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만 OBS 경인TV 사원
‘먹는 거에 돈 아끼지 말라’
유년시절부터 늘 어머님께서는 입버릇처럼 넉넉지 못한 생활에도 먹는 거 하나만큼은 남 부럽지 않게 먹어야 한다며 그렇게 아들 둘을 사육(?)하셨습니다. 물론 육식 위주의 비정상적인 부분에서의 지출이었지만 아들들은 별다른 식탐 없이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그렇게 어엿한 한 가정의 가장이 된 저는 과거 어머님과 같이 우리 가족만의 철학을 만들어 보자 생각했고 그래서 내린 결론은 바로
‘일단 떠나자!’
그렇습니다. 생각만 해도 엔돌핀이 솟구치는 여행!
하지만 모든 걸 쿨하고 가볍게 고이 접고 전 세계를 히피처럼 유랑하며 다니고 싶지만, 우리 같은 직장인들에게는 너무나 먼 꿈같은 이야기인지라 그 비슷한 흉내라도 낼 수 있는 ‘여행’에서 그 답을 찾기로 했습니다. 먹는 거 줄이고, 입는 거 줄여서 그 돈으로 틈만 나면 여행을 떠나기로 저와 집사람은 마음을 모았고(이게 잘 맞아서 결혼했겠죠) 덕분에(?) 우리 집 보물인 아들 녀석은 엄마 아빠의 등쌀에 시달리며 여기저기 다니기 시작합니다.
가볍게 경기, 충청, 전북에 있는 휴양림을 시작으로 제주도를 한번 다녀와 보고 ‘아 우리 아이도 여행이 체질인가보다’ 그렇게 경솔하게 엄청난 도전을 하게 됩니다. 아이가 돌이 갓 지났을 무렵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여행을 떠났습니다. 저녁 7시에 출발하는(우리 아이는 지금도 8시 반 취침입니다) 5시간의 비행에서 우리 부부는 급성후두염에 기침과 구토를 번갈아가며 울부짖는 아이를 안고 모든 승무원과 함께 좁디좁은 화장실 옆 비상구 공간을 X마려운 강아지마냥 안절부절못한 채 지옥 같은 경험을 하고 녹초가 된 상태로 여행 기간 내내 호텔에서 시간만 보내다 돌아왔습니다. 4박 5일간의 여행에서 엄마 아빠는 아이 병수발을 들고 아이는 전력으로 기력을 회복해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단 한 번도 잠에서 깨지 않고 기침도 없이 인천공항까지 오게 됩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던가요? 만약에 아이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갈 때처럼 아파했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우리 부부는 작년의 그 악몽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올 초 새로운 여행을 계획하게 됩니다. 그래도 지난 코타키나발루 여행을 아주 잊은 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이번 여행지 선택에 있어서 몇 가지 조건을 걸었고
1. 제주도 비행(50분)은 문제가 없었으니 그보다는 멀어도 되지만 2시간은 안 넘는 해외
2. 아이가 물놀이를 좋아하니 물놀이 가능한 따뜻한 휴양지
3. 아이와 함께 움직이니 치안이 괜찮은 곳
그래서 선택한 곳이 일본 오키나와였습니다. 후쿠시마 방사능 이슈가 있어서 되도록 일본은 지양했지만 오키나와는 사실상 후쿠시마에서 국내 몇몇 도시보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물론 지도상으로만) 조금은 안심이 되었고 아이가 좋아하는 근사한 수족관도 있고 아이 엄마가 너무나 사랑하는 파인애플(감히 킬러라고 불러도 되는) 농장도 있으니 이리저리 좋은 이유를 가져다 붙여서 여행지를 정했습니다. 일본의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아이 엄마를 위해 각종 블로그 글들을 보여주니 베트남의 나트랑과 갈등하던 그녀의 마음이 일본으로 완벽하게 기울어졌고 그렇게 본격적인 여행 준비를 시작하게 됩니다.
가장 먼저 여행날짜를 잡았습니다. 5월 첫째 주는 일본에서도 골든위크라고 해서 극성수기라 합니다. 그리고 5월 중순 이후부터 오키나와는 장마가 시작된다고 하니 딱 그 사이인 골든위크 다음 주로 날짜를 잡고 항공권과 호텔을 인터넷을 통해 저렴하게 예약을 했습니다. 패키지여행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저희는 역할 분담이 확실합니다. 항공권과 호텔예약을 아이엄마가 하면 그 외에 일정 및 부수적인 것들은 모두 제가 처리합니다. 항공권, 호텔예약 빼면 뭐가 중요한 게 있냐? 아빠는 하는 것도 없이 숟가락만 얹는 것 아니냐 하시는 독자분들이 있으시겠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자동차 렌트
첫 해외 운전이 되겠습니다. 경험이 많으신 분들은 처음 해외 운전을… 그것도 우핸들 좌측통행의 나라를 상상해 보시면 상당히 두근거림을 느끼시리라 생각됩니다.
