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음악 듣는 일, 좋은 소리 내는 일을 합니다 :)

좋은 음악 듣는 일, 좋은 소리 내는 일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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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리허설 중_1

이용학 EBS 음향감독

나는 오디오 엔지니어입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어떤 일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좋은 음악 듣는 일, 좋은 소리 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입사 후 기술기획, 특수편집 업무를 거쳐 나는 현재 오디오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특별히, EBS 스페이스홀 전담 음향감독으로 살고 있다. 매주 힙한 뮤지션들과 더불어 관객과 함께 음악으로 소통하는 즐거운 노동. 프로그램 특성상 음향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꽤 자부심을 느끼며 열심히 일하고 있다.

전담 감독 셋으로 이루어진 스페이스 음향팀은 현장 Public Address(PA)와 모니터, 방송 음원 믹싱을 맡는다. 나의 주된 역할은 PA인데, 어떤 일을 하냐면, 공연 날이 되기 전에 무대와 관련된 자료들을 받고, 참고하여 채널리스트를 작성하고 어떤 마이크를 사용할지, 어떻게 운용할지에 대해 결정한다. 그리고 미리 콘솔의 기본적인 세팅을 해놓는다. 공연 당일에는 아침 일찍 나와 악기 세팅이 이루어지는 대로 마이킹을 하고, 신호 체크를 한다. 드럼, 퍼커션 등 손이 많이 가는 악기들의 음색을 미리 잡아 놓은 다음, 리허설을 통해 음악의 밸런스를 완성한다. 그리고 밤 8시가 되면, 뮤지션과 관객 모두 즐거운 공연을… 그려낸다. 공연 후의 공허함은 보람과 어우러져 묘한 맛을 자아낸다. 깜깜한 밤, 집으로 가는 길은 퍽 삼삼하다. 그렇게 스페이스 공연의 하루는 진다.

콘솔과 선물 받은 LP를 나란히
콘솔과 선물 받은 LP를 나란히

예전엔 거의 매일 공연을 하던 때가 있었다. 한 뮤지션이 이틀 동안 공연을 하면서 하루는 방송촬영을 하고 하루는 공연만 하는 경우도 있었고, 한 달에 꽤 많은 뮤지션이 무대를 누비던 그런 때. 하지만 우리가 일산사옥으로 이사를 오면서 여러 이유로 공연 숫자가 많이 줄었다. 이젠 매주 한 번에서 많아야 두 번 정도. 그래서 공연이 더욱 소중해졌고, 애틋해졌다.

스페이스홀에서는 참 많은 공연과 행사가 열린다. 힙합부터 로큰롤, K-POP, 피아노 독주와 같은 클래식까지. 소리에 대한 이해력과 감각을 기를 수 있는 좋은 공간이다. 나는 음악을 더욱 음악답게 만들고 싶었다. 많이 듣고, 이것저것 찾아 공부하고, 연구하고, 누구에게나 배우고 있다. 가끔은 직업병 마냥 카페에서 나오는 음악을 눈감고 하나하나 곱씹어 들으며 이 노래에 악기는 무엇이 나오는지, 보컬 소리는 명료하게 들리는지, 믹싱은 잘 되었는지, 스피커 음질은 어떤지 등을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러다 짐짓 창피해지기도 하고. 경력이 짧고 실력이 여물지 않아 아직도 매 공연이 새롭고 인상적이지만 조금은 더 기억에 남았던 것이 있다면 스페이스 공감에서 시작과 끝을 함께한 장기하와 얼굴들의 공연과 인디밴드의 맛을 보여준 SURL(설), 청량하고 시원한 솔루션스, 즉흥 음악으로 힙한 그루브를 들려준 CADEJO(까데호) 등이 인상적이었다. 이들의 무대를 오르내리며 리허설을 하고 현장 PA로 그들과 관객을 하나로 묶다 보면 저절로 흥에 취해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면 그냥 좋았다.

