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완 SBS 보도기술팀
그들이 떠난 이유
“오빠! 이번에는 어디로 여행갈까?”
“너 예전에 오로라 보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응. 죽기 전에 한번은 봐야 하지 않겠어?”
“그럼 오로라 볼 수 있는 곳으로 가자.”
출발 한 달 전에 비행기를 예약하고, 특별한 계획 없이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된 12일간의 무작정 겨울 여행. 오로라는 아이슬란드라는 아름답고도 무서운 섬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었다. 2016년 새해 첫날 우리는 아이슬란드로 떠났다. 아이슬란드는 유럽의 젊은이들이 가장 캠핑가고 싶어 하는 나라라서 성수기인 여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나 하이킹으로 여행한다고 한다. 겨울에는 비수기라 사람이 붐비지도 않고, 비행기 표, 숙박시설, 렌터카 가격도 여름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상대적으로 저렴하긴 해도 비싸다.) 나름의 이유로 아이슬란드는 이번 겨울에 꼭 가야만 하는 곳으로 충분히 합리화시킬 수 있었다. 특히, 오로라를 겨울에 볼 수 있으니까…
아이슬란드는 어떤 곳인가?
요즘 모 케이블 방송에 남자 연예인 4명이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는 프로그램 방영으로 아이슬란드에 대해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궁금해하는 것이 있다.
“북극 근처에 있는 나라 아냐? 엄청나게 춥지?”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뭐 먹고 살아? 물가는 어때?”
“오로라는 봤어? 가면 매일 볼 수 있는 거야?”
이런 궁금증을 풀어보고자 아이슬란드에 대한 몇 가지 기본 정보를 나열해 본다.
1. 아이슬란드의 인구는 약 33만(201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구(區) 하나 정도의 인구수이다. 참고로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인구(2015년 기준 323,105명) 정도라 하면 비교하기 쉽겠다. 수도는 전체 인구의 60%가 사는 레이캬비크라는 곳으로 지구 상에서 가장 높은 위도에 위치한 수도이다.
2. 아이슬란드 해안에는 따뜻한 멕시코 만류가 흐르기 때문에 같은 위도에 있는 다른 나라보다 따뜻하며, 1월 평균기온은 0도이다. 기온이 생각보다 따뜻하다는 것이지 날씨가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3. 아이슬란드는 남한만 한 크기의 전 국토(103,001㎢)에서 오로라를 볼 수 있는 유일한 나라로 보통 11월부터 3월까지 관측할 수 있다. 오로라를 보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한다. 오로라 지수와 날씨. 지수가 높고 날씨가 맑아야 쉽게 볼 수 있으며, 여행 동안에 거의 매일같이 본 사람도 있는 반면에 우리처럼 하루만 본 사람도 있다. 한마디로 복불복. (오로라 지수 및 아이슬란드 날씨 확인 사이트 en.vedur.is/weather/forecasts/aurora/)
4. 경제는 관광업, 어업과 수산물 가공업, 알루미늄 수출이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화산활동이 활발한 지형으로 에너지원 대부분을 지열과 수력으로 감당하는 친환경 국가라고 할 수 있다. 화산활동과 빙하가 공존하다 보니, 불과 얼음의 나라라고도 한다. 주요 관광자원은 화산과 용암, 빙하와 얼음동굴, 폭포와 기암괴석, 오로라 등이 있다.
5. 아이슬란드 인구 약 33만 명 중 1권 이상의 책을 출간한 작가가 10%나 된다. 인구 대비 저술가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이다. 실제로 거리에 다른 상점에 비해 서점을 자주 볼 수 있다.
6. 아이슬란드에서 대중교통으로 여행하기에는 가격도 비싸고,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기에 불편하기에 보통 렌터카를 이용해서 자유 여행을 많이 하는 편이다. 렌터카가 편하긴 하지만 변화무쌍한 날씨와 눈 덮인 도로 사정으로 겨울에 운전하기에 위험한 요소가 많아서 조심해야 한다. 운전자 본인의 과실보다는 자연재해로 인해 크고 작은 사고가 자주 나기 때문에 들 수 있는 모든 보험은 가입하는 것이 좋다. 운전하기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이 도로상황과 날씨이다. (아이슬란드 도로 상황 확인 사이트 www.road.is)
여행의 첫 단추 레이캬비크
수도 레이캬비크는 정갈한 도시의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서유럽의 모습과 같이 아기자기하지는 않지만 투박하고, 깨끗한 북유럽의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짧은 낮과 눈 덮인 하얀 도시는 여행객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아이슬란드 수도이며, 제일 큰 도시이지만 시내 투어는 걸어서 하루 반나절이면 충분할 정도로 볼거리는 많지가 않다.