회사 근처 면허시험장에서 국제 운전 면허증을 발급받은 뒤 인터넷을 통해 오키나와 렌터카 업체들을 검색했습니다. 무수히 많은 업체들 중 한국어 홈페이지가 꽤 잘되어 있고 한국인 직원이 상주하는 업체를 선택했습니다. 렌트 40일 전 할인 혜택을 받고 H사의 소형차를 예약했습니다. 평소 제주도에 렌트할 때도 보험은 항상 풀옵션으로 가입하는 저는 고민 없이 최고등급의 프리미엄 보험 패키지 가입까지 마치고 유튜브 등을 통해 일본에서의 운전 주행 영상을 챙겨 봤습니다. 아시다시피 일본은 우핸들 좌측통행이기 때문에 우리와는 운전 환경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걱정인형을 안고 다니는 저에게 적잖은 스트레스와 고민거리로 다가왔지만 일본 사람들의 운전 습관이 대체로 여유가 있고 젠틀함이 넘쳐 운전하기 편안하다는 수많은 간증 글들을 믿고 여행 날만을 기다렸습니다.
국내에서 포켓 와이파이를 대여하는 것보다 렌터카 업체에서 빌리는 것이 훨씬 저렴했기 때문에 현지 대여예약도 마쳤고, 와이파이 기동성이 보장 되었으므로 스마트폰 맵에 여행 기간 다녀볼 여행지부터 맛집까지 주소를 저장을 했습니다. 일본차 네비에 한국어가 지원되긴 하지만 제한적이었고 구글 맵이 훨씬 정확하다는 리뷰들이 많아서 네비와 스마트폰 맵을 함께 사용하며 여행지를 다녔습니다.
모든 준비를 마쳤고 결전의 날이 다가왔습니다. 아이 엄마의 6월 복직을 앞두고 또한 아이의 두 돌을 한 달 앞두고(6월부터 비행기 좌석을 사야 함) 이제 언제가 될지 모르는 여행을 떠납니다.
공항에 넉넉하게 출발 세 시간 전에 도착해서 밥도 먹고 미리 주문한 면세품도 인도받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데 아이가 작년 코타키나발루에 갈 때처럼 기침을 시작합니다. 아이 엄마와 저는 ‘에이 설마…’ 하며 애써 침착한 척을 하며 다리를 떨고 있습니다. 비행기에 탑승하고 좌석에 앉자마자 아이는 내린다고 합니다. 아직 비행기는 출발도 안 했고 심지어 탑승객도 다 안 들어온 상태입니다. 어르고 달래고 동영상 틀어주고 스티커북을 보여주고 그동안 갈고 닦은 스킬들을 쏟아 냅니다. 하지만 아이는 오키나와 나하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1시간 50분 동안 엄마 아빠를 능가하는 초인적 열정의 끝을 보여줍니다.
다짐했습니다. 다시는 여행을 가지 않겠노라…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이 또한 망각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암요… 그래야 사람인 거죠…
여차여차 공항에 도착하고 렌터카 셔틀을 타고 업체에 도착해서 차량 인수를 꼼꼼하게 체크하며 시동 걸고 바로 출발!… 하자마자 역주행하려는 것을 아이 엄마가 소리 질러 잡아 줍니다.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하는데 딱 면허 따고 비 오는 밤 영동고속도로를 달렸던 그 날이 생각났습니다. 눈에서 흐르는게 눈물이 빗물인지 알 수 없었던 옛날 옛적…
다시 현실로 돌아와 우측에서 마주 오는 차들은 잠시만 딴생각을 하고 있으면 역주행으로 달려오는 것 같이 보입니다. 사거리 통과할 때도 ‘좌회전은 짧게, 우회전은 길게’를 중얼거리며 지나갑니다. 이건 확실히 효과가 있습니다. 20여 년 넘게 택시 운전을 하시며 큰 사고 없으실 정도로 베테랑이셨던 아버지와는 다르게 운전 실력이 영 별로인 저도 오키나와에서 반나절 운전하니 완벽 적응이 되었습니다. 혹 오키나와 여행을 준비 중이신 분 중 첫 운전을 계획하신다면 절대 걱정 안 하셔도 괜찮다고 말씀드립니다.
