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의 영향이었을까? 베트남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와 외국인은 대한민국이며, 그래서인지 베트남을 가장 많이 찾는 나라 또한 우리란 기사를 보고 언젠가 한번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일정상 오래 머물 수가 없어 남부의 휴양지나 북부의 유적지 중 한 곳을 정해야 하는 난관에 봉착했다. 왜냐하면 면적은 우리나라의 세 배정도 인데 남북으로 인도차이나 반도의 해안선을 따라 길게 뻗어 있어 그 길이만도 무려 1,650km에 이르기 때문이다. 모항공사 광고로 널리 알려져 인기를 끌고 있는 남중부의 휴양지 다낭, 아님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PQ 아일랜드라 불리는 남부 푸꾸옥이냐… 하지만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였다. 바로 직전 해외 여행지가 하와이여서 휴양지보다는 유적지를 선호하였고 때마침 하노이는 천 년이 넘도록 베트남의 수도이며 역사, 문화 중심지로 대통령 관저는 물로 베트남의 영웅인 호치민 무덤과 유교국가임을 알 수 있는 문묘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노이는 홍강 삼각주 안쪽에 있다 하여 강 ‘하(河)’자에 안 ‘내(內)’자를 써서 한자로 쓰면 ‘하내’가 되며 ‘하노이’라 발음한다. 대충 이 정도로 설명을 끝내고 4박 5일의 일정을 공항을 비롯한 시내 ‘교통’과 ‘볼거리’, ‘먹거리’로 나눠 하노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하노이의 교통
인천을 출발한 비행기는 약 5시간 후 베트남 노이바이 국제공항에 도착하게 된다. 2시간의 시차가 나는 하노이는 3월 중순이었으나 우리나라의 늦은 봄이나 초여름이나 다름없었다. 다만 습도가 다소 높아 땀이 살짝 날 정도였으나 불쾌한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공항을 나오게 되면 제일 먼저 하노이 도심으로 가는 교통을 선택해야 하는데 택시나 시외버스 또는 비엣젯 항공에서 운행하는 승합차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본인은 택시를 탔다. 물론 가장 비싸긴 하지만 청결하고 무엇보다도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서였다. 여러 종류의 택시 회사가 있지만 초록색의 마일린이나 하얀색의 택시그룹 중 하나를 추천한다. 믿을 수 있고 바가지가 덜하다고 소문난 회사이기도 하다. 후에 다른 택시를 타보니 역시나 미터기를 켜고 가면 눈에 보일정도로 돌아가고(정도껏 해야지 봤던 건물을 2번이나 더 보니 나 원~) 끄고 간다면 터무니없는 금액을 부른다. 갈 때 택시그룹으로 4만동이 나왔던 거리를 비도 오고 밤이라 어둡고 해서 하얀색만 보고 탔더니 이게 웬걸? 짝퉁 택시여서 20만동을 내라니 칼만 안 들었지…
그래도 국민성은 순수한 것 같다. 고개를 갸우뚱하니 씨익 웃으며 5만동을 내준다.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도 바가지 택시요금 때문에 꺼려진다는 뉴스가 생각이 났다. 어딜 가나 그런가 보다. 암튼 각설하고 택시타고 하노이를 대표하는 호안끼엠 호수(대부분의 호텔이 주변에 자리 잡고 있음)까지 대략 35~40만동이 나오니 우리나라 돈으로 2만원쯤(환율은 끝에 0하나를 빼고 20으로 나누면 계산하기 편함)된다. 시외버스와 승합차는 타보지는 않았지만 냄새가 나는 편이며 자리가 다 차야 출발한다고 했다. 대신 요금이 각각 9000천동(450원!)과 2달러로 저렴하지만 시내 정거장에서 내려주니 짐이 많다면 비추다. 가장 좋은 방법은 호텔에 메일이나 전화를 해서 픽업서비스를 받는 게 시간과 돈을 아끼며 편하게 호텔까지 갈 수 있다. 출국하는 날 알게 돼서 아쉬웠다. 요금은 15달러이다.