솔루션스와 함께
솔루션스와 함께
리허설 중인 솔루션스
리허설 중인 솔루션스
까데호와 무대 위에서
까데호와 무대 위에서
악뮤와 함께하는 리허설
악뮤와 함께하는 리허설

스페이스홀에서의 역할은 내 성장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시작에 보탬이 되기도 했다. 친한 동기들이 쿵작쿵작 만들어 내었던 ‘뭐든지 뮤직박스’라는 프로그램은 박스에서 나오는 소재로 다양한 음악 활동을 해보며 자연스럽게 음악적 개념을 익히고, 수준 높은 공연을 통해, 아이들의 심미적 경험과 예술적 소양을 고취할 수 있도록 구성한 유익하고 신선한 포맷에 도전하는 작품이었다. (2019 재팬프라이즈 상을 받았을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나는 스튜디오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연주하는 것에 대한 조언을 줄 수 있었고, 실제 프로그램을 촬영할 때 여러 시도를 함께해볼 수 있었다. 여기에서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각자의 퍼포먼스를 최대한으로 내기 위해 노력했다. 카메라 감독들은 유아 프로그램의 틀에 갇히지 않고 화면비와 색감, 구도, 촬영기법에 다양한 시도를 녹여냈고, 연출진 역시 기획과 콘티와 구성, 편집에 시간과 애정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 스튜디오의 모든 것을 이용한 공간 디자인과 조명은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마법 같은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 촬영장에서 느껴지는 열정은 너무나 흥미로웠고 함께하는 재미를 알려준 것 같다. 모든 프로그램에서 재미있을 수는 없겠지만 이런 프로그램을 하다 보면 아 방송국에서 일하니까 너무 좋다는 느낌이 든다.

뭐든지 뮤직박스 단체사진
뭐든지 뮤직박스 단체사진


좋은 소리를 내는 사람

나는 그렇게 좋은 음악을 듣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것만이 내 일의 전부는 아니다. 나는 좋은 소리를 내는 사람이기도 하다. 우연한 계기로 미세먼지에 대한 공익 캠페인을 통해 지상파 라디오에 내 목소리를 실어 보내게 되었다. 이후 다시 우연한 기회로 캐스팅되어 ‘최민석의 양심의 가책’이라는 꽤 괜찮은 팟캐스트의 제작에 참여하게 되었다. 유명하지만 잘 읽지 않게 되는 책들을 15분 만에 읽은 것처럼 만들어주겠다는 당찬 포부로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현재 28편의 에피소드를 탄생시켰다. (팟빵, 팟캐스트, 네이버 오디오클립 등에서 EBS 오디오천국과 함께 절찬 스트리밍 중!) 내 역할은 책의 줄거리를 읽는 것. 어색하기만 했던 처음은 내심 부끄러웠지만, 점차 이 일은 나의 정성이자, 자랑거리가 되었다. 더 좋은 발음, 더 편안한 어투, 이야기를 풀어내는 부드러운 목소리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연습하고 노력했다. 다른 사람이 느끼지 못하더라도 스스로 만족하고자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내레이션 녹음 준비 중
내레이션 녹음 준비 중
줄거리 녹음 중인 내 모습
줄거리 녹음 중인 내 모습

우연히, 그리고 운 좋게 시작하게 된 ‘투 잡’이지만 기회가 왔을 때 망설이지 않고 잡을 수 있었던 건 스스로 칭찬하고 싶은 대목이긴 하다. 평소 목소리가 좋다는 이야기를 적잖이 들었었고, 동시에 내 장점을 활용해 나도 재미를 느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한 영향을 주고 싶기도 했다. 목소리를 활용한 일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캐스팅이 되었고 소박하지만 이렇게 첫발을 떼게 된 것이다. 방송 엔지니어로서 여러 해 일을 한 뒤에, 다시 ‘신입’으로 돌아가 일을 시작하는 설렘도 분명히 있다. 그런 과정에서 의욕과 실수, 아쉬움도 묻어나오고. 두 가지 일에서 느끼는 다른 성취감은 사뭇 신선하다. 내가 잘하는 것을 다듬어 더 잘하고자 하는 것과 부족하지만 재밌어서 의지로 그 간극을 채워가는 것. 이 공존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사실 정해놓은 것도, 정해진 것도 없다. 그냥 할 수 있을 때까지 힘닿는 대로 하고 싶다. 당연히 본업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잘 관리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투 잡’에 관한 미래에 대한 뚜렷한 생각은 이것뿐. 꾸준히 ‘좋은 음악을 듣는 사람, 좋은 소리를 내는 사람’으로 오래 살고 싶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 뭐든지 엔지니어
한편, 나는 내 손으로 직접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일단 재미있는 일이고 무한 경쟁 시대가 되어버린 미디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1인 제작을 할 수 있는 토털 엔지니어가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콘텐츠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했고, 이야기를 지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작가가 되기로 했다. 친구에게 선물 받은 책에 ‘감사일기’를 쓰고, 나의 일상과 다짐을 끄적이면서 글을 쓰는 일을 나의 한 부분으로 만들었다. 블로그도 한다. 하지만 내 이야기에만 갇혀서는 더 큰 이야기를 지어내기 어렵겠다 싶어 작가 수업을 들으러 다니고 있기도 하다. 가서 보니 역시 프로 작가는 다르다며 나의 한계와 현재를 뼈저리게 느꼈다. 많이 부족했다. 그래도 거기로 걸어봐야지.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회사 사람들은 나에게 내가 맡은 일의 전문성만을 원할 수도 있을 텐데. 그것만으로도 갈 길은 정말 멀 텐데.’ 하지만 부장님과 팀 선배들이 기꺼이 내 관심을 독려해주셔서 오히려 감사했고,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덕분에 계속 내가 걷고 싶은 길로 간다. 올해는 내 손으로 만든 콘텐츠들을 선보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작가수업 필기노트
작가수업 필기노트