아메리칸 빌리지(오키나와 중부 차탄) 근처인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나왔습니다. 포켓와이파이에 연결된 스마트폰 맵을 도보로 설정하고 힐끗힐끗 보며 마치 우리 동네마냥 가볍게 걸어서 그 지역 유명한 회전 초밥집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기다리는 손님이 대충 봐도 30명은 족히 넘어 보이고 포장도 두 시간이 소요된다는 말에 좌절하고 호텔 근처 편의점에서 저녁거리를 사다가 대충 먹고 오키나와에서의 첫날을 보냅니다.
둘째 날이 밝아 오고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기에 앞서 호텔 수영장에 물놀이를 갔지만 전날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아이는 물놀이가 싫다며 짜증을 냅니다. 싫다는데 억지로 할 수 있나요. 힘들게 들고 온 튜브에 바람도 못 넣어 보고 그대로 캐리어에 다시 들어갑니다.
차를 몰고 달리고 달려 코우리 해변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아무래도 섬 지역이다보니 소나기가 잦다고 합니다. 쉬림프 웨건에서 음식을 사다가 차 안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운치 있게 먹고 싶었지만 카시트에 갇혀있는 아이의 짜증에 허겁지겁 밥을 마시고(?) 추라우미 수족관으로 향합니다. 각종 TV 프로그램 등에서 거대한 고래상어가 유유히 헤엄치는 장면을 직접 보니 굉장히 경이로웠습니다. 사실 잘 기억이 안 납니다. 아이 잡으러 다니랴 안고 있으랴… 입구에서 무료라고 찍어 준 기념사진이 마음에 들어 돈을 주고 큰 사이즈로 샀습니다. 상술이지만 이럴 때 아니면 가족사진 찍기가 쉽지 않아서 웬만하면 여행지에서 구입하는 편입니다.
숙소로 돌아와 어제 못 먹었던 초밥집에 다시 갔지만 역시나 대기가 길어 겨우겨우 포장을 해서 호텔 방에서 먹었는데 초알못(초밥맛을 알지 못함)인 우리 부부는 그냥 스시 기분만 내고 이 지역에서만 나온다는 오리온 맥주를 입에 털어 넣고 기절하듯 잠을 청합니다.
셋째 날은 온 종일 비가 왔습니다. 게다가 아이는 어제의 피로가 쌓이고 쌓여 극에 달했는지 조식을 먹고 난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잠을 잤습니다. 계획상으로는 나고 파인애플 파크를 가야 했지만 어차피 비도 오고 아이도 힘들어하니 과감히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하기로 결정하고 아이 엄마와 번갈아가며 호텔 실내 수영장과 사우나를 다녀왔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호텔에만 있는 것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서 그동안 깃발 꽂기를 하듯이 다녀야만 했던 우리의 여행 스타일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타지에서의 경험을 통한 견문을 넓히는 것도 좋지만 여유 있게 쉬면서 재충전을 하는 것도 여행의 진면목이겠죠. 하지만 개 버릇 남 못 줍니다. 마지막 날은 ‘이대로 돌아갈 순 없다’라는 마음에 아이의 컨디션은 최고로 올라왔겠다, 근처 만좌모로 차를 향했습니다.
아픈 아이를 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데리고 다닌 건 아닌가 싶었던 이번 여행은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사실 지난 3월부터 어린이집을 다녔던 아이는 석 달 째 후두염, 중이염, 감기를 3선발 로테이션으로 돌아가며 앓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쳐지지 않고 씩씩하게 적응해줘서 너무 기특하고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이제 2년간의 육아휴직이 끝나는 엄마는 복직하고,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풀타임으로 그렇게 모두가 각자의 사회에서 역할을 해내야 되는 시기가 시작됩니다. 우리나라 모든 맞벌이 부부와 그들의 자녀들에게 다시 한번 위대하다는 찬사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그래도 이번 오키나와 여행보다 훨씬 힘들 수 있을 앞으로의 여정이 무작정 겁만 나지 않는 이유는 어떤 역경이 와도 우리 삼인조는 당당하게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항상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우리 삼인조 앞으로도 파이팅!
오키나와 가족 여행은 저희 가족 유튜브 채널에 오시면 동영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www.youtube.com/smjo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