택시를 타고 우리나라의 인천공항 고속도로에 해당하는 한적한 도로를 달릴 때 만 해도 하늘은 맑고 공기도 좋고 해서 상쾌한 기분이었으나… 간선도로에서 하노이 지선도로 빠져나오는 순간 거리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 수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평일 낮임에도 불구하고 어디론가 바쁘게 향하고 있었다. 하노이 인구 약 800만 명 중 오토바이가 500만 이라하니 이해가 되었다. 인도를 사실상 오토바이 주차장으로 쓰고 있어 보행자들을 위한 거리는 아닌 듯싶었다. 큰 도로만 신호체계가 있는 편이고 그 외에는 피해서 횡단해야하니 하노이를 여행하실 계획이라면 오토바이를 조심하시길…
하노이의 볼거리
하노이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지리적 위치가 강 안쪽에 있어 크고 작은 호수가 무려 300여개나 된다. 그 중 가장 큰(길이 : 700m, 너비 : 200m) 호수가 바로 호안끼엠이다. 하노이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주변을 따라 노천카페며 레스토랑이 즐비해있어 여행객은 물론 베트남 국민들의 휴식처라 할 수 있다. 처음 호안끼엠이란 이름이 생소해 발음하거나 기억이 힘들었다. 베트남어를 잘은 모르지만 중국의 4성조보다 많은 6성조를 쓰며 2중모음(ㅑ, ㅘ, ㅢ 등)을 2개의 단모음으로 풀어 사용한다고 한다. 그래서 ‘호안’은 돌려보낼 ‘환(還)’자가 되며 ‘끼엠’은 칼 ‘검(劒)’이 되어 칼을 돌려준 호수가 된다. 여행 후 알아보니 옛 왕이 이 호수에서 발견한 명검으로 명나라 군사를 물리친 뒤 호수에 돌려주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호수 안으로 빨간 다리를 놓아 연결한 사당이 있는데 13세기 때 베트남을 쳐들어온 몽골군을 무찌른 영웅을 기린 ‘응옥선’ 사당이라 한다. 여유가 된다면 한번 들려볼만 하다.
앞서 하노이나 호안끼엠의 이름으로 비추어볼 때 한자와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노이 공자묘라고도 불리는 문묘는 공자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원이자 베트남 최초의 대학으로 조선시대의 성균관에 견줄 만하다. 공자를 기리는 사원을 지을 정도로 유교사상이 널리 퍼졌으며 당시 국교도 불교에서 유교로 전환하였다고 한다. 문묘는 5개의 마당이 있는데 사이사이 황제만 다닐 수 있는 통로와 문이 있으며 문묘 안에는 약 300년 동안 시행한 관리등용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의 이름을 새겨 놓았다. 고즈넉한 주변 풍경과 여유로운 정취를 만끽할 수 있었다.
하노이에서 차로 두 시간쯤 가다 보면 닌빈성이 나오는데 닌빈은 성도로서 팟디엠 대성당과 바이딘 사원 등의 종교 유적지가 많아 관광명소로 유명하다. 여기서 잠깐 일일투어에 대해 팁을 드린다면 닌빈은 대부분의 하노이 여행객들이 일일투어를 통해 찾게 되는데 보트투어를 하는 장안과 함께 코스로 이어지곤 한다. 자유여행객에겐 투어회사를 찾는 것부터 시작이다. 하노이의 현지 여행사로 신카페가 유명한데 신카페란 이름을 쓰는 짝퉁회사가 여행자 거리에만 수십 개는 되어 보였다. 역시나 몇 군데 들어가 봐서 가격을 알아보니 천차만별이었다. 적게는 5달러에서 많게는 10달러 넘게 부르는 곳도 있었다. 그래서 이왕이면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여행사에서 35달러에 예약을 하였다. 좋은 점은 사장님께서 여행일정과 현지사정에 대해 설명해 주신다는 점이고, 어차피 투어는 현지 여행사가 대행하므로 중간 수수료만 조금 떼는 듯싶었다. 보통 평일에는 여행객들만 찾는 곳이라 하는데 하필이면 일정상 일요일에 가게 되어 현지인들이 많이 모여 미니버스에서 대형버스로 바뀌었다. 입구에서 표를 끊고 전기차로 약 10분 정도 가니 사원이 나왔다. 역시나 최대의 규모답게 많은 불상들을 볼 수 있었고 30분을 걸어올라 정상에 다다르니 산 아래 펼쳐진 아름다운 경치에 다시 한 번 더 놀랐다.