취미, 그리고 사람 부자입니다

취미 부자인 나는 평소에 혼자 잘 노는데, 주로 공연 및 음악감상, 독서, 작문, 운동을 즐긴다. 걸어 다니는 주크박스인 라디오 PD 정코치 덕분에 국내외 가리지 않고 매력적인 노래를 많이 알게 되었다. 종종 무심한 척 음악계에 실력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툭툭 던져주는데 은근히 자극이 된다. 아무래도 본업과 연관된 일이다 보니 관심 있게 들여다볼 수밖에. 그리고 만년 작가 지망생인 만큼 좋은 글귀를 담아내는 게 좋다. 보통 장르에 상관없이 제목이 끌리는 책을 주로 읽다 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그럼 각각 이야기의 뿌리에서 뻗어 나가는 내 상상들이 나를 더 풍부하게 만들어내는데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운동은 사회인 야구와 축구, 헬스와 러닝을 한다. 특히 작년 11월부터 활동을 시작한 EBS 프렌즈 팀원들이 아주 열심이라 같이 파이팅하는 중이다. 또 올해는 특별히 2020 동아마라톤 풀코스 완주를 목표로 삼았다. 운동을 좋아하긴 하지만 워낙 어려운 시도이기에 생각해본 적 없는 일이었는데 마라톤을 좋아하고 잘하는 가까운 친구가 있어 소모임을 만들어 훈련하게 되었다.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꼭 해내고 싶다.

제주 바람을 느끼던 한 때
제주 바람을 느끼던 한 때
흥부자들과의 제주도 여행
흥부자들과의 제주도 여행
축구팀 자체 풋살대회 때
축구팀 자체 풋살대회 때

방송국에서 일하는 큰 장점 중 하나는 여러 사람과 함께 일한다는 것이다. 스튜디오와 부조정실, 스페이스홀 등에서 여럿이 일하다 보면 웃을 때도, 싸울 때도 있지만 결국 정이 들게 마련이다. 거기에 다수의 동기와 함께 입사했던 운 때까지 맞아서 나에겐 소중한 몇몇 그룹이 있다. 그중 유희왕과 흥부자들은 회사 안팎으로 내가 살아내는데 큰 힘을 주는 사람들이다. 세상 이야기로, 사는 이야기로, 일 이야기로 서로의 말동무가 되어주고, 한 달이 멀다하고 술잔을 기울이며 우정을 쌓고, 함께 해외로, 국내로 여행을 다니며 추억도 공유하는 우리는 정말 끈끈한 친구들이다. 또 내게 이봉선 팟캐스트를 기획하자는 형들, 콘텐츠 아이디어를 나누는 그래픽 디자이너까지. 열정과 재미를 동시에 자극하는 이 사람들은 너무나 소중하다. 내가 회사 가까이에 사는 건 다 그런 이유가 있어서다.

오늘을 산다
이렇게 저렇게 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그렇게 오늘을 산다. 오늘을 살아내는 나는, 조금 더 재밌는 방향을 좇아 한 발 한 발 땅을 고르며 걸어가는 것 같다. 내일도 내가 행복해지는 곳, 내가 재밌어하는 곳으로 또 걸어가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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