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인 3종 경기에 도전하겠다고 말했을 때 회사 선배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매일 회사와 집까지 출퇴근해서 걸어 다니기도 힘든데 뭐에 쓰려고 그 힘든 걸 하느냐고 말이다. 그렇다. 매일 출퇴근하는 회사 생활을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우리 방송기술 엔지니어처럼 일-야-조-비 생활을 하면서 매일매일 밤낮 근무시간이 바뀌는 경우에는 하루하루 방송국 생활을 버텨내기에도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 함께 하기로 한 동료 김재훈, 김우광, 주민철 그리고 저자 |
코 흘리며 뛰어놀던 꼬맹이 시절과 수업시간 웃고 떠들다 혼나던 학창시절은 추억만을 주며 떠나가고 이제는 내 나이도 30대가 저물어 가고 어느덧 마흔을 준비하는 나이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아쉬움을 달래고 싶어 더 늙기 전에 무엇인가 해볼까 하는 고민이 생겼다. 고민 끝에 누구나 쉽게 도전하지 않는 무서운(?) 철인 3종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다행히도 외롭지 않게 함께 준비할 수 있는 직장동료를 찾았고 우린 서로 약속했다.
꼭 완주하자고!
철인 3종 경기에 도전하기 몇 해 전 나는 뜻하지 않은 사고와 큰 부상으로 시련을 겪게 되었다. 소중한 생명까지 위태로웠던 큰 사고였다. 더군다나, 사고의 처리는 나에게 더 큰 마음의 상처를 주었고, 억울한 마음에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치고 말았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렇게 내 하나뿐인 삶을 허비하며 지낼 수는 없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지금 이 순간이란 것을 깨닫고 난 툭툭 털고 일어나기로 결심했다. 나는 원래 긍정의 기운이 넘치는 사람이다.
막상 준비를 시작해보니 약해진 나의 몸이 극한의 인내심과 체력을 요구하는 철인 3종을 이겨낼 수 있는지 걱정이 앞섰다. 그래도 나와 약속을 한 그 날 이후 난 철인 3종에 참가한다는 설렘과 기대감을 가지고 훈련에 돌입했다.
철인 3종 경기의 원어는 트라이애슬론(triathlon)으로 세 가지 경기를 뜻하고, 종목은 수영, 사이클, 마라톤이다. 대회는 매년 10회 이상 전국 각 지역에서 열리며 철인 3종에서 완주는 거리뿐 아니라 종목별 제한 시간(Cut off time)이 있어서 그 시간을 초과하면 더 이상 경기에 참여할 수 없고 올림픽 코스는 수영 1시간, 사이클 1시간 30분, 달리기 1시간, 총 3시간 30분 안에 들어와야 철인으로서 인정한다.
▲ 대표적인 종목 구간에 따른 철인 3종 경기(트라이애슬론)의 종류 |
수영, 사이클, 마라톤 세 종목은 운동 중 가장 기본적인 운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유산소 운동으로, 기초 체력이 밑바탕이 되어야 하는 운동이다. 비록 매일 할 수는 없지만 나름 틈틈이 시간을 쪼개어 헬스장, 사이클, 러닝으로 체력을 차근차근 키워 나갔다.
▲ 스마트폰 스포츠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 거리 및 속도 등 운동량 확인 |
대회 참가 준비물은 대회복, 수영모자, 웻슈트, 자전거, 헬멧 등이 있다. 개인에게 잘 맞는 안전장구를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참가를 위해서는 대회전날 사이클을 사전에 등록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 대회전에 준비해야할 자전거, 헬멧 및 웻슈트 |
2014년 7월 6일, 마침내 가슴 설레는 대회 날 아침이 찾아왔다.
내가 처음으로 참가한 대회는 속초에서 열리는 <전국 설악 트라이애슬론 대회>이었다.
첫 번째 도전했던 속초 대회의 코스와 수영출발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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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도전한 속초대회를 마치고 함께 참가한 회사동료들과의 기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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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종목은 수영이다. 바다에서 태어난 나는 어린 시절 많은 시간을 바다에서 헤엄치고 물장구질을 하면서 자랐다. 그래서 세 가지 종목 중 가장 걱정을 하지 않았던 종목이기도 했다. 물에만 들어가면 몸이 알아서 움직여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라고 했던가.
대회 시작을 알리는 출발 총성 소리에 맞춰 호기롭게 물속으로 뛰어들었지만, 태어나서 처음 입어본 롱 슈트가 숨통을 조여 왔다. 게다가 수많은 참가자들이 뒤엉켜 서로 앞뒤를 다투다 보니 깊은 바닷물 위에서 서로 부딪히며 발목을 잡아채고 도무지 제대로 된 호흡을 할 수가 없었다.
실내수영장이 아닌 오픈워터(강이나 바다)에서 훈련을 하지 않은 난 죽음에 대한 공포가 밀려왔다. 하지만 포기는 용납하지 않았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꼴찌로 수영을 마무리했다.
