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고르게 만드는 세계에서, 미디어는 울퉁불퉁해야 한다

AI가 고르게 만드는 세계에서, 미디어는 울퉁불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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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규 칼럼: AI 시대의 콘텐츠 4회]

AI가 고르게 만드는 세계에서, 미디어는 울퉁불퉁해야 한다

매일 오전, 당신은 AI에 하루를 맡긴다. 회의 요약, 이메일 초안, 보고서 구성. 답변은 언제나 매끄럽고, 빠르고, 적당히 정확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당신은 그 글이 내 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이 편리함이 지속할수록, 당신이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도 조용히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불안이 아니다.


더 잘 쓰게 됐지만, 함께 쓰면 더 비슷해진다

영국 런던대학교(University College London)의 도시 아닐(Anil R. Doshi)과 영국 엑서터대학교(University of Exeter)의 하우저 올리버(Oliver P. Hauser)가 2024년 발표한 실험 연구(참조 : www.science.org/doi/10.1126/sciadv.adn5290)는 AI 보조가 창의성에 미치는 영향을 정밀하게 측정했다. 결론의 앞부분은 낙관적이다. AI 아이디어를 제공받은 작가들의 이야기는 더 창의적이고 잘 쓰인 것으로 평가받았다. 특히 원래 창의성이 낮은 작가들이 가장 많이 올랐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AI 지원을 받은 이야기들은 그렇지 않은 이야기들보다 서로 훨씬 더 비슷했다. 개인은 더 좋아졌지만, 전체는 더 균일해진 것이다. 연구팀은 이를 사회적 딜레마(Social Dilemma)라고 불렀다. AI를 쓰면 개인적으로는 이득이지만, 모두가 그렇게 하면 집단 전체가 생산하는 창의물의 다양성은 줄어든다.

이 역설이 가리키는 것은 창작 영역만이 아니다. 같은 AI로 뉴스를 요약하고, 같은 AI로 의견을 다듬고, 같은 AI로 보고서를 쓰는 세계에서는 표현만이 아니라 사고방식 자체가 수렴하기 시작한다.


자주 쓸수록, 검증 능력은 오히려 내려간다

더 깊은 문제가 있다. AI에 의존하면 할수록, 인간이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은 어떻게 되는가. 독일 데겐도르프공과대학(Deggendorf Institute of Technology) 연구팀이 2026년 공개한 6개월 종단연구(참조 : arxiv.org/pdf/2601.17055)는 이 질문에 불편한 답을 내놓는다. 연구 시작 시점에 52.4%였던 AI 일일 사용률은 6개월 후 95.7%로 올랐고, 챗GPT 사용률은 100%에 도달했다. 그런데 같은 기간, 어려운 과제에서 AI를 검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85.7%에서 68.1%까지 내려앉았다. AI에 가장 많이 의존한 복잡한 과제에서 실제 정확도는 47.8%에 그쳤다. 연구팀이 이름 붙인 현상은 ‘검증의 역설(Verification Paradox)’이다. 어려운 과제일수록 AI에 더 많이 기댔지만, 정작 그 답이 맞는지 판단하는 능력은 더 약해져 있었다.

AI를 더 믿게 됐는데, AI의 답을 검증하는 능력은 떨어졌다. 이 역설이 쌓이는 속도가 지금 우리가 마주한 가장 조용한 위기다.


울퉁불퉁함을 설계하는 일

이 문제를 직접 다룬 연구가 있다. 옥스퍼드대학교(University of Oxford), 케임브리지대학교(University of Cambridge), 프린스턴대학교(Princeton University) 등 여러 기관의 연구자들이 공동으로 참여해 2025년 발표한 논문(참조 :  arxiv.org/pdf/2509.08010)은 AI 과의존(Overreliance)을 측정하고 완화하는 것이 인간 친화적 AI 구축의 핵심 과제라고 주장한다. 연구팀은 과의존을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위험으로 규정하면서, 이것이 고위험 오류, 거버넌스 부재, 인지적 탈숙련(Cognitive Deskilling)으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특히 AI 언어 모델의 유창하고 설득력 있는 출력이 자동화 편향과 결합할 때, 사용자는 스타일의 매끄러움을 신뢰도로 착각하며 비판적 검증 없이 AI 출력을 수용하는 패턴에 빠지기 쉽다고 경고했다.

세 연구는 각기 다른 각도에서 같은 풍경을 가리킨다. AI가 고르게 만드는 세계에서, 미디어는 울퉁불퉁해야 한다. 구체적인 포맷 세 가지를 제안한다.

‘사유의 마찰(Cognitive Friction)’ 콘텐츠. AI를 쓰면 개인은 더 잘 쓰지만, 집단은 더 비슷해진다. 미디어는 이 역설을 콘텐츠 안에서 직접 보여줄 수 있다. 같은 주제로 AI를 쓴 글과 쓰지 않은 글을 나란히 배치하고, 그 차이를 시청자가 감각으로 비교하게 만드는 것이다. 어디가 다르고 무엇이 사라졌는지를 눈으로 확인할 때, 균일함이 얼마나 빠르게 찾아오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검증 연습(Verification Drill)’ 콘텐츠. 검증의 역설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이다. AI가 내놓은 답을 그냥 받아들이지 않고, 어떻게 의심하고 어떤 방식으로 확인하는지 그 절차를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루틴형 콘텐츠다. 검증의 근육은 쓸수록 강해지고, 쓰지 않을수록 약해진다. 미디어가 이 루틴을 매회 일관된 포맷으로 제공할 때, 시청자는 AI의 답을 받은 뒤 자동으로 다음 질문을 던지는 습관을 익히게 된다.

‘목소리의 지형도(Voice Mapping)’ 콘텐츠. 균질화의 반대는 다양성이다. 동일한 질문에 대해 지역, 세대, 직업, 언어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다르게 답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콘텐츠다. AI가 추출한 평균적 답변 옆에 그 평균에 담기지 못한 목소리들을 함께 배치한다. 다양한 관점이 얼마나 풍요로운지를 시청자가 실감하게 할 때, AI의 균일한 출력물이 세계의 전부가 아님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차이를 지키는 것이 미디어의 몫이다

AI는 세계를 빠르고 매끄럽게 만든다. 그 매끄러움이 쌓일 때 무엇이 사라지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던 목소리들이 하나의 문체로 모이고, AI의 답이 맞는지 따져볼 능력은 AI를 더 믿게 될수록 조용히 약해진다. 이 소실은 극적이지 않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미디어는 본래 차이를 담는 그릇이었다. 다른 삶, 다른 언어, 다른 논리가 충돌하고 공존하는 공간. AI가 그 차이를 지워갈 때, 미디어가 해야 할 일은 그 차이를 다시 들여오는 것이다. 마찰을 설계하고, 검증을 훈련시키며, 다양성을 화면 안에 복원하는 것.
AI가 고르게 만드는 세계에서 미디어가 울퉁불퉁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인간의 사유는 평탄한 땅에서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본 이미지는 생성형 ai를 활용해 제작됨
본 이미지는 생성형 ai를 활용해 제작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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