이번 여행의 최종 목표는 오로라를 보는 것이었기에 도착한 첫 저녁부터 오로라 투어를 신청했다. 오로라 투어(www.re.is)는 특별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저녁 시간 주변에 인공적인 빛이 없는 곳으로 장소를 이동해서 오로라를 보는 투어이다. 투어가 끝날 때까지 오로라를 보지 못하면 오로라를 볼 때 까지 투어를 무료로 재신청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저녁 9시에 출발하여 12시가 넘을 때까지 기다린 우리의 첫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다. 다음날에 다시 예약을 했지만 날씨가 도와주지 않아서 출정조차 못 했다. 그때부터 오로라를 꼭 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여행 끝나는 날까지 밤마다 숙소 밖을 나와 하염없이 헤맸다.
아이슬란드 자연을 만나다
게이시르는 지열활동으로 인해 물이 끓고 있으며, 수시로 물이 터져서 솟구친다.
우리는 아이슬란드 링로드 투어를 했다. 제주도 해안도로를 한 바퀴 도는 것과 같이 1번 국도를 따라 아이슬란드를 자동차로 일주하는 여행이다. 수도 레이캬비크를 떠나 렌터카 여행 첫 목적지는 골든서클이라 불리는 3개의 관광지 싱벨리어 국립공원, 게이시르, 굴포스였다. 도시를 빠져나가면 우리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자연이 우리를 감싼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오전 9시에 아직 주위는 어둑하고, 통행하는 차량은 거의 없어, 헤드라이트로 보이는 길과 그 옆에 자욱이 끼여 있는 안개는 나를 천국으로 안내하는 것 같았다. 무서움과 신비로움에 머리가 쭈뼛할 정도이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도착한 싱벨리어 국립공원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아이슬란드 초기 정착민들이 공화주의를 결의하고 세계 최초 알싱기(국회)를 설립한 곳이다. 몇 장의 사진을 남기고 다시 가던 길을 한 시간 남짓 계속 가다 보면 유황냄새가 코를 찌르는 곳이 나온다. 게이시르에 도착했다는 신호다. 게이시르는 뜨거운 암석층의 증기 압력에 의해 지하수가 지면 위로 솟아오르는 간헐천이다. 일정한 간격으로 물을 뿜어내는 게이시르는 자연이 선물한 분수 공원이다. 첫날의 마지막 목적지는 굴포스. 추운데 얼지도 않고 물보라를 휘날리며 3단으로 내리는 물 앞에서 자연의 웅장함을 느끼는 한 인간은 경건해진다.
셀포스 시내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스코가포스, 플레인 렉, 디르홀레이, 비크, 스카프타펠까지 열심히 운전했다. 우리가 간 1월 초는 보통 해가 오전 11시 20분 즈음 떠서 오후 3시 50분이면 해가 지는 어둠의 시간이 많아서 동이 트기를 기다려 해가 질 때까지 열심히 운전하는 일정이 계속되었다. 하루에 밝은 시간이 4시간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일정이 늦어지면 어두워져서 관광지를 제대로 구경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가로등도 없는 도로에서 운전하기에도 위험하므로 해가 있을 때 많이 보고, 많이 움직여야 했다. 오후 5시면 날은 어둡고, 벌써 졸리기 시작한다. 하루가 짧아 밀도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새삼 해 보았다.
또다시 하루가 시작되고, 가장 기대되는 일정 중의 하나인 빙하트래킹을 하기 위해 바트나요쿨 국립공원으로 이동했다. 아이슬란드 남부에서 동부로 넘어가는 경계에 북극을 제외하고 가장 큰 빙하 지역인 바트나요쿨 만년설이 있다. 아이슬란드 전체면적의 12% 정도를 차지하는 이 지역은 빙하를 체험하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들리는 곳이다. 가이드가 전달한 아이젠과 헬멧, 안전벨트를 착용 후 안전수칙을 듣고, 빙하 위를 걷기 위해 이동을 했다. 10분쯤 이동했을까, 내 눈앞에는 영화관 스크린이 펼쳐졌다. 영화나 TV에서만 보았던 그 빙하. 직접 보는 빙하는 입을 다물지 못할 만큼 장관을 연출했다. 오로라도 그랬지만 빙하도 인간이 죽기 전에 한번은 직접 봐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아름다운 빙하의 뒷면에는 슬픈 현실도 같이 하고 있었다. 지구의 온난화로 빙하의 녹는 속도가 급속도로 빨라지고 있으며, 머지않은 미래에 빙하를 못 볼 수도 있다는 가이드의 말에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빙하를 내 눈에 담기 바빴다. 가이드는 여기에 온 모든 사람이 자연을 보호하고 지구를 지켜주기 바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우리의 조그마한 힘이 모이면 반드시 지구를 살릴 수 있을 거라며… 아이슬란드에 관광을 왔다가 자연보호 운동가로 계몽된 것 같았다. 미래에 빙하를 보러 가실 분들을 위해서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자연보호 활동을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교통사고, 천국에서 지옥으로
듀피보구어에서 하룻밤을 지낸 우리는 인구 2,000명 정도의 동부 지방에서 가장 큰 교통 중심지 에이일스타디르로 이동했다. 동부에서 가장 큰 도시가 인구 2,000여 명 정도이니, 가는 길에 만나는 다른 도시들은 도시라기보다 몇몇 가구가 모여 사는 조그마한 마을 정도이다. 그러니 사람을 볼 때마다 마을이 보일 때마다 얼마나 반갑겠는가? 길을 따라가면 초현실적인 풍경의 장엄함과 아름다움에 매료된다. 하지만 사람이 보이지 않는 이 황량함은 가끔 나를 두려움으로 몰아넣었다.