닌빈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장안은 보트 투어가 유명하다. 베트남인들은 체구가 작아 6명 이상도 가능하나 외국인들은 4명 정도 태웠고 노를 젓는 사람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2시간에 걸쳐 태고적 환경을 그대로 간직한 자연경관을 벗 삼아 유유자적하니 어느덧 풍류시인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보트투어의 압권은 단연 수상 동굴이었다. 사진에서 보듯 그 높이가 길지 않아 금방이라도 종유석과 같은 돌출물에 머리를 부딪칠 뻔 했다. 하지만 노련한 사공은 일부러 그런 듯했고 동굴을 나와서는 힘이 부쳤는지 손대신 두발로 노를 젓는 여유도 보였다.
하노이의 먹거리
베트남 하면 누구나 한 번쯤은 먹어봤을 만한 음식이 있으니 바로 쌀국수다. 본인도 말로만 베트남 쌀국수의 육수가 진해 한번 먹어보면 한국의 그것은 견줄 수 없다는 말을 지인과 보도를 통해 접한 적이 있다. 얼마 전 우연찮게 EBS에서 방영한 ‘아틀라스 세계 문화기행’을 본 적이 있다.(잘은 기억이 안 나지만 재방?) 더본코리아 백종원 대표가 하노이 편에서 처음 방문해서 찾은 ‘포밧단’을 기억하며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찾아 나섰다.
‘포(Pho)’는 쌀국수란 뜻이고 ‘밧단(Bat Dan)’의 원뜻 또는 유래는 모르지만 도로명 ‘밧단’길에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다행인 것은 주소검색은 초행길이라 힘든데 반해 도로명은 도로와 도로가 만나는 교차점마다 세워진 푸른 이정표를 보고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길게 늘어선 줄과 크지 않는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다들 맛있게 먹는 모습에 기다리는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메뉴판을 보고 주문을 해야 하는데 뭐가 뭔지 몰라 가장 싼 것 하나와 비싼 것 하나를 시켜보았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Chin은 얇게 잘린 소고기가 푹~삶아져 나오고, Tai는 살짝 데친(샤브샤브 정도?) 소고기가 고명으로 얹어진 느낌이었다. Nam은 옆구리 살로 기본 양지와 차이점을 못 느꼈다. 어쨌든 고기를 육수에 오래 끓인 Chin은 국물 맛이 더 진해보였고 Tai는 국물보다 고기 맛이 풍부해 보였다. 거기에 5만동(약 2500원)이란 착한 가격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듯… 하지만 셀프와 합석은 기본이며 청결은 보장이 안 된다는 단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노이를 찾는 여행객들의 MUST-EAT 되시겠다!
쌀국수 다음으로 한국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분차를 맛보러 ‘분차닥킴’이란 곳을 찾아갔다. 성요셉성당 근처에 있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이곳도 마찬가지 줄이 길었으며 합석은 기본이었다. 고기와 면을 느억맘(NuocMam) 소스에 넣어 각종 채소와 먹는 시스템인 것 같은데… 일단 고수의 향이 너무 강했고 이 느억맘이란 녀석이 생선을 발효시켜 시큼한 맛과 달달한 풍미가 더해졌으나 내 입맛엔 조금 비린 맛이 났다. 하지만 숯불에 구운 고기는 갈비맛이 나서 한국인 입맛에 맞았다. 가격은 쌀국수보다 비싼 9만동이며 가게 안이 너무 정신이 없어 재방문 의사를 묻는다면 ‘No’라 말하고 싶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 취향이며 게눈 감추 듯 먹는 주변 사람들을 보며 내 입맛을 의심하기도 했다.
