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사람을 지운다면, 미디어는 그 사람을 다시 불러와야 한다

AI가 사람을 지운다면, 미디어는 그 사람을 다시 불러와야 한다

[ 최홍규 칼럼: AI 시대의 콘텐츠 7회 ]

AI가 사람을 지운다면,
미디어는 그 사람을 다시 불러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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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에는 손이 없다. AI가 쓴 문장에는 지문도, 필체도, 망설임의 흔적도 없다. 우리는 그 매끈함을 지능이라 부르지만, 실은 지워짐의 결과다. 답이 완성되기까지 누군가의 손은 분명히 있었다. 다만 보이지 않을 뿐이다.

AI는 두 번 사람을 지운다. 화면 아래에서는 그것을 만든 노동자의 존재를 지우고, 화면 위에서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선택을 지운다. 도구는 손에 쥐면 내가 통제하는 물건이지만, 미디어는 나를 통과하며 나를 빚는다. AI는 도구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실은 미디어의 방식으로 작동한다.

 

아래에서 지워지는 손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어바나-섐페인(University of Illinois Urbana-Champaign) 연구팀이 2026년 7월 발표한 연구(dl.acm.org/doi/10.1145/3811242.3819087)는 그 지워진 손의 주인을 찾아 나섰다. 연구팀은 8개월간 방글라데시의 플랫폼 노동 생태계를 관찰하고, 노동자 34명을 인터뷰했다. 이들은 업워크(Upwork)나 파이버(Fiverr) 같은 곳에서 일한다. 전 세계 어디서든 인터넷만 있으면 일감을 받고 돈을 받을 수 있는 온라인 프리랜서 장터다. 여기서 이들은 AI가 학습할 사진에 이름표를 붙이고, 영상을 확인하고, 데이터를 정리한다. 우리가 매일 여닫는 AI가 배운 바로 그 자료를 만든 손이다.

그런데 이 손은 자기가 한 일을 자기 것이라 말하지 못한다. 일을 맡긴 회사는 비밀을 지키라는 계약서에 서명하라고 하고, 자기가 만든 결과물을 이력서나 포트폴리오에 올리는 것조차 막는다. 심지어 “제가 이런 일을 했어요”라고 한마디 했다가 소송 위협을 받은 사람도 있었다. 별점 하나에 생계가 걸려 있다. 별 다섯 개 중 네 개만 받아도 사실상 낙제점 취급을 받고, 며칠만 접속하지 않아도 순위가 뚝 떨어진다. 가난한 나라 출신이라는 이유로 제값의 5분의 1밖에 안 되는 돈을 받는 일도 흔하다. 그래서 이들은 살아남으려고 갖은 방법을 짜낸다. 서구 사람인 척 신분을 꾸미고, 수수료를 아끼려고 메시지 속에 연락처를 암호처럼 숨긴다. 연구팀은 이런 모습에 ‘고스트크래프팅(Ghostcrafting)’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유령처럼 지워진 채로, 그 지워짐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길을 만들어 내는 노동이라는 뜻이다.

AI가 내놓는 답이 매끄러울수록, 그 매끄러움을 위해 누군가 흘린 땀은 그만큼 더 깊이 파묻힌다. 우리는 결과만 보고 감탄하지만, 그 결과를 만들려고 밤늦게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사람의 얼굴은 끝내 마주치지 못한다. 우리가 편리함을 누리는 그 순간에도, 지구 반대편 누군가는 별점 하나 때문에 잠을 설치고 있을지 모른다.

 

위에서 지워지는 선택
그렇다면 화면 이쪽, 우리가 정보를 받아보는 자리는 지워짐에서 자유로울까. 미국 노스다코타대학교(University of North Dakota), 캘리포니아대학교 데이비스(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 폴란드 바르샤바대학교(University of Warsaw) 등 연구진이 2024년 12월 발표한 연구(academic.oup.com/pnasnexus/article/3/12/pgae518/7904735)는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을 직접 실험대에 올렸다.

실험은 두 가지 방법을 함께 시도했다. 하나는 ‘알고리즘 넛지’다. 이용자가 유튜브를 쓰는 동안, 믿을 만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뉴스 채널의 영상을 그 사람의 시청 기록에 몰래 끼워 넣었다. 이용자 본인은 그 영상을 본 적이 없다고 여기지만, 유튜브 알고리즘은 ‘이 사람이 뉴스도 즐겨 보는구나’라고 오해하게 된다. 다른 하나는 ‘이용자 넛지’다. 이번엔 알고리즘이 아니라 사람에게 직접 말을 걸었다. 화면에 ‘뉴스를 보면 여러분과 사회에 도움이 됩니다’라는 배너를 띄워 뉴스 시청을 권한 것이다.

두 방법의 결과는 완전히 갈렸다. 알고리즘을 속인 첫 번째 방법은 효과가 컸다. 그 이용자에게 뉴스 영상을 훨씬 많이 추천하기 시작했고, 실제로 이용자가 보는 뉴스의 양도 함께 늘었다. 반면 배너로 부탁한 두 번째 방법은 거의 아무런 변화도 만들지 못했다. 사람에게 직접 부탁하는 것보다, 알고리즘이 판단하는 재료를 살짝 바꾸는 쪽이 훨씬 강력했다는 뜻이다.

