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군의 B급 잡설 – 인생의 회전목마 3

C군의 B급 잡설 – 인생의 회전목마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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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창업, 1976년 고회전 로터리 엔진, 첨단의 차체 제작기술, 녹슬지 않는 스테인리스 외관을 가지고 등장한 혁신적 프로토타입, 1978년 영국 정부가 하늘에서 뚝 떨어트려 준 감으로 착공한 북아일랜드 공장…… 매혹의 스포츠카 ‘드로리안 DMC-12’는 1979년으로 예정된 생산개시를 향해 타임라인을 하나씩 밟아가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슬슬 일이 하나씩 꼬이기 시작합니다.

프로토타입을 설계할 당시 ‘드로리안 DMC-12’는 로터리 엔진을 운전석 바로 뒤에 장착할 예정이었습니다. 자동차 구성품 중에서 가장 무거운 엔진과 트랜스미션을 운전석 바로 뒤에 두면 무게 중심이 앞바퀴와 뒷바퀴의 중앙에 가깝게 위치하기 때문에 코너에서 비약적인 운동성능의 향상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를 미드쉽(Midship. [그림 1]) 엔진이라고 하는데 고가의 이태리산 스포츠카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구성입니다. 피스톤 엔진보다 작고 가벼우며 압도적인 고회전이 가능한 로터리 엔진을 미드쉽으로 배치한다면, 경쾌한 가속과 빠른 코너돌파 능력을 양립시킨 스포츠카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 [그림 1] 미드쉽 엔진 배치

그런데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DMC(DeLorean Motor Company)는 엔진을 자체 생산하는 메이커가 아니라 외부에서 조달하여 자동차를 제조하는 메이커였습니다. 이렇듯 엔진을 외부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DMC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DMC가 ‘드로리안 DMC-12’의 프로토타입을 제작하던 당시 고려했던 로터리 엔진의 생산이 중단된 것입니다. 대체 엔진을 찾지 않으면 자동차를 생산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다른 로터리 엔진을 수급할 방법이 없던 DMC는 피스톤 엔진을 사용해야만 했고, 최종적으로 푸조-르노-볼보의 합자회사에서 생산한 V6 2.8L 엔진을 사용하기로 합니다. 엔진이 바뀌면서 엔진의 장착위치도 변경되어야 했습니다. 피스톤 엔진의 경우 로터리 엔진에 비해 부피가 크므로 운전석 바로 뒤 차체 중앙에 깊숙이 엔진을 배치하려던 원래의 설계를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커져 버린 엔진에 맞게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엔진의 위치를 차체 뒤쪽으로 이동해야만 했습니다([그림 2]). 이는 설계에서 추구하던 차량의 이상적인 앞뒤 무게 배분을 불가능하게 하여 양산차량의 주행성능에 영향을 주게 되었습니다.

