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C-12와 방송의 미래

WRC-12와 방송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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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C-12는 지난 1월 23일부터 4주간 제네바에서 개최되었다. WRC(World Radiocommunication Conference : 세계전파통신회의)는 전파라는 유한한 자원을 세계의 각 나라가 지리적, 대역별로 적정히 분배하는 문제를 다루는 전파통신부문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이다. WRC에서 결정된 내용은 국제법적 효력을 가지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정부 대표들은 WRC를 전파자원 확보 ․ 보호 및 산업육성과 국제경쟁력 확보를 위한 장으로 활용하면서 자국 이익의 확보를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우리나라의 방통위도 WRC-12에서 보다 많은 전파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했고, 그 결과 많은 성과를 이루어낸 것처럼 선전하였다. 방통위는 WRC-12로 출발하기 전인 1월 20일 ‘스마트 미디어 시대의 주파수 영토를 확장하겠다’는 목표로 「모바일 광개토 플랜」을 의결하였고, 여기에는 700㎒ 대역 108㎒ 폭 중 40㎒ 폭을 우선 이동통신용으로 배정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2월 22일에는“세계전파통신회의(WRC-12) 성공적으로 끝마쳐”라는 제목으로 “이번 회의에서는 아프리카 및 아랍지역 국가들이 긴급 제안한 700㎒ 대역의 이동통신용 분배에 대해, 지역별 의장단 회의의 의견을 반영해 동 대역을 이동통신용으로 분배하되, 그 효력은 WRC-15 직후에 발효하는 것으로 결의하였다.”는 보도 자료를 배포하였다. 이어서 이에 동조하는 일부 신문사들이 이를 확대 재생산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였다.

 

   
 

방송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이 이동통신에만 편향된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방통위를 바라보는 방송계 종사자들은 정말 답답하다. 방송 진영에서는 그동안 “700㎒ 대역은 차세대방송용으로도 사용되어야 하고, 현재로서는 유휴 주파수라고 볼 수도 없기 때문에 DTV 채널재배치 이후에 논의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방통위는 방송 진영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하고 700㎒ 대역을 이동통신용으로 할당하려는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700㎒ 대역은 이번 WRC-12의 공식 의제도 아니었다.

단지 아프리카와 중동 국가에서 4세대 이동통신 도입을 위해서는 700㎒ 대역사용이 시급하다고 제기하였고, WRC-12 측에서는 이에 대하여 강하게 반대하는(highly unwelcome) 유럽방송연합의 의견을 받아들여 WRC-15까지 연구를 수행하고, 필요로 하는 개발도상국들의 요구를 수렴하자는 결의를 한 것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방통위는 700㎒ 대역이 2015년 WRC-15 이후에는 무조건 이동통신용으로 분배하는 것처럼 보도하였다.

지금도, 일부 신문에서는‘국제조화(Global Harmonization)’등을 내세워 700㎒ 대역의 나머지 68㎒ 폭에 대해서도 시급히 이동통신용으로 할당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마치 탐욕에 빠진 방송 진영의 억지 주장 때문에 「모바일 광개토 플랜」이 위기에 빠졌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Digital Dividend가 일치하고 700MHz 대역에서 이동통신 서비스를 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 유일하다. 미국은 2007년 경매 시 공공안전서비스 24㎒를 700㎒ 상위대역에 사전 할당하고 현재 48MHz (CH 53, 54, 58, 59, 60, 61, 65, 66)만 LTE 서비스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주사업자인 AT&T와 Verizon Wireless 사이의 Roaming이 지원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더불어 FCC에서는 30년 전에 아날로그 셀룰러서비스 제공을 위해 경매하였던 800MHz 대역을 LTE Advanced용으로 개발하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700㎒ 대역 외에도 이동통신용으로 사용이 가능한 여유 주파수는 충분하다. 현재 서비스에 실패한 WiBro 2.3㎓ 대역의 35㎒ 폭, 위성 DMB 2.6㎓ 대역의 25㎒ 폭, 현재 사용하지 않고 있는 2.1㎓ 대역의 60㎒ 폭과 국내 방치 중인 2.6㎓ 대역의 90㎒ 폭을 LTE 서비스로 전환하면 총 210㎒ 폭의 주파수 확보가 가능하여 향후 약 4년간 트래픽 문제는 해소될 수 있다.

