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홍규 칼럼: AI 시대의 콘텐츠 6회 ]
AI는 격차를 벌리기도 하고 좁히기도 한다,
미디어는 좁히는 쪽을 도와야 한다
같은 AI가 누군가의 손에서는 격차를 벌리고, 다른 누군가의 손에서는 격차를 좁힌다. 점심시간, 한 사람은 오전 내내 씨름하던 보고서 초안을 AI에 맡기고 자리를 뜬다. 같은 시각, 다른 한 사람은 여전히 빈 화면 앞에 앉아 있다. AI를 몰라서가 아니다. 어떻게 물어야 할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다. 겉보기엔 뻔한 풍경이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갈리는, 익숙한 격차의 재현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기술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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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얼굴: 격차를 벌리는 AI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가 2026년 1월 발표한 자료1)는 이 익숙한 격차를 숫자로 보여준다. 회원국 전체에서 생성형 AI를 써본 사람의 비율이 2025년 3분의 1을 넘어섰지만, 그 속을 살펴보면 온도 차가 뚜렷하다. ‘AI를 써봤다’와 ‘안 써봤다’를 가르는 이 경계선을 문턱이라고 부르자. 문턱을 넘는다는 건 AI를 한 번이라도 실제로 써본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문턱을 넘은 사람의 비율이 집단마다 크게 다르다. 젊은 층은 이미 절반 가까이가 AI를 써봤다. 고령층은 써본 사람 자체가 드물다. 학력이나 소득이 낮은 집단도 마찬가지로, 아직 문턱을 넘지 못한 사람이 훨씬 많다. 젊은 층과 고령층 사이의 이용률 차이는 50%포인트가 넘고, 학력과 소득에 따른 차이도 20%포인트 안팎이다. 인터넷이 그랬고, 스마트폰이 그랬듯, 새로운 기술은 늘 먼저 문턱을 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가른다. AI도 다르지 않다.
1)www.oecd.org/en/about/news/announcements/2026/01/ai-use-by-individuals-surges-across-the-oecd-as-adoption-by-firms-continues-to-expand.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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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얼굴: 격차를 좁히는 AI
이미 문턱을 넘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전혀 다른 그림이 펼쳐진다.
2025년 2월 「계간 경제학 저널(The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에 발표된 연구2)는 미국의 한 대기업 고객센터 상담원 5,172명을 대상으로, AI 상담 보조 도구를 실제 업무에 도입한 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추적했다.
평균적으로 상담원의 업무 처리량은 15% 늘었다. 그런데 이 평균 뒤에는 전혀 다른 두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신입이나 상대적으로 서툰 상담원은 눈에 띄게 나아졌다. 반면 이미 능숙한 베테랑 상담원에게는 AI가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대화의 질이 살짝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더 인상적인 대목은 따로 있다. AI의 도움을 받은 신입 상담원은 입사 두 달 만에, AI 없이 여섯 달 넘게 일한 베테랑과 맞먹는 실력을 보였다. AI가 경력의 격차를 메워준 셈이다.
2) academic.oup.com/qje/article/140/2/889/7990658
연구팀은 AI 시스템에 가끔 오류가 나서 잠깐씩 멈추는 순간들도 살펴봤다. 신기하게도, 평소 AI 제안을 자주 따르던 상담원은 AI가 멈춘 그 순간에도 이전보다 빨라진 실력을 그대로 유지했다. AI를 곁에 두고 배운 것이 몸에 남아 있었다는 뜻이다. 다만 여기서도 한 번 더 갈렸다. AI의 제안을 자주 받아들이고 따라본 상담원일수록 더 크게 성장했다. AI를 미덥지 않아 하며 좀처럼 따르지 않은 상담원도 어느 정도는 나아졌지만, 적극적으로 따른 상담원보다 향상 폭은 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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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힘, 문턱의 이쪽과 저쪽
정리하면 이렇다. AI를 아직 안 써본 사람과 이미 써본 사람을 통째로 비교하면 격차가 벌어진다. 그런데 문턱을 넘어 AI를 직접 써본 사람들만 놓고 보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 힘은 오히려 가장 서툴렀던 사람에게 가장 크게 작용한다. 다시 말해 벌리는 AI와 좁히는 AI는 서로 다른 두 기술이 아니다. 문턱의 이쪽과 저쪽에서 같은 힘이 다르게 나타날 뿐이다.
여기서 하나의 사실이 분명해진다. AI가 가진 ‘격차를 좁히는 힘’은 이미 존재한다. 문제는 이 힘이 저절로 문턱을 넘어오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지금처럼 가만히 두면 이미 AI를 쓰고 있는 사람들만 이 힘의 혜택을 본다. 아직 문턱을 넘지 못한 사람은 그 힘이 있다는 것조차 모른 채 계속 뒤처진다.
그래서 미디어가 할 일은 분명하다. AI가 실제로 누군가의 격차를 좁혀준 장면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아직 문턱 앞에 머문 사람이 그것을 보고 직접 넘어서도록 이끄는 것이다. “이런 기술이 있다”는 소개나 “격차가 심각하다”는 경고로는 사람을 움직이지 못한다. 사람의 등을 떠미는 것은 언제나 눈으로 확인한 증거다.
세 가지 콘텐츠 형식을 제안한다.
‘격차를 좁힌 사람들(The Narrowers)’ 콘텐츠
통계 뒤에 숨은 사람을 꺼내 보여주는 다큐멘터리형 콘텐츠다. 낯선 일 앞에서 AI의 도움으로 몇 달의 격차를 앞당겨 따라잡은 사람, 서툴던 실력이 눈에 띄게 나아진 사람의 실제 경험을 담는다. ‘AI가 격차를 좁힐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추상적인 숫자가 아니라, 망설이는 사람도 공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얼굴로 보여주는 것이 목표다.
‘세대가 함께 배우는 시간(Cross-Generation Learning)’ 콘텐츠
격차가 가장 크게 벌어지는 지점이 연령이라는 사실에 착안한 형식이다. 부모와 자녀, 혹은 신입사원과 은퇴를 앞둔 선배가 짝을 이뤄 같은 AI 과제를 함께 풀어가는 과정을 담는다. 젊은 세대는 도구를 다루는 감각을, 나이 든 세대는 질문을 벼리는 경험과 맥락을 서로에게 건넨다. 문턱을 혼자 넘게 하지 않고, 곁에서 함께 넘도록 돕는 것이 이 포맷의 핵심이다.
‘격차 계기판(The Gap Dashboard)’ 콘텐츠
조회수나 화제성이 아니라, 연령·학력·소득에 따른 AI 활용 격차 그 자체를 정기적으로 추적하고 보도하는 코너다. 날씨를 전하듯 격차의 크기를 주기적으로 공개하고, 그 격차가 좁혀지고 있는지 벌어지고 있는지를 꾸준히 기록한다. 격차는 한 번 조명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계속 지켜보는 시선이 있을 때만 서서히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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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기술이 벌리는 격차, 같은 기술이 좁힐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문턱 앞에는 아직 그 힘을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이 서 있다.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AI에 대한 지식이 아니다. 그 문턱 너머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자신과 같은 처지의 누군가가 그 힘으로 무엇을 얻었는지를 직접 본 경험이다.
AI는 격차를 벌리는 기술이면서 동시에 격차를 좁히는 기술이다. 어느 쪽이 될지는 기술이 아니라 우리가 정한다. 그 힘을 문턱 너머로 데려가 한 사람이라도 더 손에 쥐여주는 일, 그것이 지금 미디어가 해야 할 몫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