UHD 방송을 시작한 후 3년이 지나도록 초고화질 방송에만 매달려온 한국과 달리, 미국은 이미 40개 도시에서 ATSC 3.0 시스템으로 방송하고 있다. 미국은 ATSC 3.0이라는 어려운 이름 대신 차세대 TV(NextGen TV)라고 부르고, 고화질뿐 아니라 양방향 서비스, 차량용 모바일, 타깃 광고, 다채널방송, 통신과 지상파를 동시에 수신하여 언제, 어디서나, 어떤 단말기로도 방송을 수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또한, 미국에서는 이미 ATSC 3.0을 수신할 수 있는 스마트폰도 개발되었다. 국내에서도 지상파와 통신망을 이용해 끊김 없는 방송을 시청하는 핸드오프 기술이 이미 검증되었다. 미국에서는 5G로 전국망을 구축하지 못하는 통신사가 이미 전국망을 확보한 지상파 UHD와 기술제휴를 요청하는 상황인데 지상파 UHD를 접으라는 변의원의 주장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같은 ATSC 3.0 전송 방식임에도 미국에서는 6MHz 대역에 SD급 1채널만 실으면 나머지는 방송사 자율에 맡긴다. 하지만 한국은 UHD 1채널만 가능하고 다른 어떤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경쟁의 출발선부터 다른 것이다. 세계 최초 UHD 방송을 위해 막대한 장비개발과 투자를 단행했던 국내 방송장비업체들도 한국의 지지부진한 상황에 사업을 포기하거나 미국행을 택하고 있다. 이제 미국에서 ATSC 3.0 관련 맞춤형 광고나 5G 융합기술이 개발되어 비즈니스 모델화되면 한국에 역수입될 것이 우려되는 상황이지만 방송통신위원회의 빗장은 여전히 견고하다.
지상파 UHD 방송도 정책적 오류의 연장선에 있다. 지상파 방송사는 시청자 중심의 지상파 UHD 방송을 위해선 내장형 안테나, UHD 모바일 방송 허용, 개인 맞춤형 광고 등 다양한 부가 서비스 허용, 콘텐츠 제작비 수급을 위한 광고제도 개선 등이 선행돼야 한다고 여러 차례 주장해왔다. 이 같은 법, 제도적 지원 없이는 세계 최초로 지상파 UHD 방송을 시작한다고 해도 고화질만으로 미디어 산업 자체에 큰 변화를 이끌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결국 지상파 방송사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한국에서 최초로 상용화를 통해 확보한 지상파 UHD(ATSC 3.0) 기술은 5G 연동 등을 통해 다양한 서비스가 가능하고 향후 자율주행 차량 등 다양한 산업으로 확장해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UHD 부가서비스, 이동방송, 재난경보 서비스 등은 정작 한국에서는 상용화하지 못하고 테스트베드 역할만 하고 있을 뿐이다.
다시 서론으로 돌아가서 지상파 방송은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을 위한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의 역할을 해야 한다. 유료방송 가입자가 거의 100%에 달한다 해도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공공 서비스 플랫폼이 있어야 한다. 온 국민이 코로나19 생활 안정지원금을 받은 이 어려운 시기에는 더욱더 그렇지 아니한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일부 의원들의 통신 편향적 시각에 우려를 표명하며 심각한 유감의 뜻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