더 흥미로운 결과는 그다음이다. 연구팀은 ‘추천이 늘어서 시청이 늘어난 것’과 ‘시청이 늘어서 추천이 늘어난 것’ 가운데 어느 쪽이 더 근본적인 원인인지를 따로 계산해 봤다. 결과는 뚜렷했다. 추천이 시청을 끌어당기는 힘이, 시청이 추천을 끌어당기는 힘보다 여덟 배 가까이 컸다. 다시 말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고리즘이 알아채서 추천해 주는 구조가 아니라, 알고리즘이 추천해 준 것을 내가 좋아하게 되는 구조에 훨씬 가까웠다.

우리는 스스로 골랐다고 믿지만, 실은 누군가 미리 골라 놓은 것 가운데서 고르고 있었을 뿐이다.

 

노동과 알고리즘, 두 이야기가 만나는 자리
노동자의 이야기와 알고리즘의 이야기는 언뜻 아무 상관 없어 보인다. 하나는 방글라데시의 좁은 사무실에서, 다른 하나는 유튜브 서버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그러나 두 이야기를 나란히 놓으면 겹치는 그림자가 드러난다. AI 시스템의 아래에서는 그것을 만든 사람의 얼굴이 지워지고, 위에서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선택이 지워진다. 이 지워짐은 우연이 아니다. 데이터를 누가 만들고, 정보를 누가 배치하고, 그 과정에서 누가 이익을 얻는지가 촘촘히 설계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손에 쥐면 그만인 도구였다면 애초에 이렇게까지 정교하게 설계될 이유가 없다. 우리를 통과하며 우리를 빚어내는 무언가이기에, 그 안에 이토록 많은 이해관계가 촘촘히 얽혀 들어간 것이다.

지금까지 미디어는 AI를 ‘얼마나 잘 쓰는가’의 눈으로만 다뤄왔다. 사용법, 프롬프트 요령, 신제품 소식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AI를 미디어로 읽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이 답변은 누구의 손을 거쳐 왔는가. 이 추천은 누구의 이익을 따라 놓였는가.

 

다시 불러오는 세 개의 창
지워진 것을 다시 불러오기 위해 세 가지 콘텐츠 형식을 제안한다.

‘되찾은 손’ 콘텐츠다. AI 답변 하나가 완성되기까지 거쳐 온 노동의 경로를 역추적한다. 어떤 데이터가, 어느 나라의 누구에 의해, 어떤 조건에서 만들어졌는지를 실제 얼굴과 실제 사연으로 풀어낸다. 결과의 매끄러움에 가려졌던 손을 화면 위로 다시 그려 넣는 일이다.

‘놓인 자리’ 콘텐츠다. 같은 질문을 서로 다른 조건의 AI에 던지고, 개인화된 추천과 개인화를 제거한 추천을 나란히 놓아 비교하는 실험형 콘텐츠다. 지금 내 화면이 유일한 세계가 아니라 누군가 놓아둔 하나의 배치임을 눈으로 확인하게 한다.

‘권력의 지도’ 콘텐츠다. 우리가 매일 쓰는 AI 서비스 뒤에 어떤 기업이, 어떤 데이터로, 어떤 수익 구조로 얽혀 있는지를 지도처럼 그려낸다. 익숙한 서비스 하나를 골라, 그것이 딛고 선 데이터·노동·자본의 지형을 쉬운 그림 언어로 보여주는 방식이다.

 

다시, 손을 그려 넣는 일
활자를 읽는 능력이 근대의 문해력이었다면, 미디어 뒤의 구조를 읽는 능력은 지금 이 시대의 문해력이다. AI를 도구로만 여기는 한, 우리는 그 아래 있는 손도, 그 위에서 벌어지는 선택의 편향도 영영 보지 못한다. 지워진 것은 지워진 줄도 모른 채 사라지고, 우리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고 믿으며 살아간다. 가장 무서운 지워짐은 바로 이것이다. 지워졌다는 사실조차 지워지는 것.

미디어가 할 일은 분명하다. 지워진 자리에 다시 손을 그려 넣는 일이다. 그 손을 그려 넣는다고 방글라데시 노동자의 별점이 당장 오르지는 않는다. 알고리즘이 하루아침에 공정해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한 사람이라도 화면 너머의 손을 한 번 상상하게 된다면, 그다음 질문은 반드시 따라온다. 이 대가는 누가 치렀는가. 이 편리함은 누구의 몫을 가져온 것인가. 질문이 시작되는 자리에서 비로소 책임도 시작된다.

화면에는 원래 손이 없지 않았다. 누군가 지웠을 뿐이다. 그리고 지운 것은 다시 그릴 수 있다. 그 손을 화면 위로 불러오는 순간, 우리는 이 거대한 미디어 앞에 무력하게 서 있는 이용자가 아니라, 그것을 다시 설계할 수 있는 사람으로 돌아온다. 지워진 사람을 불러오는 일, 그것이 결국 우리 자신을 지우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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