▲ [그림 2] 드로리안 DMC-12의 엔진룸출처 : theautolounge.net

엔진만 문제였다면 상황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특허까지 구매하며 야심차게 추진하던 저비용의 경량차체 제작기술의 적용도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어 포기하게 됩니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문제들이 겹치며 ‘드로리안 DMC-12’ 프로토타입의 콘셉트를 양산차에서 구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고, 결국 영국 로터스(Lotus)의 창립자인 콜린 채프먼의 손을 빌려 대대적인 설계수정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로터스를 잠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로터스는 1952년에 창업한 영국의 소규모 스포츠카 제조회사입니다. 스포츠카라고 하면 흔히 고배기량/고출력 엔진을 사용하여 성능을 끌어올린 차량이라는 것이 대중의 일반적 인식인 것에 반해 로터스의 스포츠카는 엔진 출력보다는 경량화를 통해 운동성능을 극대화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로터스는 우리나라와도 다소 인연이 있습니다. 1996년에 국내 K사가 시판한 엘란(Elan, [그림 3])이 바로 로터스의 스포츠카였습니다. 로터스는 대부분의 영국 자동차회사들이 그렇듯 당시 고질적인 경영난을 겪고 있었습니다. 경영난에 돈이 필요하던 로터스가 스포츠카를 필요로 하던 K사와 이해가 맞아서 엘란의 판권을 K사에 팔게 되었고, K사는 이를 양산하여 국내 시장에 출시했던 것입니다. K사의 엘란을 보면 당시 로터스의 스포츠카 제작 특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1.8ℓ의 소박한(?) 엔진, 고강성 Y 프레임, 경량의 강화 플라스틱 차체가 바로 그것입니다. 엔진은 그저 준수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수준이었지만, 뒤틀림에 강한 프레임과 경량의 차체를 바탕으로 주행 성능을 끌어올리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K사의 엘란을 통해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이 벌써 추억에서도 희미해지는 20여 년 전의 일이지만, 최근에는 H사의 고급세단 제XXX의 개발에 참여해 전반적인 주행 밸런스를 튜닝한 것으로 다시 한국과 인연을 업데이트했고, H사는 미국 시장에 로터스의 개발참여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제XXX의 마케팅을 했습니다. H사가 마케팅에 이용할 정도로 네임밸류를 가진 로터스이니, 그 실력은 업계에서 만만치 않게 평가되고 있다고 이해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 [그림 3] K사 엘란(좌)와 엘란의 Y-프레임(우)출처 : forums.vwvortex.com, forum.lotuselancentral.com

본론으로 돌아와서, 로터스가 재설계한 ‘드로리안 DMC-12’의 구조([그림 4])는 K사 엘란과 흡사한 면이 많습니다. ‘드로리안 DMC-12’도 Y-프레임과 강화 플라스틱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점이라면 엘란이 외관까지 모두 강화 플라스틱을 사용한 것에 반해, ‘드로리안 DMC-12’는 외관을 스테인리스로 마무리했다는 것입니다.

▲ [그림 4] 드로리안 DMC-12의 Y-프레임(좌)과 강화 플라스틱 구조(우) 출처 : antholonet.com

Y-프레임에 강화플라스틱 구조를 붙이고 그 위에 ‘드로리안 DMC-12’의 아이콘인 녹슬지 않는 스테인리스 외관을 덮은 차체는 추가의 도장 없이 은빛 스테인리스 그대로 출고되었습니다. 존 드로리안이 가지고 있던 비전인 ‘일생의 동반자가 될 수 있는 자동차’의 실현을 위해 부식이 되지 않는 스테인리스로 외관을 만든 것 같습니다. 모든 자동차가 철판 그대로 출고가 되다 보니 다른 색을 원하는 소비자는 직접 도장을 해야 했습니다.
고강성의 구조에 평생 녹슬지 않는 외관을 가진 ‘드로리안 DMC-12’의 차체는 언뜻 약점을 찾기 어려워 보이지만, 항상 세상 모든 일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드로리안 DMC-12’의 차체도 무협지에 나오는 절정의 고수의 말 못할 사정 같은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구조나 성능의 약점이 아닌 수리 부분에서의 약점이었습니다. 도장이 되지 않은 스테인리스 철판 그대로 만들어진 외관에 찌그러지거나 움푹 패인 상처가 생기면 이를 수리하는 것이 커다란 난제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도장이 된 자동차들은 찌그러지거나 패인 부분을 완전히 펼 수 없을 경우, 납이나 퍼티 등의 재료로 메우고 그 위에 덧칠을 합니다. 하지만 도장이 되지 않은 ‘드로리안 DMC-12’의 경우에는 완전히 펴지지 않는 상처의 수리가 불가능했습니다. 애초에 이를 알고 있던 존 드로리안은 복구가 불가능한 스테인리스 철판은 완전히 교체하는 것을 수리방침으로 했다고 합니다.

