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머무는 곳… 교토(京都)

시간이 머무는 곳… 교토(京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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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토의 거리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에 떠난 가족여행은 첫 번째 일본여행이란 점에서 충분히 두근거렸다. 특히 처음으로 시도해본 가족 배낭여행이었기에 나름 마음가짐을 단단히 한 덕분일까, 고베를 거쳐 오사카 교토에 이르는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다들 기쁜 마음으로 여행을 즐겼고 1분 1초가 아까워 눈과 귀와 입을 쉴 새 없이 움직였던 것 같다.
어느덧 여행 마지막 날, 비록 남아있는 시간이 짧았지만 그럼에도 꼭 가봐야 할 곳이라는 생각에 교토로 발걸음을 옮겼다.
천년고도의 도시, 시간이 머무는 곳인 동시에 실용적인 영민함이 담겨있는 교토의 거리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마음 한편으론 분주한 도심을 벗어난 곳에서의 한적함을 기대했지만 주말이란 시간과 겹쳐 그런 여유는 선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들 어떠리, 교토는 이 도시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갖고 있지 않았던 우리에게 천년고도의 도시, 일본의 옛 수도였던 역사의 고증을 뿜어내며 그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워낙 교토라는 도시가 400년간에 걸친 헤이안 시대[平安時代]에 국정의 중심지로 번영하였던 터라 역사와 유적이 풍부한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문화유적지인 니조성[二條城]을 비롯한 기요미즈사[淸水寺] 긴카쿠사[銀閣寺] 등 사찰과 신사를 돌아보는 코스로 계획을 세웠다. 길을 잘 찾아갈까 걱정도 되었지만 웬일, JR 교토역에 내릴 때부터 밀려드는 인파에 떠밀려 가다 보니 어느새 교토의 거리요, 어느새 유적지에 다다랐다. 그만큼 이 도시는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이 역사와 문화를 감상하기 위해 몰려드는 곳이었다.

가장 먼저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촘촘히 들어선 가게에서 파는 물건들이었다. 장인의 정신으로 똘똘 뭉친 아기자기한 작품들이 참으로 많았는데 이 도시가 전통공업의 비중이 높은 특색이 있어선지 직조업과 염색업이 얼마나 발달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화려한 색감과 유려한 이미지가 표현된 쥘부채 인형 등 각종 작품들에서 정말이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먹거리의 천국답게 아기자기한 먹거리, 먹음직스러운 먹거리가 한 집 걸러 있는 바람에 그날 우이 입이 무척 호강했었다.

   
 
   
▲ 교토역의 관광 상품인 부채, 인형 사진

청수사로 가는 길, 우리는 길 위에서 일본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주말엔 전통복을 차려입은 젊은이들이 이 거리를 찾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설마 했는데 정말이었다. 20대 정도로 보이는 젊은 여성들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일본 전통복장인 기모노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일명 가부키 화장이라고 하는 새하얀 피부와 그린 듯한 화장에 한껏 길어 올린 올림머리를 한 여성들의 모습을 보면서 신기하면서도 오랜 전통을 이어가려는 그들만의 모습이 보인달까. 교토역 가깝게 위치했던 일본 3대 가부키 전용극장인 미나미자 극장이 떠오르며 다음엔 꼭 한번 가부키 공연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할 정도로 볼거리와 전통을 생각하게 만드는 도시임이 분명했다.

   
▲ 가부키 화장한 세 명의 여인 사진

고색창연한 기온거리를 한 시간쯤 구경하면서 도착한 곳은 청수사였다. 기요미즈데라라 불리는 청수사는 산 중턱에 139개의 기둥을 세워서 지은 사찰로 세계문화유네스코에 기재된 유적지이기도 하다. 역시 세계적인 문화유산인 만큼 관광객들로 북적거리는 청수사는 도착과 함께 붉은색 본당 건물이 맞는 압도적인 힘이 있었다. 중국 사람들이 붉은색을 좋아하여 여기저기 붉은색으로 꾸미지만 일본의 붉은색은 중국의 붉음에 비해 좀 더 열정적이랄까, 그들의 날카로운 역사를 반영하는 듯한 또 다른 에너지가 느껴졌다.