동부 피오르드 지역을 지나 점심때 즈음해서 에이일스타디르에 도착했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고민했다. 세이디스피오르로 가고 싶은데, 가는 93번 국도가 험하다고 해서 망설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 도로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영화에서 주인공 월터미티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내려간 길로 유명하다. 우선 도로 상황과 날씨가 나쁘지 않음을 확인 후, 출발했으나, 여행의 설렘이 공포로 변하기에는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산길을 10분여 올라가고 있을 때쯤 순식간에 변해 버린 날씨는 엄청난 눈 폭풍을 몰고 왔고, 3m 앞의 시야도 확보되지 않을 만큼 휘몰아쳤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운전은 어렵다고 판단, 비상등을 켜고, 갓길로 차를 세웠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겠고, 눈 폭풍으로 주위에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아 그야말로 공포에 휩싸였다. 이대로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가야 하나?, 아니면 조금씩이라도 계속 직진을 해야 하나? 차를 돌리다 반대편에 갑자기 차가 나타나면 어떻게 할까? 이러다 조난당하는 건 아닌가? 머리가 한창 복잡할 무렵 사이드미러에 나타난 큰 덩치의 제설차. “아, 살았구나! 저분이 우리를 좀 도와주면 되겠다.”라는 안도감도 잠시, 제설차는 우리 차 왼쪽 측면을 가격하며 지나갔고, 사이드 미러를 날려버렸다. 제설차 운전자도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던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사이드 미러는 없지만 운행에는 지장이 없을 정도였다. 만약 갓길이 아니라 도로에 그대로 세웠더라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문을 열려고 했지만 바람이 너무 강력해서 문도 잘 열리지 않았다. 겨우 문을 열었고, 나가자마자 내가 쓰고 있던 안경도 바람에 날아가 버렸다. 제설차 운전자는 차를 세우고, 우리한테로 걸어왔다. 나에게 안경을 찾아주면서 다친 곳은 없는지 묻고, 이런 날씨에 운전은 힘드니, 빨리 차를 돌려서 마을로 내려가서 신고하라고 알려 주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우리는 하느님께 무사히 내려갈 수 있기만을 간절히 기도하며 마을로 겨우 엉금엉금 내려올 수 있었다.
우선 경찰서에 가서 사고 신고를 하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리고 숙소를 잡고 방에서 놀란 가슴을 다시 진정시켰다. 우리가 안 다친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었다. 여행 중 다치기라도 했으면… 상상만으로 아찔했다. 노트북으로 사고 경위서를 작성해서 렌터카 업체에 이메일로 통보하고, 다음 일정에 대해 논의했다. 겨울에 북쪽 도로는 많이 얼어 있어서 운전하기가 부담스러웠다. 왔던 방향으로 다시 돌아가자니 그쪽은 태풍이 온다는 날씨예보가 있어서 고민하다 끝까지 링로드를 완주하기로 했다. 여행 중의 사고. 그날 밤 잠이 쉽사리 오지 않았다.
여행의 끝 오로라
사고 다음 날 다시 경찰서로 가서 접수번호와 사고처리가 어디까지 되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제설차 운전자가 제설을 끝내고 경찰서에 신고했고, 일은 잘 진행되는 것 같았다. 전날 작성한 사고 경위서를 경찰서에 제출하고, 우리는 일정을 시작했다. 사고 난 이후라 빙판길 운전에 사이드 미러까지 없어서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집에 돌아가려면 레이캬비크까지 운전을 해야만 했다. 이때부터 주변 경관은 잘 보이지 않았고 그냥 운전에만 온 정신을 집중했다. 북쪽 도로를 운전하면서 빙판에 미끄러지는 아찔한 경험을 한 번 더 했지만 다행히 더 이상의 사고는 없었다. 이틀에 걸쳐 아이슬란드 제2의 도시 아큐레이리를 경유하여 다시 레이캬비크로 무사히 돌아왔다. 사람이 많고 차가 보이는 게 어찌나 반갑던지. 지옥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다시 오로라 투어를 신청했고, 다행히 여행 마지막에 오로라를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다. 기대하고 고대하던 그 모습을 내 앞에서 보는 이 기분이란. 사고로 인한 내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받을 수 있었다. 오로라 지수가 2밖에 되지 않아서 색깔이 진하지는 않았지만 춤추는 오로라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제설차 운전자의 100% 과실로 보험 처리되었다는 렌터카 업체의 이메일을 받고 나니 모든 여행이 무사히 끝난 것 같았다.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경험하게 해준 애증의 아이슬란드. 지금도 서울의 밤하늘을 보면 아이슬란드에서 쏟아지던 별과 오로라가 그리워진다. 다시금 아이슬란드를 찾아가 이제는 여름밤을 보고 싶은 마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