엔진의 교체에 이어 로터스의 도움으로 차체를 재설계한 ‘드로리안 DMC-12’는 우여곡절 끝에 애초 계획했던 1979년보다 2년 늦은 1981년에 양산이 가능한 단계로 올라섰습니다. 유럽 버전의 경우 160마력의 엔진과 수동변속기의 조합으로 0~100km/h 가속에 8.5초 정도가 소요되어 매우 뛰어나지는 않지만 나름 준수한 성능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미국버전은 연방정부의 배기가스 규제로 인해 엔진 출력은 130마력으로 낮춰졌고, 이 엔진에 시장 특성을 반영한 3단 자동 변속기를 조합할 경우 0~100km/h 가속에 10.5초가 소요되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은 스포츠카가 되어버렸습니다. 성능에 비해 과하다 싶은 $25,000(자동 변속기 적용 시 $650 추가)의 가격표를 달고 말입니다. 당시의 $25,000를 현재 가치로 환산할 경우 $60,000을 훌쩍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지금 미국시장에서 H사의 제XXX 3.8ℓ 버전의 소비자 가격이 $38,000에서 시작하므로 ‘드로리안 DMC-12’가 매우 고가의 자동차였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결국, 뛰어난 스타일링을 빼면 가격을 납득하기 힘든 스포츠카로 인식되었고, 자동차 비평가들도 이 점을 집중적으로 비판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드로리안 DMC-12’의 주요 시장인 미국은 불황에 휩싸이고 있었고, 시장에는 ‘드로리안 DMC-12’보다 싸고 고성능의 스포츠카들이 불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외부의 상황이 녹록지 않은 가운데, 공장의 운영도 쉽지 않았습니다. 북아일랜드 공장의 노동자들은 자동차 공장에서 일 해 본 적이 없는 노동자들이어서 초기 품질에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품질문제는 다시 애프터서비스로 이어져 생산-판매-수리가 매우 복잡한 상황으로 꼬여 갔습니다. 안 봐도 뻔하듯 판매는 부진했고, 공장에 재고는 쌓여갔습니다.

▲ [그림 5] 존 드로리안의 마약거래협의 무죄선고 기사출처 : www.entermyworld.com

경영난의 심화로 악화일로의 상황에서 마침내 충격적 사건이 터집니다. 1982년 10월 존 드로리안이 마약 거래 협의로 기소가 된 것입니다. 증거는 마약 거래를 하고 있는 드로리안을 담은 FBI의 영상이었습니다. 아마도 회사의 부도를 막기 위해 급하게 운영자금을 융통하려고 마약 거래에 발을 디뎠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마약 거래와 관련해서 무엇이 진실이었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드로리안의 변호사는 FBI가 그을 겨냥해 함정수사를 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결국 드로리안의 무죄를 이끌어냅니다([그림 5]).

무죄로 풀려났으나 존 드로리안의 이상을 담은 자동차 회사 DMC는 부도를 면할 수 없었습니다. 1981~1982년 사이 약 9,200대의 ‘드로리안 DMC-12’의 생산을 끝으로 공장은 문을 닫습니다. 생산된 9,200대를 재고 없이 다 팔았다고 하더라도 손익분기점에서 한참 모자랐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존 드로리안 본인도 부도와 관련한 각종 소송 끝에 1999년 개인파산을 선언했다고 합니다. DMC의 부도를 끝으로 눈에 띄는 존 드로리안의 활동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무언가 사업을 다시 일으켜 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언론의 주목을 받던 업계의 스타에서 평범한 아저씨로 살아간 존 드로리안은 2005년 뇌졸중으로 사망합니다. 지금도 그의 묘석([그림 6])에는 유작이 된 ‘드로리안 DMC-12’가 걸윙도어(Gull-wing door)를 연 채로 새겨져 있습니다.

▲ [그림 6] 존 드로리안의 묘석출처 : www.chromjuwelen.com

가난한 이민자의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라 자동차 업계의 총아로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미완의 역작을 끝으로 불명예스러운 협의와 함께 슬프게 멈추어버린 존 드로리안의 흥망성쇠를 여기서 마칩니다.

P.S.
C군의 잡설은 귀동냥에 근거하여 재구성된 것이므로 사실과 다를 수 있음을 항상 유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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