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은 그다지 춥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봄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매년 봄이 되면 뭔가 새로운 일이 있지는 않을까, 뭔가 좋은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왠지 모를 기대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뭔가 새로운 일을 해볼까 계획하기도 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은 어떤 기대와 계획을 하고 계실까요? 혹시 이번 봄에는 클래식 음악을 들어볼까 하는 생각을 갖고 계시지는 않나요?
봄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모든 인류의 새로운 희망이었으며, 예술의 대상이었습니다. 클래식 음악도 예외는 아니지요. 봄을 노래한 음악이 무엇이 있을까요? 아마도 많은 분들이 이 곡을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으로 첫손 꼽히는 곡, 바로 비발디의 ‘사계’입니다.
비발디의 봄
비발디는 무려 800곡이 넘는 곡을 작곡했는데요, 그 중에서 비발디에게 가장 중요한 레퍼토리는 바로 바이올린 협주곡이었습니다. ‘사계’ 역시 바이올린 협주곡이죠. 이 곡은 1725년에 ‘화성과 창의의 대결, Op. 8’이라는 협주곡집에 포함되어 출판되었습니다. 독일의 대 문호인 괴테는 이 제목을 ‘자연과 예술의 대결’로 해석했을 정도로 이 작품의 인기는 시공간을 초월했습니다.
‘화성과 창의의 대결’은 제목을 가진 열 개의 바이올린 협주곡들로 구성되어있는데요, 첫 네 곡이 바로 ‘사계’로, 계절 순서대로 배치되어있습니다. 이 네 곡 중 첫 곡이 바로 ‘봄’이죠. ‘사계’는 음악의 내용을 설명하는 짧은 소네트가 적혀있습니다. ‘봄’에 적혀있는 내용을 살짝 볼까요? 1악장 “봄이 왔습니다. 새들이 즐거운 노랫소리로 봄을 맞이합니다. 샘물은 산들바람의 유혹에 졸졸 흐르는 소리를 달콤하게 냅니다. 먹구름과 번개가 하늘을 달리고 천둥소리가 봄이 왔음을 알립니다. 폭풍우가 그치고 새들이 다시 상쾌하게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2악장 “화창한 목장에는 나무들의 푸른 잎이 정답게 속삭이고 개 곁에 양치기가 잠이 듭니다.” 3악장 “님프와 목동들은 찬란한 봄 햇빛을 받으며 피리에 맞추어서 춤을 춥니다.”
베토벤의 봄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모르는 분이 계실까요? 베토벤은 음악의 완성이자 음악 미학의 출발점일 정도로 매우 중요한 작곡가였습니다. 베토벤은 10개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작곡했는데요,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은 단연 ‘바이올린 소나타 5번’입니다. 1801년에 단숨에 작곡된 이 곡은 ‘봄’이라는 별명이 붙어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베토벤 자신이 붙인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마치 봄을 알리는 햇살과 아지랑이처럼 포근하고 따스하며 밝은 분위기로, 희망과 행복이 가득한 느낌을 싣고 있는 이 곡의 별명으로 매우 어울립니다. 어떻게 보면 베토벤이 청각 장애로 깊은 고통의 수렁에 빠져있던 때라, 편안하게 음악을 들으면서도 애틋한 기분이 교차하기도 합니다.
차이코프스키의 봄
차이코프스키도 한국인이 매우 좋아하는 작곡가입니다. 음악회에서 자주 연주가 되고 있죠. 하지만 대부분 교향곡이나 협주곡과 같은 관현악곡이고, 실내악이나 특히 피아노곡은 비교적 적게 연주되고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차이코프스키의 ‘사계’는 이 중에서 가장 잘 연주되지 않는 장르, 피아노 소품입니다.
이 곡은 1875년에 상트페테르스부르크의 음악잡지인 ‘누벨리스트’의 편집장인 베르나르트의 위촉으로 작곡되었습니다. 월간으로 발행되는 이 잡지의 부록으로 매달 피아노 소품 한 곡씩을 수록되었죠. 당시 피아노 소품은 모두에게 환영받는 아이템이었습니다. 차이코프스키는 당시 교수로 재직 중이던 모스크바 음악원의 봉급이 얼마 되지 않아 이런 부수입을 원했으며, 출판사는 잘 팔리는 아마추어도 연주할 수 있는 소품을 선호했습니다. 음악애호가들 역시 스스로 연주할 수 있는 소품의 악보를 기꺼이 구매했죠.
월간 잡지에 실렸다는 사실에서 눈치를 채셨죠? 이 곡은 각 달에 해당하는 열 두 곡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중에서 봄에 해당하는 곡은 3월 ‘종달새의 노래’, 4월 ‘아네모네’, 5월 ‘백야’입니다. 아름다운 선율에 화사한 반주를 가진, 누구나 편히 들을 수 있는 산뜻한 소품들입니다.
피아졸라의 봄
피아졸라는 탱고를 세계적인 예술 장르로 끌어올린 장본인으로, 그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 우리나라에서 자주 연주되는 곡은 ‘항구의 사계’가 아닐까 싶네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계절 인상을 담은 네 곡으로, 이들은 서로 관계없이 작곡되었습니다. ‘항구의 여름’이 가장 이른 1964년에 연극의 부수음악으로 작곡되었구요, 이어서 1969년에 ‘항구의 가을’이 작곡되었습니다. 이듬해에 나머지 두 곡 ‘항구의 봄’과 ‘항구의 겨울’이 완성되었습니다. 이 네 곡은 따로 연주되기도 하지만, 피아졸라 자신도 한꺼번에 묶어서 연주하곤 했죠.
이 곡은 피아졸라가 창시한 ‘탕고 누에보’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탕고 누에보’는 ‘새로운 탱고’라는 의미인데요, 기존의 탱고와 달리 재즈의 당김은 리듬이 가미되었습니다. 그래서 춤을 추기위한 탱고라기보다는 감상용 탱고에 가깝습니다.
‘항구의 봄’은 빠른 부분과 느린 부분으로 구성되어있는데요, 빠른 부분은 자유분방하고 장식적인 선율이 돋보이고, 느린 부분은 서정적이면서도 농염한 분위기마저 풍깁니다.
구달의 봄
영국의 작곡가 하워드 구달에게도 ‘사계’가 있습니다. 이 곡은 2008년부터 이듬해까지 영국의 ITV1의 TV 프로그램을 위해 작곡되었는데요, 마이클 나이먼이나 필립 글래스와 같은 미니멀리즘 음악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미니멀리즘 음악이란 주어진 단편을 반복하면서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음악을 말하는데요, 구달은 미니멀리즘 음악을 주로 작곡하는 작곡가는 아니지만, 미니멀리즘 음악은 영상에 지극히 효과적이기 때문에 이러한 스타일의 음악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구달의 ‘사계’ 중 (첫 번째가 아닌) 세 번째 곡 ‘봄’은 반복하는 리듬과 끊임없이 운동하는 멜로디에서 새생명이 움트는 생명력이 느껴집니다.
이외에도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사계’, 슈만의 교향곡 1번 ‘봄’, 글라주노프의 발레곡 ‘사계’, 필립 글래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 ‘아메리카의 사계’, 바스크스의 피아노 대작 ‘사계’ 등의 곡들이 있습니다.
올 해에는 클래식 음악 한번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이 곡들 중에 하나 골라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나중에 제 글을 보고 음악을 잘 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