남은 사이클과 마라톤에서 지체된 시간을 만회하고자 하였지만 사이클 도로통제 시간에 걸려서 네 바퀴 중 한 바퀴를 채우지 못했고, 큰 아쉬움을 안고 마라톤 코스로 마무리하였다.
나의 첫 번째 철인 3종 경기 도전은 처참하게 실패하고 말았다. 큰 아쉬움과 허무한 마음에 속이 상했다. 다행히도 함께 참가한 직장 동료들은 멋지게 완주하였기에 축하를 건넸지만, 솔직히 부러운 마음이 컸다. 하지만 나는 내가 준비가 완벽하지 않았음을 인정해야 했다.
그날 나는 집으로 돌아와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기 싫어 재도전을 하기로 마음먹고 곧바로 2주 후, 2014년 7월 20일 <이천 설봉 트라이애슬론 대회>에 참가 신청을 하였다. 이천 대회까지 남은 2주라는 기간 동안 나는 완벽한 경기를 위해 웻슈트도 거금을 들여서 새것으로 구입하고, 완주를 위해 또 다시 뛰었다. 첫 번째 실패가 있었기에, 내가 직접 경기에 하며 느꼈던 여러 가지 경험들을 되살려 짧은 시간이지만 꼼꼼히 준비하고 훈련 했다.
이번에는 동료들과 함께하지 못해 외로운 도전이었지만 마음속으로 두 번은 실패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첫 번째 종목인 수영코스에 참가하기 위해 호수에 준비된 출발점으로 진입하는 선수들과 출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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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간의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어느덧 두 번째 기회의 날이 왔다.
출발 총성과 함께 나의 철인 3종 경기 레이스가 시작됐다. 역시 첫 종목은 수영. 처음 출전한 대회 때 긴장했던 마음과 다르게 가벼운 몸으로 나는 힘찬 팔 젓기와 물보라를 일으키는 발장구로 앞으로, 앞으로 전진했다.
바다와 달리 호수에서는 파도가 없어서 수영하기가 수월하다는 철인 3종 경기 도전자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많은 참가자들 사이에서 늦었지만 빠르게 호흡을 찾아갔고, 결국엔 첫 출전보다 좋은 기록으로 수영 코스를 마칠 수 있었다. 자신감을 갖게 된 나는 기분 좋게 사이클 종목으로 옮겨갔다.
두 번째 종목인 사이클을 준비하고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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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힘든 수영을 잘해냈기에 사이클 40Km를 달리며 난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하지만 또 한 번의 난관에 부딪혔다. 사이클 코스를 마무리하고 감각 없는 다리로 마라톤 코스로 넘어간 나는 그때 ‘포기’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이천 대회 마라톤 코스에서는 평지가 아닌 걸어가도 힘든 언덕이 지친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주위에 참가자 반 이상이 언덕을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그때 60대로 보이는 어르신이 혼잣말로 그 언덕을 힘차게 올라가셨다. “한 번도 안 쉬었어! 한 번도 안 쉬었다고!~” 라는 어르신 목소리를 들으며 자극을 받은 나도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채찍질을 하며 뛰다 걷다를 반복하며 한 걸음 한 걸음 골인 지점을 향해 갔다.
마지막 종목인 마라톤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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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 한 걸음 뛰어가며 수없이 이제 그만하자는 생각이 맴돌았다. 하지만 난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도전이기에 이렇게는 멈출 수가 없었고, 마침내 사랑하는 가족의 환영을 받으며 철인 3종의 결승 지점을 통과했다.
부족한 기록이지만 철인 3종 경기를 완주해보겠다는 나의 목표는 달성했다. 우리는 흔히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곤 한다. 경기 중에 힘들어서 뛰다 걷다를 반복하더라도, 완주를 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우리의 인생도 때론 지치고, 이제 그만 포기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지난 몇 년간 나에겐 내 인생 최대의 위기도 겪어봤고, 내 존재 이유인 내 아이와의 만남이라는 커다란 기쁨도 맛보았다.
모든 코스를 완주하고 결승점에 도착, 응원 온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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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내 인생이란 레이스에는 또 어떤 위기와 기쁨의 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철인 3종 경기라는 내 육체의 한계를 극복해본 지금, 나는 내 인생의 레이스를 포기하지 않고 뛸 준비가 되어 있다.
나는 오늘도 내 직장인 tbs 교통방송에서 방송 엔지니어로 청취자들에게 좋은 방송을 들려주기 위해 하루하루를 열심히 일하고 있다. 가끔씩 나는 힘들고 지쳤던 철인 3종 레이스를 펼치는 느낌이다. 힘이 들어서 포기하고 싶기도 하지만, 인내심과 도전정신을 가지고 완주에 성공한 크나큰 자신감으로 내리막길을 내려가듯 수월하게 내 맡은 바 업무를 처리해나간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나의 삶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