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변화에는 때가 있다

라디오 변화에는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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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변화에는 때가 있다

최영학 CBS 기술기획관리부장

라디오 혁신의 기회는 줄어들고 있다.

최근 미디어 환경은 눈부신 기술의 발전과 다양한 서비스의 등장으로 인해 급격하게 변화하며 미디어 사업자들을 힘겨운 적자생존 경쟁의 자리로 내몰고 있다. 시장과 기술, 정책 등의 영역이 서로 복합적으로 반응하며 미디어 환경 변화를 가속하고 있기 때문에 미디어 산업의 미래를 예측하고 새로운 활로를 찾아 적절하게 대응하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그 언저리에 라디오방송이 있다. 여전히 라디오는 위기라고 말하고 있으며 유튜브, 넷플릭스와 같은 뉴미디어 서비스가 등장해 이용자의 눈과 귀를 빼앗아 가고 국민 다수가 스마트폰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필수 매체로 인식하면서 라디오의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라디오방송의 변화와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청취자 취향을 정밀하게 파악해 다양한 고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높아진 이용자의 눈높이를 맞추려고 노력하는 것이 위기 상황에서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이다. 커넥티드카와 같은 새로운 플랫폼에 대응해 최신 기술을 접목하고 고도화해 새로운 오디오 콘텐츠를 유통하는 주요 경로로 활용하는 것 역시 라디오 방송사가 관심을 가지고 핵심 역량을 투입해야 할 사업이다. 유럽과 호주의 라디오 방송사업자들이 연합하여 라디오의 디지털화와 고도화를 추진하며 라디오 산업의 활성화를 모색했던 것처럼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생수와 같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라디오 활성화 사업에 국내 라디오 방송사업자 간에 적극적인 연합과 협력도 필요하다. 또한 과거 실패한 사례를 참고하여 새로운 라디오방송 서비스가 정착될 수 있도록 정책적인 노력도 해야 한다.

과거 디지털라디오의 도입을 추진할 때 방송사 간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아쉽게도 결실을 맺지 못한 경험이 있다. 2013년 이후 디지털 라디오의 실질적 논의가 중단된 상황에서 통신 환경이 발달로 기존 아날로그 라디오와는 다른, 양방향 소통과 부가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인터넷 라디오 서비스가 확대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라디오의 디지털화는 추진 동력을 잃었고 디지털 라디오를 도입하여 라디오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적절한 시기를 놓쳤다고 볼 수 있다.

하이브리드 라디오 추진과 관련해서도 아쉬운 부분이 있다. 스마트폰 이용이 늘어나면서 라디오 활성화 대안 중 하나로 2015년부터 하이브리드 라디오 도입에 대한 제안이 있었다. 이후 국회와 정부, 라디오방송 사업자가 지속해서 스마트폰에 FM 라디오 수신 기능 탑재를 요구한 결과, 2018년부터 국내 스마트폰 제조사(LG, 삼성)에서 FM 라디오 수신이 가능한 제품을 출시하기 시작했고 2018년 7월 EBS ‘반디’ 애플리케이션을 시작으로, 2019년 CBS ‘레인보우’ 앱에서 하이브리드 라디오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러나 하이브리드 라디오 서비스 이용자는 예상보다 증가하지 않았다. 스마트폰으로 라디오를 듣기 위해서는 안테나 역할을 하는 이어폰 단자를 스마트폰에 연결해야 하는데 무선 이어폰 사용자가 증가함에 따라 거추장스러운 유선 이어폰은 이용자의 선택을 받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또한 2020년 출시 제품부터 3.5mm 이어폰 단자 대신 USB-C 단자로 대체했고, 이어서 FM 라디오 수신 모듈을 USB-C 타입 이어폰 속에 설치했다. 그마저도 이어폰을 기본 제공 항목에서 제외하면서 힘들게 탑재한 FM 라디오 수신 기능을 이용하기 어려워져 FM 라디오 이용자가 늘어날 수 없는 구조가 됐다.
결국 스마트폰 라디오 이용도를 높이기 위해서 FM 라디오 수신 안테나를 스마트폰에 내장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며, 이에 대해 보다 강하고 설득력 있게 추진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20년 7월 방송통신위원회에서 발표한 ‘라디오 방송 진흥을 위한 정책 건의서’에서는 청취자가 원하는 콘텐츠를 쉽게 향유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라디오 통합 앱 및 포털 운영이 필요하며, 정부는 앱·포털 개발에 필요한 재정적 지원 및 사업자 간 협의가 원만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한다.
국내 라디오 방송사와 한국방송협회가 추진해 온 라디오 통합 플랫폼 구축 사업이 성공적으로 이뤄져서 라디오 활성화의 기반이 돼야 한다. 라디오 통합 플랫폼을 통해 국내 42개 지상파 라디오 방송 콘텐츠와 특화된 전문 콘텐츠를 제공하고, VOD, 음원 제공 서비스 등 다른 오디오 서비스와 결합해야 한다. 또, 디지털 오디오 플랫폼(커넥티드카, 스마트 스피커)과 연동함으로써 오디오 콘텐츠의 지평을 넓혀야 미디어 전쟁 시대에 보다 매력적인 오디오 서비스로 이용자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이라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그것만을 기다리다 실기(失機)한 전례를 돌아볼 때 라디오방송 사업자의 투자와 전향적이며 적극적인 협력을 우선해야 한다.

지난해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관으로 아날로그 라디오 기반 SFN 기술 도입을 검토하고 연구 중이다. SFN(Single Frequency Network)은 디지털 라디오에서 사용하는 개념으로, FM 동기전송망 기술을 사용해 아날로그 라디오(FM 대역)에서 동일한 주파수로 인접한 방송 사이트에서 혼신을 최소화해 방송 신호를 송출하는 것이다. 난청 지역의 수신 환경을 일부 개선하고 부족한 방송 주파수를 확보하는 데 일정 부분 도움이 될 것이다.

2014년 디지털 라디오 논의가 중단된 이듬해에 열린 라디오 관련 세미나 발표에서 어느 방송사 직원이 ‘우리는 이제 디지털 라디오 도입을 추진할 힘과 기회를 놓쳤다’라는 멘트가 기억난다. 돌아보니 그 말이 맞았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데 라디오 방송사에는 중요한 기회를 한 번 놓친 셈이다.
앞으로 많지 않은 변화와 혁신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라디오 방송의 미래를 대비하고 활로를 찾기 위해서 새롭게 다가올 미디어 환경 변화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 미래의 소비자를 붙잡고 미디어 기업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최적화한 전략과 노력과 과감한 시도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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