   
 
   
▲ 옛 모습을 간직한 청수사

연간 참배객 수가 300만 명을 넘는다는 이 절은 778년에 창건되어 소실과 재건을 반복하다가 1633년 토쿠가와 이에미쯔 힘을 빌어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우리가 방문했을 때도 보수공사 중이었다. 교토라는 도시가 역사와 전통을 지니고 있지만 현대 문명과의 만남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무분별한 개발로 몸살을 앓았다고 하는데, 청수사 역시 다르지 않다는 아쉬움이 살짝 남았다.
그럼에도 139개의 기둥 위에 세워진 기요미즈데라 본당에서 만난 청수사만의 아름다움은 그를 상쇄할만한 멋이 있었다. 예전에는 십일면 천수관음상에게 바치는 춤을 추던 진짜 무대였다는 본당 무대는 높이 솟은 기둥 위에 아슬아슬하게 난간이 걸려 있었는데, 마치 그들의 도전적이고 전투적인 성향을 보인다고 할까.
청수사에서 오랜 시간 머물 수는 없었지만 잠깐 몇 군데를 돌아보면서 과연 세계문화유산다운 면면을 발견할 수 있었고, 세계 곳곳에서 모여드는 사람들 틈에서 오랜 역사의 도시, 왕족 귀족이 거처했으며 음식 의복 예술 유흥 전반적인 상류 문화가 집결된 교토라는 도시의 맛과 멋을 살짝 맛볼 수 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꽤 오랜 시간 길 위에서 보낸 덕분인지 허기짐을 느낀 우리가 찾은 곳은 기온거리 뒷골목에 있는 음식점이었다. 일본은 정원 문화가 발달했다고 하더니 그 음식점 역시 작은 정원이 꾸며져 있는 곳이었다. 노부부가 운영하는 듯 보이는 그곳에서의 점심 식사는 지금까지 우리 가족에게 회자되는 곳 일정도로 맛과 멋이 일품이었다. 일본식 우동 메밀 등 평범한 음식이었지만 주인장 부부의 친절함과 정갈한 맛, 교토만의 빛깔이 전달하는 지방색, 그들만의 문화를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정갈하게 차려진 일본식 우동

청수사 관람을 마치고 돌아 나오며 우리는 몇 군데를 더 들렀다. 일본식 정원이 참 정갈하게 꾸며진 니조성을 비롯한 철학의 길이 조성된 은각사, 대나무숲이 우거진 아라시야마 까지 관람을 마치고 바쁜 걸음을 돌리면서 과연 교토라는 도시가 ‘오래된 미래’를 보여주고 있음이 느껴졌다. 물론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기도 하지만 우리가 본 교토는 전통을 그대로 간직하려는 의지가 보였고, 그 속에서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부지런함과 미래의 모습까지도 반영시키려는 여유가 있어서다. 옛날 옛적 중흥의 도시로만 남을 수도 있었지만 오늘날 세계의 사람들을 부를 수 있는 힘은 그 오래된 미래라는 타이틀을 고수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 고도시 전경
   
▲ 신도시 전경

역사와 현대가 공존한 도시로 재탄생하고 역사성과 실용성을 겸비한 도시로 살아가고 있는 교토와의 만남은 그런 점에서 일본여행의 정점을 찍었다. 문명과 자연이 비율 좋게 공존하는 교토를 돌아 나오며 비록 오랜 보행으로 다리는 천근만근이었지만 우리는 다음엔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이른 계획까지 세우고 있었다. 역시나 여행은 떠나기 전의 설렘과 떠났을 때의 기쁨, 떠남을 마무리하며 갖게 되는 여운까지 더해져 멈출 수 없는 도전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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