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만으로 달달한 목표

[나의 버킷리스트] 생각만으로 달달한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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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방송기술직으로 입사를 한 지 벌써 1년,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대학 생활의 여유로움은 잊은 채 다양한 업무를 하고, 배우며 그렇게 신입사원의 첫해가 지나갑니다. 불과 1년 전까지 틈나는 대로 재밌게 구독했던 방송과기술 월간지에 저의 버킷리스트들과 생각을 기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MBC 정원석 차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버킷리스트, 흔히 죽기 전에 반드시 해보아야 할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인생을 살면서 언젠가는 맞을 죽음의 공포에 대해 항상 염려를 하며 살고 있습니다. 저도 이 글을 기고하기 전 죽음의 순간에 대해 생각을 해 보니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두려움이 느껴집니다. 약 50년 일찍(오차 범위는 넓습니다.) 그 두려운 상황 속에서도 삶의 기간 하지 못해 후회할 만한 일을 떠올리려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니더군요. 그래서 현재의 생각과 가치관을 기초로, 꼭 살면서 해보고 싶은 세 가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훗날 공포의 순간에서 반드시 이 세 가지의 경험들을 만족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해산물 해체의 전문가!
특별히 가리는 음식은 없지만 유독 해산물, 특히 날 것의 해산물을 정말 좋아합니다. 활어회와 초밥을 정말 좋아해서 맛집 탐방을 취미로 할 정도로 말이죠. 각종 어패류와 갑각류 등 다양한 회를 즐기면서도 아쉬운 점은 제가 집에서 스스로 만들어 먹을 수 없고 반드시 식당, 수산시장 등에서 직접 사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레시피를 보고 따라 할 수 있는 요리가 아닌, 활어를 직접 해체하여 회를 뜨는 것은 일반인이 시도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로시라고 불리는 기술을 배워보고 싶었습니다.
단순히 회를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혼자 즐기기 위해서 배우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본래 친목을 즐기는 성격상 연어, 다랑어 등 큰 생선을 잡아서 지인들과 즐거운 파티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시골에서 동네잔치를 할 때 돼지, 소를 잡는 것처럼 말이죠. 요즈음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캠핑을 즐길 때에 일반적으로 먹는 삼겹살이나 소시지 바비큐 이외에도 회, 생선 스테이크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요?

   
 
   
 

넙치(광어), 우럭, 도미, 농어처럼 일반적인 횟감들 외에도 낙지, 문어 등의 연체동물은 물론 송어, 쏘가리 등 민물고기도 횟감으로 많이 사용하고(그러나 민물고기는 기생충 위험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심지어 바닷가재, 타이거새우, 킹크랩 등 갑각류도 회로 많이 먹습니다. 그러나 전문점에서 먹어야 하고 원가 대비 비용이 매우 많이 들어, 일반적으로 접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습니다. 얼마 전 킹크랩 파동처럼 기회가 될 때, 손님들을 초대해 화이트와인 한 잔에 특별한 해산물 회 한 접시를 직접 만들어 제공한다면 정말 특별한 만찬이 될 것 같습니다. 나아가 낚시까지 배운다면 금상첨화겠지요. 오늘 저녁에 만나는 친구 녀석과의 약속장소를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변경해야겠습니다.

비단길(silk road) 횡단
세계사에서 중대한 사건과 발견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닐 암스트롱의 달 탐사처럼 세상을 바꾸어놓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그 중 장건의 비단길 개척이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흉노 오랑캐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서역의 국가와 외교를 하기 위해 떠나며 개척했던 이 길이 동·서양이 최초로 왕래를 하게 함으로써 무역, 문화 교류 등 오랜 세월 동안 세계사에 매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5년 전 재미있게 본 KBS 이욱정 PD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누들로드’를 보면서 심지어 국수문화의 전파도 이 실크로드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제가 수천 년 뒤의 장건이 되어 비단길을 직접 탐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하였습니다.

   
 

총 길이 6400KM, 중국의 시안에서 시작하여 터키 이스탄불까지 타클라마칸 사막과 티벳, 이란 고원을 넘어가는 경로를 그대로 여행해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본래 탐험을 즐기고 호기심이 많아, 두렵다는 생각보다는 다양한 것을 느끼고 배우며 즐거울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구체적으로 캠핑카나 열차가 아닌 2200년 전 장건이 그랬던 것처럼 도보와, 낙타 혹은 야크 캬라반을 타고 대장정의 모험을 떠나고 싶습니다. 실제로 silk road adventure를 하는 여행상품들이 생기고 있고 탐험을 즐기는 많은 탐험가들과 관광객들 역시 늘고 있습니다. 약 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속세에서 벗어나 중앙아시아의 다양한 풍경을 즐기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생각만으로 행복해집니다.