이 분보남보집은 주소검색도 주변 도로명도 어려워 택시를 탔다. 물가가 싸다 보니 우리 돈 2천 원이면 하노이 시내는 충분하다. 이 녀석은 비빔국수 필이 나는데 고소한 견과류와 씨리얼이 양념과 어우러져 소고기와 면을 함께 먹으면 오묘한 맛이 났다. 거기에 매콤한 소스를 곁들여 먹으니 내 입맛엔 딱 이었다. 가격도 6만동으로 저렴하고 셀프도 아니 여서 포밧단 다음으로 좋았다. 강한 향신료 맛도, 비린 맛도 안 나 무난한 걸 좋아하는 사람에게 강추다.
여행 내내 비가 안 온다 해서 신기하다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마지막 날 비가 내리쳤다. 그 바람에 엉겁결에 택시를 잘못 타 바가지를 쓰긴 했지만 그래 봐야 2500원 정도였다. 택시기사와 실랑이? 하는 우여곡절 끝에 ㅤㄲㅘㄴ안응온(Quan An Ngon)이란 레스토랑에 갔다. 이곳은 대부분의 자리가 예약이 되어있는 현지인과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하노이 명소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일단 건물 외부부터 조명과 장식 디자인에 공을 들인 기분이 들었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직원이 택시 문을 열어주며 환영해 주었다. 반세오는 우리나라 해물 파전과 비슷하지만 큰 라이스 페이퍼에 돌돌 마는 방법으로 먹어보니 색다른 맛이 났다. 해물 볶음밥은 밥알이 날릴 정도로 잘 볶아졌으나 약간의 향신료 맛이 났다. 하지만 같이 나온 간장 비슷한 소스를 뿌려 먹으니 훨씬 더 고소한 맛이 났다. 해물 라이스 롤은 월남쌈을 기대하였으나 라이스 롤안에 비치는 채소(깻잎과 비슷)의 향이 너무 강해 전체적인 맛을 떨어뜨렸다. 이렇게 시켜도 30만동 밖에 안 나왔다. 서비스와 청결은 매우 우수했다.
Goodbye Hanoi!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아쉬움을 달래며 귀국 비행기 안에서 돌아가면 베트남을 더 자세히 알아보리라 다짐했다. 그런데 베트남 하면 왠지 가슴 한 켠이 아려온다. 아마도 라이따이한의 아픈 과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국은 1992년 베트남과 수교한 직후 청소년 문화 교류 후원으로 ‘라이따이한’이란 영화를 기획하였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한국영화 1001에도 뽑힌 이 영화는 전쟁의 쓰라린 아픔이 고스란히 후 세대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그려 그 여운이 오래 남는다. 이러한 아픔에도 양국은 2009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수립하고 마침내 지난 2014년에는 FTA를 체결해 얼마 전엔 협정문 한글본 초안이 공개되었다. 이미 작년부터 외국인직접투자액이 일본을 제치고 1위를 할 정도로 한국과 베트남은 가까워지고 있다. 최소한 경제적으로 그렇다는 뜻이다. 앞으로 문화적 콘텐츠의 활발한 교류로 정서적으로 더욱 돈독히 할 필요가 있다. 최근 KBS의 ‘뮤직뱅크 하노이’가 좋은 예일 듯싶다. 중국동포 다음으로 가장 많은 베트남 다문화 가정을 위해 스카이라이프는 유료방송사 최초로 작년 하노이 VTC방송사와 MOU를 체결, 올 상반기내 베트남어 전문 방송을 론칭할 계획이다. 안녕 하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