   
 

전파특성이 우수한 700㎒ 대역 주파수를 활용하면 기지국 숫자가 줄어 네트워크 구축비용이 절감된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이는 트래픽 해소를 위한 통신망 설계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이동통신용 기지국의 커버리지 반경은 단순한 기지국 송신 출력과 주파수 특성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RSSI(Received Signal Strength Indicator)와 기지국의 트래픽 용량 수용 능력에 의해 결정된다. 도심 지역에서는 대용량의 트래픽이 발생하므로 기지국의 출력을 줄이면서 조밀하게 기지국을 설치하여 트래픽을 해소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전파특성이 우수한 주파수를 방송용으로 활용하면 기지국 숫자를 줄일 수 있어 송신구축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도 이동통신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700㎒ 대역은 차세대 지상파 방송을 위한 필수 주파수이다. 현재 방송 진영에서 차세대 방송으로 가장 유력하게 생각하는 것이 UHDTV다. 대형 TV수상기의 가격이 급격히 하락하고 점점 더 대형화되고 있어 현재의 HDTV로는 화질을 만족할 수가 없고, 가전산업의 발전과 차세대 TV수상기 수출시장 확보를 위해서도 국가가 UHDTV 산업을 정책적으로 지원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NHK 기술연구소는 이미 수년 전부터 UHDTV를 연구 중이며, 올해 하반기에는 KBS 기술연구소가 중심이 되어 관악산송신소에서 4K UHDTV 실험방송을 실시할 계획으로 있다. 하지만, 방통위는 위성을 통해 UHDTV를 서비스한다는 계획만 있을 뿐 지상파 방송에 대한 고민은 없다.

 

방송의 발전주기와 기술발전 추세를 보면 조만간 차세대 방송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다. 그런데 가장 우수한 콘텐츠 제작 능력을 보유한 지상파 방송은 제외하고 위성과 케이블 방송만 차세대 방송을 실시하게 된다면 콘텐츠 산업과 가전산업 발전은 더딜 수밖에 없다.

지상파방송사들은 디지털전환 사업을 한창 진행 중이지만 송신시설 설치에 있어서는 주파수 부족으로 인한 사업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주파수 허가를 신청하여도 주파수 부족으로 반려되는가 하면, 어떤 지역은 허가를 받아 시설을 하여도 다른 시설과의 주파수 혼신으로 송신시설을 제대로 운용할 수 없는 사례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얼마 전 언론노조 자료공개청구로 정부가 마지못해 공개한 ‘채널배치 시뮬레이션(컴퓨터를 이용한 가상 분석)’에도 많은 허점이 발견되었다. 수도권의 일부 송신시설은 현재 디지털TV의 1/5 출력만 반영하는가 하면, 어떤 시설들은 동일주파수가 불가능한 위치임에도 무리하게 채널을 배치한 곳도 있다.

 

   
 

정부의 계획대로 진행하면 우리나라 디지털TV용 주파수는 228㎒만 남게 되어 세계에서 가장 열악한 환경에 처하게 된다. 미국 300㎒, 영국 264㎒, 일본 240㎒인데 비해 주파수가 턱없이 적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산악지형이 많아 더 많은 주파수가 필요하고, 우리나라가 채택한 미국방식의 디지털TV는 일본이나 영국보다 주파수 효율도 매우 낮다. 결국 채널재배치가 완료되어도 주파수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주파수는 유한한 자원이다. 한번 잘못 할당해 버리고 나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될 수 있다. 700㎒ 대역을 방송용으로 지켜내지 못한다면 디지털TV 난시청 해소사업의 차질로 수신환경은 열악해지고, 지상파방송은 영원히 HDTV 수준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이러한 결과는 유료방송에 가입해야만 TV를 볼 수 있게 되는 국민들, 매체 경쟁에서 뒤처져야만 하는 지상파방송사들, 새로운 기회를 놓쳐버려야만 하는 TV수상기 제조사와 콘텐츠 제작사 등 모두에게 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700㎒ 대역은 결코 유휴 주파수가 아니다. 700㎒ 대역의 활용은 2013년 이후 DTV채널재배치와 난시청해소 사업이 일단락된 이후 논의되어야 한다. 아울러, 지상파에 대해서도 차세대방송에 대한 정책을 조속히 수립해야 한다.

<VOL.196 방송과기술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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