   
 
   
 

대장정이기 때문에 위기상황이 언제 닥칠지 모르고, 탐험심 만으로 쉽게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전부터 준비를 철저하게 해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비박용 텐트를 구입해서 비박도 해보고 즐겨보는 ‘SBS 정글의법칙’도 계속 열심히 시청하면서 하나씩 계획을 세워 기회가 왔을 때 배낭을 메고 훌쩍 떠나야겠습니다.

열혈 서포터즈!
학창시절부터 스포츠팬으로서 시간이 날 때마다 축구, 야구경기장을 찾아 내가 좋아하는 팀을 응원해왔습니다. 경기장에서 북도 치고(이후에 방송국에 들어와서 알게 된 거지만 음향 감독님들이 참 저같은 사람들 때문에 힘들었다고 하시더군요.) 소리도 지르면서 관람하는 것이 저에겐 몇 안 되는 삶의 낙이었죠. 지금도 항상 경기장을 찾지 못할 때는 TV와 스마트폰으로 시청하며 응원을 합니다. 대학 시절에는 시간은 있으나 주머니 사정이 궁핍하고, 직장 생활을 하게 되면서부터는 시간이 부족해서 경기를 직관하고 응원하는 횟수가 많이 줄었습니다.

   
 

대학생 시절,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갔을 때, 수차례 축구 경기를 보았습니다. 유럽의 축구 인기는 어마어마하죠. 수만 명의 팬들이 경기장을 가득 채우는 것은 물론, 주변 펍이나 공원까지 경기가 있는 날은 모두가 모여서 축구를 즐기고 응원합니다. 스포츠팬인 저에게는 잊지 못할 광경들이었습니다. 그중 가장 놀라웠던 것은 제가 프라하를 관광하고 있을 때 프라하에서 열렸던 UEFA 슈퍼컵 첼시와 바이에른 뮌헨의 경기였습니다. 두 팀 중 어느 팀의 홈이 아닌 제3국의 도시에서 펼쳐지는 게임인데도 불구하고 런던과 뮌헨에서 원정 온 팬들이 경기장을 가득 메웠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집안 대대로 어느 팀의 팬으로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았고, 어린 시절부터 한 경기장을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들의 열정에 깊은 감명을 받고 나도 앞으로 제가 좋아하는 팀의 경기를 여건이 된다면 해외원정까지 따라가며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물론 유럽만큼은 아닐지라도 국내 프로야구의 인기와 K리그의 FC서울과 수원블루윙즈의 슈퍼매치를 보면 점차 국내의 프로 스포츠 서포터들의 규모가 커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후에 결혼도 하고, 아이를 낳으면 가족과 함께 경기장을 찾아 열정적으로 응원하고, 주말 나들이도 원정경기가 있는 지역으로 가고 싶습니다. 물론 이런 삶에 관대할 만한 아내를 얻어야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버킷리스트이고 위시리스트 아닐까요?

   
 

버킷리스트라고 하면 죽기 전에 해 보아야 할 리스트이기 때문에 왠지 거창한 것들이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 기회에 글을 써내려가면서 거창하고 위대한 것들보다는 내 삶에 치여서 하지 못했던 것들이 위주가 돼 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죽는 날 삶에서 가장 후회할 수 있는 것은 바쁘게 살면서 보내버린 시간일 것 같습니다. 살면서 버킷리스트는 얼마든지 추가되고 수정될 수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알차게 보낸 하루가 편안한 잠을 제공하는 것처럼 알찬 생애가 평온한 죽음을 가져다준다.’라는 말에서 보면 결국 중요한 건 인생이라는 짧은 드라마에서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겠지요. 아마 이 글을 적으며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오늘도 퇴근 후 집에서 누워 캔 맥주를 마시면서 예능프로 한 편 보고 휴대폰 게임을 하다가 잠이 들게 될 것이었습니다. 덕분에 오늘 밤은 인터넷에서 추천 야영장소, 비박용품 들을 서핑해보다가 잠들겠군요. 언젠가는 배낭 메고 떠날 중앙아시아의 실크로드를 생각하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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